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8-25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8-25
2004-12-24 15:28:54 read : 192

오늘은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세계 교회가 함께 성찬식을 하면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현존을 체험하고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주일입니다.

성만찬 예식을 가질 때마다 성만찬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성만찬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친교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는 성만찬을 통로로 해서 성령님의 은총을 공급 받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를 구체적으로, 실감 있게 느끼고 기념해야 하며, 그 피로 구원을 받은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이 이것이 교회가 성만찬을 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성만찬에 대한 최초의 교훈은 고린도전서 11장입니다.
교회에서는 성만찬 예식을 행할 때 성만찬 제정사 순서에서 이 고린도전서 11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아직 미숙해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몸을 내 주셨다.’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제정된 것이 바로 성만찬입니다.

우리는 신앙에 대해 추상적인 수준, 관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음을 쉽게 버리게 됩니다.

어떤 시인이 이순신 장군의 생애를 서사시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서재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썼습니다.
만족한 작품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시인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서 이순신 장군과 관계된 곳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 여러 날, 때로는 여러 달씩 머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생계의 위협을 무릅쓰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시조 ‘한산섬 깊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이 부분을 쓸 때는 정말 한산도에서 깊은 밤에 수루(戍樓: 초소)에 여러 번 나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니까 이순신 장군의 고뇌. 이순신 장군의 처지, 이순신 장군이 왜 그 때 그런 작전을 했는지 실감 있게 느껴지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작품 하나를 쓰기 위해서도 이와 같이 구체적인 이해를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우리 삶의기초가 되는 신앙을 실감 있게 갖는 일을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애써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성도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의 현장이 되는 곳들을 찾아보고 돌아 왔습니다.
성지순례의 유익은 성서 시대의 형편을 실감 있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출애굽 코스인 시내광야를 순례한다면 ‘모세의 수고가 정말 대단했구나!’ 하는 것을 정말 깊이 깨닫게 됩니다.
사도행전 코스를 순례하면 ‘바울의 수고가 정말 컸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안락한 설비를 갖춘 버스를 타고서 다니면서도 다섯 시간, 여덟 시간, 때로는 하루 종일 다니라면 지치지요.
그 길을 바울은 건강도 부실한 몸으로 걸어다녔습니다.
휴게소에서 쉬면서 이천 년 전에 바울 사도가 걸어갔을 길을 바라보면서 고린도후서 11장 26절과 27절의 말씀이 정말 바울의 육성처럼 마음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고 헐벗었노라(고후 11: 26~27)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베드로전서의 시작 부분, 1장 1절과 2절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가 부족할 때는 ‘그저 그랬나보다.’ 합니다.
읽을 때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낯선 지명들이 나오니까 떠듬떠듬, 무미건조하게 읽습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곳들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우선 서로 멉니다.
초대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수 있었는지 참 놀랍습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했는데 갈라디아는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가 있는 지역입니다.
거기에서 갑바도기아는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립니다.
갑바도기아, 정신이 번쩍 듭니다. 거기 성도들은 지하동굴을 깊이 파고 거기 숨어살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 지하동굴 교회를 순례하고 나온 저녁에 베드로전서 1장 1절을 읽는데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또 한 가지 덧붙여지는 생각, ‘북한에도 이렇게 지하교회 성도들이 숨어 예배드리던 곳들이 많을 텐데…’ 이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더 엄숙해집니다.
‘주여, 그런 곳들을 순례할 수 있는 날을 속히 주소서!’ 하는 기도를 정말 간절하게 드리게 됩니다.

1장 2절을 다시 보세요. 중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성만찬을 하면서 여러분, 이 말씀을 실감 있게, 구체적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배로운 피를 뿌리셨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성찬을 천주교에서는 영성체(領聖體)라고 합니다.
‘성체,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영, 수령한다, 받는다’ 이와 같은 뜻인 것 같습니다.
천주교의 의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습니다만 천주교회에서는 영성체를 대단히 엄숙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성체 전 금식’이라고 하여 성찬을 받기 전에는 일정기간 금식한다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것을 공복재(空腹齋)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1964년부터는 한 시간 전부터 금식하면 되고 또 형편에 따라서는 더 완화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한 목사님이 천주교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실수해서 잔에 든 포도주를 흘렸는데 그는 손을 대지 못하고 신부가 정결한 수건으로 정성껏 뒤처리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한 교부는 성찬을 받는 자세에 대해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런 후 당신이 앞으로 나아올 때 손목을 내밀거나 손가락을 펴거나 하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왕(the King, 그리스도)을 받으려는 당신의 오른손 밑에 왼 손을 놓고 그것을 왕좌처럼 만드십시오. 당신의 손을 우묵하게 만들고 ‘아멘’으로 응답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받으십시오. 성체를 눈에 댐으로 당신의 눈을 조심스러이 정결케 하십시오. 그런 후에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성체를 입에 넣으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의 영성체를 마친 후 다시 그리스도의 피의 잔으로도 나아가십시오.
이때에도 손을 벌리지 말고 몸을 구부려 숭경(崇敬)과 경의의 태도를 취하십시오. 그리고 ‘아멘’을 말하십시오.
그리스도의 피를 받음으로써 정결케 되십시오.
그리고 습기가 아직 당신의 입술에 남아 있는 그때에 손으로 그것을 만져서 당신의 눈과 이마 및 그 밖의 다른 감각도 정결케 하십시오(Catech. 5. 21f)

여러분, 오늘 그렇게 하셨습니까?
앞으로는 성찬을 받을 때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은 여러분,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 이루어진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2장 3절 앞부분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의 보응을 피하리요

라는 말씀으로 구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일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 18절과 19절에서 구원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9절을 다시 보세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오직” 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구원은 다른 것을 통해서는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오늘 우리가 동참한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구원의 기초입니다.(롬 5: 9)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교제의 기초입니다.(마 26: 26~29)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정결의 기초입니다.(히 10: 29, 요일 1: 7)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승리의 기초입니다.(계 12: 11)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영생의 기초입니다.(요 6: 53~56)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기초입니다.(롬 3: 25)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화목의 기초입니다.(엡 2: 13~16)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동참한 성도 여러분, 보배로운 피에 연합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더 잘 믿으셔야합니다.
21절 앞부분을 보세요.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도록 하기 위해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합니다.
21절 뒷부분을 보세요.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지금은 더욱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할 때입니다.

22절을 보세요
진리를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성도들끼리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23절을 보세요.
우리는 썩지 아니할 씨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썩지 아니할 씨를 받았으면 그 씨가 자라야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재생산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의 구체적인 일은 전도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썩을 씨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영원함을 알아야합니다.
23절 뒷부분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영원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24절과 25절을 보세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고 말합니다.

요즘 교회에 대한 잘못된 시각과 비난이 많습니다.
물론 교회도 부끄러운 일들, 개선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긍정적인 면들, 공헌을 보지 않고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어제는 KBS가 그런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지요.
그 프로그램이 얼마나 빵점 짜리 인지, 허점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오늘 남선교회 조찬기도회에서 자세하게 말했습니다.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비난하는 것인데 비난하는 세력들은 사라져도 말씀은 영원히 남고 힘있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동참한 성도 여러분!

거룩한 삶을 사셔야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값으로 치루고 이루어낸 것입니다.
어떻게 다시 마구 살아서 죄를 짓고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모멸하며 다시금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남은 때를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독생자까지 희생 제물로 삼으실 만큼 인간을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우리도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오늘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다시 한번 동참하고 연합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의 보배로움과 구원의 소중함을 구체적으로, 실감 있게 깨닫고 그와 같은 소중한 피로 구원을 받은 자답게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