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재물관

성도의 재물관/히13:1-6

성도의 재물관/히13:1-6
2001-11-07 08:41:59 read : 143

세상 어떤 사람도 돈 싫어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을 것. 재물은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필수. 우리 성도들이 내는 십의일조 의미. 어떤 의사가 몸의 10분의 일이 피. 피는 우리 인간의 생명. 십의 일조를 드릴 때 땀 흘려 번 돈. 우리 몸의 노력을 통해 번 돈. 아까운 생각 들어갈 수 있음. 더욱이 십의 일조가 액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생각이 남. 그러므로 돈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 아주 귀한 것.

그러나 재물에 대한 자세가 중요. 더욱이 성도의 재물관은 세상 사람들의 재물관 과는 차이가 있어야 할 것. 성도의 재물관은 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을 다스리며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 그래서 더욱 재물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큰 사람의 분량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재물의 문제를 다룰 때 반드시 전제하는 게 있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시간, 역사, 재물, 사람, 만물을 만드신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만 한다면 재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재물의 축복을 받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재물관은 어떠해야 합니까?

(1) 돈을 사랑치 말아야 합니다.<5절>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비인격적인 것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할 때 상대방도 사랑하는 것을 인격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돈 사랑 않는 사람, 돈 좋아않는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재물관은 돈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말씀.

돈을 사랑하면 안되는 이유로는,

첫째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디모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모하는 자들은 결국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돈은 사용해야지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 둘 다 섬길 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발목이 붙잡혀 신앙의 진보가 없게 됩니다.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돈은 말을 잘 듣는 좋은 하인이기도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돈을 잘 사용하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하인이 되지만, 돈을 사랑하다보면 돈에 끌려 다니며 돈에 의해 울기도 웃기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에 붙들린 자가 아니라, 돈을 다스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 돈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자만이 다스릴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치 말아야할 두 번째 이유는,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6:17에서 \'정함이 없다\'는 뜻은 \'견고하다, 분명하다, 확실하다, 영원하다\'는 말 앞에 부정어를 붙인 것입니다. 즉 돈이란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사람인 솔로몬은 잠언 23:5에서 \"네가 어찌하여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달고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돈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면 그것을 붙잡을 자가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돈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세속화를 고민하는데, 세속화의 출발점은 바로 \'돈\'입니다. 주님과 돈 사이에 방황하는 교회는 세속화된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서 명하실 때 \"돈을 사랑치 않는 사람\"<디모데전서 3:3>이라고 명시하셨습니다.
감독 즉 지도자가 돈을 사랑하면 온 교회가 더럽혀 집니다. 또한 집사의 자격에도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디모데 전서 3:8>라고 명문화 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복음으로 깨끗하게 보존하시기 위해서 직분 자들의 자격에 이것을 명시 하셨습니다. 직분자의 세속화는 곧 교회의 세속화이기 때문입니다. 돈에 끌려 다니는 게 세속화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과 교회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고, 세상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 삼성 교회가 그리고 온 성도님들이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디모데후서 3:2에 말세의 특징을 말씀하셨는데,

그 첫째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없고, 이것이 바른 길이냐를 따지지 않고, 이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느냐 보다는 오직 자신에게 유익하면 그만입니다.

둘째로는,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이 시대의 풍조입니다. 이것을 미리 알고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도 돈의 포로가 될 수 있고, 믿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안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3:6에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돈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두 가지를 다 추구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영력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2) 만족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5절>\"있는바를 족한줄로 알라\"는 말은 \"내가 내 손으로 수고하여 번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는 만족할 줄 아는 자입니다. 만족함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시편 128:2에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만족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경제생활에 있어 만족하기를 바라시지만, 인간의 속성은 만족할 줄 모릅니다. 비록 많이 갖지는 못했어도 부부가 만족하며 사는 것이 은혜 있는 삶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한다면 거기에 더 보탤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돈, 그 끝없는 유혹] (황호찬 저)이라는 책에 보면, 사단이 인간을 죄의 구렁텅이로 몰아 빠지게 하고 나서 돈 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는데 그 마음들을 보면,

첫째로 \'내가 번돈은 내것이다\'는 마음을 심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회를 위해 쓰라고 나에게 맡기셨는데, 내가 번 것은 내 것이니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둘째로는,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돈의 전능성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게 돈이다\'는 우리 속담처럼,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는 논리가 팽배합니다. 그래서 돈과 행복을 일치시킵니다.

셋째로는, \'돈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장 나쁜 악습입니다. 어려울 때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될 때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은 더욱 힘이 듭니다. 이 시대의 철학은 \"돈만 있으면 행복해진다. 돈만 벌면 행복은 와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복을 돈이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도 이미 간파하고 있는 바입니다. 부자이면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에서 오는 만족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돈의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사에 대한 통찰력을 가졌던 솔로몬은 전도서 5:10에서,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할 수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 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브레이크를 밟을 수가 없어서 사고를 낼 때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진 자가 더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 인간의 본 바탕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결코 소유는 행복이 될 수도, 행복을 보장해 줄 수도 없습니다. 탐욕으로 채색된 인간 속에는 \'충분, 만족, 감사\'라는 단어가 영원히 낯설기만 한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세상은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욕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으면 모두가 다 잘 살수 있는데,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탐욕은 만족할 줄 모릅니다.
예) 사도바울의 자족함.

여러분은 오늘 하루의 문을 무엇으로 열었습니까? \'감사\'로 열었다면 영적인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주어도 주어도 끝없이 달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면, 이 인간의 속성을 성령의 은혜로 다스리지 않으면 참된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과 은 혜를 주시기를 바라며, 만족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5절>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약속의 말씀.

성경 선택된 주인공들. 재물의 축복.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욥.

의인의 자손 걸식하는 법이 없음.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개역한글판 시 37:25)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개역한글판 시 37:29)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개역한글판 시 92:12)
의인은 포식하여도 악인의 배는 주리느니라(개역한글판 잠 13:25)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개역한글판 잠 15:6)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개역한글판 시 112:3)


*어떻게 하면 재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됩니까?

(1) 재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을 계속적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24:1에,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과 땅과 인간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재물의 주인. 신앙 고백. 우선 되어야.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아니함.

(2) 지혜로운 사용자로 쓰임 받기를 날마다 다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물질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똑같이 주어진 건강과 물질과 시간과 환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를 다 이루며 살 것인가? 를 깨닫기 위해 지혜가 필요합니다. 기도.

(3) 그러려면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쓸것인가에 대한 경영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돈은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써야한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돈을 버는데도, 돈을 쓰는데도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삼성교회 교우 여러분, 로마서 8:32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것을 다 주셨습니다. 이 것을 올바로 깨달은 자는 물질뿐 아니라 내 인생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도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신뢰한다면 물질의 종이 아니라, 은총에 붙잡힌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법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씁시다.

웨슬레 재물관 많이 벌어라, 많이 저축해라, 많이 써라. 스텐리 탬 10의 9조 이상.
빌게이츠 청소년 교도를 위해 몇십억.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개역한글판 막 10:22)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개역한글판 행 4:32)


더욱 축복 받을 만한 믿음의 그릇을 키우자.



















(1) 돈을 사랑치 말아야 합니다.<5절>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비인격적인 것에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할 때 상대방도 사랑하는 것을 인격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돈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안되는 이유로는,

첫째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디모전서 6:10>.

돈을 사모하는 자들은 결국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됩니다. 돈은 사용해야지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돈과 하나님 둘 다 섬길수 없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발목이 붙잡혀 신앙의 진보가 없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께서 돈을 사랑치 않는 능력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프랭클린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돈은 말을 잘 듣는 좋은 하인이기도 하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나쁜 주인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돈을 잘 사용하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하인이 되지만, 돈을 사랑하다보면 돈에 끌려 다니며 돈에 의해 울기도 웃기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에 붙들린 자가 아니라 돈을 다스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누가 돈을 다스릴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자만이 다스릴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치 말아야할 두 번째 이유는,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6:17에서 \'정함이 없다\'는 뜻은 \'견고하다, 분명하다, 확실하다, 영원하다\'는 말 앞에 부정어를 붙인 것입니다. 즉 돈이란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사람인 솔로몬은 잠언 23:5에서 \"네가 어찌하여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달고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했습니다. 돈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면 그것을 붙잡을 자가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돈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세속화를 고민하는데 세속화의 출발점은 바로 \'돈\'입니다. 주님과 돈 사이에 방황하는 교회는 세속화된 교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서 명하실 때 \"돈을 사랑치 않는 사람\"<디모데전서 3:3>이라고 명시하셨습니다. 감독 즉 지도자가 돈을 사랑하면 온 교회가 더럽혀 집니다. 또한 집사의 자격에도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디모데 전서 3:8>라고 명문화 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복음으로 깨끗하게 보존하시기 위해서 직분 자들의 자격에 이것을 명시 하셨습니다. 직분자의 세속화는 곧 교회의 세속화이기 때문입니다. 돈에 끌려 다니는 게 세속화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과 교회 사이의 간격이 사라지고 세상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 삼성 교회가 물질을 다스리는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물의 문제를 다룰 때 반드시 전제하는 게 있는데,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다\'입니다.

하나님은 시간, 역사, 재물, 사람, 만물을 만드신 주인이십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개역한글판 잠 3:9)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개역한글판 마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