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보혈

네 가지 보혈
막15:14-20





온 세상에 봄 기운이 완연하고 꽃내음이 향기로운 4월입니다. 우리 교회 친교실 앞의 잔디는 푸른 빛을 뽐내고 있고, 뜰 앞의 연산홍도 빨간 봉우리를 돋우면서 활짝 꽃피우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봄은 생명의 계절입니다만, 우리 신앙인들은 이 한주간을 고난 주간으로 보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부활 이전,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때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 곧 종려주일입니다. 교독문의 내용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학정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야, 세상의 많은 질곡과 속박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메시야로서 예수님을 영접했고, 많은 인파들이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그는 우리가 기대하던 메시야가 아니었다, 우리는 배반당했다 하면서 소리를 치는 무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천년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어떤 분인가, 그 분은 무엇을 했나, 우리는 그 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고, 진정한 우리 인류의 구주로 모실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진정 예수님은 모진 고난을 당하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억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등밀려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와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의 값인 형벌일 친히 대신 당하셨던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가 만나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 다시금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그 피, 보배로운 피인 보혈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단번에 흘리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 흘리신 보혈이 4가지 경우가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

첫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였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2절에서 44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흘리신 보혈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 흘린 그리스도의 보혈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 하면서 계속 느끼는 갈등은 말씀의 이론과 말씀의 순종의 삶이 따로따로 논다는 것입니다. 머리 속으로는 아는데 실제 생활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왜 말씀은 잘 아는데 실제 생활이 그렇지 못한가, 참 어렵고 힘든 문제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이를 꼬집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도 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기 위하여 피를 쏟는 기도를 드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피를 쏟는 기도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배운 지식 만으로, 배운 성경 공부의 지식 만으로는 그 지식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피를 흘리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땀이 피가 되도록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는데, 어찌 감히 우리 연약한 인생들이 기도도 드리지 않고 우리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아는 것으로 치면 교회 어설프게 다니는 부인보다 집에서 낚시질이나 다니며 쉬고있는 남편의 성경 지식이 훨씬 더 나은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집에 있어도 성경을 다 안다, 나는 교회 안다녀도 믿는다고 말합니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어설픈 성경 지식이 그 신앙의 삶을 오히려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지 않고도 성경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경을 보고도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벨은 성경 구절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기록되기 훨씬 전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사를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도록 드렸습니다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하나님 마음에 드는 제사를 드렸고, 말라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누히 읽으면서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원수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 대한 원한이 있었지만, 그것 다 용서하고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수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원수를 용납 못하고 이해 못하고 마음에 묻어두고 살때가 많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성경 지식이 생활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이론이 삶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은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삶과 신앙 지식을 일치시키는 방법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삶과 믿음을 일치시키기 위해 땀이 피되도록 기도했듯이, 우리도 땀이 피되도록 기도하는 방법 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셉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요셉은 왜 속에 원수진 그 분노가 없었겠습니까? 요셉은 사람이 아닙니까? 요셉이 성자였습니까? 그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보기 싫은 사람, 억울하게 자기를 구렁텅이에 넣은 사람들의 얼굴이 물밀듯 밀려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럴때 그가 어떻게 그것을 이겨냈을까요? 아마도 얼굴에 땀을 흘리며,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그들을 사랑하려고, 미움을 사랑으로 극복하려고 애쓰는 그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억울할 때 그는 왜 억울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분할 때 그는 왜 분하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못 참겠을 때 그는 과연 참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감옥 속에서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성경 지식대로 내가 살지 못할 때, 우리는 다른 길이 아니라, 바로 기도로 이를 이겨 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얼굴에 흘린 보혈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부족함에 대한 대속의 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죄는, 인간 스스로가 담당할 수 없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얼굴에서 보혈을 흘린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린 보혈은, 내가 생각만 하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속죄의 피라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 성도님들의 불순종의 죄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가시관 쓰실 때 피를 흘리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빌라도 총독의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웠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시는 우리나라 가시보다 크고 억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시는 산가시로 뻗뻗하고 무척 질기다고 합니다. 대못같은 그런 가시로 가시관을 만들어 주님의 머리에 씌울 때, 가시 마디마디마다 주님 머리를 찔러 주님이 흘리신 피가 바로 두번째 보혈입니다.

왜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셔야만 했습니까?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창세기 3장 17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만드실 때,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 세상에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우거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죄의 저주받은 결과로 가시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저주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옷을 입고 자고, 입고 자고, 땀흘리고 목욕도 안하고 따뜻하게 보호하고, 1달만 계속 입고 있으면, 그 몸에 이가 생깁니다. 이 이가 어디서 생겨 났을까요? 원인은 잘 모르지만 이가 어디서 생겨 납니다 .요즈음 애들 머리 잘 감지 않고 비를 맞고 다니면 여자애들 긴 머리 속에서 이가 생긴다고 하죠.

이것 어디서 생겨납니까? 바로 저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저주 가운데 생겨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 뿐 아니라, 저주의 열매도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주에서 파생된 결과를 없애기 위해서, 저주의 열매를 없애기 위해서 주님은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죄 값의 결과인 저주를 없애기 위해 가시관을 눌러 쓰시고 그 열매를 없애신 것이 주님께서 두번째 흘리신 보혈의 의미입니다.

내가 받은 인류의 저주를 대신 받기 위해서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얼굴에 피를 흘리시며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내가 저주의 결과로 받은 가시와 엉겅퀴의 열매를 없애시려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 속에 이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흘리신 보혈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채찍은 원래 짐승이나 가축을 다스릴때 쓰는건데, 따라서 사람을 짐승 취급할 때 채찍을 쓰는 것입니다. 채찍 끝에는 납 덩어리가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채찍을 한 번 내리치면 몸에 착착 감겨서, 잡아 당길 때에는 살점이 뚝 뚝 떨어지며 피를 흘리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예수님은 채찍으로 맞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냥 십자가에 달리셨어도 우리에게 구원이 있게 되는데,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얼굴에 피를 흘렸다는 구절이 없고, 같이 죽은 강도가 머리에 가시관 썼다는 구절이 없고, 같이 매달린 강도가 온 몸에 채찍 맞았다는 구절이 없는데, 왜 예수님만 가시관 쓰고, 얼굴에 피를 흘리고, 채찍 맞으며 죽으셔야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그냥 죽으심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악과 저주의 열매까지 대속하고자 하는 주님의 사랑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보혈은 인류의 건강을 위해 흘리신 채찍의 보혈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서 53장 5절의 말씀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 전서 2장 24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병들어 죽어가는 육체를, 죄 값으로 당하는 저주의 하나인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현대인은 너 나 할 것없이 피곤합니다. 요새는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피곤을 받아 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피곤을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건강 주시려고 채찍에 맞았다, 그 채찍의 핏자국이 내 몸에 있거늘, 그 피의 흔적이 내 몸에 있거늘, 사탄아, 어찌 내게 병을 주려 하느냐, 예수의 피의 이름으로 물러갈찌어다 이렇게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이 보혈의 능력입니다. 예수님 당하신 그 채찍질 속에, 그 피흘림 속에 우리 성도님들의 질병이 떠내려 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네번째 예수님의 보혈은 십자가 상에서 죽으시며 흘리신 보혈입니다. 이 보혈은 우리의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스니\\\"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저주의 씨앗과 그 열매를 뿌리채 뽑아 버렸습니다. 우리 구원을 완성하셨습.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의 영혼 속에 이 4가지 보혈이 흐르고 있습니까? 나를 위해 예수님의 보혈이 내 몸에 흐르는 감격을 안고 살고 계십니까? 신자는 이 보혈을 받아들인 자요, 불신자는 이 보혈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입니다. 신자는 그 몸 안에 이 4가지 보혈이 있는자요, 불신자는 이 4가지 보혈이 없는 자입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나의 저주를 위해 예수님은 4가지 보혈을 흘려 주셨으니, 그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하여, 몸을 바쳐 주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 우리 몸에 이 주님의 4가지 보혈이 흐르고 있음을 뜨겁게 느끼면서, 또 이 보혈의 은혜를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살기를 힘쓰는 가운데 신앙 생활 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

하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1번만 피 흘리신 줄 알았는데, 내가 지은 죄 값이 너무나도 많아 그 저주 하나하나를 다 속량하시려고 4번의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이 시간 깨달았습니다.
내가 생각으로 짓는 죄를 위해 얼굴에 피를 흘리셨고, 내 저주의 가시를 해결하시기 위해 가시관 쓰셨고, 내가 죄 값으로 질고를 당하는 것을 속량하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고,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알았나이다. 그 그리스도의 보혈이 지금 내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내 영혼에, 내 육신에, 내 인생에 이 보혈이 흐르고 있사오니, 보혈이 주는 감격을 안고 살게 하시고, 그 보혈을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내 평생 그 보혈의 은혜를 어찌 보답할까, 그 의미를 갚는 생활을 행동으로 실천하며 사는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평생 자랑은 주의 십자가로 알고 살겠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며 살겠습니다. 이웃과 나누며 살려는 우리의 노력을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