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혈의 능력 히9:11-14 성경은 ‘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피에 관한 이야기로 끝나고 있다. 성경 첫 권인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했다. 여기서 ‘상하게 한다’는 것은 피를 흘리게 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9장 4절에서는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고 했다. 그리고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7장 14절을 보면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서도 “어린 양의 피”라고 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피 이야기는 요한계시록에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 생명의 근원인 피 성인 정상인의 피의 양은 약 5리터로서 체중의 7% 정도에 해당된다. 그 중에서 약 42-47%는 혈액의 고형성분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혈액의 나머지 53-58%는 혈장이라 불리는 액체성분으로 되어 있다. 혈액은 인체의 물질대사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는 일과 그 대사로 인하여 생긴 노폐물을 체외로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즉 산소와 영양소는 대개 동맥을 거쳐 각 조직에 운반되고 노폐물은 정맥을 거쳐 제거되므로 혈액은 일종의 운반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혈액의 순환은 동맥, 정맥, 모세혈관에서 이루어지며 이 혈액은 심장의 박동작용으로 전신의 혈관계를 통해 순환되면서 체내 모든 세포와 접촉한다. 피는 많은 요소들과 복합체와 특이한 화학체로 구성된 신비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피가 우리 몸을 도는데 1분 이내에 우리 몸을 2바퀴 돈다. 하루 24시간 피의 순환 연장 거리는 무려 천 리에 이른다고 한다. 혈관을 따라 하루에 천리나 여행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몸을 돌던 피가 멈추면 죽는 것이다. 또한 몸 안의 피가 1/3 이상 흘러나오면 죽게 된다. 그러므로 피는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은 피가 생명의 근원인 것을 증거하고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레17:14). 그러면 왜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피는 바로 생명이며,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생명의 근원인 피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다. 2. 피흘림이 없이는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 하나님의 대원칙이다. 죄를 지은 자는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죄가 작건 큰건 간에 그 대가는 죽음인 것이다. 사람들이 친한 친구나 친한 후배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덧붙이는 농담이 있다. “최소한이 사망”이라는 농담이다. 예를 들어 “성화교회 11시 낮예배에 꼭 와야 돼! 안오면 최소한이 사망이야!”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농담만은 아니다. 교회에 안나오고 죄악에 빠져 살다가는 사망에 이르기 때문이다. “최소한이 사망”이라는 말은 죄에 대해서 쓰는 말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최소한이 사망이라는 사실이다. 죄에 대해서는 자신의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은혜인 것은 자기가 죄를 지어도 누군가 대신 피흘림 즉 죽으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속죄의 원리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주로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다. 제물로 쓰일 짐승은 흠이 없는 것이어야 했다. 짐승을 죽이는 것은 자기를 대신하여 짐승을 죽이는 것이고, 짐승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자신의 피를 대신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대속의 원리이다. 3. 구약에서의 속죄(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13). 이 말씀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자기와 자기 가족과 백성을 위해 피 뿌리는 속죄제사 드림에 대한 것과 겨레에 대한 규례를 말하는 것이다(레16:11-16;민19:1-19).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4절에서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하지 못함이라”고 했다. 구약의 제사제도가 “육체”(히9:13)를 깨끗케 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경건의 길은 마련했지만, 그 외부적인 정결이 양심의 정결에까지는 결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에 불과하지, ‘참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마다 늘 드리는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케 할 수 없다(히10:1). 또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즉 어린 아이를 돌봐주는 교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갈3:24). 4. 그리스도의 온전하고(히10:14) 영원한 속죄(12) 이 피의 의미는 구약의 제사제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신약으로 이어진다. 예수께서 흘리신 피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구약의 제사제도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구약의 제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신약의 그리스도의 희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약의 제사제도를 주신 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속죄제물은 레위기 22장 20절에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는 말씀처럼 흠이 없어야 한다. 흠이 없다는 것은 온전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는 흠이 없어야 한다. 즉 죄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가 없으신 의로우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를 담당할 수 있는 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있는 분이다. 베드로전서 1장 19절에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는 죄가 전혀 없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2:22).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수님보다 700년 전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에 그 의미가 나타나 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53:5).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본문 12절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고 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고 했다. 구약에서 제사 때마다 죄 없이,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간 희생양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미리 보여 주는 사건들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가 죽어야 할 것을 대신하여 죽으신 죽음이요, 그가 흘린 피는 우리를 대신하여 흘리신 피이다. 그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 앞에는 속죄와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 보배로운 피는 “단번에”(히9:12)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히9:28).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이해가 잘 안되는가? 예를 들어 보자. 1) 동생에게 수혈해서 살린 오빠의 예 길가던 두 아이가 갑자기 달려든 차에 치어서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 아이들의 나이는 아직 10살이 안 되었다. 한 아이는 여자 아이였고, 다른 한 아이는 남자 아이로 그의 오빠였다. 여자 아이는 많이 다쳤으나, 다행히 그의 오빠는 괜찮았다. 그런데 여자 아이는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했다. 몸 안에서 핏줄이 터져 위험했던 것이다. 의사는 수술을 하기 전에 부모들의 동의가 필요해서 남자 아이에게 물었다. “너의 집은 어디니? 부모님은 집에 계시니?” “아빠는 돌아가셨어요. 엄마는 직장에 나갔는데, 어디서 일하는지 몰라요.” 그렇다고 지금 그의 어머니를 수소문해서 찾아볼 시간이 없었다. 수술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의사들은 수술을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여자 아이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수혈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피는 특수한 혈액형이라서 병원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어리기는 하지만, 그의 오빠의 피라도 수혈을 해야만 했다. 같은 형제였기 때문에 혈액형이 같았던 것이다. 간호사가 남자 아이에게 물었다. 동생에게 피를 수혈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아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아주 진지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것같이 보였다. 잠시 후에 그는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듯이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을 했다. 이렇게 해서 두 남매는 둘 다 수술실에 들어갔고, 수술은 시작되었다. 수술은 아주 까다로운 수술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노련한 의사는 두시간 정도 후에 수술을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수술 받은 아이의 오빠가 아직 침대에 누운 채로 초조한 얼굴로 의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나는 언제 죽어요?” “얘야, 언제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네가 왜 죽는단 말이냐? 넌 아무렇지도 않잖아? 네 동생도 죽지 않았어.” 그렇게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선생님, 내 피를 동생에게 다 빼주었잖아요? 그런데 안 죽어요?” 그 말을 듣고는 수술실에 모여 있던 간호사들과 인턴과 의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련한 기술과 의학의 힘으로 이 소녀를 살렸다고 하는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 어린 남자 아이는 자기 동생을 위해서 피를 빼주겠다고 했을 때에, 그는 단순히 피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동생을 위해 내어주기로 결정을 했던 것이다. 그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을 하고는 피를 빼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동생을 살린 것은 의학의 힘에 앞서서 바로 그 여자 아이의 오빠의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이 어린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러나 그는 자기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죽기를 결심하고 자기 피를 동생에게 주었던 것이다. 2) 한 사람이 죽으므로 2명이 산 예 어느 병원에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피를 많이 흘려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방송으로 이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 피는 Rh-여야만 한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 흑인 병사 한 명이 자원하여 달려와서 “필요한 만큼의 피를 뽑으십시오” 하고 말했다. 산모가 의식이 들 때까지 수혈했는데 그래서 이 산모와 아기는 살았는데, 이 흑인 병사는 죽고 말았다. 3) 한 사람이 피흘려서 여러 명이 산 예 1965년 강원도 홍천에서 수류탄 던지는 훈련을 하던 부대가 있었는데 중대장은 강재구 대위였다. 그런데 훈련 중 어느 부하의 실수로 수류탄이 중대원 한 가운데로 떨어지자 강재구 대위가 자기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수많은 부하를 구하고 죽었다. 한 사람이 피흘림으로 여러 사람이 산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서 피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이 보혈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느 곳이나,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불문하고, 온전하고(히10:14) 영원한 속죄(히9:12)의 은총을 입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18에서 19절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다. 요한일서 1장7절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