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결혼 생활을 깨뜨리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결혼생활을 깨드리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창2:18-24
조용기 목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결혼생활을 파괴하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이 제목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무서운 결혼을 파괴하는 유행병이 만연히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전번 주간의 NEWSWEEK지에도 \'과연 결혼을 성립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크게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오늘 구미 선진국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웃 나라 일본 또 한국까지 넘쳐 들어와서 수많은 가정들이 파괴되고 또 가정이 파괴되지 아니하면 현재 존재하나 살았다 하나 죽은 자와 같이 존재하는 결혼 생활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 결혼을 파괴하는 작은 여우를 잡아내고 병든 결혼 생활을 우리가 고쳐놓지 아니하면 조만간 우리의 결혼 생활이 파괴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 때문에 체면 때문에 사회적인 이목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면 살았다 하나 죽은 자와 방불한 그와 같은 결혼이 계속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결혼은 하나님께서 세운 인생의 제도 중의 가장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첫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 가운데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성경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독처 하는 것이 좋지 않다 하시고 돕는 배필을 주시기 위하여 아담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하와를 지으시고 그를 불러서 아담에게 보내셨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난 다음에 너무 반가워하고 기뻐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하리라 그래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라고 말씀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셨으니 아무도 이를 나누지 못할지니라 그와 같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신 결혼이 그렇게 많이 나누어지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시험이 꽉 들어찬 일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수많은 가정이 파괴된 이유는 굉장히 중대한 사건으로 파괴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파탄이 되어서 파괴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정적인 큰 충격의 문제가 생겨서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는 극히 적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적은 일에 우리가 등한히 하므로 말미암아 지극히 사소한 일이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가정이 파괴되고 또 나아가서 살았다 하나 죽은 상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복싱 경기하는 것을 TV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복싱 경기를 할 때 큰 펀치를 얻어맞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적은 펀치를 많이 얻어맞으면 후반에 가서 그만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정 문제에 관해서 저는 오늘 중대한 것을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흔히 등한히 여기는 지극히 사소한 문제들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의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고 슬프게 하고 파괴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그 문제가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행복한 가정, 행복한 결혼이 파괴되는 이유는 지극히 사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신앙 생활을 등한히 함으로 그것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구주를 그리스도로 모시고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러한 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계 가운데서 50%에서 60% 가정이 파괴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어려운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올 때 이것을 치료받고 의지할 수 있는 마음에 위로와 여유를 없다는데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사의 삶은 옛날과 달라서 분초를 다투면서 복잡하고 경쟁사회 속에서 이리 뒤고 저리 뛰며 내적 외적인 압력이 수없이 다가옵니다. 이러한 가운데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고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영원무궁한 자원인 하나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지 않고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같이 살려면 이해와 동정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교육의 배경도 다르고 가정적으로 자라난 습관도 다르고 또 인격도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모여서 서로 한 지붕 밑에서 한 솥에 밥을 먹으면서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협동인 것입니다. 이것은 좀처럼 조화되기 힘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결점을 이해하고 서로의 잘못된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동정하는 이런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되는데 이런 마음의 여유 없이 이해도 하지 아니하고 용서도 아니하고 동정도 아니하면 서로 작은 일의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서로 부딪치고 서로 할퀴고 이 상처가 깊어지면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람과 산은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가정이라는 것은 부부가 한 지붕 밑에서 운명 공동체가 되어서 함께 살기 때문에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쳐다보는 상대방의 실망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약혼 시절 때나 연애 시절 때는 멀리서 보니까 좋은 장점만 보이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 대고 보면 얼굴도 예쁘던 것이 못난 것밖에 안 보입니다. 이래서 서로 결점이 자꾸 보이기 때문에 이 결점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실망이 깊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면 그 다음은 마음에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탄식하게 되고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실망된 마음을 받아들여서 이것을 치료할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오늘날 이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고 동정하며 상대방에 대해서 실망 당할 때 이것을 치료받을 수 있습니까? 결혼하신 분들은 저의 이 말이 체험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힘이 듭니다. 용서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동정하고 실망될 때 마음에 실망을 치료하는 것도 힘이 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가셨을 때입니다. 그곳에 마친 혼인 잔치를 베풀고 있는데 그곳에서 혼인 잔치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당황했습니다. 잔치 손님들은 포도주를 내라고 아우성을 치고 신랑과 신부는 자기 역량껏 최선을 다했으나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낭패에 처하여 결혼 첫날부터 벌써 인생의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나와서 이 기정에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의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간구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만들어서 그 첫 가정 첫 결혼한 가정을 의기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 가정은 위기를 이길만한 자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계신 나사렛 예수께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적인 자원을 가지고서 공급해 주므로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오늘날에도 가정에 대한 관심이 깊으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가장 첫 번 기적이 결혼하는 새 가정에 가서 일으킨 기적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주 예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기르면서 생활해 나가는 이 가정이 사회의 기초가 되고 국가와 사회에 인류문명의 기초가 되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여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사람들은 다 인격적으로 부실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모자란 것처럼 우리는 이해가 모자라고 용서가 모자라고 동정이 모자라며 인내가 모자랍니다. 이 모자라는 것을 누가 채워줄 수 있습니까? 모자란다고 아우성을 치고 서로 할퀴고 서로 물고 뜯고 그래서 다시 깨어지고 다시 순열과 조합처럼 다시 합치고 또 깨어지고 또 합쳐봤자 모자라는 것은 자기 인격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서로 자꾸 파트너를 바꾼다고 해서 모자라는 것이 메워지지 않습니다. 누가 이 모자람을 메워줄 수 있습니까? 누가 실망되고 낙심될 때 이것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이해와 용서와 동정을 갖다 줄 수 있습니까? 이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서 엎드려 기도하지 않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저 스스로도 늘 이것을 체험합니다. 제 속에도 모자람이 많고 제 아내의 속에도 모자람이 많습니다. 모자라는 두 사람이 모여서 같이 세상에서 살려니까 이 모자라는 것이 노출될 때는 서로 마음속에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용서가 잘 안 될 때도 있고 또는 동정이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또 서로서로 실망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아내가 내게 수없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나도 가끔 내 아내에 대해서 그런 일을 체험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인 이상 이것을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주님께 나와서 나의 잘못을 고백하고 나의 모자란 점을 자백하고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얼마나 놀랍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을 베풀어 주셔서 마음속에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동정할 수 있게 하고 용서할 수 있게 하고 서로서로의 상대를 감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음의 여유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을 우리 가정 생활의 삶의 자원으로 삼지 않고 이것을 등한히 하고 난 다음에 좋은 집만 사고 좋은 자동차만 사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이 세상에 물질로서 호화찬란하게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물질과 환경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을 결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마음이 결합되는 것인데 마음의 여유가 없이 이와 같은 결합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하찮게 생각하는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함께 교회당에 와서 예배드리는 이것이 오늘날 여러분의 결혼 생활을 묶어 놓고 행복하게 만들고 끝까지 백년 해로하게 만드는 위대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극히 등한히 여기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결혼 생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서로의 장점과 잘한 것을 찬양하지 않을 때 여러분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우리 가운데 파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보게 될 때 사람이 연애 시절이나 약혼 시절에는 사로 상대의 장점이 눈에 잘 보입니다. 왜? 서로 잘 보이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 모이기만 하면 남자는 그 상대인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장점만 바라보고 얼굴이 잘났다, 눈이 곱다, 코가 오똑하다, 입이 잘생겼다, 옷이 잘맞는다, 날씬하다 온갖 좋은 소리만 합니다. 그리고 또 여자도 남자의 장점만 바라보고 말합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 장점만 들어서 향기를 내고 서로 끌려서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결혼 첫날부터 시작해서 눈에 보이는 것은 장점은 안개구름같이 사라지고 단점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자꾸만 서로 단점을 지적하고 서로 할퀴기 시작합니다. 크게 할퀴는 것 아닙니다. 여기서 조금 할퀴어주고 저기서 조금 꼬집어주고 여기서 조금 찔러주고 저기서 조금 찔러주면 이것이 멍이 들고 영혼에 상처를 입혀서 점점 처음의 뜨겁던 신앙을 식어버리고 나중에 서로서로 목탁같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연애 시절이나 약혼 시절에 하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에 상대의 장점이나 잘한 일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당연지사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먹고살지만 우리의 정신은 인정함을 받고 칭찬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먹고 자아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과 자아 이미지라는 것은 중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고 칭찬해 준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나의 삶의 보람을 느끼며 내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내 운명을 사랑하고 내 자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될 때 내 행복이 강물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그 행복이 아름다운 치료제가 되고 행복이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10년을 살았든, 20년을 살았든,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려고 열심히 애를 써야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께서 좋은 옷을 사주는 것보다 낫고 아주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는 것보다 낫습니다. 서로 보고 서로의 결점은 운명이고 팔자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장점만 바라보고 그 장점을 자꾸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굉장한 향기를 나타냅니다.
내 아내는 장점이 참 많은데 그 중에 가장 좋은 장점은 지혜가 나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우리 집사람과 오랫동안 경쟁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말을 안 해도 속으로는 무슨 일을 해도 나보다 일 처리를 잘합니다. 내가 손대면 안 되는 것이 우리 집사람이 손대면 됩니다. 그래서 한동안 제 마음이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여자가 지혜롭다고 저렇게 고개를 흔드는가? 잘 알아도 내 앞에서는 모른 체 하고 있어야지. 왜 나보다 잘하는가? 거기에 속이 상해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주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왜 우리 아내가 저보다 지혜가 많습니까? 내가 속이 상해 못 견디겠습니다.\' 하니까 \'야 이 사람아, 그러길래 내가 돕는 배필을 네게 주었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니 네 생활이 얼마나 편하냐? 이러므로 이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돈을 어떻게 쓸까 자식을 어떻게 교육을 할까 하는 것은 네 아내에게 맡겨버리고 너는 편안해라. 지혜로운 사람이 고생하고 지혜 없는 사람이 팔자가 편해진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요사이 제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 안 합니다. 그리오 생활 문제도 우리 아내에게 다 맡겨 버립니다. 자식 교육 문제도 다 맡겨버립니다. 그러니 세상에 팔자가 늘어져도 이렇게 늘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혜로운 아내를 주셔서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도 우리 아내의 지혜에 감탄을 했습니다. 제가 일본에 닷새 동안 성회를 하는데 한국보다 더 찌는 듯이 더우니까 옷이 젓습니다. 그런데 옷을 세 벌밖에 못 가져가는데 이것이 매일 젖으면 매일 세탁할 수도 없고 이 일을 어떻게 할까 걱정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집사람이 오더니만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그러지 말고 좀 덥지만 속에 속셔츠를 입어라, 아이고, 난 더워서 와이셔츠만 입는다. 이것만 입으니까 땀이 베어 나와 옷으로 땀이 나오니까 안 되요. 속에 덥더라도 속셔츠를 입으면 그것이 땀을 다 빨아들여서 옷은 괜찮다고 합니다. 야 이것 봐라, 또 나보다 낫구나. 그래서 또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잘난 점을 옛날에는 자꾸 무시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무시하지 않습니다. 요사이는 그렇게 잘난 점을 말할 때는 깊이 감동하고 우리 아내 앞에서 정색을 하고 어떻게 그렇게 지혜롭나? 놀랐다. 놀랐어. 그러면 우리 아내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릅니다. 얼굴이 상기되고 눈이 빛을 발합니다. 무엇을 주어서 그렇게 얼굴이 상기되고 눈이 빛을 발하고 그 다음에는 더 지혜롭게 해서 더 나를 잘 섬기게 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칭찬을 하고 네가 이익을 얼마나 보는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남편은 아내의 잘난 점 잘한 점을 꼭 발견해서 칭찬해 줘야 합니다. 또 부인은 남편의 잘한 점을 꼭 들어서 칭찬해 줌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서로서로를 인정해 주므로 영광을 얻게 하고 자기의 삶을 가치 있게 하고 기쁨이 넘치게 되고 행복하게 되는 아주 근원적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행복한 가정 생활을 파괴되고 도적질 당하지 않는 결혼 생활을 하려면 친구나 대중 앞에서 상대의 결점을 말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심결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모인 앞에서 남편이나 아내에 대한 인물에 대한 결점, 성격에 대한 결점, 교육에 대한 결점을 말합니다. 어느 부흥사는 부흥회 할 때마다 강단에 서서 마누라 못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그 부흥회에 참석해서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부흥사 하는 말이 내 마누라 인물이 얼마나 못났는지 내가 지금 봐도 데리고 사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나에게 시집오려고 얼마나 기도했던지 하나님이 나를 감동해서 그 못난 여자와 결혼하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곳마다 그랍니다. 그 말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그 부인에게는 치명타를 가져온 것입니다. 서로 둘이 만나서 잘한 것, 못한 것을 서로 말하는 것은 용납될 수 있지만 절대로 친구나 대중 앞에서 상대의 결점을 말하면 무서운 모욕감을 느낍니다. 인간은 자기의 약점이 지적될 때 모욕감을 느끼고 반항하게 되고 복수의 정열이 마음속에 불타는 것입니다. \'오냐, 네가 나를 대중 앞에서 모욕했지, 두고 보자. 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너도 결점이 있으니까 나도 대중 앞에서 너를 한 번 깔아버릴 것이다.\' 이래서 서로 부부간에 인정하고 서로 도와야 할 것이 서로 복수의 정염이 가득 차고 모욕감과 분노감이 가득 차서 언제고 복수하겠다고 달려들면 이러한 가정은 조만간에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절대로 친구들 앞에서나 대중 앞에서나 친정에서나 본가에서나 어느 곳에 가나 상대방의 결점을 노출시키지 마십시오. 그것은 비밀이 없이 반드시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는 눈사람이 되어서 돌아와서 그 귀에 들어갈 때는 말할 수 없는 모욕과 복수심을 마음속에 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주의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가정을 파괴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네 번째, 또 가정이 파괴되고 결혼이 파괴되는 이유는 일벌레가 되어서 친교가 없을 때 파괴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세상살이가 옛날 농경시대와 달라서 얼마나 바쁩니까? 이른 아침에 일어나면 밤늦게야 돌아오고 지쳐서 쓰러지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일벌레가 되는 것입니다. 일에 묶이고 사교에 묶이고 지쳐버린 삶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날 서양 문명의 딜레마이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지금 한국으로 건너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좋은 집, 좋은 차, 좋음 음식, 잘 먹고 잘 삽니다만 그러나 지쳐버린 상대방끼리 서로 친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서로 친교할 수 없을 때 멀어지고 이해가 되지 아니하고 쉽게 깨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남편도 일하고 아내도 일하고 서로 교대해 가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지쳐버려서 낮에 지친 정신 지친 마음으로 조금만 어려운일이 생기만 짜증이 나고 그만 화가 폭발하고 서로 물고 찢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서 이 바쁜 스케줄 가운데도 어찌하든지 함께 친교하려고 하십시오.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은 놀라운 친교가 되는 것입니다. 주일날 나는 골프치러 간다. 나는 낚시하러 간다. 나는 등산 간다. 너는 너대로 가라. 이래서 주일날조차 흩어져버리면 일주일내내 가정이란 것은 하숙집에 불과하고 서로 밥 먹을 때나 잠잘 때 얼굴 쳐다보는 외에는 서로 친교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면 조만간에 가정은 파괴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살았다 하나 죽은 가정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단호하게 제쳐놓고 부부간에 서로 교회에 오기 싫은 때가 있을지라도 손을 잡고 자녀들과 함께 우리 교회에 가자. 그러면서 교회도 같이 나오면서 찬송도 같이 하고 기도도 같이하면서 그 다음에는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친교의 시간을 많이 가져서 대화하면 서로의 마음에 원한이 있는 것도 말해 버리고 불평 있는 것도 말해 버리고 서로 이마와 이마를 마주 대고 무릎과 무릎을 마주 대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세상의 바쁜 사람 중의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나는 내 아내와 자식들과 만나서 친교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없는 것은 주일날조차도 강단에 와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있을 때는 저녁 10시면 있는 힘을 다하여 시간을 아껴 가정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애들이 피곤해서 못견뎌서 자 버려면 두고라도 함께 모여서 함께 찬송하고 함께 성경읽고 함께 말씀을 나누고 서로 손을 잡고서 함께 기도해 주고 그 다음 서로서로의 문제를 토의하고 이러한 다정한 시간, 별로 길지 않는 3-40분의 시간이지만 이것이 내 아내와 나의 영혼 속에 깊이 이해하고 서로 묶이게 만들어주고 나와 자식들간에 소외감이 없게 하고 서로 손을 잡고 이해하고 동정하며 나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일벌레가 되어서 돈 많이 벌어 놓고 난 다음에 아내도 잊고 남편도 잊고 자식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여러분 이기주의적인 삶이 결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에게 취미 있는 것만 말합니다. 서로 모이면 상대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자기 취미만 말하고 자기 놓은 것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단지 이용당하고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될 때 반사적으로 상대도 자기의 이기주의적인 세계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주말골프과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중류 사회 이상은 대개 골프를 많이 칩니다. 주말이 되면 마누라는 집에 두고 자식도 집에 두고 골프장에 가서 삽니다. 그래서 오늘날 골프 과부라고 말합니다. 이래서 남편은 집에 돌아오면 늘 골프 이야기나 하고 그 책이나 읽고 부인은 거기에 딱 질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골프 과부가 된 부인들이 내게 와서 신앙 상담 때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남편은 나보다 골프 공을 더 좋아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늘 골프채나 닦고 골프 구두나 소제하고 골프공이나 닦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귀찮다고 고함이나 치고 이렇게 살아서 뭣합니까? 또 어떤 자매님은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 몇 년 동안 남편과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저녁에 늦게 들어와서 새벽상 차려놓으면 아무 말 안하고 먹고 그대로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말도 안하고 밥 먹고 그대로 나가고 그래서 몇 년 동안 한 말도 안 했습니다. 이렇게 무시당하고야 어떻게 살겠습니까? 나도 이제 자식들 다 크니까 나도 내 맘대로 살아봐야겠는데 목사님 나 좀 인도해 주십시오. 여러분 사람들은 서로 살면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하고 상대방의 취미도 관심을 기울여주고 상대방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주고 그래서 서로서로 취미를 합쳐서 인생을 서로 즐거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즐거움은 마치 기계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기름치지 않은 기계는 마치 부러지는 것처럼 서로서로 취미를 살려서 서로 기름을 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큰 방둑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결혼이 법적으로는 파괴되고 이혼하고 있지만 비록 법적인 이혼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용적으로 이미 죽어버린 결혼도 허다하게 많은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들이 큰 사건으로 활화산처럼 폭발해서 가정이나 결혼이 파괴되고 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별로 하찮게 중요시 않게 여겼던 이런 것들이 결혼을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 기 도 -
살아계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수많은 가정이 우리가 하찮게 생각하는 적은 일들에 등한히 하므로 결혼이 파괴되고 또 파괴되지 않아도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주님 앞에 회개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건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