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혈의 권능/벧전1:13-19 2003-02-22 09:25:18 read : 238
어떤 설교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의 시각에서 보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종교만이 존재한다. 한 종교는 기독교를 제외한 종교이며 그들의 구원은 \'너희의 구원을 위하여 ∼하라!\' \'Do\'의 종교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믿으라!\'는 \'Done\'의 종교이다.\" 세상의 여타 종교는 행위종교, 율법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은혜종교, 믿음의 종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본문 18절에 \'너희가 알거니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미 이루어주신 모든 일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과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주신 일이 무엇인가를 앎으로 출발합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보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서 해주신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아는 것이 복음종교의 특징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알 때 탈선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사랑과 헌신을 알 때 가정 밖에서 방황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주님의 사랑을 알 때 냉냉한 그리스도인으로 머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 할 때 아는 것, 곧 믿고 확신하는 것이 여러분의 신앙의 내용을 결정짓습니다. 신앙의 박해가운데 나그네처럼 각 지방으로 흩어진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가운데 기쁨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은 그들이 받은 복음을 깊이 알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직 흠없고 점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조상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에 매여 헛되이 애쓰던 그 길에서 여러분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금이나 은 같은 것으로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이 아니라 한 점의 흠이나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얻은 것입니다\"(18,19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돈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진리는 \'생명이 생명이 낳는다\'는 것입니다. 은이나 금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할 수 없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를 구원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진리의 정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8절의 \'구속\'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구속\'이란 말은 \'구원\'과 그 의미가 동일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율법의 조항 의 하나라도 어기는 자는 율법을 깨뜨리는 자로서 율법의 저주를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대신 지시고 율법의 모든 의무를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주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죄와 형벌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노예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합당한 값을 치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온전한 값을 치르심으로 우리는 종에서 자유인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구원은 금이나 은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유일한 해답입니다. 메시야의 피, 구원자의 피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구원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2절). 여기에서 \'피뿌림\'은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가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는 집을 넘어가는 유월절(Pass Over)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성도 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이며,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구원이며 영생이며 희망입니다. 그것은 환희이며 인생존재의 최대의 사건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권능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3,14).
이 보혈의 권능이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의 영혼과 삶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를 위한 제단이었습니다. 인류를 위한 속죄제물은 예수그리스도 자신이셨습니다. 그가 흘리신 보배로운 피는 우리의 생명수가 되었고 그가 찢으신 거룩한 몸은 우리의 생명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신앙의 위대한 선조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늘 그들의 삶의 중심에 있게 했습니다. 소설가 류 웰래스(Lew Wallace)는 그의 소설 \'벤허\'에서 인간의 절대절망적인 한계상황,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죄인의 상태를 문둥병으로 표현했습니다. 인간의 학식과 재주와 금과 은은 도무지 문둥병자와 같은 죄인을 새롭게 할 수 없었으나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그 죄인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의 보혈만이 절대절망 중인 인간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권능을 체험한 자는 어떻게 살아가게 됩니까?
첫째, 주님을 더욱 사모하게 만듭니다(13절).
은혜는 은혜를 낳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더욱 사모하게 만듭니다.
둘째, 주님을 닮게 합니다(14,15절).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주님을 닮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닮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불순종의 자리에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며(14절), 과거 세상풍조를 따라 살아온 거룩하지 못한 자가 거룩한 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15,16절).
셋째, 열매 가득한 삶으로 살게 됩니다(17절).
우리는 결코 우리의 삶을 가볍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우리의 삶을 열매 가득한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교만이 무너지며,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 보혈의 은총을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보혈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보혈의 권능이 머무는 자로 사십시오. 보혈의 은혜가 우리의 영과 육을 새롭게 하고 보혈의 권능이 우리의 삶과 가정에 충만한 고난주간으로 살아갑시다.
피할 수 없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피할수없네 삶의 쓴잔을!
피조물로 이땅에 온 이상 피할수없네 세속의 오염을!
육체를 짊어지고 사는 이상 피할수없네 영혼의 죄악.
찢기고 상한 영혼, 등불 꺼진 축제현장
죄인으로 살아온 이상 피할수없네 심판의 칼을
탕자로 살아가는 이상 피할수없네 수치와 탄식을
가면을 쓴 이상 피할수없네 본모습 드러나는 순간을
영원한 형벌의 대상, 피할수 없네 지옥의 자식들
하나님 사랑 비추어졌네, 땅위의 모든 족속 남·여에게
메시야 오셨네 갈보리 언덕을 향하여 큰 걸음 내 디디셨네
온세상 모든 사람 피할수없네 주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녕 피할수없네 죄인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
영원히 피할수없네 십자가 지신 주님께 대한 경배와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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