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잘만나는 은총

사람 잘 만나는 은총/에4:15-17

사람 잘 만나는 은총
에4:15-17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 4 : 15-17)”

인생은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만나고, 또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형편없는 조건 속에서도 사람 잘 만나서 출세하고, 성공하고, 부자 되고, 행복하게 된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저같이 무능하고 못난 사람도 여러분을 잘 만나서 축복의 목회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력 있는 좋은 신학생들이 사람 잘못 만나서 고전하는 이도 많이 계십니다.

우리 부자(父子)에게 결혼 주례를 해주신 박용익 목사님이 한번은 강화읍 교회에서 충주교회로 옮겨갔을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은 충주에 계시다가 서울로 가신 목사님에게 편지하기를, “전임 목사님, 제가 강화에서 염소가 있어서 이곳으로 왔는데, 여기 와서 보니 여기는 호랑이가 있습니다”고 하니까, 답장이 오기를 “저는 거기 호랑이가 있어 왔는데 여기는 사자가 있습디다”라고 답장이 왔다는 것입니다. 만남의 복이 없는 이는 어디 가도 마찬가지란 뜻인 줄 압니다.

본문에 에스더는 고아였습니다. 그래서 외숙 모르드개에게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모르드개는 믿음의 사람으로 에스더를 믿음으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큰 사건이 생겼습니다. 나라의 국경일을 맞아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인 와스디도 함께 참예하기를 원했으나 그의 뜻을 거절하자, 이에 분노한 왕은 왕후를 폐위하고 다시 왕후를 선택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에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하만에 의해서 멸망 직전에 이르렀을 때, 3일 금식기도 후에 왕에게로 나아가 자기 민족을 구출할 수 있는 은총을 입고, 죽게 된 자기의 외숙 모르드개를 살리므로 키워준 은혜도 갚게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더는 불행한 여자이나 사람을 잘 만나 믿음의 사람이 되고 일약 왕후가 되어 자기 민족까지 구원하였습니다. 이 은혜와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원하면서 “사람 잘 만나는 은총”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선천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부모와 친구와 스승과 배우자와 자식의 만남은 5대 만남이라고 하는데, 그 중 부모와 형제와 친척만은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없는 만남이기에 선천적 만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천적인 만남을 잘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나, 혹 부모와 친척과 형제를 잘못 만났다고 해서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운명이 꼭 선천적인 만남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오늘의 말씀인 에스더에게서도 잘 배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기도 강화 벽촌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고와 고생을 하면서 살아 왔으나, 부모님이나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요, 여러분에게 감사요, 내 조국에 감사하며 살아 왔습니다.

세상사람들 가운데는 이 선천적인 만남이 좋지 않았어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 하나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출애굽 시키는데 지도자가 된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정치적, 시대적인 형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의 부모가 그를 난 지 3개월만에 갈 상자에 넣어서 연못가에 띄웁니다. 모세는 인복이 있어 마침 애굽의 공주가 나왔다가 그것을 발견하고 그의 어머니를 유모로 삼아 왕궁에서 양육을 받게 되고, 후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자기 민족까지 구출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를 받게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장사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가정에 어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모르고 살지라도 여러분이 믿음을 지켜 나가면 여러분의 집안에 믿음의 조상이 될 것입니다.

선천적인 만남이 환경에 의하여 불행하게 되었을지라도 에스더나 모세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2) 후천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스승과 친구와 교우와 이웃과 배우자는 후천적인 만남입니다.

첫째, 이웃과의 만남입니다.


누가복음 10 : 30에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다행히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 살게 되었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은 종족을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하고, 종교와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도왔으며, 자기의 목숨을 걸고 그를 도왔습니다. 또한 다른 이가 버리고 도망갔으나 그는 도왔습니다.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문둥병으로 절망에 처할 때, 자기 집에 믿음 가진 노예 선민을 두어 그로 말미암아 엘리사를 만나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으로 깨끗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어려운 때 꼭 필요한 이웃을 만나시는 복이 있길 바랍니다.


둘째, 친구와의 만남입니다.


친구 잘못 만나 죄를 짓는 이가 있고, 친구 잘 만나 성공하고 출세하는 이가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만나 죽을 수밖에 없을 때, 그의 아들 요나단을 만남으로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스승과의 만남입니다.


선생님 잘못 만나 출세에 뒤진 이도 있으나, 스승 잘 만나서 성공의 지름길로 간 이도 있습니다.

감리교회의 유명한 윤창덕 감독님은 평생 소원이 기관사가 되어 줄 달린 모자를 내려쓰고 칙칙폭폭 하며 만주 벌판을 달리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믿음 좋은 선생님을 만나 그에게 지식의 전달과 함께 믿음을 받아 감리교회에서 큰 목회의 성공자요, 유명한 부흥사가 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많은 선생님, 교수님들이 이런 감동을 학생들에게 주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배우자와의 만남입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이가 있고, 아내를 잘못 만나 고생하는 이도 있으나, 그 반대로 잘 만나서 성공한 이도 많습니다.

제가 내자에게 성경전서를 새로 사주면서 표지 안에 “주님과 교회와 그리고 남편과 2남1녀 만을 위하여 일평생을 살아가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이 성경전서로 영원한 행복과 삶을 찾으시기 바라며, 이 성경을 드립니다”라고 기록해서 주었습니다.

또, 칼럼이란 책을 내면서도 “내 아내에게 란” 글에 아내에 대한 감사의 글을 쓰면서

“첫째로, 그녀는 내게 모든 것을 바쳐준 고마운 여성이다.

둘째로, 지금까지 지루한 줄을 모르고 살았다.

셋째로,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또 장가를 가더라도 열 번이라도 지금 나와 함께 사는 그 여자를 선택하겠다”라고 했더니, 이번에 미국에 간 두 자부와 딸이 함께 “우리 아버님이 늙어서 어머님에게 구박받을까봐 최대의 표현으로 어머니께 아첨한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늘 행복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한 배우자와의 만남이 중요합니다.


(3)우리는 후천적인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구로중앙감리교회 곽전태 목사님은 유 장로님을 만남으로 목회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목사님은 장로님을 잘못 만나 목회를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후천적인 만남인 스승, 친구, 배우자, 선교회원, 속도원, 이웃을 잘 만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회에 모이면 맥주나 찾고 고스톱을 하려고 하다가 새 교인에게 상처를 주는 이가 있습니다. 자녀를 잘 만나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딸이고 아들이고 상관없이 잘 만난 자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는 학문만 가르치고 인격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엇이 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달라는 대로 주고, 보내달라는 대로 보내주고 하는 부모는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문제 있는 가정은 있어도 문제 있는 자식은 없다는 말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과의 만남은 제1의 축복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구원과 생명과 풍성함을 가져다줍니다. 인생에게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것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요한복음 15 : 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가서 만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나를 찾아와 만나 주시며, 무엇을 달라고 구하든지 주시겠다는 약속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택함 받은 자가 하나님의 품을 떠나 멀리 가는 것을 누가복음 19 : 10에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을 때 주님이 찾아가 만나 주셨으며, 삭개오는 뽕나무에 올라갔다가 주님이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밤 네 집에 유하여야 하리라”는 부르심으로 만나주시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아 주셨으며, 사도 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여 기독교인에게 박해를 가하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음성으로 사울을 만나 당신이 쓰는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때 어디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무디는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으로 열 마디 말 중에 일곱마디는 실수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만난 후로는 100만 명을 전도시키는 큰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은 부흥회를 마치고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와 그 호텔식구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드린 뒤, 그 호텔의 파출부 한 사람이 일 때문에 예배에 참석치 못한 것을 알고 무디는 그 파출부에게로 찾아갔습니다. 파출부에게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권했습니다. 파출부는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무디는 여자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를 보여 주시옵소서”라고만 기도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렇게 약속하고 헤어진 뒤 수개월 후에 다시 그 도시에 오게 되어 그 여자를 찾았더니 중한 병이 들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주인이 전해 주었습니다. 무디는 놀라서 그 여자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여자는 말하기를 “당신이 부탁한 대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내가 흉칙한 죄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지옥에 갈 존재임을 알게 되니 괴로워 병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디는 그 여인에게 이제는 “하나님이시여,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라고 일렀습니다.

그후 오랫동안 서로 만나지를 못했는데, 수년 후 어떤 도시에서 부흥회를 하는 무디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자기가 파출부하던 그 여자임을 밝히며,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이제는 신학을 공부해 전도사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맺는말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선천적인 만남은 부모님과의 만남입니다. 부모님과의 만남이 좋은 만남이었다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 선천적으로 만남이 좋지 않았을지라도 후천적인 만남을 기대하시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만남 중에 제일 중요한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초청에 의하여 여기까지 오셨으니 영원한 만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세상에서 주님과의 만남이 지속되다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길 때는 더욱 주님과의 만남이 귀중함을 아셔야 합니다.

누가복음 23 : 39-43에는 흉악한 범죄자가 사형 당하는 순간에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 십자가 우편에서 죽게 된 사람인데, 그의 생애는 죄로 가득찬 추악한 사람으로 이제는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순간이었으나, 그는 구원의 빛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좌편 강도를 꾸짖으며 예수님이 의인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는 줄 알고 구원받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 순간 지옥이 아닌 낙원을 향해 예수님과 동행하는 놀라운 기적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추악한 죄인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일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자는 죽을 자리에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똑같이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었고,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보고도 진정 마음속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만남을 이루지 않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주님을 구주로 믿고 마음속에 영접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