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분쟁하면 설 수 없다 마6:24.막3:20-30
예배로 부름 :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 4:18,19)
개회기도 : 사순절 둘째 주일을 3.1절 기념주일로 지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83년전 3.1절은 이 민족에게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다시 이 백성이 그날을 기억하며 예배드리오니 주님 받아 주옵시고 이 백성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역사의 봄을 주시옵소서. 모든 갈등과 대립을 딛고, 분열과 혼란과 파탄을 딛고 이 민족이 다시 설 수 있는 화해와 평화를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설교 > 오늘은 3.1절 기념주일입니다. 3.1절은 며칠 남아 있습니다마는..... 올해로 우리는 3.1절 83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의 민족사, 3.1절을 회상하며, 민족 앞에, 역사 앞에 다시 바로 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봐야 할 것입니다.
> 3.1절을 앞두고 미국 대통령 부시가 일본과 한국을 방문했지요. 먼저 일본을 방문했는데, 신문에 보니까, 부시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방일 하이라이트로 선술집에서 담화를 나누었다고 보도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신문제목도 \"선술집 담화\"이렇게 나왔더라구요. 그 다음 부시가 19일에 한국에 왔지요. 20일에 정상회담을 하고 방한 하이라이트로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가 경의선 남측 마지막역인 도라산역을 찾았지요. ..... 선술집에서 대화하는 일본과 도라산 역에서 방한행사를 치루는 한국을 비교해서 보면서, 이것이 3.1절이 83년이 지난 후의 일본과 한국의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이같은 한미관계, 한일관계도 관계지만, 남북관계도 또한 중요하지요. 부시의 방한으로 남과 북은 -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 또 한번 몸살을 앓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우리 내에서도 방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집회로 홍역을 치루었습니다. 이것이 한미관계를 말해주는데, 한쪽에서는 \"전쟁책동, 부시방한 반대한다\", \"양민학살 배상하라\", \"쌀 수입 강요 말라\"는 규탄대회가 있었는가 하면, 또 한쪽에서는 \"부시 방한 지지한다\", \"반미단체 처벌하라\"는 환영대회가 있었습니다.... 부시는 갔습니다. 그러나 상처는 남아있겠지요. 이런 모든 관계들이 어서 속히 치유되기를 바라며, 이런 모든 관계가 근본적으로 치유되는 그런 평화로운 역사의 봄을 기다려 봅니다!
> 이미륵씨가 독일에서 독일어로 쓴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책이 있어요. 옛날에 독일사람들이 한국을 생각할 땐 이 책을 먼저 떠올리는 것 같았어요. 이미륵씨는 3.1운동에 가담했다가 중국으로해서 독일로 망명했던 사람입니다. 경성의전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독일에 망명해서 나중에 뮌헨대 교수로도 지냈습니다. 이 \"압록강은 흐른다\"는 소설은 그의 자서전적 소설로, 바로 3.1운동에 가담했다가 검거망을 피해 독일로 망명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패망한 나라에서도 민족의 긍지를 찾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이 애잔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는데,거기에는 3.1절에 대한 날씨묘사가 나와요. 소시민적인 생각에는 그 날은 춥지 않았을까하고 걱정해봅니다마는, 이 책은 그런 걱정을 말끔이 씻어주고 있어요.: \"그 날은 말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이었다\"는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은 말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맞는 2002년 3월1일은 어떤 봄입니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전망하십니까? 우리는 더 이상 국론분열이나 가치혼란에 빠지지 않으면서 화해와 협력으로 인류공영을 창출해 나가는 말할 수 없는 희망의 봄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이런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바라다보게 될 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훈계를 해 주고 계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면 설 수 없다!\" - 나라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24절에서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다\", 25절에서 \"집이 스스로 분열이 일어나면 그 집이 설 수 없다\", 26절에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스스로 자기 분열이 일어나면 자신도 설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계시지요. 이런 국론분열, 가정분열, 자기분열을 지적하고 있는 본문을 3.1절과 관계시키면서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 3.1절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우리민족이 국권을 빼앗기어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던 국난기에 온 겨레가 대동단결하여 목숨을 내걸고 불의에 항거하며 민족혼을 불사른 우리민족의 찬란한 역사였습니다. 3.1절이 우리에게 보여준 정신은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스스로 바로 서는 정신)이요, 대동단결의 정신이요, 개인주의를 철저히 배격한 정신이었습니다. 부디 이러한 살아있는 정신이 오늘 이 시대에도 계승 발전되어야 할텐데..... IMF의 국난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 시대 속에서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행태는 다시 분열조짐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 로마제국치하의 예수시대에도 그런 국론분열, 사회분열의 현상은 여전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도 역사의 봄을 피우기 위해 예수님은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것을 본문에서도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국론분열, 사회분열의 현상을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바꾸기 위해 애를 쓰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본문은 단도직입적으로 병 고치는 기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이런 치유기적만큼 그의 활동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이 없었겠지요. 이런 어지러운 나라와 사회를 위한 의원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치유였겠지요. 여호와 라파(출15:26), 치유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유하셨어요. 이 치유는 영적. 육적 질병과 함께 사회의 질병과 상처도 고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공적활동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는그에 반한 거부와 소동으로 나타나지요.
> 먼저 예수님의 친척들이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데, 그들의 직감적인 판단에 의하면, 이러한 예수님의 치유활동은 미친 짓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그런 일을 자처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는 거였겠지요. 의사도 있고 그런데 ... 그런데도 불사하고 나서니까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그를 붙잡아 데려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조짐은 여기서 끝나질 않지요. 예수님의 대사회적 치유활동은 멀리 예루살렘에 있는 높은 사람들에게까지 보고된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서기관들이 급파되어 여기 이 갈릴리까지 내려오지요. 예수의 소문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병 고치는 기적현장을 목격하고는 \"그가 바알세불에 지펴 이런 일을 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노력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사회혼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호도 되고 있었습니다. 바알세불이란 귀신의 왕초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바알세붑이라 했는데, 헬라식 발음으로 하면 바알세불이 되지요. 예수가 귀신의 왕초와 결탁해서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이, 그것을 목격한 서기관들의 관찰결과였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역공에 부딪혀 그들 서기관들에게 반론을 펴고 있는데, 그의 특유의 비유를 사용해서 설득력 있게 그들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사단이 사단과 싸울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서기관들이 \"예수가 바알세불과(귀신) 결탁해서 이런 치유활동을 한다고 하니까, 예수님은 \"사단이 어찌 사단을 쫓아낼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사탄의 일로 매도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야말로 거룩한 영, 성령을 호도하는 말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거룩한 영의 역사를 악령의 역사로 호도하는 것만큼 용서받지 못할 일도 없다! 고 29절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 권력자들의 횡포는 항상 이런 식이지요. 세상은 항상 그런 식으로 쉽게 찍어눌러서 일을 처리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인신공격이나 그 사람의 도덕성을 훼손하거나... 이런 공격은 치명적이지요. 그러면 그렇게해서 끝나나요? 아니에요! 어둠이 빛을 삼켜선 안 돼요! ...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영이 더러운 영을 배격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악한 세력이 악한세력을 쫓아 낼 수 있겠느냐? 악한 무리를 추방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악한 세력이 아니라, 선한 무리이다, 거룩한 세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요지의 말씀은 예수님은 세가지 비유를 사용해서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그 첫째 비유가 - 이미 말씀 드린바와 같이 -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첫째 비유뿐만 아니라 세가지 비유의 교훈들은 서기관들에게 대한 단순한 변론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신 교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 옛날에 나라의 분쟁은 두 임금이 생기는 것에서 비롯되었지요. 두 임금이 생기면 어떻게 됩니까? 한 백성이 두 임금을 섬겨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나라가 두 조각 날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비유를 그래서 링컨 대통령이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1856년에 유명한 더글러스(Douglas)와의 논쟁에서 이 비유를 사용해서 \"미국이 절반은 노예요, 절반은 자유인이라는 이런 이중적인 가치관을 지속시키면,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하고 링컨은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 그래서 노예해방을 이룰 수 있었겠지요.
> 이제 겨울은 가고 봄이 오고 있는데, \"말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역사의 봄은 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태복음 6:24절의 예수님의 말씀도 또한 이러한 국론분열, 사회분열의 현상의 방파제 역할을 해주고 있지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지니, 그렇게 되면 이쪽을 미워하고 저쪽을 사랑하게 되고, 이쪽을 중히 여기고 저쪽을 경히 여기게 되느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하나님이 재물에 의해 배척 당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거룩한 영이 더러운 영에 의해 배격을 당하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정말 \"말 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봄을 맞고 싶습니다. ...... 성령만이, 거룩한 영만이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거룩한 정신이, 깨끗한 정신만이 더러운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라!\" \"두 주인을 섬기면 안된다!\" 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 혼신의 힘으로 오직 한 주인을 섬기라. 하나님은 한분이시니, 한 하나님을 섬기라...
> 우리의 진정한 바램은 무엇이겠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에 비유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요, 종말론적으로 말하면, 신천지, 새 하늘과 새 땅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아야 돼요. 그런데 동상이몽으로 똑같은 시간에 다른 쪽은 산 아래에서 황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있다면, 가나안 복지의 땅도, 새 하늘과 새 땅도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두 주인의 섬김 현상 속에서는 나라도 바로 설 수 없고, 가정도 바로 설 수 없고, 개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예수님의 3.1절 메시지입니다. 새천년의 언덕에 서서 한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 민족이 우뚝 설 수 있는 길은 나라 분열, 가정 분열, 자기 자신의 분열을 막고, 갈등과 대립을 막고, 화해와 평화로 바로 서는 길일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섬김 속에서, 거룩한 정신, 거룩한 영, 성령의 사역에 우리 자신을 일치시키는 길속에서만 가능하리라고 믿습니다! 나라가 하나되고 사회가 하나되고 가정이 하나되는 그런 역사적인 봄이 오기를 바라며......
기도 : 역사의 하나님 아버지!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결코 설 수 없음을,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결코 설 수 없음을, 자기 자신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가 결코 설 수 없음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이 민족에게 거룩한 영을 부어 주시어, 더러운 영이 더 이상 자리잡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새천년의 기회를 주셨는데, 이 민족이 이제 그만 분열의 모습을 벗고 동방의 등불로 살아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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