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 흘리기까지 참으라 히브리서 12:3~13 지금 프랑스에서는 세계인의 축구제전 월드컵 경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제 8강전까지 치러짐으로 경기는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은 큰 이변없이 이겨야 할 팀들이 이겼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6강전에 들어갔으면 하고 온 국민이 염원했지만 역시 힘이 부족했음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세계축구의 벽이 높음을 실감했습니다. 축구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를 중간 평가하면서 기본기가 충실하고, 전술과 사기가 뛰어난 팀이 대체로 승리를 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힘과 의욕만 가지고는 좋은 성적을 거둘수 없다는 말입니다. 한국축구가 세계적인 축구로 거듭나려면 기초부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번 대회에서 재미있고, 인상적인 점은 경기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승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골이 많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천금같은 골이 희비를 갈랐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지막까지 누가 더 정신적으로 집중력을 가졌는가, 최선을 다했는가에 따라서 승부가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경기를 통한 이러한 생생한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포츠를 사랑하게 되고, 스포츠를 인생에 비유해서 교훈을 얻고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우리의 믿음생활을 운동경기인 경주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분명한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본을 따라서 피흘리기까지 길이 참아야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여기 피곤하여 낙심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운동 경기자의 모습을 나타낸 말입니다. 경기자가 결승지점까지 뛰어간 뒤에 힘이 다 빠져서 운동장에 덜썩 주저 앉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실 운동 선수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비는 결승점을 눈 앞에 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힘은 다 빠졌고, 이기기 위해서는 가장 잘 달려야 하고, 정말 사력을 다해서 뛰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경주자는 달리는 전 구간을 최선을 다해서 잘 뛰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달려야 하는 지점은 결승점을 바로 눈앞에 둔 지점입니다. 지난번 나가노 동계 올림픽때 우리나라 쇼트 트랙 선수들이 마지막 스퍼트를 잘해서 금메달을 땄던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신앙생활은 초신자 때도 잘해야 하지만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열심히 바르게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젊어서도 잘해야 하지만 나이가 들면 더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앞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끝까지 참는 생활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피 흘리기까지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떠 하셨습니까?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자기에게 거역한 사람들을 향해서 한마디 원망도 불평도 없으셨습니다. 조롱하고 모욕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히려 기도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자자의 예언처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신앙훈련이란 쉽게 이야기해서 참는 훈련입니다. 인내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참는가? 어디까지 참는가? 그 참는 정도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야고보 기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어느 정도 참고 있습니까? 어디까지 참고 있습니까? 피흘리까지 참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모순의 십자가, 멸시의 십자가, 고통의 십자가, 절망의 십자가를 참고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의를 이루기 위해서 죽기까지 참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참지 못하고 분쟁하고 싸우고, 신앙의 길에서 떠난다면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무효화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인격을 모욕하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또한 5절 하반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바른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못할 때 징계를 합니다. 자식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매를 때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으로 살 때 하나님의 채찍을 받습니다. 절대로 잘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망합니다. 절대로 형통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자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문제는 징계를 받는 우리들의 자세입니다. 8절말씀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징계는 나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다 받습니다. 더욱이 징계가 없으면 더 큰 문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녀는 징계를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11절 이하의 말씀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고침을 받게 하라.> 징계를 은혜로,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에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것들이 강건하게 회복됩니다. 고침을 받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참 능력과 축복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금년도 절반을 지나는 7월을 맞이 했습니다. 계절적으로 짜증이 많이 나는 여름입니다. 또한 아이엠 에프의 고통이 점점 가중되고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지치고 힘들 때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피흘리기 까지 길이 참으신 우리 주님의 인내를 본받으십시다. 피흘리까지 참으십시다. 그리고 오늘의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어 가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굳게 붙잡으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 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