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8-21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8-21
2003-10-29 14:47:22 read : 123


자녀가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자녀이면서 부모를 닮지 않았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때,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어느 부모할 것 없이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렇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들을 향해 어떤 소원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녀된 우리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자녀된 우리들도 당연히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거룩한 삶은 언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우리의 거룩한 삶의 시작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입었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혼모들에 의해 출산되어진 아이들이 수천명씩 길거리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몇년전에 쓰레기 봉지에 싸여 버려진 한 아이에 대해 신문과 방송에 나온 사건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 골목의 쓰레기를 청소하던 환경미화원들에 의해 발견되어진 아이는 검은 비닐 봉지에 싸여진 채 버려졌습니다. 하마터면 쓰레기 더미와 함께 그냥 버려질 뻔 했지만 다행히도 환경미화원에 의해 발견되어져 생명을 건지게 되었고, 곧 바로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던 교회 목사님에 의해 그 아이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버려진 아이에 대해 마음 아파했습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기 전에 우리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우리는 더럽고,추한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를 이곳에서 부터 건져내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더러운 쓰레기더미에서 있지않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성경은 과거에 우리가 살아왔던 삶이 \'망령된 행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간혹 우리는 나이 드신 분들이 정신없는 행동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흔히 \'망령들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의학적인 용어로는 \'노인성 치매\'라고도 합니다.
여러분! 그 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 나도 나이가 들었을 때, 저렇게 될까봐 미리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노인성 치매\'를 가진 사람만이 망령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사람들이 다 망령된 행동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추구한 세속적인 행복의 추구가 다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오셨습니까? 좀 더 나은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서입니까? 좀 더 편안한 생활환경입니까? 좀 더 멋있어 보이는 생활방식입니까? 그런데 마치 세상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착각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모든 행동양식을 가리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망령된 행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은 이 망령된 행실로 부터 구원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세상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삶을 되풀이 해서는 안됩니다. 또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을 본질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서도 안됩니다.

원래 \'구속\'이라는 말은 비싼 값을 치루고 노예를 사서 그 노예에게 자유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노예를 자유케하려고 대가를 지불하고 산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사시기 이전에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었던 자들이라는 말입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그럼 우리는 누구의 노예였습니까? 무엇에 매인 자들이었습니까?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우리의 죄로부터 얽매어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을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 가장 놀라운 사실은 바로 이 죄악의 노예된 상태에서 우리가 구속함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은이나 금으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셨습니다. 은이나 금은 육신의 노예를 속전할 수 있을찌라도 죄의 노예는 결코 속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그 값을 치루셨습니다.

19절을 보면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값없이 그저 주시는 은혜를 따라 구속함을 입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헤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값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도 그 분앞에 나오면 모든 죄가 흰눈보다 더 깨끗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그 분이 대신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쏟으시면서 그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값싼 은혜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거저 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가치없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얼마전에 대우에서 에스페로 차 100대를 100명에게 일년간 무료로 탈수 있게 하겠다고 광고를 냈습니다. 자기회사의 차를 판촉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짧은 기간동안에 신청을 받았는데 놀라운 것은 그 차를 한번 타 보겠다고 신청한 사람이 무려 50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공짜라고 하니까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없이 모두 신청한 것 같습니다.

아뭏튼 이 50만명 중에 100명은 선발이 되어서 일년간 차를 공짜로 타고 다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공짜로 타고 다닌다고 그 차를 가치없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공짜라도 그 차는 그차에 걸맞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받은 사람이야 공짜겠지만 어쨌거나 대우에서는 수 많은 돈을 들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은혜를 공짜로 주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은 자신의 보배로운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생명을 그 대가로 지불하셨습니다.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함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은 어느날 갑자기 세워진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미리 세워두신 계획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지난번 무궁화 위성이 발사될 때 몇번이나 발사계획이 연기되고,수정된 끝에 발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무궁화 위성 2호를 발사하려는 계획이 또 원래 계획대로 되지 못하고 연기되었습니다. 몇번씩 계획이 수정될 때마다 국민들은 불안합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시도하는데 혹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깁니다.

사람들이 세운 계획은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습니다. 주위의 여건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은 변하지 않습니다. 즉흥적으로 어떤 것을 계획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분이 창세전에 인류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도 일점 일획 틀림이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2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범죄를 아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 구원하실 계획을 이미 세워두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그 분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게 하셨습니다. 그 분은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분이시며 이 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믿음 생활을 해 오시면서 이 사실이 여러분을 감동시킨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그 사건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그 사건 때문에 목 놓아 울어 보았던 적이 있습니까? 그 사실 때문에 잠을 설쳐가며 감사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사실을 아는 자마다 망령된 행실에 사로 잡힌 예전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광스러운 나그네 인생을 사는 자들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21절)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사십니까? 하나님께 여러분의 소망을 두고 계십니까? 지금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로마의 박해로부터 끊임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낙심하고 믿음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시고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그 분이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죽으셨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계시므로 우리의 삶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아니 우리의 아버지가 거룩하시기에 자녀된 우리들은 당연히 거룩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선교사가 임지로 가는 도중에 여자의 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하고 가까이 가보니 아들이 노예로 끌려 가는데 그 엄마가 주인을 보고 \"주인님, 나도 아들과 함께 사 주십시오. 저희 모자(母子)가 함께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하며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이 \"안돼\"하며 아들만 끌고 가는데 그 엄마는 생명을 내걸고 함께 사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도 울고, 아들도 울고... 한번 헤어지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보던 그 선교사는 주머니의 모든 돈을 털어 그 두 모자를 사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어느날 선교사가 풀밭에서 비명을 지르고 넘어졌습니다. 실신이 된 선교사의 뒷발에 독사의 이빨 자국이 나 있자 엄마 노예가 입을 대어 독을 빨아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거의 죽었던 선교사가 일어나 보니 독기를 입으로 빨던 엄마 노예는 얼굴이 퉁퉁 부어 죽어 있었습니다. 엄마 노예는 자기를 사 준 고마운 선교사, 진정한 사랑을 베풀고 자유를 준 이 선교사를 위하여 사망의 독을 입으로 빨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 사도는 오늘 우리들이 나그네로서 인생을 산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이 땅에서 아무렇게나 살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분을 닮은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자들은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생애에 넘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