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살과 피


예수님의 살과 피!
마26:26-30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태복음 26장 26~30절 말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셨다. 예수님은 그 유월절 만찬에서 당신이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 양으로 당신의 살과 피를 바치실 것을 일러주셨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라 말씀하셨고, 또 잔을 채워주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주님오실 때까지 이것을 기념하라고 하셨다. 성찬식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예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미리 십자가의 의미를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 수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존재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하셨다. 그것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할 수만 있으면 그 십자가의 잔을 피하시고 싶어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국 그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만 해결 될 수 있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너무 무서워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그것을 사하는 데는 예수님의 피가 필요할 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있는 모든 저주스러운 것들을 다가져가셨다. 죄와 허물과 아픔과 상처와 죽음 등.... 우리에게 있는 좋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다 가져가시고 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셨다. 평화와 회복과 기쁨과 생명 등....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말씀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한다.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못하신 것이 아니라 안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고민하셨고, 그 고민만으로도 죽을 것 같으셨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 고난의 잔을 피하지 않으셨다. 그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요, 은혜인가!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3:16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이처럼’이라는 표현이다. 그 말씀에서 ‘이처럼’이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을 말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신다는 말씀 속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 그 사랑이 바로 죄인에게는 소망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사랑 하신다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절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살다보면 힘들고 낙심될 때가 종종 있다. 그 낙심이 심하여져서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는 것과 같은 절망을 느낄 때도 있다. 삶이 무겁고 힘들어서 낙심이 되고 절망이 될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시기를 바란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창조주 하나님이 희생하셨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우리의 삶이 절망적이지 않고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절망은 죄다. 그것은 불신이기 때문에 크고 무서운 죄다. 믿음은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4:8에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라고 했던 것이다.


셋째,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하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는 그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다 사함을 받았다. 얼마만큼 사랑하느냐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느냐를 결정한다. 당신이 대신 죽으실 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가면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다.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되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인 것이다.


찬송가 202장 가사를 보면
1.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2.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주의 보혈은 능력이 있다. 그 어떤 죄도 다 사하는 능력이 있다. 믿으시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하여졌다. 이 놀라운 복음을 믿고 죄에서 자유 함을 얻으시기를 축원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한 일도 아무 것도 없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은혜와 사랑의 복음을 마음에 새기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