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의 피의 능력 히9:18-23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며,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1:18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서만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하여 무려175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나, 그의 가르치시는 교훈이나, 그리고 그의 삶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가 우리의 죄를 사하거나,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가 없는 복음은 하나의 지식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6:14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어떤 허물이나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일3:5을 보면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라고는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한 아들이 아주 중한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수술을 해야하고 수술 중에 많은 피가 소요되기 때문에 의사는 충분한 혈액을 준비해놓고 수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수술을 진행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는 더 심각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준비되었던 피가 다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이제 의사는 중대한 결단을 해야만 했습니다. 수술을 계속할 것인가 여기서 포기하고 중단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때 그 아이의 아버지가 그것을 지켜보다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제 피를 제 아들에게 수혈해 주십시오.” 아버지는 팔을 걷어붙이고 아들의 침대 옆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의 몸에서 붉은 피가 혈관을 타고 아들의 몸으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은 계속 되었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쳐졌습니다. 그이후 아들은 서서히 생기를 회복해갔지만 연세가 많은 아버지는 서서히 기력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살았지만 결국 아버지는 기력이 쇠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집니다. 여기 아버지와 아들처럼 피를 나눈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붉은 피가 혈관을 타고 우리의 몸속에 전달될 때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살아나고 저주에서 해방이 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높이 달려 우리를 위해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의 몸속에 그의 피가 흐르고 우리의 몸안에는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18세기 독일 작센 지방에 ‘진젠 도르프’라고 하는 유명한 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적인 지위가 백작입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고, 넓은 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미술관에 그림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이 그림 저 그림을 구경하다가 한 그림에 한참 그의 눈이 멈춰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그림이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쓰여 있었고. 그의 양손에는 큰 대못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허리는 창에 찔린 채 피가 흘러내리는 그런 그림이었습니다. 그때 ‘진젠 도르프’가 그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신 모습을 본 순간에 그 예수님의 허리에서 피가 막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피가 흘러내리는 십자가를 보게된 ‘진젠도르프’는 충격을 받고 엎드려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것이 없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진젠 도르프’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 자기만을 위해 살던 이 ‘진젠 도르프’는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해 살고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넓은 땅을 떼어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침 그 때 모라비안 교도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서 이 ‘진젠도르프’ 영토에 가까이 도망을 왔을 때 그들에게 많은 땅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라비안 교도들이 ‘헤른포트’라는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거기서 경건 운동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라비안 교도들이 몰려있는 ‘헤른포트’라는 신앙공동체에 가서 은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입니다. 그들의 경건한 모습을 보고 ‘존 웨슬레’가 마음에 충격을 받고 돌아와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거듭남을 경험하게 되었고 감리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우이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봐도 감각이 없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흐르는 붉은 피를 봐도 관심이 없습니다. ‘십자가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무관심과 냉담함 가운데 감각이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 곡을 하여고 애통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호지 아니한 옷을 제비뽑아 나누는 병사들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가끔 장례식을 집례하면서 가슴 아픈 일들이 있습니다. 살만큼 사시다가 세상을 떠난 분들은 뭐 그렇게 슬프지는 않습니다. 노환으로 오래 병상에 누워계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신 분들은 오히려 고생하느니 참 잘 가셨다 그런 생각이 솔직히 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젊은 분들의 죽음입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된 젊은 부부인데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때 참안타깝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장례식인데 그 가정에 어린 세 살짜리,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엄마 손을 붙들고 아버지가 죽은 것도 모르고 칭얼대면서 무엇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왜 죽은것도 모르고 그것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당하신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도 어린아이 같이 아무런 아품과 마음에 감격도 없이 의미 도 모르고 예배에 참여했다면 얼마나 주님이 보시기에 안타까울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요즘 개성관광이 한참 진행되다가 남북관계가 중단되고 말았는데 개성에 가는 관광객이 꼭 보기를 원하는 곳이 선죽교 다리입니다. 선죽교에 가면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흘렸던 피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죽교에는 정몽주의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의 가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야 될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그 보혈은 이천년 전에 한번 흘림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마음속에 그 보혈이 흘러내림으로써 우린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의 감격과 생명을 주신 주님에 은혜에 감사하며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양손으로 잡고 비틀어 짜본다면 거기서 무엇이 나올까? 아마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참깨를 깨틀에 넣고 짜면 참기름이 쏟아질 것입니다. 포도를 포도주 틀에 넣고 짜면 포도즙이 나올 것입니다. 거기에 성경을 넣고 짜면 피가 흐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속에는 구속사에 언약의 피가 흐르고 있고 신구약 성경에 피라는 단어가 무려 356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창세기는 피의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잡아서 그 가죽옷으로 그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게 하셨습니다. 아벨의 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출애굽하면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릅으로 애급에서 나오게 되었고 결국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이야기로 완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이야기는 피의 역사이고 피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우이제일교회 성도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앞에 나갈수가 있겠습니까? 의롭고 깨끗한 자입니다. 이땅에 우리 인간은 의롭고 깨끗한자가 없습니다. 모두 다 죄인입니다. 율법앞에 우리는 돌에 맞을 죄인들이고 하나님앞에 나갈수 없는 허물이 많은자들 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인간이 의롭게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막혀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99가지를 다 지켜도 그 중에 하나를 어기면 그는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율법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막제도를 주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서 인간에 죄가 용서받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린 그것을 죄의 전가라고 말을 합니다. 대제사장은 자기의 죄를 위해서는 송아지를 잡아서 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를 고한 후에 그 송아지를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을 위해서는 그 양들에 머리에 손을 얹고 백성의 죄를 고한 후에 그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죄가 용서받고 사죄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불완전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매번 반복되어야만 했고, 그것은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인간에게 영원한 속죄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이제 인간이 영원히 구원받는 길이 열린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 히브리서 9장 12절 말씀을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십자가의 제단에 재물이 되심으로, 그분이 피 흘려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우리 다같이 히 9장 26절을 읽으시겠습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피는 능력이 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니까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고, 모든 부정한 것은 피로써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본문 히 9: 21절~22절 말씀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쫒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성전에 쓰는 모든 기구들은 피로써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죄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만이 깨끗함을 입을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는 참 놀라운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는 것은 왜 죽습니까? 피를 흘려내면, 필요한 양의 피가 부족하게 되면 사람은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짐승도 피체 먹지 못하게 금하고 있는 것은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피는 붉은 색입니다. 거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흰 쌀밥을 먹어도 왜 피는 붉은 색일까요? 우린 파란 상추쌈을 먹어도 피는 늘 붉은색입니다. 그 피는 하나님만이 만드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의학이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피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피는 헌혈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피를 만들 재주가 없습니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는 능력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피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화목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 보니까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화목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원수된 관계였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를 하고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피는 화해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피 흘리심으로 원수 되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가 화목하게되고 가까워졌다고 했습니다. 피는 이처럼 화해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피에는 가깝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멀리있었던 우리들을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합니다. 엡2:13을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우리가 죄와 가까우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죄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죄 문제를 십자가의 피로 해결해 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했다는 것이다. 2. 예수의 피는 죄를 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 1장 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랬습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피로 인해서 우리는 죄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32편에 보니까 “허물에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림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이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22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 1장 7절에도 보니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랬습니다. 마틴 루터의 관한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틴 루터가 늘 자신을 바라볼때 실망스러웠습니다. 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살아갑니다. 그게 늘 마음에 불편함을 주었습니다. 그 죄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나님이 흑판 하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흑판 위에 이름이 마틴 루터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마틴 루터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은 죄의 목록이 쫘~악 기록되어 있는데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마틴 루터는 너무놀라 더욱 절망에 빠졌습니다. 나는 구제불능이다. 나는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야 하고 그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팔 하나가 나타나더니 그 죄의 목록 위에 글 하나를 쓰는데 그 아들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기록하는 것이였습니다. 자세히 보았더니 그 기록하는 사람의 손에 대못자국이 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손에서는 붉은 선혈이 떨어지고 있는데 그 흘린 선혈로 인해서 그 칠판에 쓰였던 그많은 모든 죄의 목록이 깨끗이 씻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서야 마틴 루터는 깨닫았습니다. 내 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예수의 보혈이 그 모든 죄악을 다 사할 수 있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이제일교회 성도여러분! 예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악한 죄의 목록들이 예수의 피로 인해서 깨끗하게 씻음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피는 의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보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그랬습니다. 인간이 의롭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허물과 죄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설수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우린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습니다. 우리 죄를 다 덮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예수의 피로 다 덮어주셨습니다.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서 의롭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을 다같이 읽으시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것이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의 피는 보호의 능력이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해 나올때에 열 번째 재앙을 하나님이 내리시는데, 그것은 바로 장자의 죽음과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너희 집 기둥과 문설주에 바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키는 대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애굽사람들은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죽음에 사자가 그 밤에 장자를 칠 때에 애굽에 장자만을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장자들은 보호를 받았습니다. 문설주에 바른 붉은 피를 보고 그 죽음의 사자들이 그 집을 뛰어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날을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를 저주와 재앙에서 보호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피는 바로 보호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에도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그의 피 믿으오. 하고 우리는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4. 예수의 피는 저주를 물리치고 귀신을 추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본퀘라는 목사님이 계시는데 한번은 아프리카에 가서 집회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느 마을에서 복음을 증거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그 동네에 있는 무당들이었습니다. 무당들이 목사님을 너무너무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집회를 방해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어느날 목사님이 또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그 무당들이 떼로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목사님! 저 무당들은 능력이 있어요. 저 무당들이 저주하면요 사람이 죽기도 하는 능력이 있어요. 목사님! 오늘은 위험하니까 집회를 중단하시고 다음에 하도록 하시지요.” 만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본퀘 목사님은 성령 충만함을 입고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말씀을 힘있게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증거할 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보혈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 무당들이 하나씩 힘을 잃고 쓰러지고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집회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악한 능력이 거기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가로막고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저주도 예수의 보혈 앞에서는 힘을 쓸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앞에 귀신의 세력도 떠나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탄의 공격 앞에서 보혈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입니다. 보혈 찬송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5. 예수의 피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절에 보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랬습니다. 누구든지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의 피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대제사장만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직접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흘리신 그 피의 공로 때문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피를 여러분의 마음 인방에 발라서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피를 심령에 바른 사람만이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냅니다. 정말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 피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고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십자가의 고난의 흔적들을 찾으셔서 우리도 주님 앞에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마음을 드릴 수 있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