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보혈의 능력


십자가 보혈의 능력
고전1:18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며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고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요 성경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을 하면서 나는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을 하였다고 하면서 십자가만을 평생 자랑하였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진리는 성경에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만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하여 175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나, 그의 가르치심이나, 그의 삶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 자체가 우리의 죄를 사하거나,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용서받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복음은 하나의 지식일 뿐, 결코 복음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6:14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예수님 자신에게 어떤 허물이나 죄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요일3:5을보면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벧전2:22을 보면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다고 하였고 고후5:21을보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4:15에도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죄라고는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사55: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고, 따라서 이땅위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롬3:10, 23)

어느 누가 나는 죄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앞에 모두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이다.

마태 20:28을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판사가 벌금 천만원을 내라고 판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벌금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다른 사람이 그를 대신하여 천만원을 대신 내 주었다면 그는 용서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루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이요 대신 값을 치룬 속죄입니다.

원래 사람을 죽이는 십자가는 가장 끔찍한 사형도구였습니다. 로마가 온 세계를 지배할 때에 로마에 반역하는 이들을 잔인하게 죽이려고 고안하여 낸 사형틀 가운데 가장 잔인한 사형틀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 사형틀을 오늘날 교회들은 종탑높이 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장식품으로 만들어 목이나 귀에 달고 다닙니다. 만일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고 형벌하는 전기고문대를 달고 다닌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흉직하게 생각 할까요? 사람을 죽인 칼을 목에 걸고 다니면 얼마나 소름이 끼칠까요? 그런데 이런 흉칙한 사형틀이 예수님이 지신이후 자랑스러운 것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십자가 처형은 가장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나 AD315년 이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로마인들이 만든 사형 방법이였지만 자기들이 만들고도 너무 잔인해서 자기들이 포기하였습니다.

자기들이 보아도 사람을 죽이기에는 너무나 잔인하다고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게 사람들은 이땅에 휼륭한 4대성인을 예수, 석가모니,공자, 쏘크라데스라고 말을 합니다. 이들은 삶이 고귀하고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삶이 훌륭하여 메시야가 된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이 위대하여 메시야가 되셨습니다. 순교자나 소크라테스나 전쟁에서 용감하게 죽은 전사자의 죽음도 위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있는 십자가는 다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고전1;18) 하였습니다.

이세상에는 원리와 도가 있습니다. 옷을 입을 때에도 옷을 입는 예절이 있습니다. 식사를 할때에도 식도가있고 차를 마실 때는 차도(茶道)가 있습니다. 바둑을 둘 때에는 기도(旗道)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구원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십자가는 어떤 능력이 있는가요?




1.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깨닫게하고 자신의 죄를 알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암이면서도 암인 줄 알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암을 발견하는 것도 능력입니다. 죄인인데 죄인인줄 아는 것은 대단한 발견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알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고기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맛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그날따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비극적이 밤이었습니다. 세상사람 같으면 더럽게 재수가 없는 밤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새벽이 되었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지치고 허기지고 쓸쓸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다가 오셨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앞에 엎드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죄를 볼수 있는 눈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나 죄를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화인맞은 양심은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제일 잘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사울이라고 붙였습니다. 가장 큰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자들을 잡아 죽이러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온 현상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나는 죄인중에 괴수입니다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사람입니다 죄를 볼줄아는 것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2. 죄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알게 할 뿐 아니라 죄를 사하여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운데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이것은 죄사함을 받고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은혜란 죄로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는 능력은 십자가를 통하여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중국에서 나병 환자촌에서 선교하고 있는 김 요석 목사님의 간증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북에서 생긴 일입니다. 어느 마을에 몰래 예수를 믿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어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아들은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공산사상에 깊게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어머니를 예수를 믿는다고 당에 고발하였습니다. 온 동네에서 아들이 친 아버지를 고발한 사건은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공산당은 온 마을 주민에게 교육을 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여기고 공개재판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형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벙거지를 씌우고 손을 뒤로 하여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게 하였습니다. 그 앞에서 아들이 고발장을 큰 소리를 읽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이들은 공산당을 배반하고 아침마다 미신같은 신에게 기도한 배반자입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끌려 나와 공개재판을 구경하면서 숙연하여졌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여 죽이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심정이 얼굴에 역역히 나타났습니다.

공산당들은 이 아이를 영웅으로 치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상을 주고 대단히 환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았습니다. 그리고 어디론가 끌려 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한편 이 아이는 영웅이 되었지만 고아가 되었습니다. 공산당은 이 아이가 공산사상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공부를 시키고 대학까지 졸업하였습니다.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이 국민학교를 들어 갔습니다. 어느날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싱긋이 웃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사형당하신 아버지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서 자기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큰죄를 지은 것인지를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자기가 아버지 고발할때 나이가 들어서야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번민속에 김 요석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은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날 펑펑 울면서 김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 할 죄도 용서하시나요? 김 목사님은 무슨 의미인지 알 지 못했지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한 죄도 모두용서하십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위의 사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자기도 아침마다 기도하고 있고 아들이 자기를 고발할가봐 조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불교에는 죄사함 교리가 없습니다. 피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시면서 죄를 씻어 주셨기에 죄사함의 교리는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불교에는 피가 없습니다. 불교는 스스로 도를 닥는 수양에 종교이기에 대속의 은혜가 없습니다.

불교의 교리는 인과응보의 교리입니다. 물론 불교에서도 죄를 날카롭게 지적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죄사함을 받을길이 없습니다. 자신이 도를 닦고 고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과응보입니다.

어느 불교 교실에서 학생이 공부하다가 선생님에게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선생님! 개를 죽이면 개로 태어나고, 토끼를 죽이면 토끼로 태어나는 것이 인과응보인가요?

선생님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지. 학생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면 사람으로 태어나나요? 선생님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불교는 정확하게 인과응보입니다. 죄문제를 해결할 피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사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의 피로 인하여 죄사함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사함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비누와 하이타이로 죄는 닦아내도 검은 죄를 하얗게 할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페인트 칠을 희게 잘 하여도 죄를 가릴수는 없습니다. 죄사함을 얻는 것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십자가만이 죄사함을 줄 수 있습니다.




3. 병고침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병고침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만 짊어지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병까지 짊어지셨다고 마태복음 8장 17절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병고침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채찍에 맞고 피를 흘려주신 보혈의 능력은 병을 고쳐주고 치료하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에는 배낭에 책 두권은 꼭 넣고 나간다고 합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다른 하나는 파스칼의 팡세입니다. 파스칼이 팡세를 쓰게된 동기가 있습니다. 여동생이 불치병 안질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스칼은 처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타나더니 빛이 동생 눈에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파스칼은 기도를 마치고 동생을 찾아가서 눈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오빠!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눈이 방금 나았어요 이 때 파스칼은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철학자의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노라 파스칼이 죽은 후에 옷에서 이상한 가죽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옷깃마다 가죽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노라고 쓴것을 넣고 다녔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병을 고치는 신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오래고생을 하여, 있던재산을 다 허비하고, 의사들을 만나 보았어도 병이 더 심해만 가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뒤에서 잡았을 때 능력이 나아가며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도는 신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4.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3일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능력 가운데 가장 큰 능력은 역시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능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처럼 십자가는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구원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원자핵의 능력은 원자라는 분자안에 중성자가 들어갈 때 놀라운 폭팔적인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도 죽음속에 생명을 살리는 무한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십자가와 피를 가장 싫어합니다. 드라큐라라는 귀신 영화를 보아도 드라큐라는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앞에 십자가만 대면 무서워 벌벌 떨며 도망을 칩니다. 십자가만 보면 갑자기 파김치가 됩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대를 세우신 김활란 박사님은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입성하는 것이다.

그러니 장례식이라고 말하지 말고 환송식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에는 장례예배를 치루지 않고 환송식예배로 드렸습니다. 부활은 장례식을 환송식으로 바꾼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1. 죄를 깨닫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2. 죄사함의 능력이 있습니다.

3. 병고침의 능력이 있습니다.

4.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