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피/벧전1:19 2008-12-09 20:57:13 read : 49
대지진의 참사를 겪는 소련의 아르메니아에서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무너진 콘크리트 건물 속에 스잔나 페트로시안이 갇혀있었습니다. 몹시 추웠고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4살 난 딸 가야니가 누워있었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는 계속 울어댔습니다. 스잔나는 자기 손가락을 깨진 유리 조각으로 찔러 아이의 입에 물려주었습니다. 여러 손가락을 그렇게 했습니다. 결국 아이는 14일 동안 엄마의 피를 먹고살다가 구조를 받았습니다. 사랑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기사의 내용보다 더 감동적인 사건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해 대신 피를 흘리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사건입니다.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희생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는 무감각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직도 믿음의 기도를 기다리며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죄인을 위한 끝없는 사랑,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능력이 됩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죄를 범하였을 때에 소를 잡고 양을 잡고 비둘기를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면서 속죄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피로서는 완전히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인생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고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사함을 받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죄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으시고 그 분께 나와 죄사함의 은총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7-28)
모래더미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거나 바위를 찾기 위해 그의 전 재산을 바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금을 찾기 위해 생명을 바치거나 전 재산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금속은 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금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금은 희귀하고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금은 참 아름답습니다. 금으로 목걸이, 반지, 팔지, 그리고 아주 예쁜 장식품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금은 변하지도 않으며 그 아름다움을 오래 간직하고 있습니다. 1848년 금이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되자 사람들은 서부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1년에 25,000명이 증가했습니다.
10년 후에 같은 이유로 콜로라도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1897년 알카스카의 스카그웨이에는 3주 동안에 4,000명이 증가했습니다. 그 해에 알라스카에는 단지 \"금\" 이라는 말 때문에 10,000명이 몰려들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소련은 제2위의 금 생산국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을 발견하기 위해 그의 전 생애를 바쳐왔지만 겨우 몇 사람만이 우연히 부자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마차를 타고 여행하는데 바퀴에 무엇인가 걸렸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조사해 보니까 금덩어리였습니다. 사람들이 왜 금을 얻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용감히 뛰어드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폭풍우 속에서 생명을 잃거나, 굶어 죽었으며, 서로 살인까지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금이 그렇게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에서 금보다 더 귀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읽습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도움을 얻고 갈 길을 찾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안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읽고 지키면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 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미국의 어느 마을에 철도를 건너 통학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철도를 건널 때면 어김없이 기차가 지나갔습니다. 소년은 그때마다 승객들에게 손을 흔들어 밝은 미소를 보냈습니다. 하루는 폭우가 내려 철로가 끊겨 있었습니다. 만약 기차가 그대로 지나가면 수천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상황이었습니다
. 소년은 가방에서 연필 깎는 칼을 꺼내 허벅지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흰 셔츠에 빨간 피로 ‘스톱’이라는 글씨를 써 기차를 향해 흔들었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의 셔츠에 적힌 붉은 글씨를 보고 급히 기차를 세웠습니다. 기관사는 그제서야 철로가 끊긴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선혈이 낭자한 소년을 끌어안으며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너의 피값으로 우리가 살았다”
그 소년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기차의 승객. 크리스마스에 오실 예수의 피 값으로 전 인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소중한 것들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 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미국의 어떤 판사의 아들이 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신나게 달리다가 그만 다른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교통 순경에게 이끌려 재판을 받으러 갔습니다. 법정에 들어와 보니까 담당 판사가 바로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흠, 우리 아버지야 나를 용서해 주겠지\"하고 자기 아버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본체도 않고 엄숙한 얼굴로 아들의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의 이름을 대시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 \"아버지! 나야요 나!\"하고 말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하고 \"여기는 법정입니다! 사사로운 말은 하지 못합니다. 어서 이름을 대시요\"하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예.\" 죤 입니다.\"하고 말했습니다.
\"피고의 주소는?\" \"아니 아버지 주소하고 똑같지 않아요\" 그랬더니 그 아버지는 다시 호통을 치면서 \"어서 주소를 대시요!\" 말했습니다. 할 수 없이 주소를 다 댔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꾸며서 낭독한 후에 판결을 내렸습니다.
\"벌금 100만원\" 그 때 그 아들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아버지의 불공평(?)한 처사에 통곡했습니다. 그 때 어느새 아버지가 법복을 다 벗어버리고 신사복을 갈아입으시고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얘야! 너 얼마나 놀랬니\" \"나는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지켜야 될 법관인데 내 아들이라고 사사로운 인정에 끌리어서 법을 어길 수가 있느냐?\" 하면서 벌금을 물 수 있도록 l00만원을 마련하여 주었습니다.
\"자, 이것을 가지고 저기에 가서 싸인을 받으면 너는 나갈 수 있다\" 그제서야 이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았습니다. 법을 살리기 위해서 재판도 아버지가 하고 형벌도 아버지가 내렸습니다. 벌 값을 아들이 낼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돈을 털어서 벌 값을 치러 주시고 아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죄 값으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었는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공의도 살리시고 사랑도 살리기 위하여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여러분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려 뜨거운 피를 다 쏟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 3:16).
피는 바로 능력을 말합니다. 힘을 말합니다. 피는 승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콘스탄틴이란 분이 있습니다. 콘스탄틴은 디오크레티안이라고 하는 황제가 죽고 로마가 혼란에 빠졌을 때 황제의 뒤를 잇기 위해서 콘스탄틴과 막센티우스 두 사람이 치열한 전쟁을 치룹니다. 내일이면 대판 전쟁이 일어나는데 싸움하기 전날 콘스탄틴에게 하늘에 십자가가 나타나면서 라틴어로 “너는 이 십자가의 피로 이겨라”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이 십자가를 전 군인의 군기와 깃발에 십자가를 새깁니다. 막센티우스와 싸워서 313년에 대 로마를 세우고 기독교를 콘스탄틴이 공인을 하면서 유럽 천지가 십자가의 국가가 된 것입니다. 이 콘스탄틴 때문에 이루어지고 지금도 유럽 가면 십자가로 국기를 만든 나라가 수십 개 국가인 것을 알 수 있습니. 십자가가 그 나라를 다 복되게 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의 은혜가 그 나라를 승리하게 하고 그 경제를, 그 정치를, 그 민족을 오늘 세계적으로 만든 것은 십자가 피의 능력이지 그 민족이 동양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4대 문명 발상지하고도 유럽은 거리가 멉니다.
그런데도 최고의 문명국가가 된 것은 십자가의 문명, 십자가의 지식, 십자가의 능력 때문인 것입니다. 솔제니친도 십자가로 인하여서 고침을 받지 않았습니까? 완전히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솔제니친도 암이 걸려 죽음직전에 어떤 여자가 와서 앞에 십자가를 잡고 서있는데 주님을 본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능력이 됩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죄를 범하였을 때에 소를 잡고 양을 잡고 비둘기를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면서 속죄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피로서는 완전히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인생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고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사함을 받는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죄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으시고 그 분께 나와 죄사함의 은총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종교 개혁을 단행한 신앙의 영웅 마틴 루터가 몹시 아파서 병상에 누워 있는데 어느 날 마귀가 들어와서 루터를 비웃듯이 응시하더니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안고 온 큰 두루마리 책을 마루에다 두르르 펴놓는데 보니까 마틴 루터가 평생 지은 죄를 다 기록해 놓았더랍니다. 루터는 주눅이 들고 낙심이 돼서 침묵하고 있다가 갑자기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큰소리로 “너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구나. 이것은 다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 모든 죄를 다 씻었다”라고 외치자 참소하는 마귀와 두루마리가 사라져 버리고 말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심을 확실히 믿으시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이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주홍 같은 죄라도 흰 눈 같이 양털 같이 희고 정결하게 씻음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씻지 못할 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예수만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과 나란히 십자가에 달렸던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죽어가는 그 순간에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즉시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죄인이 구원을 받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무슨 고행을 하거나, 착한 일을 하거나, 돈을 바쳐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간단하고 쉬어서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고귀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구원은 너무나 값비싼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 거저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고 쉽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받은 구원은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벧전 1:2) 우리가 받은바 구원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혹 보면, 기독교의 진리를 오해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내 하고픈 대로 욕심대로 살자.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지옥 갈 염려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는 무슨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 사기를 치고, 방탕하게 살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라는 이단이 그들입니다. 그것은 구원의 진리를 오해한 데서 생겨난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의하고, 더럽고, 사악하고, 경박한 행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이 곧 망령된 행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이 같은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받은 사람이므로 더 이상 그 같은 행실을 좋아할 리가 만무합니다. 남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사람은 더 이상 종처럼 살지 말고 자유하는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2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모독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이같이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실을 아는 성도는 지난날의 망령된 행실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려고 힘씁니다. 지난날 주님을 알지 못했던 때에는 정욕을 따라서 살았으나 이제는 세속적인 생활을 하면 신앙양심에 가책이 되고 편치 못합니다. 과거에는 방탕한 생활이 즐거웠는데 이제는 실수로라도 그런 생활을 하면 괴롭습니다.
또 세상일에 분주하게 지내느라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는 우리 속에 임재 해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양심이 시키는 대로,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경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라고 하신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인즉 그들은 성경에 계시하신 하나님께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여러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음을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이제 여러분은 조상으로부터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받은 사람으로서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심으로 주님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죄와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죄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오늘 나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게 있는 고통도 주님이 함께하시니 겸손히 인내하며 주님께 나아가 그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지고 따르게 하소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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