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길이 있습니다 스4:1-7
오늘은 삼일절 기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한 민족이 좌절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승리해 가는 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에스더라고 하는 이름은 별(星)이라고 하는 뜻을 가진 페르시아(파사)식 이름입니다. 에스더는 하늘에 떠있는 별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준비하면서 저는 참으로 놀라운 것을 하나 발견을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사울 왕에게 명령합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 나갔을 때에 그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기식하는 것들을 다 죽이라\" 고 명령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런 잔인한 명령을 하실 수 있었을까? 우리는 가끔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가 명령을 어긴 이유에 대하여 물을 때에 사울 왕은 선지자에게 답변하기를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하여\"였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의 일부도 살려놨습니다. 그 왕도 살아서 사로잡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대적자 하만 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말렉 족속의 후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각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아말렉 족속의 한 지파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만 이라고 하는 사람은 민족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한 맺힌 적대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조상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멸을 당했었는지 그리고 핍박을 당했는지에 대하여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어떤 상황이 되든지 간에 이스라엘 민족을 해하고, 없애는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봅니다. 하만 이라는 사람이 어찌 이렇게 무지막지할까, 이 사람이 자기에게 모르드게가 자기에게 도전하고, 불편하게 하고,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이렇게 잔인하게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죽이려고 시도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적인 감정이 그들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사건을 빌미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들의 이치에 맞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명령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했더라면 오늘 이 아각 사람 하만에 의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이토록 고난을 당하는 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인간의 정이라고 하는 것, 인간의 상황이라는 것들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거나 피해가려고 시도할 때 그 결과는 자신만이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 그리고 그 어느 땐가 그 불순종이 두려움의 칼날이 되어져서 내게 칼을 겨누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심령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것이 그 어떤 것이고, 그것이 비록 내가 감당하기 퍽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주님의 명령은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거부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게 부담스럽게 여겨진다 할지라도, 그 것이 내게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주님은 나를 돕고자 하시고, 결국은 내게 이롭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자비롭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의롭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죄 값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기스, 시무이 이런 사람들의 이름이 거명됩니다. 이 사람들이 모르드게의 조상들입니다. 그런데 기스나 시무이는 사울 왕의 후손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던 그 죄악에 대해서 그 직계 후손들이 그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지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파사국에 거하는 유대인들이 간신 하만의 교활한 몰살 책에 휘말립니다. 그 운명이 배척간두에 놓여 있습니다. 이 때에 에스더와 그 오라비 모르드게가 동포의 구원을 위해서 진력하고 있는 모습을 오늘 성경의 주제입니다. 오누이가 유대인들을 어떻게 구출할 수 있었는가,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내 나라와 내 민족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가지고 서야 할 것인가 도 또한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요사이 이 바벨론 문화가 속속들이 발굴이 되고 있습니다. 이 바벨론 근처에 도루시파라고 하는 곳에서 상현 문자로 만들어진 석판이 여러 장이 발견이 됐습니다. 그 중에서 아하수에로 왕의 초기에 마르드카라고 하는 사람이 이 수산 궁의 총리가 되었으며 재정을 맡은 사람으로 왕을 섬겼다 라고 하는 기록이 상세하게 나타나는데, 우리 모든 사람들은 그 모르드카가 모르드게의 다른 이름으로 보고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히브리민족은 지금 대단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한 피를 나눈 겨레요, 동포인 그들은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민족이 억울하게 희생당할 운명을 보면서 그들은 울분과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끌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견딜 수가 없어서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재간에 들어 누운 사람이 수만이었다고 했습니다. 모르드게도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굵은 베옷을 입은 사람은 궁성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궁성 밖 문 바깥뜰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내 백성들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이것들이 그 궁성에 있는 왕후 에스더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 긴박한 상황을 황후 에스더의 시종 하닥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아주 숨 가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왕후에게 유대인의 억울함을 고하고 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아하수에로 왕 한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 왕 앞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에스더가 왕후이니까 그 에스더에게는 민족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절대 권력이 행하던 때입니다. 왕이 부르지 않는 사람이 왕 앞에 나가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절대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라도 제외의 법이 없었습니다. 왕후나 왕자라도 제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왕후는 왕이 자기를 부른지 이미 한 달이 되었다고 지금 모르드게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왕 앞에 그냥 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가면 죽음밖에는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 가지 다른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왕 앞에 나갔을 때 왕이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내밀어서 그 사람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환영했을 때는 제외가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그것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후는 \"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왕에게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가기 위한 믿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결론은 일사각오(一死覺悟)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죽겠습니다. 나를 죽이면 죽을 것입니다.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그는 무장을 했습니다. 믿음의 선배 주기철 목사님께서 순교 당하신 그 감옥에 들어가실 때, 그는 성도를 향하여 마지막 설교를 하시는 그 설교 제목이 \"일사각오\"였습니다. 나는 한번 죽는 것인데 한 번 죽는 내 생명을 하나님을 위하여 죽을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이 그 얼마나 큰 영광인가. 내 민족을 위하여 죽을 것이다. 여러분도 나도 함께 죽자고 외쳤습니다. 생명을 내걸고 하나님께 생명을 드릴 때에 그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고 주목사님은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 민족 중에 태어나는 영광을 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배격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저주를 받을지라도 내가 내 민족을 구원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로마서 9장 3절에 사도바울은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민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내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그 내 민족들이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진다면 내가 생명 책에서 내 이름이 거두어져서 저주를 받을지라도 내 민족이 구원받기 원한다고 하는 신앙, 애족적인 신앙고백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민족의 사랑 그것은 곧 신앙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적어도 모르드게와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작정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죽고자하느냐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은 역설적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행할 때에 살고자 하면 우리는 비굴해지기도 하고, 그리고 자기의 진실을 꺾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버리기로 작정을 하면 우리는 당당하지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모르드게와 에스더는 하나님 앞에 그런 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자신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그냥 모르는 척하고 피해 갈 수도 있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죽을 때에 왕후의 오라버니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왕후입니다. 그 왕후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왕후의 가족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생명을 보존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르드게와 에스더는 민족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버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자기가 비록 왕후이지만은 내 왕후의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 민족을 위하여, 내 왕후의 자리도, 내 생명도, 버리겠다고 하는 각오를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모르드게로부터 자기 민족의 몰살 명령이 내려진 사실을 알게 된 에스더 왕후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게와 동족 유대인들이 연합 전선을 펴고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최고의 방안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번 죽자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것이다. 여러분들보다 먼저 내가 앞서서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죽을 각오를 해서 그래서 사흘 밤낮을 음식을 먹지도 말고, 물도 마시지 말고, 이 위기 타게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금식이라는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금식은 하루가 상례였습니다. 왕후 에스더는 사흘 금식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만큼 급박하고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자신도, 왕후 전에 있는 신하들도, 온 민족이 삼일간 금식기도 한 후에 목숨을 걸고 왕께 나가서 자기 민족의 구원을 요청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 파사국의 궁중 법도는 말씀을 드린바와 같이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는 왕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왕은 절대 권력자였던 것입니다. 이를 거역하면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은 와스더라는 왕후가 있었습니다. 그는 에스더보다 먼저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가는 것도 죽임을 당하지만 왕이 부를 때 오지 아니하는 것도 똑같은 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와스더는 쫓겨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런 상황이 되어졌을 때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에스더는 민족구원을 위하여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모세를 보십시오. 그 역시 어리석은 동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죽어갈 때에 그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거룩한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리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진정으로 우리는 우리 민족에 대한, 내 민족에 대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한번이라도 들여본 적이 있습니까? 내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 본적이 있는가 묻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문제에도 갈급하고, 내 형편도 갈급해서, 우리는 거기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오늘은 삼일절을 기념하는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저와 함께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모르드게도 에스더도 그들의 민족이 살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일로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게 완전히 제압 당해 버린 것 같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께 의뢰하는 일만이 민족을 살려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의 결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 것이지, 하나님이 바벨론 신(神)에게 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은 여호와의 신도 그들의 신이 꺾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파사국의 아하수에로 왕과 그들의 권력이 아무리 절대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을 이 모르드게와 그리고 에스더는 알고 믿었습니다. 민족 구원의 어렵고도 힘든 일이 능히 해낼 열쇠는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에스더도 모르드게도 문제의 해결의 열쇠를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그 분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이라는 것을 그들은 믿었고, 알았고,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왕에게 나가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중국 심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참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제가 볼 때에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에 미치지 못할 세상의 지식적인 면에서는 모자란 사람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신앙은 얼마나 깨끗한지 제가 그들에게 뭘 가르친다는 것인가, 내가 지금 뭘 가르치겠다는 것 생각 자체가 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참고서도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곳에 너무나도 많이 교역자가 없는 교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보고 한 달만 공부하고 와서 우리 교역자가 되 달라. 1년씩, 2년씩 기다릴 수가 없다. 그런 형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이었습니다. 제가 예배 인도를 했습니다. 제일 앞자리에 신학생들이 앉고 그곳 교회 성도들이 뒤로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족들이 함께 예배드리는 관계로 사모님이 통역을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이상한 일이 벌여졌습니다. 한 40쯤 되 보이는 여자가 남자 신학생에게 와서 머리를 기대고, 몸을 끌어 앉고 그러는 겁니다. 제가 말씀을 증거 하다 가만히 서서 그 사람들이 하는 짓을 지켜봤습니다. 저 사람들이 왜 저러나 하고 말입니다. 신학생들 몇이 그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제가 볼 때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그곳에 귀신들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혼탁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다져져 있지 못한 곳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간 이후로 그렇게 더 귀신들린 사람이 많아졌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금요일 날 그러니까 제가 오기 전에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질문이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학생이 저에게 이러 저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어쩐지 좀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느냐 당신 보니까 몸이 아파 보인다고 물었더니 그의 얼굴을 염치없는, 쑥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금식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먹는 것이라는 것이라고는 밥밖에 없고, 그것밖에는 먹지 않은 채, 하루에 9시간씩 신학 강의를 듣고 앉아있는 그들이 뭘 금식을 한다는 것입니까 그래서 금식 자주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더욱이나 훈련받는 도중에는 금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굉장히 난색을 표하면서 \" 목사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지난 수요 일날 그 귀신들린 여인이 하는 행위를… 그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조선족 여자입니다. 헌데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하나님 앞에서 그 귀신을 쫓아내게 해달라고 그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금식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열흘동안 금식을 작정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냥 가슴이 저며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러나 너무 몸을 해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여러분들이 다함께 그를 위하여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면 우리 한 형제만이 고통 당하지 아니하고 그 영혼이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금식을 하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얼마나 능력 있는 기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삼일동안 금식하고 왕에게 나갔습니다. 그 믿음은, 그 생명을 건 기도는 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민족은 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 민족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2천 500만의 사람들이 지금도 김정일의 통치 아래서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쪽의 공산주의자들과 우리가 전쟁하지 않는 것만 다행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왜 그들을 책임져야 되느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여 그것은 우리의 몫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눈물로 금식하며 왕후 에스더가 생명을 걸었듯이, 왕후의 오라버니인 모르드게가 죽으면 죽겠습니다 라고 하는 누이의 각오와 함께 사흘 밤낮을 기도하면서 재간에 들어앉아서 하나님께 민족을 위하여 기도했듯이, 오늘 우리들은 내 민족의 자유를 위해서, 내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내 민족의 영적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이만큼 잘살면 됐지\' 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민족의 감정에 관한 얘기를 하나 더 드리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 저는 중국에 가서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그들에게 있어서 대단한 자부심을 주고 있음에 대하여 새삼 놀랐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라는 게 대단히 허상 적인 것처럼 제 눈에는 보였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은 중국 동포에 대해서 그렇게 선한 감정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타민족을 대하는 것하고는 조금 다르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꾸로 였습니다. 한국이 한반도 반쪽밖에 안 되는 그 조그마한 나라가 그렇게 부자 나라가 되었고, 중국 경제보다 월등히 뛰어난 나라가 되어있다는 것에 대하여 마냥 뻐근한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그런 말을 하고, 그런 감정을 내비칠 때 염치없고 미안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에 대해서 그렇게 애절한 가슴을 가져본 적이 없다. 또 그렇게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아니하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이 잘 살아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한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그렇게 멋진 나라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중국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합니다. 얼마나 멋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그럴까? 우리가 그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생각할 만큼 그렇게 되어있는가 저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그랬습니다. 지난88년 올림픽을 치를 때 그들은 자기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사람들처럼 그런 감사와 감격을 가졌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는데 저는 그곳 그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았습니다. 중국이 우리나라 한국 땅에서 게임을 하게 되었답니다. 중국 사람들은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그 한족들이 하는 얘기예요 자기들은 일본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경기를 하기 원했고, 한국에서 축구경기를 하니까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수십만 명이 한국에 관광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가길 원한다는 말에 조선족 동포들은 괜스레 뻐기고, 자기들의 목에 힘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그렇게 되는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이여 진실로 우리는 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정말 내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엎드려야만 합니다. 에스더처럼 모르드게처럼 죽으면 죽겠다고 하는 일사각오의 정신까지는 못 가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힘을 다하여 기도해야 하고 그들을 위하여 엎드려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에게 이런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민족입니다. 땅은 좁은데 인구는 많고 지하자원도 없는 민족이다. 당신네 땅은 넘쳐나는 지하자원이 있지만 우리는 석유도 나지 않는다. 우리는 가진 것이라고는 없는 민족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그래도 여러분들이 부러워하는 이런 나라가 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이 민족의 통일과 경제 재건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성공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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