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두멍은 말씀과 보혈입니다 출30:17-21 이번 교회 건물을 찾으면서 감사한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축복하십니다. 아내가 이번 건물문제로 인하여 기도하면서 화장실, 싱크대 등등에 걸어 논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역대상 4:10절인데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의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교회 건물을 찾는데 어려움이 없게 하신다는 확신이 옵니다. 말씀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번 한달 동안 우리 교회에 귀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아름답고 지금보다 더 나은 예배처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모두가 주님의 사랑임을 고백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God is Love. 하나님은 아름답게 예배드리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시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자백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시고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기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오려는 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가까이 나온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축복 받는 자인가 아닌가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거리가 가까이 하려고 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신앙생활만이 아니에요. 부부생활도 마찬가지에요. 부부가 잠자리를 멀리하고 떨어지려고 하고 말다툼하고 그게 무엇입니까? 거리가 멀어지는 거예요. 자녀들과 거리가 멀어지면 가정의 우환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모든 삶이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생활에서 해야 하는 것은 무조건 거리를 좁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십시오. 따라서 합시다. ”신앙생활은 나와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는 작업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려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어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샘물입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바다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바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셨어요.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고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으로 안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사랑의 극치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백성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눈보다 깨끗하게 정케 하십니다. 우리가 성막을 연구하면서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몇 주간에 걸쳐서 합니까? 주님께 좀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예요. 지난주 우리는 성막 두 번째 시간에 번제단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막 문을 들어옵니다. 오직 한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함을 받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입으로 시인한 자들입니다. 구원함을 받습니다. 자 들어오면 다 끝나는가? 바로 앞 전면에 보이는 것이 번제단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양, 염소, 비둘기 등에다가 씌어서 자신의 죄를 씻음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모든 죄가 단번에 죄 씻음 받게 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자 오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한가지를 더 만드셨어요. 따라서 합시다. ”물두멍”. 번제단과 성소사이에 하나님이 만들라고 하셨어요. 물두멍이라고 합니다. 물을 담는 항아리입니다. 번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과거의 죄가 사함 받으면 그냥 하나님의 성소로 가면 되지, 왜 하나님은 물두멍을 만드실까요?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19]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무엇 때문에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수족을 씻게 하기 위해서예요. 손과 발을 씻게 하기 위해서 물두멍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소에 출입하는 제사장들이 손을 안 씻고 회막안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발생됩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임을 당하고 말아요. 그러기에 제사장들은 아무리 바빠도. 급해도 여기 물두멍에서 손을 꼭 씻은 다음 회막으로 들어가야 했어요.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네가 비록 제사장이라도 너는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옵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가요? 자 그러면 이제는 죄를 안 짖습니까? 예수를 믿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어요. 그러면 죄를 안 짓나요? 이번 한 주간에 한번도 마음으로 입으로 정욕으로 세상 것으로 죄를 안 짓습니까? 비록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비록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한번 두 번 나왔다고 해서 죄를 안 짓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알아요. ”그래! 네가 예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왔구나. 그래, 네가 번제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너의 원죄들이, 너의 과거의 죄악이 말갛게 되었다. 그러면 이번 주에는 너는 어떻게 살았니? 너 정말 깨끗하니?” 여러분, 한 주간 깨끗하게 사셨습니까? 요한 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려 하셨습니다. 그 때 수제자라고 하는 시몬 베드로가 말합니다. ”아니 선생님, 어떻게 내발을,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요 13:8) 라고 했어요. 예수님이 그 날밤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려고 한 것이 무엇입니까? 발을 씻기시려고 하셨어요. 예수님을 3년 동안 쫓아 따라 다녔던 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려고 하셨어요. ”안됩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합니다”라고 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하신 말씀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 고 말씀하셨어요. 씻기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내가 너를 씻겨 주겠다고 말씀한거에요. 내 사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너와 나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거예요. 세상에는 두 가지의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는 사람이에요. 나 혼자 살겠다는 사람입니다. 요즘 세태가 그래요. ”난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 나 혼자 살겠다” 자신 만만하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또 이렇게도 보여요. ”남에게 도움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겠다”라는 뜻이 내포된거에요. 매우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요.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의 사랑을 흠뻑 받는 사람이에요. 나의 죄를 번제단에서 모든 원죄와 자범죄, 과거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고 그리고 매일 매일 우리가 알고 짓는 죄, 모르고 짓는 죄, 여러 가지 음행으로 짓는 죄, 입술로 범죄한 죄 모든 것을 씻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십시오. 우리 주님도 자라시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되어있어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은 너무나 이기적이에요.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몰라요. 사랑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겸손함이 없으면 사랑을 받을 수 없어요. 왜 사랑을 못합니까? 자존심 때문에 그래요.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사랑 받지 못하는 거예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찬양도 있잖아요. 사랑을 받는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귀하신 사랑을 받고 그리고 사랑은 나누어주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저희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길 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누어주고 싶은거에요. 저희는 이번 미국교회를 통하여 큰사랑을 받게 되었어요. 제가 그렇게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도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우리가 얼마를 주어야 하냐고! 돈은 필요 없대요. 자신의 교회가 하나님의 사명 잘 감당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참 좋은 교회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그 교회를 통하여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을 또한 우리도 선교로 하나님의 일로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사랑을 받은 자만이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없는 것을 줄 수는 없는거에요. 제가 항상 말합니다. 저의 교회가 우산과 같은 교회가 되고 싶다고! 우산에는 중간에 침이 있어요. 그리고 비가 오면 중간부터 비가 흐릅니다. 빗물이 우산 살을 타고 뚝뚝 떨어집니다. 저희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충만하길 기도하고 있어요. 저희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요. 저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요. 뚝뚝 맞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어디로 갑니까?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내쉬빌에, 선교지에, 여러 곳곳에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의 사랑을 받고 주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고 싶어요. 베드로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요 13:9) 다른 말이 아니에요. ”이렇게 할 바에는 나 목욕시켜 주세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잘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맞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오며 주님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라고 의지한 성도들, 그리고 번제단에서 주님 나의 과거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의 몸에 흐르는 그 원죄의 뿌리들, 나의 잘못된 과거의 모습들, 죄악들을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때 주님이 그 사람을 깨끗케 하세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목욕이 아니에요. 발을 씻겨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발을 씻겨주는 것은 무엇이고, 목욕시켜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번제단앞에서,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나의 과거의 모든 것을 씻겨주는 것은 목욕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물두멍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발씻기시려고 하던 것과 같이 똑같이 ”매일 매일 생활에서 지은 죄들, 때묻은 손과 발을 씻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발을 씻기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또 죄를 짓습니다. 왜 죄를 안지을려고 하는데 죄를 짓습니까? 왜 죄를 지을까요? 따른 것이 없어요. 바로 죄가 우리 인간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강한 결심을 하더라도 죄가 우리를 끌고 다니면 꼼짝없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치 않으려면, 죄를 이길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이 함께 거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나의 손이 이렇게 더러워졌습니다. 주님 나의 입술이 부정해 졌습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 예수님은 죄만 이기셨을 뿐 아니라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고, 죽음을 이기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며 죄를 능히 이길 수 있어요. 여러분, 죄를 범치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아무 장벽이 없어야 합니다. 자꾸 자꾸 내어 맡겨야 합니다. ”주님 나를 씻겨 주십시오. 주님 나의 벌거벗은 몸을 보입니다. 주님 나를 씻겨 주옵소서. ” 어떤 분은 ”어 목사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번 주의 죄를 해결했고요, 그러면 또 죄를 지으면 또 용서해 주시겠지요. 깨끗함을 받으니까 또 죄 지으면 되겠네요?’ 죄를 막 지어도 괜찮겠네요?’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러분, 이것은 말장난입니다. 주의 보혈의 사랑을 함부로 그렇게 표현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죄의 먼지가 뭍을 때가 있습니다. 육신이 더러워지고 심령이 더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말장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냐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성소와 번 제단에 중간에다가 물두멍을 만들라고 하셨어요. 나에게 가까이 오는 자는 복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반듯이 물로 씻음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두멍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이란 말이 한자로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성결입니다. 우리교회가 성결교회잖아요. 청결한 자, 씻음을 받은자, 한순간의 더러워진 모든 것까지 주님 앞에 다 씻김을 원하는 심령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못하는 것을 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너희도 거룩해 질 수 있다는 거예요. 너희도 성결해 질 수 있다는 거예요. 천로역정에서 매일 매일 무엇을 합니까? 성결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산상수훈 팔복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무엇을 ?)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청결해야 합니다. 물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 그러면 물두멍에서 물이란 무엇일까요? 물로 씻음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천연수를 말합니까? 에비앙생수를 말합니까? 도대체 물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아주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통일성이 있어요.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했다. 말씀이라는 거예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거룩하게 어떻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 119:9) 우리의 행실을 어떻게 깨끗하게 합니까? 말씀으로 하는 거예요. 말씀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청결하게 됩니까? 어떻게 성결하게 됩니까? 어떻게 깨끗하게 됩니까? 따라서 합시다. ”말씀으로 깨끗함을 얻는다” 맞습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손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에요. 말씀으로 창조하셨어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그랬어요.” 예수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중히 여기는 심령이에요.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그 말씀이 꿈틀꿈틀 역사해요. 가끔씩 사람들의 입속에서 ”운명이니, 팔자니”하면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운명이니 팔자니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주 팔자, 운명 그런 것은 세상사람이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미신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믿는 사람, 궁합을 믿는 사람은 뭘 봐야 된데요. 이사를 가더라도 뭘 봐야 된대요. 이사도 제대로 가지 못합니다. 손 없는 날인지 뭔지 해서 날을 받아야만 한다나요! 여러분, 그런 것은 미신입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은 아무쪽으로나 이사를 하지 못합니다. 점쟁이가 방향을 가르쳐 주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 날이나 이사갈 수 있습니다. 주일날만 피하면 됩니다. 동서남북 어디로나 갈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합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여러분, 미신을 사람, 사주팔자를 믿는 사람, 궁합을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은 귀신들이 집을 지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점지해 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집을 네가 지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였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있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이 있다고요! 무엇이 모래 위에 지은 집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지은 집,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은 집이 모래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반드시 비가 오고 홍수가 나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 위에 지은 집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비가 오든 홍수가 나든 바람이 불든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든 말씀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 다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저희 교회가 새롭게 이전합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집을 짓기 원합니다. 멍청한 교회가 아니라 말씀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내쉬빌 연합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물이 말씀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물이 상징하는 또 한가지가 있어요. 물은 보혈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지난주에도 번제단에서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한다고 했어요. 우리의 모든 원죄와 자범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때 무엇으로 깨끗하게 합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생각합니다. ”아이고, 내가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데 또 죄를 짓는구나” ”내가 범죄하지 않으려면 이제 내가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하겠구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은 절대로 우리의 노력과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닌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우리의 수고나 노력이나 각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하나님 앞으로 성소로 가까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 교회를 나오라며 ”목사님, 제가 좀 깨끗하게 된 다음예요. 제가 정리할 것이 있어서요” 어떻게 깨끗하게 됩니까? 어떻게 정리하겠다는 거예요. 자신의 노력과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단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음 받고 목욕하는 곳이라면, 물두멍은 우리의 손발을 씻는 곳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영원히 씻음 받은 뒤에 범죄 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서 더욱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내가 좀더 깨끗하게 된 후에, 내가 좀더 나아진 다음에 이것은 다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범죄 하였다 하더라도 사단이 우리를 속이지 못하도록 “하나님, 나는 이럴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범죄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그래도 그래도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없어요. 그냥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를 좁히는 것뿐입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를 좁히는 거예요.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무엇이라고 한다 하더라도 나는 말씀을 의지합니다. 물로 깨끗케 하신다는 주님, 말씀으로 나를 정결케 하옵소서. 말씀으로 나를 성결케 하옵소서. 비록 내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입술로, 내 행위로 내 손으로 죄를 범할지라도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다시는 죄를 범치 않도록 주여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내가 주의 보혈을 의지하면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