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흘림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의 필요성
히9:22





우리 몸에는 혈관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그 혈관의 길이를 한 줄로 이으면 9,500Km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경부 고속도로(428Km)를 열 한번 이상이나 왕복하고도 조금 남는 긴 혈관이 한 사람의 몸 안에 사방으로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혈관에는 끊임없이 묵은 피와 새 피가 흐르고 있는데 매초 당 1500만개 이상의 세포가 새로 태어났다가 죽고 하는 생명의 역사, 피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명의 역사를 반복하는 중요한 피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피를 좋아하지 않으며 피라는 말을 들으면 불길한 생각이 들고 또 붉은 빛깔로 얼룩져 있는 핏자국을 보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는 피를 굉장히 많이 이야기합니다. 피(보혈), 십자가, 못 박는다 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듣게 되고 우리 자신도 모르게 쉴 사이 없이 피라는 말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만큼 피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피라는 말이 무려 418번이나 사용되고 있는데 그만큼 피가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성경의 색상이 거의 금박입니다만 한 30여년 전만 해도 성경의 옆면이 대부분 붉은 색을 칠해 놓았었는데 왜 그러했겠습니까?
예수님의 피를 강조하기 위함으로서 그만큼 우리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피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고 또 구원관에 대해 바로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에 대하여 먼저 정확한 이해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며 피에 의한 구속의 교리가 없는 복음은 참 복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심의 필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가르쳐 주시는 ①기본적인 진리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피는 곧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 이것을 오늘 여러분이 꼭 기억하십시오. 만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흘리신 피에 관한 구절을 제하여 버린다면 성경은 심장이 없고 구원의 능력이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신약성경에 175번 이상 언급되었는데 한 마디로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②그렇다면 또 하나의 진리가 성립하게 되는데 피를 흘림은 곧 죽음입니다. 이것 또한 진리로서 피는 생명 즉 피를 흘림은 곧 죽음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죽음을 말하는데 ①피 흘리는 것을 죽음이라고 말하고 ②죄의 삯이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롬 0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죄의 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보응 받으려면 반드시 피를 흘려서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피를 흘리는 것이 죽음이고 죄의 삯이 죽음이라면 뭐가 같습니까? 죄의 삯은 곧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으로 이것이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죄를 씻고 싶습니까? 피를 흘려야 할 것이며 나의 죄에 대한 댓가를 정확하게 지불하고 싶습니까? 누군가가 분명히 죽어야 된다는 그 말입니다.

이일기 너 죄인이지? 예 죄인입니다. 그러면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해. 이 길은 정녕 피할 수가 없어. 네가 죽기 싫으면 누군가 네 대신 죽어야 돼. 예 그렇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길을 향한 출발점이며 반드시 내가 받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김해삼일교회 성도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가 다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의 자리에 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흘림과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의 죄 값을 위하여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인 만큼 죽음 그 자체로 끝이지 더 이상 어떤 기대를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현재 저와 우리 여러분의 처지를 상세히 설명한 성경 구절이 있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롬 0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죄인들이기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대신 죽어 줄 수 있는 대상을 하나님은 정하셨는데 그 대상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2. 구약시대에는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물로 짐승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역사를 우리는 주전(B. C) 역사라고 말하며 성경에서는 구약역사(舊約歷史)라고 말합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사람의 죄를 대신해 한 지정된 짐승으로 죄 값을 치르게 하셨는데 짐승이 대신해 피를 흘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제사 제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속죄의 짐승은 주로 소, 양, 염소 이 세 가지였는데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이 너무 가난해서 소와 같이 비싼 것을 끌고 와서 드릴 수 없으면 비둘기를 드렸고 그것도 없으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시한 방법을 따라 떡을 만들어 가지고 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 등은 반드시 흠이 없어야만 했으며 만일 눈이 상하였거나 다리를 절거나 병이 들었다든지 하는 여러 흠들이 있으면 절대 바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보아 틀림없이 완벽한 짐승이라야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릴 수 있는 속죄 제물이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22:22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 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을 보면서 피가 넘쳐흐르는 강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모두 기록은 안되었지만 한 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사람이 죄를 하루에 몇 번이나 범합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답이 제대로 안 나오지요. 왜냐고요? 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행동으로 범하는 죄야 몇 가지 말하라면 말할 수 있겠지만 생각으로 범하는 죄 마음으로 범하는 죄야 이루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구약시대 사람들은 혹 사람을 향하여 마음으로 죽일 놈 해서 날마다 이를 갈며 미워하다 어느날 그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했구나 라고 생각되면 우리에 가서 자신을 대신해 죽을 깨끗한 짐승을 끌어다가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 제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제사장으로부터 당신의 죄는 이 짐승의 피 때문에 용서받았소 하면 자기의 죄가 용서받은 줄 알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한 시간도 못 되어 무슨 생각이 납니까? 죽일 놈 하면서 분노가 치 밀게 됩니다. 그러면 또 우리로 가서 어느 양이 나를 위해 죽을 것인가 하고 짐승을 고르게 되겠지요.
그러니 한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도대체 하루에 죄를 몇 번이나 범하며 하루에 양이나 소가 얼마나 많이 죽어집니까?
만일 백성들이 죄를 범한 대로 짐승을 끌고 왔다면 그 제사가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제사였겠습니까? 그래서 구약시대의 제사 지내는 장면은 피를 보는 장면이지요.

또 아무리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려도 죄짓는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를 않으면 허사이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한 번 짐승을 잡아서 바쳤으면 그 짐승이 애처로워서도 마음에 죄를 지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도 꼭 같은 죄를 거듭 반복하니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으로는 죄를 범하고 겉으로는 제사를 지내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에는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제사를 외면하시게 되었습니다.

말 0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구약시대의 짐승 제사는 이만큼 문제가 있었으며 짐승의 피는 아무리 많이 흘려도 우리를 죄에서 완전히 사하지도 못하였으니 이것이 고민거리 아니겠습니까?



3.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를 단번에 속죄하기 위한 제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좀 더 완전한 제사, 매번 죄를 지을 때마다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될 제사, 단 한 번 피를 흘리고 죽으면 그것으로 인해서 영원히 그 죄를 다 용서하고 죄를 씻을 수 있는 피의 제사를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한 번 죽음으로 영원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피 그 다음에 단순히 죄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마음까지도 치료할 수 있는 피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렇다면 지금까지 거듭해 온 짐승의 피로는 안되고 사람의 피라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피에도 역시 제사 원리를 따라 죄가 없는 자의 피라야 하는데 그런데 죄가 없는 사람의 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하여 찾는 피가 무죄한 자의 피라야 한다면 그러한 피는 이 세상 어디를 헤매고 다녀도 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사람으로서 죄가 없는 피를 우리를 위해 허락하시기로 계획하셨으나 하나님 자신은 사람이 아닌 영(靈)이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빌 02:0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0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되었고
0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속죄의 제물은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므로 하나님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동정녀 탄생으로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죄가 없는 피 완벽한 속죄를 이루는 피로서 오신 것이죠. 마침내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돌아가셨으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우리 죄를 다 씻고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히 0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0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에 범한 모든 죄도, 내가 오늘 범한 모든 죄도, 내가 내일 범할지도 모르는 죄도 다 예수님께서 담당해 주셨습니다.

사 53:0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벧전 03: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그 십자가는 내가 죽은 거나 다름이 없으며 그 십자가에 예수님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못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이며 또한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우리는 완전히 용서함을 받고 온전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죽음이 나에게 죄 값으로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히브리서 09장에 보면 구약성경의 제물에 관한 말씀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대제사장은 깨끗한 피를 죄를 위한 속죄 제물(Atonement)로 드린 것을 알 수 있으며 22절에서는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죄를 용서해 주셨으며 이 속죄의 피가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길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죄를 영원히 씻겨 주시는 예수님께 내어놓으십시오.
날마다 조그마한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무릎 꿇고 예수님 나의 죄를 아시지요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하면 주님께서 피묻은 손으로 깨끗이 씻겨서 심령에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으셨는데 18,19절을 같이 봉독합시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것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만 붙들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겠습니다 라고 하면 여러분의 모든 죄를 무조건 완전히 씻어주시고 언제든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요일 0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제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그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그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