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룡 목사의 부음에서 기독교 정치권력화를 성찰한다

[칼럼]강원룡 목사의 부음에서 기독교 정치권력화를 성찰한다

 

\"우리는 근래에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들 중 특히 기독교계 인사들이 정권에 들어가 ‘로열패밀리’가 되었다는 씁쓸한 얘기들을 종종 듣는다.. 기장, 기감, 대한성공회 등에서 배출된 소위 개혁적인 종교인들이 정치권에 얼마나 수혈(혹은 매혈?)됐는지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칼럼] 강원룡 목사의 부음에서 민중신학의 실종과 기독교의 정치권력화 현상을 성찰한다

지난 17일 기독교계 원로 지도자인 강원룡 목사가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곧 온라인 오프라인 모든 언론들은 60, 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 운동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 민주화 여정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의 부음 소식을 전하면서 후진들의 목소리를 통해 강 목사의 업적에 대해 대대적으로 찬사를 실었다.
그러나 언론들은 강 목사가 이루고자 했던 미완의 과제와 공과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는 가신 분에 대해 지키려는 우리사회의 전통적인 예의이면서 동시에 다른 차원의 침묵이다.

강 목사는 생전에 자신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며 반공주의자였는데 후일 중도 민족주의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가 좌우익 양쪽에서 비난받으면서 갈등을 조정하려는 중도주의자로 명성이 높았던 생의 궤적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대목이다.
그는 “선(善)도 보다 큰 선과 보다 작은 선이 있”으며 “악(惡)도 보다 큰 악과 보다 작은 악이 있”는데 “둘 다 도둑놈이면 소도둑놈보다 돼지 도둑놈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차선책을 주장하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했고, 2004년 총선을 앞두고는 “요새 정치하는 사람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깡패를 조직하는 것하고 다른 게 없”다면서 “천하에 유명한 사기꾼과 다를 게 뭐 있”냐고 권력을 상대로 호통치는 예언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전두환의 5공정권 시절 강 목사가 국정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일은 그가 아무리 김대중씨 구명을 위해 그곳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그를 존경하던 사람들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는 1960년대 중반, 강 목사가 이끌던 크리스찬아카데미 \'중간집단\'의 훈련 모토가 \'인간화\', \'양극화해소\'였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40년이나 지난 오늘 만약 이 모토가 그대로 유효하다면 강 목사 방식의 사회변혁 운동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독교계 엘리트들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많은 노동자 농민들이 ‘양극화’로 인한 투쟁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처럼 죽고 다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강 목사의 지적 세례를 받고 자란 후진들이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력과 각계의 핵심에 무수히 포진하고 있지만 정국이 이런 실정이라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된다.

‘로메로’는 영화로도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정치라고는 전혀 모르던 보수적인 학구파 인사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에 의해 군중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자유를 염원하는 가난한 민중들의 편에 서서 대정부 투쟁을 벌이다 1980년 정보요원들의 공작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충분히 예견했음에도 최대 3만명이나 살해(혹은 실종)되는 민중들의 비극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에 그 길을 묵묵히 갔다.

뜬금없이 로메로 대주교를 거론한 것은 그가 실존적인 인간으로서 깊은 고뇌 끝에 민중들과 함께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그는 정치권과 그럭저럭 무난히 지냈으면 안전하게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종교계 엘리트였지만 예수처럼 낮은 곳으로 스스로 걸어갔고 죽음으로서 민중들과 영원히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근래에 과거 민주화운동 세력들 중 특히 기독교계 인사들이 정권에 들어가 ‘로열패밀리’가 되었다는 씁쓸한 얘기들을 종종 듣는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 대한성공회 등에서 배출된 소위 개혁적인 종교인들이 정치권에 얼마나 수혈(혹은 매혈?)됐는지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문제가 산적한 오늘 우리사회에서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처럼  정치권력의 잘못된 행태를 민중들의 관점에서 예리하게 비판하고 몸으로 행동하는 교회와 종교인들은 현저하게 줄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민중신학’의 실종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미국 등 서구신학의 영향권 아래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군사독재정권이 민중들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토착화 신학인 ‘민중신학’이 태동돼 사회변혁운동에 중요한 밑거름 역할을 해왔다.
강원룡 목사 역시 이미 작고한 서남동 목사나 안병무 목사 같은 민중신학자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사회에서 ‘민중신학’은 학문으로서 목적을 달성한 건지 어쩐 일인지 오리무중이 돼버렸고 일부 상아탑에서만 화석으로 남은 형국이다.(‘민중신학’이란 용어를 거북해하는 사람들은 서구중심의 ‘제1세계 신학’에 대응하는 ‘제3세계 신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지금 ‘빈부 양극화’로 신음하는 민중들의 고통소리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민중신학’의 부활이 긴요한 시기임에도 말이다.

실종된 민중신학, 민중들의 삶과 괴리된 한국교회, 기독교 엘리트들의 정치권력화 현상은 강원룡 목사의 부음과 함께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 지금 강 목사는 하늘에서 후학들의 칭송을 기꺼워하고 있을 것만 같지는 않다. 칭송하는 자들의 자기 변명이 아닌지 불편해하면서.

[한국인권뉴스]

▼ 서남동 저 \'민중신학의 탐구\'(한길사 간) 표지 중에서. 죽재 서남동 목사는 \"나는 한국에 있는 95%의 근본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 신학을 한다\"고까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