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소리 /히12:18-29 2009-07-08 15:31:14 read : 24
레 17장을 읽어보면 피 냄새가 물컹납니다. 11절에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씀했고, 14절에는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의학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어떤 의료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의학적으로도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의학적으로도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고, 따라서 육체의 치료도 근본적으로 피에 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피를 맑게 하고 피를 새롭게 공급하므로 육체가 치료를 받고 소생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핏속에 생명과 치료에 근본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백혈병 환자의 핏속에는 생명과 치료에 속한 근본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그 피로는 자신도 치료를 받을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치료에도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죄로 더러워진 피를 가진 까닭에 그 어떤 사람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 피로써 영적인 구원의 효능을 설명하신 지혜에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육체의 질병을 신선한 피가 치료할 수 있듯이 영혼의 질병, 죄악의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한 피 곧 영원한 생명만이 치료할 수 있습니다. 신체에 있어서 신선한 피가 효능을 나타내듯이 우리의 영혼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성령으로 수혈될 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소생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주께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창 4장에는 아담의 아들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다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십니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대답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때 하나님께서 만고의 영적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나에게 호소하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피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 피흘림은 생명의 흘림이므로 그 생명은 생명의 하나님께 호소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호소하고 외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외침이 있습니다. 가인은 변명했지만 아벨의 무죄한 피는 직통으로 하나님께 호소했던 것입니다. “나는 무죄합니다. 무죄한 피를 흘린 자에게 저주를 내리소서”
이와 같은 예비 지식을 가지고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본문 12:18~24에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율법 아래의 세계와 은혜 아래의 세계가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우리가 이른 곳은 심판과 정죄의 장소가 아니라 은혜의 보좌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의 변호가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인 동시에 대변자, 변호자가 되어주십니다. 그 확실한 증거가 예수가 날 대신하여 나를 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흘리신 무죄한 피입니다. 그 피로 상징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원죄 속에서 이미 더러워진 아벨, 억울하게 죽은 피조물인 아벨의 피도 하나님께 직통하여 신원하였는데 하물며 무죄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아벨보다 얼마나 더 낫게 말하겠습니까? 오늘뿐 아니라 영원토록 무죄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무한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댓가를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의 죄에서의 영원한 구속을 위하여 피를 흘렸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에게 나의 무죄한 피, 영원한 생명을 주시옵소서. 내 피의 댓가를 주시옵소서. 내 피를 믿음으로 받아드린 자를 나는 내 피로 담보하고 보증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은 아벨의 피보다 낫게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소리를 듣게 됩니다. 오늘은 어제와 오늘도 영원까지 변함없이 들려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소리를 들어보십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무죄를 변호합니다. 예수의 핏소리가 주장하고 호소합니다. “이 사람의 죄는 이미 영원히 사함받았나이다. 나는 이 사람의 죄 때문에 그의 모든 형벌을 담당하였나이다. 내 피로 이 사람의 죄를 덮었나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핏소리, 용서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죄짐은 풀리고 우리의 양심은 평안을 얻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9:11~14에 기록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무죄한 자로 발견됩니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는 아벨의 피보다 낫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칭의를 변호합니다. 예수의 핏소리가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무죄할 뿐 아니라 이미 의롭습니다. 나는 이 사람 때문에 죽었고 또 이 사람 때문에 죽음에서 부활했습니다. 나는 내 피로 이 사람의 죄를 덮었습니다. 나는 내 의로운 부활의 생명을 이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는 우리를 무죄한 자로 만들어 줌과 함께 그의 부활과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로움까지 변호해 주십니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언제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자격을 얻습니다. 롬 8:31~34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심판이 나에게 없네”라는 주일학교 찬송이 떠오릅니다. “주의 피 내 죄 가리네 예수님 날 위해 돌아가셨으니 심판이 나에게 없네” 할렐루야!
셋째로, 아벨의 피보다 낫게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변호합니다. 예수의 핏소리가 말합니다. “이 사람에게 있는 생명은 나의 생명입니다. 피와 생명은 일체이므로 그를 위하여 흘린바 된 피는 나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에게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계시며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의 양자가 됩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의 변호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 우리보다 더 높은 바위에 올라서게 된 것입니다. 성경 자체가 논리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감동적입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찬 209장을 부릅시다.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는 아벨의 피보다 훨씬 낫게 회복된 사랑의 교제를 하나님 앞에서 변호합니다. 예수의 핏소리가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여 내 목숨을 버렸습니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여 세운바 새 언약의 피를 흘렸습니다. 이제 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죄의 장벽은 허물어졌습니다. 지성소의 휘장은 위로부터 찢어졌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로 나가는 새롭고 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속죄와 의와 영원한 생명에 튼튼한 기반을 가진 사랑의 교제 속에 들어왔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세우신 바 새 언약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향한 자기의 사랑을 영원히 확증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배 가운데서 감사합니다. 십자가의 죽음, 삼일간의 주검을 기념하되 슬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죽으심을 통한 영원한 승리와 생명을 기뻐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사랑의 나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의 새 계명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받들어 섬길 마음을 가다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엡 2:11~22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다섯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뿌린 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치료를 보증합니다. 민 21:6~10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때 모세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말씀했고,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았습니다. 이 본문은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할 때 영적으로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뱀에게 물려 병들게 된 것을 말합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고 한 것은 우리의 죄로 인한 질병과 연약을 예수께서 대신 십자가 위에서 짊어지신 것을 가르칩니다. 놋뱀을 쳐다본 자마다 살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구원함을 받고 치료함을 받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학용어에 Cachexie, 악액질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Cancer, 암의 말기에 암세포로부터 나오는 액체가 온 몸을 휩쓸어 어떻게 손쓸 수도 없고 고통이 극심한 상태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라도 수혈을 통하여 신선한 피가 그 암세포 사이에 흐르게 되면 소생하는 기적이 나타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날은 이 세상과 지옥의 역사, 인간과 마귀의 역사의 위기였습니다. 주께서는 치심을 입은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민 20:11)이 되었고, 죽임당한 사자의 몸에서 취한 꿀(삿 14:8~9)이 되었습니다.
그날에 암흑과 빛, 증오와 사랑, 죽음과 생명의 어느 편이 권력을 장악하느냐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밤에서 낮을, 겨울에서 봄을, 서리에서 꽃을, 추수에서 결실을, 겟세마네에서 감람산을, 죽음에서 생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승리요, 희생은 사랑이요, 봉사가 상급인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요 12:24~25). 우리는 이미 절대절명의 영적 정신적 육체적 질병에 걸려있고 언젠가는 죽어야 할 존재이지만 주께서 흘리신 보혈이 근본적이고 종국적으로 우리를 치료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사 53:4, 마 8:17).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율법의 저주인 모든 질병과 연약함에서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인자하신 주님은 죄악의 결과로 나타난 여러 증상을 자비롭게 치료하십니다. 어느날 마지막 나팔이 불 때 소경은 다시 보고 절뚝발이는 뛰어다니고 앉은뱅이는 걸을 것입니다.
늙은이는 젊은 청춘으로 홀연히 변화할 것입니다. 그날 치료하는 광선이 온누리에 발하여 우리는 다시금 아프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부활의 몸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의 모든 치료는 그 근본적이고 종국적인 치료의 예시요, 그 능력을 맛보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아침 주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렁찬 핏소리, 권세있는 핏소리를 듣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의 눈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 주님은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 그 주님은 죄의 결과인 사망과 질병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고 계십니다. 그 주님의 보혈이 용서와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이 피묻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 화합하는 자의 영혼과 전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속죄의 기쁨과 하나님의 안식으로 충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도 우리들의 사죄와 칭의와 생명과 사랑과 치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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