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얻은 사람 눅8:26-39
3.1운동을 가능케 했던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신비에 쌓인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일본의 앞잡이 형사 신철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누구의 아들이며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함남 정평 사람이며 일본 총독부에 생명을 걸고 충성하는, 우리 민족에게 아주 악질적인 형사였다는 것뿐입니다.
그는 3.1운동의 거사를 미리 눈치채고 정탐에 열중하고 있었다고 합 니다. 민족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최린이 비밀이 새나간 것을 알고 거사를 앞둔 6일전에 신철을 찾아갔습니다. \"너는 조선 사람이 아니냐?\" \"나도 조선 사람이요.\" \"조선이 독립해야겠느냐 아니면 일본의 속국이 되어야겠느냐?\" \"조선은 독립해야 합니다.\"\"너같은 사람이 있어서 독립이 안되니 전 민족을 위하여 너 하나 죽을 생각이 없느냐?\" 이 말을 들은 신철은 충격을 받고 최 린에게 큰절을 하고는 물러나갔다고 합니다.
그토록 악랄했던 신철도 민족지도자 최린의 권위에 눌려 자신의 잘못 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린의 애국적인 호소를 들은 신철은 번민하 다가 총독부에 보고하기를 만주에 독립단이 쳐들어오고 있으니 신의주에 출 장을 가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3.1운동의 거사는 성사 되게 되었으니 뒤늦게 눈치를 챈 총독부에서는 신의주 지서에 신철을 체포 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신철은 조국을 배신했던 과거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사약을 먹고 장엄 한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멋있게는 살지 못했지만 멋있게 죽는 길을 택 했습니다. 그는 조국과 민족을 배신했었으나 최린의 애국적 호소를 듣고는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았습니다. 그는 조국과 민족에게 많은 빚을 졌었으나 한꺼번에 그 빚을 갚았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신철 의 자살은 무서운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음으로써 우리 민족 최대 의 정신유산인 3.1운동이 가능했고 그는 참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 다.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귀신들린 자가 있었는데 그는 오랫동 안 옷을 입지 않고 무덤 사이에서 사는 자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포악했던지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어놓았는데 이런 것조차도 다 끊어버렸습니다. 그 무엇 으로도 이 사람을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사람을 만나 귀신을 내쫓으니까 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 2,000 마리나 되는 돼지들이 호 수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귀신들렸던 자는 깨끗해졌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 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1. 현대인의 참 자유는 오직 예수를 만나야만 가능합니다.
먼저 우리는 거라사 광인이 처한 현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광인은 항상 무덤 사이를 거닐며 소리를 지르고 또 자기 몸을 상하게 하 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늘날 예수를 떠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실로 예수가 없는 사람들은 항상 사망 권세의 지배 아래 놓여 있으며, 타락한 본성에 의해서 되는대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결국에 는 자기 파멸의 길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청년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단란주점의 접대부로 들락 거리고 마약과 술과 춤으로 세월을 보내는가 하면 그들 스스로 마음을 붙잡 을 수 없어 가출을 일삼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될지 모를 정도로 청소년들의 비행은 그 끝을 모르게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 습니다.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삶의 방향을 잃고 허둥대며 하나님과 양심 은 생각조차하지 않는 이기주의의 깊은 수렁에 빠져 도무지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 관리체제 하에서 경제적으로 살 기조차 어렵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와 허탈감 속에서 탄식하고 있습 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의 비참함이 우리 주변의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입 니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빠져 버린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무덤 대신 호화로운 저택입니까? 벗겨진 옷 대신 멋있는 의복입니까? 자기 몸을 치료하는 특효약이겠습니까? 오늘의 사람들에게 필 요한 것 은 단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거라사 지방의 공동묘지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영과 육 이 황폐화된 그 광인 속에 도사리고 있던 수많은 귀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무기로 쫓아냈습니다. 이 광인에게 참 평안과 자유를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거라사 지방에 오신 것은 바로 이 광인 한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토록 바쁘신 공생애 사역 가운데서 예수는 많은 귀신에 눌려 신음하는 한 생명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를 구원하시고자 멀리 거라사 지방까지 방문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잃은 양 한 마리 때문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애타게 찾아다니시는 참 목자이십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죄로 황폐해진 인격 과 무덤처럼 깊은 절망의 심연에 빠져 있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시 는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여기에 오신 것은 나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나는 오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말씀으로 만나야 됩니 다. 주님만 만나면 나도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바리 새인의 명문대가의 자녀였으며 학문적으로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연구한 젊 은 율법학자였습니다. 그의 가문과 학문과 현재의 지위가 어느 누구도 그를 범접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학문적 수준에서 판단하여 그 어떤 사람들도 가두고 돌로 쳐죽이기까지 할 수 있는 권세와 패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화석화된 율법의 무덤 사이에서 자기 주장에만 소리를 높였고 주의 종들을 죽이는데 책임자 노릇까지 하는 인격의 파탄자가 되어 가고 있 었습니다. 그는 구원받을 길이 없는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런데 이 사울에게 예수께서는 가까이 오셔서 만나주시므로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나고 나니 가문과 학문과 권력이 배설물같이 보 였습니다. 그는 일평생 예수를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를 만나 는 길 외에는 우리 인간이 처참한 공동묘지와 같은 황폐한 삶에서 빠져 나 올 길이 없습니다.
2.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합니다.
그 귀신들린 자가 예수를 보더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오니 나를 괴롭게 마옵 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아직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있었는데 귀신은 알았습니다. 그것은 귀신은 영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께 반역하고 쫓겨난 천사였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들 은 예수를 보자 벌벌 떨면서 귀신들의 감옥인 무저갱으로 보내지 말고 돼지 떼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귀신의 이름은 군대라고 했습 니다. 이 군대란 뜻은 로마군 1개 군단으로 6,000명이나 되는 대부대를 말합 니다. 그 사람이 들린 귀신은 대단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서 나가 돼지 떼 속에 들어가라고 하니 까 돼지 떼들이 가파른 언덕 밑으로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몰사하고 말았습 니다. 예수께서는 귀신들린 자 한 사람을 낫게 하시기 위해 돼지 2,000 마리 가 희생되는 것도 기꺼이 허락하셨습니다. 아니 미치광이 하나를 살리자고 2,000 마리나 되는 돼지를 몰사시키다니 도대체 소중한 남의 재산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것이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돼지 주인에 게는 미안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귀신들린 자일망정 그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 의 생명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비록 귀신들린 자일망정 그도 예수만 만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천하보다 귀한 사람들입니다. 존귀 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만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런데 거라사인의 모든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하면서 예수가 떠나가시기를 구 했습니다. 더 이상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은 돼지 떼가 죽은 것만 원통하게 생각하고 예수께 떠나주실 것을 요구했습 니다. 정말로 한심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같이 계시면 새사람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나게 되는데 이것을 몰랐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축복보다는 확실하게 손에 쥐고 있는 재물을 그들은 더 선호했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 6:33) 하셨는데 이 말씀을 믿지 못 하였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포악했던 광인을 고쳐주신 예수께서 마을 사람들 로부터 환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배척을 당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때의 사람들이나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나 공통되는 가치관을 발견 하게 됩니다. 그것은 맘몬 신, 곧 돈에 대한 숭배입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내 가 가진 재물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생각! 예수보다는 비록 악령이 붙어있을 지라도 돼지 떼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소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축복보다 는 눈에 보이는 현실의 이익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자세! 이 모두가 예수 당시의 사람들과 오늘의 우리가 동일한 형태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돼지 떼에 들어갔던 귀신이 이제는 돈에 붙어 돈귀신의 모습으로 현대인을 지배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기생을 만나 전도를 했더니 \"예수 믿으면 밥 먹여 주나?\"고 말하면서 복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 들이 세상의 물질에만 관심하며 살아갑니다. 예수 믿는 것이 경제생활에 도 움이 안되기 때문에 신앙에 무관심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를 믿는 것도 물 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잘못된 태도입 니다. 신앙생활은 물질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가정과 사업과 직장보다 최우선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 든 것은 언젠가 다 사라질 것이지만 예수 안의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주 님을 만난 자에게는 이 세상의 길도 열립니다.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 때문 입니다.
3. 우리의 사명은 복음전파입니다.
귀신이 나간 사람이 예수를 따르기를 원했습니다. 자기를 낫게 해주 신 주님의 은혜가 고마워 주님을 따르겠다고 간청하였는데 주님께서는 \"집 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마태에게, 부자 청년에게, \"나를 따르라\" 말씀하 셨던 주님은 이 광인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그 성 내를 다니며 예수의 행하신 일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자가 된 것입 니다. 이전에 귀신이 들려 난폭하게 굴며 사람들을 해치던 자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예수를 만난 체험을 간증하게 되니까 그 성내에는 예수의 소문이 가 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데 그의 생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되찾은 이 광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사 역의 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선교사역에서 \'하나\'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거부로 예수 는 그 지방을 떠나갔지만 예수는 이 치유 받은 광인에게 복음전도의 사명을 맡기어 거라사 온 지방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한 것입니다. 예수는 이 광인 한 사람을 세우시고자 거라사 지방을 일부러 찾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 수의 이름을 거부하는 현대사회에 예수는 당신의 복음을 전할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죄와 사망의 쇠사슬에 매여 있었지만 예수를 만나 참 자유와 기 쁨의 삶을 찾게 되었노라고 온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파할 \'한 사람\'을 찾 고 있습니다.
무덤 사이를 뛰어다니던 광인은 예수를 만나 자유한 삶을 되찾게 되자 그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서 온 성내에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떡합니까?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나 같은 죄인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고 십자가의 피로 구속해 준 은혜를 입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찌하여 예수를 전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IMF 체제하에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살길은 예수를 만나는 일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우리 나라는 안됩니다. 찬송가 405장의 찬송시를 쓴 죤 뉴턴(John Newton)은 노예상인이었 습니다. 죄없는 흑인들을 잡아다가 팔아먹고 사는 악당이었습니다. 양심도 피도 눈물도 없는 폐륜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는 뉘우쳐 평생을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노예상인으로 돈벌레의 그 더러운 죄악으 로 사는 것보다 예수를 믿고 전도자로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의 행복은 그 어떤 군왕의 행복보다 큰 것입니다. 예수 를 만나는 이들만이 참으로 행복하고 참으로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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