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과 피


생명의 떡과 피
막14:22-25





해야 할 일이 많은 바쁜 사람이나,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을 막론하고 되풀이되는 일상생활 중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먹는 일입니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반나절만 지나면 다 소화되기 때문에 또 먹어야 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몇 끼를 연거푸 먹고 나면 곧 물리는 것이 간사한 인간의 입 맛 이며, 평생 한 끼니를 거르지 않을지라도 늙고 병들고 때가 되면 죽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먹는 것이 생존만 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즐거움보다 먹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에 좀 여유가 생기게 되면, 비싼 기름을 때가면서 입맛 나는 유명 음식점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육적인 입맛을 충족시키는 것이 다가 아니며, 영적인 입맛이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고, 영적으로 좋은 음식은 한끼만이 아니라 영원히 즐겁고 그것을 먹고 또 먹을수록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에게 무병 건강 장수도 축복이지만, 그보다 더 영원한 축복은 영원히 사는 영생의 축복이며, 한 끼니의 즐거움이 아니라 영원한 즐거움을 주는 영생의 양식을 먹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 양식이 어떤 것이며, 과연 어떻게 그 양식을 먹고 마실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함께 은혜 나누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옛 유월절

오늘 성경 말씀은 유대인들이 수 천년 동안 고유한 명절로 지키고 있는 유월절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우리 민족의 8. 15 광복절처럼 과거 그들의 조상이 이집트에서 400여 년간 식민지 생활을 하다가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명절입니다.

물론 그것은 다시 되 돌이킬 수 없는 치욕스런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후세대가 구태여 그것을 기념하며 지켜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언제든지 국력이 약해지게 되면 그 같이 치욕스러운 역사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교훈을 주기 위한 것과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우리 민족과 같은 이방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의미 때문입니다.

1) 역사적인 의미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월절이 없었다면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오늘의 이스라엘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유월절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후 세대를 위한 유월절이기 때문에 자손대대로 그 유월절을 기념하므로 그들의 해방자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 이집트의 세력은 식민지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이나, 연약한 지도자 모세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당대의 최강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도 이집트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는 것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구원하여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유월절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대들이 유월절을 지킴으로 자유와 해방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역사적인 의미입니다.

(출 12: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 영적인 의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손 대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하시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구약의 상당부분이 이스라엘의 역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세상 역사와 같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동일한 이스라엘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성경에 편입시키신 까닭은 그것을 주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사건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은 그 역사 속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와 더불어 아직 오지 아니한 미래에 이루어질 새로운 역사에 대한 예언을 감추어 놓으신 계시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누룩을 넣지 않은 떡과 쓴 나물을 먹게 하신 특별한 의미입니다.

(출 12: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 12: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옛 유월절에 양이 대신 죽어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은 이스라엘 가정은 장자가 죽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가정은 이집트 사람들은 물론 이스라엘 사람들 가정들조차도 장자가 죽는 재앙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옛 유월절의 영적인 의미는 바로 그 어린양의 피 흘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통해서 후세에 이루시려고 하나님이 감추어 놓으신 영적 계시를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은채 옛 유월절을 지키면서 역사적인 의미만을 계승해 나갔습니다. 흔히 우리는 그것을 종교적 형식이라고 합니다.




2. 새로운 유월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 마지막 날 밤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역사적인 옛 유월절을 어디서 지킬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막 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물론 예수께서 어려서부터 그 유월절을 해마다 지켜 오셨기 때문에 옛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이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당연하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의 나오는 유월절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역사적으로 마지막 유월절이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하나님이 그 유월절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루시고자 하는 새로운 유월절의 첫 번째가 되는 뜻깊은 유월절인 것입니다.




1) 객실이 없으신 예수님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는데 객실이 없으셨기 때문에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음을 기억할 것입니다.

(눅 2: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같은 예수님은 평생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고쳐주시는 일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치부를 하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객실이 없으셨습니다.

(막 14:14)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2) 떡을 떼심-내 몸이니라

객실을 빌리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면서 옛 유월절 방식을 따르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월절을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나누시기 전에 먼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그것을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그 떡이 바로 제자들에게 주시는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14: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이 종종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을 때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그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예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요 6: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물질적인 떡과 유월절이라는 옛 형식을 이용하여 떡이 육신의 양식인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시는 당신의 몸이 영적으로 생명의 떡이 될 것을 뜻하신 것입니다.




3) 잔을 주심- 언약의 피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주신 후 곧 이어서 포도주를 나누어주실 때에도 시기 전에 동일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 그 포도주를 가리켜 당신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막 14: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막 14: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것도 역시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라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흘리시는 피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뜻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 유월절에 어린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께 양을 잡아 피를 흘림으로 언약 백성이 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실 피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이방인인 오늘 우리들까지 살리는 새로운 언약의 피가 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옛 유월절에 제사장이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제물의 피가 있어야만 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흘리실 그 피가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 어린양의 피와 무교병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 후의 인생들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서는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찢으신 살이 생명의 떡이 되고, 흘리신 피가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을 뜻하는 새로운 유월절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3. 오늘의 성찬식

예수님이 처음으로 제정하신 새로운 유월절 의식인 첫 성찬예식을 지상 교회가 오늘에 이르도록 지상 교회들이 거행해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과연 오늘 우리가 그 성찬의 의미를 얼마나 바로 알고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당시 여러 교회들이 성찬식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교회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올바른 성찬의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고린도 교회에 보낸 말씀으로 오늘의 교회가 성찬식 때마다 언급하는 고린도전서 11 장의 말씀입니다.

(고전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고전 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오늘 교회가 거행하는 성찬식은 사도들이나 교회가 필요로 하여 만든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날 밤에 친히 제정하셔서 본을 보이시면서 교회가 그 것을 기념하여 행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몸된 교회가 그 것을 성찬예식이라고 부르며, 주님의 말씀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성찬식을 제정하여 그것을 교회가 신실하게 이행하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구약의 유월절이 그러하듯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 역사적 의미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킴으로 자신들이 현존하게 된 것이 하나님이 과거 그의 조상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것을 기념하여 자신들을 구원하신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읽고 설교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이 성찬식에 참여할 때 첫 성찬식 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라고 하셨던 말씀과 십자가에 달리셔서 살을 찢으신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의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떡을 먹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께서 친히 성찬식장에 임재 하셔서 그것을 깨우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찬 예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도 성찬 예식을 소중하게 여기고 참여할 때 큰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찬식에 참여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더욱 마음에 와 닿게 되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았다는 것이 확신되어지며, 나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큰 은혜입니다.



2) 성찬의 영적 의미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되풀이되던 옛 유월절은 과거의 애굽에서의 구원만이 아니라 미래에 메시아의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하고,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은 죄 없으신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는 영적인 예표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됨에 예수님이 옛 유월절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오늘의 성찬식도 그와 같이 과거의 십자가만이 아니라 미래의 예표임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막 14: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구약의 유월절은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치적인 속박에서 구원하였지만, 예수님이 제정하신 새로운 유월절인 십자가의 구속은 가고 오는 모든 주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함을 받은 주의 백성들은 영적으로는 자유함을 얻었으나 그 육신은 여전히 죄악된 세상에서 갖가지 속박에서 시달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때로 땀흘려 수고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 떨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남겨두고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까닭은 당신의 백성들을 그와 같은 고통에서 영원히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먼저 가셔서 예비해 놓으신 하늘 나라입니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성찬식은 바로 그 하늘 나라에서 이루어질 천국 잔치의 예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는 성찬식이 외형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잔치이지만 영적으로는 천국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잔치를 예표하는 것임을 예수께서 오늘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막 14: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결 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중에서 단순히 성경 말씀이나 설교라는 형식이 아니라 예수께서 친히 하셨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어지는 진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찬예식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상 교회가 성찬 예식을 주님 오시는 날까지 계속하여 기념하게 하시는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구약의 유월절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고나 종교적인 의식의 반복이 아니라 미래에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을 예표하는 또 하나의 모델 하우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찬 예식은 단순한 종교 의식이 아니라 과거의 유월절과 미래의 영원한 천국 잔치와 이어주는 생명의 복음임을 기억하고 중심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생명의 떡과 피가 되어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남은 삶을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 할 때 어떤 자세로 성찬식에 참여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없이는 구원함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아니고는 구원함을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첫 번 성찬식에 참여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거룩한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도 성찬식에 참여한 후에 예수님을 팔았으며, 베드로는 그 성찬식 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을 하였습니다.

(막 14: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이후에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 11: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고전 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고전 11: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 예수님이 첫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그 예식이 바로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살을 찢고 피를 흘리실 것에 대한 예표로 하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기 전에 하나님 앞에 그것을 들고 감사와 축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셨습니다.

(막 14: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막 14: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그리고는 성찬을 마치신 후에 슬퍼하시면서 가신 것이 아니라 찬미를 부르시면서 감람산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막 14:26)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가니라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오늘 우리가 살게 됨을 더 기뻐하 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달리 그 성찬식 후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생명의 떡과 피가 되어 주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성찬식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떡과 잔을 드시고 슬퍼하고 낙담하신 대신 도리어 축복하시고 사례하시던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십자가상에서는 당신을 못박는 원수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드리시던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