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보혈


십자가의 보혈
히9:11-15





기독교는 피의 역사입니다. 곧 생명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죄 씻음 받는 표적으로 소나 양의 피를 사용하였습니다. 죄 씻김 받기 위하여
번제를 드리게 되었고 속제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면서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으신 것은 인간의 죄를 다 씻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 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돌아가셨는지 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불행과 저주는 하나님의 아들이 왜 죽으셔야 했는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데도 죄인인 것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1:3에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의 구유를 알지만 내 백성 이스라엘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죄에 매여 죄의 종노릇하고 죄로 인해 죽은 것이 인간입니다. 시편 51:5에 보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고 그가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보혈의 피, 이것이 보배요 능력이요 은혜입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불행과 저주와 어려운 환난은 모두 영적인 문제에서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냐? 그르냐?에 따라 인생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사59:2”오직 너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 인생의 불행은 죄로 인하여 오는 것이고 사탄의 조종으로 인하여 오고, 하나님을 떠난 데서 옵니다. 이러한 구제 불능한 인생들을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마귀에서, 사망에서, 하나님을 떠난 데서, 우리가 구원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을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주님게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을 생각하면서 헌혈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은혜를 다 생각 할 수도 없고 갑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시간에는 십자가 보혈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선물을 몇가지 생각하면서 은혜나누고져 합니다.

I.보혈피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 시키셨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왜 생겼습니까? 어디서 이 고통이 시작되었습니까? 창세기로 가보겠습니다. 뱀이라 이름하는 사탄이 하와를 유혹합니다. 에덴동산 가운데 있는 열매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걸 먹으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뱀이 대답합니다. 절대 죽지 않습니다. 따서 드십시오.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고통과 죽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다가 고통과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되려다가 실패한 역사 자체가 인간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인간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처럼 살려고, 눈도 밝아지려고, 선악도 구분하며 살려고 하다가 에덴에서 쫓겨난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역사는 실낙원의 역사입니다.
이제 실낙원의 역사가 시작되자 발가벗은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을 갈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은 꿈이 되어버렸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뭐냐하면,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질서를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최근의 예를 든다면 광우병 파동을 들 수 있겠습니다. 광우병으로 온 세계가 난리가 났습니다. 왜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식을 하게 하여 창조질서를 뒤흔드는 것입니까?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지 창조 질서를 바꾸라고 하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질서를 위반하면 결과는 죽음입니다. 요즈음 새만금 문제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새만금 문제와 광우병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광우병 문제는 창조질서를 바꾸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새만금 문제는 땅을 기경하고 정복하는 문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산을 개간하여 논, 밭을 만드는것이나 고독도로를 만드는 것처럼 바다를 막아 농토로 만드는 차원인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을 마치 유전인자를 조작하여 생명에 도전하여 하나님 되려고 한다든지 초식동물에게 육식을 먹여 큰 돈을 벌려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망가트려 광우병을 만드는 차원에서 보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진리는 단순하지만 심각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타락입니다. 그래서 유전자를 바꾸는 문제라든지, 복재인간이라든지, 광우병 문제와 같이 창조 질서를 바꾸는 문제는 심각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될려고 하는 그 후에는 좌절과 고난의 역사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탄의 일입니다. 사탄을 무슨 귀신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탄이란 하나님과 인간의 대결 구도를 만들고,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님 대신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에 세우려는 인간의 악한 욕망을 고조시키는 세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이 등지게 하는 악한 세력입니다. 하나님과 등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이러한 죄를 사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피 뿐이 없는 것입니다.

II. 보혈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모든 축복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로 이루어진 줄 믿습니다.
죄가 뭐냐! 죄란 하나님한테서 등을 돌리는 것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이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과 적대관계가 되는 것이 죄입니다. 거꾸로 구원이란 등을 돌렸던 하나님께로 향하여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져서 하나로 화합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마5: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보혈 피를 흘리신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보게 되면 주님의 보혈 피로 인하여 첫 언약때 어긴 죄 즉 아담이 범한죄를 사하시려고 죽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약속 하셨다는 것입니다. 롬8:16-17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III. 그리스도의 보혈은 생명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음으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리스도의 보혈피를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사는 것입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피로 인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샘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다 천성을 향하여 가는 성도들입니다. 천성을 향하여 가는 노정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웠든지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언은 표현하기를 너무기뻐서 세 번 껑충 뛴 그리스챤은 노래부르며 길을 걸었다.
’지금가지 나는 죄의 짐을 지고 다녔다네.
여기까지 오도록 내 고통을 가볍게 하지 못하였거늘,
이곳은 과연 얼마나 좋은곳이냐!
내 행복이 시작되는곳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이곳에 와서야 내 등의 짐이 덜어져 가다니!
이곳에 와서야 내 몸을 묶었던 사슬이 끊어지다니?
복된 십자가! 복된 무덤! 날 위해 욕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복을 돌리지 않을소냐!
보혈피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육신의 죽음까지도 끝이아니라 삶의 한 과정으로 보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살아가시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 큰 고통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순전히 나를 위하여서입니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는 이사야의 고백처럼 나를 위하여 고통 당하시고 피 흘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며 천성을 향하여 전진 전진하시는 성도님 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