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은혜(보혈) 레17:10-11 주님은 우리를 영원한 은혜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사함 받고, 새로운 소망 속에서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시고, 성찬식에 참여하는 여러분에게 놀라운 보혈의 은혜, 영원한 주의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축복된 성물이 있었습니다. 십계명 두 돌판, 만나, 아론의 싹난 지팡이 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물과 관련해 잘못된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십계명 두 돌 판을 가져올 때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만나를 먹고 처음에는 감사했으나 나중에는 박한 식물이라고 불평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대항한 죄악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된 세 가지 성물은 백성들의 죄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죄악들을 덮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궤의 뚜껑입니다. 이 뚜껑이 덮여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약궤의 뚜껑을 속죄소, 시은소 혹은 은혜의 보좌라고 합니다. 그 뚜껑 위에 대제사장이 번제단에서 잡은 제물의 피를 뿌리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죄악 된 기억들은 그 피에 가려지게 됩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출12:13) 만약 속죄소 뚜껑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면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키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건이 실제로 벧세메스에서 일어났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의 뚜껑을 열어 보다가(오만) 70명이 몰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에 가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약궤의 뚜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은혜스러운 은혜의 자리입니다. 더럽고 추한 죄를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을 시은좌 곧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좌소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의 보좌에서 피가 뿌려집니다. 이 피가 죄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피를 제거해 버리면 은혜의 자리는 심판의 자리가 되어버립니다. 피가 뿌려진 속죄소 뚜껑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약궤의 뚜껑에 뿌려진 그 피처럼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주었고, 깨끗하게 씻어주었습니다. 놀라운 능력이요, 영원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당하게 하나님 전에 나와 기도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피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존전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늘 이 은혜를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 기쁨과 자유가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구속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영원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보혈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유익을 주는데, 오늘 그것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1.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10번째 재앙이 내려지던 밤 애굽의 전역에는 통곡과 비탄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집, 저집에 죽음의 진노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초태생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죽음의 진노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쪽 문설주와 인방에 뿌린 피 때문입니다. 약속대로 그 피를 보고 재앙이 넘어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죽음과 영원한 심판의 진노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피의 방패!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엄청난 진노가 닥쳐도 예수의 피의 방패 아래에 있는 나의 영혼은 안전할 것입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에게 새생명,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영혼을 보호해 줍니다. 이 피는 우리에게 영원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완악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돌같이 단단한 마음도 녹여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더럽고 추한 죄악은 그 어떤 것으로도 씻을 수 없습니다. 다시말하면 해결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보혈은 우리에게 영원한 은혜가 됩니다. 율법의 두려움이 작용하면 우리의 마음은 굳어집니다. 그러나 보혈의 은총은 완악한 마음을 녹여주고, 새로운 변화를 줍니다. 죄인의 삶이 아니라 의인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보혈은 영원한 은혜입니다. 3. 그리스도의 피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죄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특히 율법은 우리에게 작은 위로도 주지 못합니다. 율법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합니다. 한 번 그렇게 해 보십시오. 얼마 가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여전히 짐은 무거울 뿐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때에 주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대신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하면 그 피를 인하여 우리가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왜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합니까? 우리 대신 제물이 되어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의지하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한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의 피가 없었다면 우리는 스스로 피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피 보는 인생, 피 볼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습니다.(히9:22)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살리는 새 생명입니다. 레17: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약장수가 웅담 즉 곰의 쓸개를 조금씩 잘라서 접시에 놓고 먹을 갈아다가 먹물에 넣어 돌립니다. 그러면 먹물이 흡수되어 말갛게 됩니다. 사람들은 신기한 듯 모여 구경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 인간의 죄를 깨끗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의 피가 우리 인간의 주홍같이 붉은 죄도 눈같이 희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맥베드가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됩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손을 씻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씻고 증거를 인멸해도 마음 속의 살인죄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사는 짐작을 하고 ”이 병은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스스로 마음에서 고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맥베드는 ”오! 아라비아 향수를 다 가지고도 이 손 하나 말끔히 할 수 없는가? 이것을 파내 버릴 망각제는 세상에 없는 것일까?” 하고 탄식을 합니다. 세익스퍼어는 맥베드의 입을 통해서 ’죄를 씻을 것은 지구상에 없다. 자기 마음으로도 안 되고 무엇으로도 안 된다.’고 표현합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죄를 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물음에 분명히 대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악을 씻을 때 양심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도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체험을 했습니다. 한때 악마가 루터에게 나타나서 그동안 지은 죄악을 생각나게 하더니 죄목을 하나 하나 썼습니다. 두루 마리에 죄목을 써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정말 불안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피 묻은 손이 나타나서 그 죄목을 지운 것입니다.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이때 루터는 잉크병을 던지면서 ’예수의 피, 예수의 피’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화를 줍니다. 보혈의 피는 영원한 은혜입니다. 요일1:7절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를 살리셨고, 죄에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임한 영원한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놀라운 은혜 앞에서 감사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거룩한 주의 은총을 바라보며 성찬예식을 거행합니다. 주님의 임하심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시은소에서, 우리의 죄악을 덮어주고 씻어주시는 영원한 보혈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