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레17:11





세상사람들과 성도들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 일요일을 주일로 지킨다든지 대문에 교회의 교패가 붙어있다든지 교회에 교적부가 정리되어 있다든지 헌금생활을 한다든지 하는것도 차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질문의 의도에 미치지 못하며 여전히 설득력이 없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결정적인 차이와 구별은 무엇입니까 ?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단순한 고백의 분명한 의미는 어디에 있습니까 ?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대신하여 흘리는 보혈을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속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보게되는 것입니다. 피 외에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바르게 읽는다면 맡아지는 냄새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상하고 우아한 인간의 향수냄새가 아니고 가공되거나 포장되지 아니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것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은 천상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 그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며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구별하여 천국백성 삼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가치있는 전부였던 것입니다.

이 보혈은 구원의 교리를 만들기 위하여 적당히 동원된 설명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주의 보혈에는 상상을 초월한 능력과 안전과 풍성함과 치료가 있습니다.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모든 묶인 것을 풀어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피에는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주님의 보혈에는 주님의 생명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이 보혈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또다른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범죄의 연고로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아담은 흙으로 빚어졌을 때에만 해도 그저 하나의 형상에 불과했지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자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우리는 불어넣은 생기는 다름아닌 피가 흘러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범죄로 인하여 생명의 피가 죽음의 피로 타락한 것이요 오염된 것이며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목표는 이땅의 인생들의 이기적이고 육욕적인 에로스사랑이 아니라 어떤 희생을 치루고 대가를 감수하고라도 실낙원의 인생들에게 복락원의 은혜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고 십자가위에서 마지막 남은 피한방울까지 다 흘려 주심도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여 극적인 반전을 도모한 것이 아닙니다. 에덴의 회복이 목표였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회복되기 위하여 타락한 죽음의 피가 구속함 죄사함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생명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이름을 너희에게 준 일이 없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 그 분의 보혈만이 유일한 길이요 해답이며 희망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인생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죽음의 피를 고쳐 보려고 사람이 만든 신를 의지하여 수양을 쌓고 과학의 힘에 매달려보고 철학의 학문적 심오함으로 이겨보려 하기도 하며 또는 절망의 구렁텅이 가운데 빠져 자포자기한 삶을 사는 피곤하고 고단한 면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타락하고 부패한 죽음의 피에서 생명을 얻는 길은 인간의 노력을 통한 의학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혈액투석으로 될일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뿌려지고 흘러가야만 생명의 충만함이 나타날 것입니다. 갈보리 십자가 사건은 우리 스스로 인정하든 부정하든 변경되지 않는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위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흘리신 보혈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보혈의 권세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나에게 뿌려져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보혈의 능력이 개인화되고 자기화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예배속에 세련된 분위기와 이지적인 메시지와 화려한 음색의 찬양과 우아하게 단장한 예배자들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만 세련되지 않고 이지적이거나 화려하거나 우아하지 않더라도 원색적인 주님의 보혈이 뿌려지는 감동과 감격속에 드려지는 생명회복의 예배는 점점 보기 힘들어 집니다.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백성인 것의 결정적인 차이는 기독교문화에 익숙해진 삶의 형식에 있지 않고 오직 우리 주님의 흘려주신 보혈에 담긴 신비와 능력에 있음을 고백하는 믿음없는 시대에 영적 경쟁력을 가진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