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 생수

피, 땀, 눈물, 생수
요일5:5-8





중국의 노자는 \'상선약수\'를 주장했습니다. 물은 생명을 살리고, 더러운 것을 깨끗이 하고, 아래로 흐르는 겸손함이 있으므로 물을 본받는 것이 으뜸되는 선이라는 뜻입니다. 수십 년 전 미국에 큰 가뭄이 들어서 많은 동식물들이 말라죽는데 참으로 볼 수가 없더랍니다.

새들은 목이 말라 울지도 못하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죽고 소를 비롯한 짐승들이 여기저기 처참하게 목이 말라죽더랍니다.

참으로 수분이 없으면 동물도, 식물도, 사람도 살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교회와 성도도 수분이 있어야 생명이 살고 교회가 부흥되고 우리도 성장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성도의 영혼이 사는데 한 가지라도 없어서는 안 될 수분 혹은 액체가 무엇입니까?

1. 보배로운 피(보혈)입니다.
어떤 분이 꿈속에서 예수님이 기둥에 묶여서 참혹하게 채찍에 맞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채찍은 두꺼운 가죽으로 되어 있고 그 가죽 끝에는 납덩어리가 달려서 내리칠 때마다 살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면서 예수님의 몸이 파이며 피가 뚝뚝 터져 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꿈속에서도 보다 못해 달려가 잔인한 로마군인의 팔을 붙잡고 그 얼굴을 보니까 바로 자기 얼굴이더랍니다.

예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에 당하신 고난이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피 흘림이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 하시려고 피 흘리셨다는 말씀이 약 300회 나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십자가의 보혈이 강단에서 흘러 넘쳐야 죽었던 영혼들이 소생하고 살아납니다. 제가 거듭나고 복음을 깨닫게 된 것이 이 피의 의미를 깨닫고 난 다음부터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다”는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때에 제게 구원의 확신을 준 말씀은 레위기 17장11절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면 피는 곧 생명이기 때문에 피를 뿌려야 속함을 얻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인데 죄 없는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죄를 씻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도덕이나 선행도 아니고 금은보화도 아닙니다. 오직 피밖에 없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피”라는 단어가 700 번 이상 나옵니다. 성경에 피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본문 6절에도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예수님은 물과 피로 임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피는 죄의 형벌을 제하고 물은 죄의 더러움을 제한다”고 했습니다. 8절에도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죄를 구속하는 피입니다 구속이란 말은 “값을 지불하고 다시 사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는데 이 “테 텔레스타이”(Te Telestai)는 “값을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어떤 부자가, 한 흑인이 노예로 팔려가며 슬퍼하는 것을 보고 돈을 후히 주고 사서 자유케 해 주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공로로만 구원받는 것이지 다른 길은 없습니다.

둘째, 우리 죄를 대신하여 흘린 피입니다 우리가 심판 받고 우리가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고난 당하시고, 우리 대신 죄의 값을 치루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고 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피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그 어떠한 선행도 도덕으로도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9)
셋째, 우리 죄를 용서하는 피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14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로…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밖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방법이 없습니다.

넷째, 의롭다함을 얻게 하는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피가 없는 교회는 영혼을 살릴 수가 없고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죽었던 심령을 살아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데 이 피의 복음은 전하지 않고 도덕적인 행위만 강조하고 나눔과 섬김만 강조하면서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인양 설교하면 교회는 생명이 없고, 생명이 없으니까 절대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습기가 없는 곳에 생명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에게 제일 첫째로 필요한 수분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 순교자의 피를 결코 잊지 맙시다.

2. 고귀한 눈물을 흘리자
성 프랜시스가 울며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제자가 왜 우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며 울고 있노라. 예수님을 위하여서는 십자가를 등에 지고 땅 끝까지 헤매어도 부끄럽지 않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 예수여, 내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1) 내 영혼과 육체가 괴로움을 겪어서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을 맛보게 하옵소서. (2) 당신이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그처럼 참으실 수 있었던 그 타는 듯한 사랑을 가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가 반드시 흘려야 눈물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 회개의 눈물입니다 죄의 흑암 속에 살던 사람이 빛이 되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쿡쿡 찔리면서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교회가 죄를 회개하고 변화되는 역사가 없다면 생명이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없고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회개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눈물의 가치는 누구를 위해 울며, 무엇을 위해 울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영성 생활의 출발은 회개의 눈물과 함께 시작됩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한 사람의 영혼의 창은 새롭게 열립니다. 눈물은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정결케 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애통한 후에 열린 눈으로 그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마른눈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눈물은 하늘의 다이아몬드입니다. 비누는 몸을 닦는데 필요하고 눈물은 마음을 닦는데 필요합니다.

시편 6편 6절에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통회한 나머지 눈물로 침상을 띄우고 눈물로 요를 적셨습니다.

교회라는 데가 죄인들이 회개하고 변화되는 역사가 없으면 생명 있는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눈물 한 방울 못 흘려보고 몇 년 다녀도 전혀 변화된 모습이 안 보인다면 과연 거듭났을까 의심해 볼 수도 있습니다. 눈물은 교회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수분입니다.

둘째, 사랑의 눈물입니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
안질로 고생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눈이 찌르고 아팠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 왕의 눈병을 고치겠노라 나섰습니다. 왕은 그를 따라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왕이 생각했던 것보다 백성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때 슬픈 통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단칸방에 누더기를 걸친 시체 옆에 어린 자식 셋이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참한 정경에 왕도 눈물이 터져 통곡을 했습니다. 얼마 후 자신을 진정하고 난 왕은 깜짝 놀랐습니다. 눈의 통증이 없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눈물은 고귀합니다. 눈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진합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눈물은 신성합니다. 하나님이 눈물을 만드신 것을 보면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심에 틀림없습니다. 가끔 애처롭게 비가 내릴 때면 \'하나님도 외로워 우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나사로의 죽음 앞에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값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건강한 영혼만이 눈물을 흘립니다. 가장 건강한 사람은 희로애락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창세기42:24) 사도 바울도 눈물로 성도들을 섬겼습니다.(사도행전20:19) 우리 시대는 눈물이 메말랐습니다. 정치도, 사회도, 교육도, 교회도 눈물 메마른 안질에 걸려 있습니다. 사랑으로 ‘너’를 보듬는 정이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고통받는 향제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며 울어주는 정치와 교회가 필요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같으니이다.\"(시39:12)

셋째, 십자가 고난의 눈물입니다. 의의 길, 좁은 길로 가다보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핍박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흘리는 눈물입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7:17)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56:8)

3. 기도와 봉사의 땀입니다
땀은 생명이 있는 한 인간이 흘려야 할 가장 고귀한 체액입니다. 인생에 있어 고귀하고 값진 액체가 세 가지 있으니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모든 인류역사의 대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만고 불변의 물들입니다. 그 중에서 땀은 노력의 상징이며 성공의 반석이며 생산의 동력입니다. 땀은 번영의 자양분이요 찬란한 역사를 분만하는 어머니입니다. 성도가 꼭 흘려할 땀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도의 땀입니다. 교회와 가 부흥하고 우리가 성장하는데 꼭 있어야 할 수분은 기도의 땀입니다. 조용히 묵상 기도만 몇 분씩 하는 교회와 성도는 결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땀 흘리는 간절한 기도, 목이 쉬도록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통곡하며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역시 땀과 눈물이 섞인 기도입니다. 한나도 아들을 달라고 기도할 때에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1:10) 했다고 했습니다.

통곡하는 사람이 땀을 안 흘렸겠습니까?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은 땀방울과 콧물이 범벅이 되는 법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쓰며 기도했던지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떨어졌습니다

. 아마도 모세혈관이 터져서 피가 섞였을지 모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나면 예배당 유리창에 땀방울같이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는 생명이 살고 부흥됩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왕은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니 집이나 정리하라”고 했을 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단념하지 않고 울며 통곡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기도가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병을 고쳐주고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20장 5~6절에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땀과 눈물의 기도가 이렇게 위력이 있습니다. 기도의 습기와 기도의 수분이 가득한 교회와 성도는 성장합니다.

둘째, 봉사의 땀입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학교측에서 운동장에 깔기 위해 모래를 트럭으로 실어와서 운동장 여기저기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학생들을 시켜 그 모래를 골고루 펴기 위해 그릇 하나씩을 가져오라고 일렀습니다. 다음날 모두 그릇을 가지고 왔는데 그 중에 한 학생만은 라면 봉지를 가져왔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의아해서 \"넌, 왜 라면봉지를 가지고 왔니?\"하고 물었더니 그 학생이 답하기를 \"엄마가 그릇이 크면 일하기가 힘들다고 라면봉지로 주셨어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땀흘려 일하기를 싫어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불한당(不汗黨) 이라는 한자가 있습니다. 이것을 풀어보면 아니 불자에 땀흘릴 한자에 무리 당 자로, 땀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무리란 뜻입니다. 주님 말씀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 했습니다. 즉 땀흘리기를 싫어하는 자는 밥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유를 배달시켜 먹는 사람보다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에 한번 땀을 흘리면 몸 속에 제독(除毒)작용을 하여 살과 피가 맑아지고 피를 원활하게 돌게 하며 새 세포 형성에 도움을 주어 치병 운동으로 육체를 활성화시킵니다. 건강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땀을 흘려야 가능합니다. 땀은 노력입니다. 체력입니다. 인내이며, 의지력이며, 성공과 행복의 원천입니다. 땀은, 흘릴 때는 힘들고 괴롭지만 흘리고 나면 사람을 살리는 묘약이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4. 성령의 생수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성령의 생수가 흘러 넘쳐야 죽은 영혼들이 살아나고 따라서 부흥 성장합니다. 본문 요한일서 5장 7~8절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참으로 증거하는 이는 목사가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증거할 때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구원을 받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사모하지도 않고, 성령을 의지하지도 않고 인간의 지식이나 혼의 생각으로만 설교하니까 교인들이 은혜를 못 받고, 따라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화 감동이 아니고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신학박사가 되도 참으로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다니다가 멸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47장에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성령의 생수가 흘러내리는데 처음에는 발목에 흐르더니 일천 척을 척량하고 더 들어가니까 무릎에 흐르고 또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니까 물이 헤엄칠 정도가 되더라고 했습니다.

그 강물 좌우에 나무가 자라고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이 살고 모든 생물이 번성하더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흘러 넘치는 제단에 생명이 살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생수가 흐르지 않는 곳에는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고 부흥할 수가 없습니다.

5. 발을 씻는 겸손의 물
교회가 번성하고 부흥하고 성도가 영적으로 바로 서는데 꼭 필요한 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은 물입니다. 이것은 곧 겸손의 물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는 목사님 설교도 은혜롭고 예배당도 잘 지었는데 교인들이 등록했다가는 떨어지고 해서 교회가 5년, 10년 가도 도무지 부흥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장로 두세 분이 텃세를 부리느라고 유력하고 저명한 교인만 들어오면 속된 말로 “왕따”를 시켜서 내보내곤 한답니다. “왕따”가 아니라 “은따”도 있다고 합니다. 은따는 은근히 따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겸손히 섬기는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존경만 받고 세도만 부리려는 사람들만 있으면 그 교회는 결코 부흥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 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다 한사람씩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거룩한 손이 피조물 인간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신 후 옷을 입고 앉아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3장 13~14절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5절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 되시고 선생이 되시지만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것같이 너희들도 높아지려고 하지말고, 세도를 부리려고 하지말고,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라고 손수 모범을 보이며 교훈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겸손의 씻을 물이 없으면 주님과는 거리가 먼 교회가 되고 결코 부흥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복음적인 설교를 하고 극보수적인 설교를 한다고 해도 이 겸손의 대야 물이 없으면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고,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맨날 싸우고 다투는 마귀의 소굴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또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3장 17절에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육 간에 복 받는 비결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래 전에 불란서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유명한 라비스 교수님의 50주년 기념 행사를 가지는데 뒷좌석에 그 나라의 포앙카레 대통령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이를 보고 “이 나라의 대통령께서 저 뒤에 와 계십니다. 어서 이 앞으로 나오십시오” 하자 포앙카레 대통령은 극구 사양하면서 “나는 박사님의 제자로서 축하하러 온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참 훌륭한 인격자입니다. 대통령의 직위보다 그의 인품이 더 높은 분입니다. 높아도 낮은 자같이 자기를 비우고 섬기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귀한 일이요, 복 받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도 사람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합니다. 오늘날 교회들 중에 이런 겸손의 대야 물이 한 방울도 없이 보송보송하게 말라비틀어져서 뼈다귀 부딪치는 소리만 나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깊고 오묘한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건성으로만 읽는 것 같습니다.

이 우주에 예수님보다 높으신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창조주가 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빌2:6~7)라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He made himself nothing”라고 되어 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신을 낮추셨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너희들도 이렇게 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이런 마음과 정신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겸손의 물이 한 방울도 없습니다. 교회에서 무슨 기관의 장이 되거나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을 세상 벼슬하는 것처럼 착각하여 안 되면 삐치고 시험에 들고, 되면 교만해져서 세도를 부리고 우쭐해져서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려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저주받고 지옥 갈 사람들입니다. 천사장 루시퍼가 저주받고 사탄이 된 원인도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는 교만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가장 무서운 마귀가 교만 마귀입니다. 성 어거스틴에게 “기독교의 으뜸 되는 교훈(宗旨)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 누가복음 14장 11절에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 씻은 대야 물이 반드시 있어야 교회가 생명이 넘치고 부흥합니다. 개인도 복을 받습니다. 보혈의 수분, 회개와 사랑의 눈물, 기도와 봉사의 땀, 성령의 생수, 겸손의 대야물이 있어야 합니다.

* 기도: 사랑하는 주님, 교회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생명을 살리는 보혈, 눈물, 땀, 성령의 생수, 겸손의 물임을 배웠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가 성장하기 위해 이러한 수분이 넘치게 하옵소서. 목마름을 고백합니다. 다른 방법만을 찾아 헤맨 것을 용서하십시오. 이제 주님의 공짜 선물인 생수와 영생을 받아드립니다.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내 삶 모두를 주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