원한 맺힌 기도

원한 맺힌 기도 (눅18:1-8)

(요약)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 받을 성도는 선한 원한을 갖고 기도하는 성도이다. 그 원한이란 성령이 임하여 생겨지는 갈망으로 먼저 내 속의 원수 죄를 처리해 달라는 기도이다. 이것이 거룩함을 위한 기도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갈망하는 기도가 원한에 맺혀야 한다. 바울은 동족 구원을 위하여 그런 마음을 가졌다. 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간절한 소원이 그래야 한다. 그리고 타락한 세상의 악을 바라보면서 노아와 같이 에녹과 롯과 같이 마음이 상할 만큼 눈물로 기도하며 몸부림쳐야 한다.

(설교)
주님의 교훈 중에 충격적인 말씀이 본문 8절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우리는 지금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려고 온갖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하신 말씀은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원한 맺힌 과부와 같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 원한이라도 갖고 부르짖는 것 아닙니다. 본문을 잘 알아야 합니다. 원한이란 원수에 대한 한인데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지 원한을 품으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일반적인 원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행히 본문에는 다행히 이 원한이 무엇인지 돕는 정보들이 많습니다. 먼저 이 원한은 밤낮 부르짖어야 할 기도 제목입니다. 그리고 택하신 자들의 한결같은 소원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도는 세상 사람들의 소원이 아닙니다. 택하신 자들의 마음속에만 생겨난 특수한 소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과 관계된 일이고, 주님을 맞을 준비와 관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잘하면 주님으로부터 믿음 있다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일을 잘하여 주님이 오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큰 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원한은 원한이되 성도들의 가져야 할 이 원한은 무엇일까요?

1. 내 속의 원수에 대해 원한 맺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원수는 가장 가깝게 있습니다. 바로 내 가족이 원수라고 했는데 그 중에서 내 자신이 최고의 원수인 것입니다. 롬7:20에 내 속에 거하는 죄가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내 속의 죄는 나를 넘어뜨리고 나를 시험 들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내 속의 죄가 가장 큰 원수입니다.

예수 믿어 거듭났지만 아직도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직도 말씀이 부족하여 생각과 사고와 습관에 있어서 변화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이듯이 우리에게도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원한 맺힌 과부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내 심령을 내어놓고 바른 믿음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짓다가 만 미완성된 건물이 멈춘 채 서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유가 있겠지만 건물이 미완성된 채로 남아있으면 얼마나 눈에 거슬리고 흉한지 모릅니다. 이것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하나님의 자녀긴 한데 아직 어린이라는 말입니다. 아직도 탐욕과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아이입니다. 그러므로 내 속의 원수를 처리해 주시고 온전케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주님이 오실 때 믿음 있다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2. 불신앙의 영혼을 위해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이 불신의 동족들을 위해서 얼마나 한 맺힌 기도를 했습니까? 롬9:1-3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습니다. 이보다 더 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이 모습을 우리에게서 보시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거듭난 영혼은 예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림과 동시에 또한 사랑 안에서 죄악으로 멸망해 가는 심령에 대해 애타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들도 지옥으로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애통하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소녀가 빌리 그래함 집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처럼 집회를 인도할 능력은 없으나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여 집회에 참석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흉악한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나 당일까지도 마땅히 전도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회 시작 시간이 다 되었으나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여 거리를 걷고 있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소녀는 그 사람을 붙들고 한번만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술 취한 사람이 귀찮다고 하는데도 계속해서 졸랐습니다. 그런데 한 10살쯤 되는 꼬마 소녀가 하도 조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그는 지중해 연안을 주름잡는 마피아 두목이었습니다. 마피아 두목이 소녀에게 끌려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들도 안 된다 어렵다 마시고 기도하시면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애타는 심령을 찾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골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온갖 고난을 다 당했지만 마음으로도 염려를 놓지 않았습니다(고후11:28). 그만큼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시122:6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강해지고 사명 감당 잘하고 모든 면에서 풍족하게 해봐요. 여러분의 일도 다 풀리고 형통합니다. 많은 문제들이 여기에 걸려 있어요. 교회의 형통이 여러분의 형통입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땅을 상대로 일하기 때문에 땅이라면 진절머리가 날지 모르지만 저는 우리 교회에서 땅 없이 살아 왔기 때문에 땅 가지는 것이 한이 되고 한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미래를 위해 더도 말고 땅 한 필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한이요 제 소원입니다. 그러면 주택도 지을 수 있고 그늘도 만들고 얼마나 푸근합니까? 우리 교회 앞날을 위해서 준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든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한국과 세계교회를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타락한 세상의 악에 대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5:13-15)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세상에 대한 사명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구하고 세상의 요소요소에서 제 각기 역할을 감당하여 온 땅에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부정과 부패와 타락이 자취를 감추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도가 있어도 사회에 아무 영향력이 없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타락합니까? 돈 먹고 딴 소리하고, 이득을 위해서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키고, 나라 팔아먹고, 무고한 사람 악인으로 몰아 죽이는 시대입니다. 요즘 가장 정의로워야 하는 젊은이들 맘에 들지 않습니다. 다 커가지고 부모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기껏 하는 데모가 등록금 이상반대 수준이라면 얼마나 이 나라가 희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젊은이들이 사회의 정의와 인권과 평화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몸부림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청년시절 기도하던 중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고 그 환상에 따라 복음의 말씀 그대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제자의 삶을 살겠다고 헌신하게 됩니다. 그는 평생 가난한 자 병든 자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내 집을 보수하라”는 주의 말씀을 듣고 타락한 교회 전체를 정화 개혁하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나아가 프란시스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냥하고 또 손수 일을 하면서 평화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가난 속에 자신을 비우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겸비하고 온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는 복음적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여 그를 따르고 그의 모본을 받기를 사모했습니다.

성 프란시스의 유명한 평화의 기도가 있지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이런 원한 맺힌 기도가 있습니까? 우리 모두 자기 영혼을 위해, 타인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과 인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과부의 원한 맺힌 그 모습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하여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