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생각(1) 히13:5 2003-02-07 21:12:22 read : 86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한 기사들 가운데 신문에 나오지 않는 흥미로운 기사들을 보내오는 것을 매일 읽습니다. 그 보내오는 기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지난 28일 오후5시20분쯤 서울 중구 소공동 한 백화점 수입의류 매장에서 실크 스카프를 훔치던 절도범이 붙잡혔습니다. 소매치기범을 잡기 위해 현장을 돌던 동대문 경찰서 형사에게 잡힌 범인은 50대 주부였습니다.
이 주부는, 고급 명품 매장에서는 직원들이 고객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손에 쇼핑백을 들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슬쩍 집어넣는 방법을 썼습니다. 범행을 목격한 형사는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걸치고 있는 옷은 형사들의 월급 두 세 달치가 훌쩍 뛰어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절도가 돈이 필요해서 훔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 곧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건설업을 하는 남편과 유수한 대학을 다니는 아들과 함께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시가 6억이 넘는 최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자기 소유의 다이너스티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부유층 가정의 주부였습니다. 형사들이 혐의를 확인하러 그 집에 가서는 그녀가 너무 잘 살고 있어서 주눅이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형사들은 이 부유한 가정의 주부가 왜 절도를 해야 하는지 범행동기를 밝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정작 본인은 \"사는 것이 재미없어서 물건을 훔치는 것이 위안이 됐다\"고 범행동기를 밝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사들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요즘 세상이 돈만 있으면 \'물건을 훔치는 일\'보다 더 재미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력반장의 경험담은 \"짜릿한 손 맛\"이 범행동기라고 했습니다. 낚시꾼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인데, 수많은 시선에 들키지 않으려고 조마조마하면서 물건을 더듬을 때, 원하던 물건을 손안에 넣었을 때,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치면서 온몸이 곤두서는 긴장감이 한순간 안도감으로 바뀌는 기분이 절도행각의 원인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절도범 가운데에는 평소 소심한 사람, 심장이 약하다는 평을 듣던 사람들이 많고, 게 중에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도 있답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순간, 쾌감도 동시에 느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돈\'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의외로 많은 성도들과 사람들이 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돈에 대한 분명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돈에 대한 생각을 대개가 두 가지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 하나는 물질을 아예 터부시해서 돈을 모을 필요도 없고, 돈을 사용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교적인 물질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런 물질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옛날 할머니들은 돈을 꺼낼 때 치마를 들추어서 치마 속곳 가까운 곳에서 돈을 꺼내 썼습니다. 신협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군인이 대통령이었을 때에는 신협을 만들 수 없었는데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신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道에 하나씩 도지부가 있어서 그곳에서 설명회를 듣고, 정관을 만들고, 발기인들을 모집하면서 교회 신협을 만들었는데 가장 교인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돈을 교회 신협에다 넣게 되면 목사님들이 그 돈의 액수를 알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그것을 왜 알려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한국분들은 자기가 돈을 얼마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밝혀지는 것에 대해 상당히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다른 물질관은 물질을 무조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복적인 물질관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우리 기독교의 물질관은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했습니다. 돈만 생긴다고 복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돈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합니까?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돈은 복이 아니다라는 생각입니다. 많은 교회에 성도들은 물질을 복으로 알고 물질을 많이 받게 되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에게 그렇게 축복도 합니다. 그리고 보편적으로 예수를 잘 믿으면 우리는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안정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얼마든지 우리는 가난해 질 수 있고, 예수를 잘 안 믿어도 얼마든지 큰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잘 믿어도 가난해지고, 예수를 안 믿어도 부자가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해답은 이렇습니다.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마지막 열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물질이 마지막 히든 카드(Hidden Card)로 행복의 열쇠라고 한다면 우리가 행복해 지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모두 물질을 넉넉하게 아니, 넘치게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또 하나님이 우리가 물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기뻐하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예수를 잘 안 믿어도 부자가 있고, 예수를 너무 잘 믿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방법은 우리의 믿음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이 믿음이 우리 또한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믿음\'이라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지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16장 20절에서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보통 돈이 많은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이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돈이 많아도 \'못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남을 위해서 바르게 쓰지 못하는 사람, 자기를 위해서 한 푼도 써보지도 못하는 사람, 늘 돈은 많아도 궁색하게 사는 사람, 다 돈은 많아도 \'못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 많아도 다 떨어진 옷에다가 궁색하고 남루하게, 그리고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처럼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돈이 억 만금 있으면 뭐 합니까? 자기를 위해서 적당하게 쓸 줄 모르고 돈이 없을 때에나 있을 때에나 똑같이 산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까지 인색하게 하다가 그 애써서 모은 돈은 못된 자식 하나 때문에 다 없어지고 불화만 만들어 내면, 그 돈은 차라리 그 집에 없는 것이 나을 뻔한 돈입니다.
반면에 돈이 없어도 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없지만 돈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넉넉하지는 않지만 행복하게 돈을 잘 사용하는 \'잘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정리를 합니다. 돈이 인간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어도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이고, 돈이 없다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돈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없다고 못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돈이 축복이 아닌 까닭은 왜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복음 때문입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 중에 복음이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졌다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6절 말씀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부자이건, 가난하건, 많이 배웠건, 많이 못 배웠건, 지위가 높건, 낮든지 모두 천하보다 귀하고 큰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인간이해입니다.
천하를 얻고도 우리가 만족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행복해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 물질보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 만족을 얻으려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얻어야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수 천 억원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얻은 사람은 행복하고 만족한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것은 \'만족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 행복하고 만족해 하는 성경의 인물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 잔이 넘치는 만족은 우리가 물질을 많이 모아서 내 잔이 넘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시고 여기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안에서 참 생명의 만족을 얻었기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돈을 잘 버는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제가 이 방법을 알려 드리는 대신 제가 여러분들에게 일러 준 방법대로 해서 돈이 잘 벌려 지면 저에게도 혜택이 돌아오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옛날 어떤 부잣집에 머슴이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머습은 주인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많이 버는게 늘 부러웠습니다. 자기는 머슴이라 돈을 벌 재간도 없었지만 어떻게 하는 돈을 잘 벌 수 있는지 궁금했고, 또 그 비결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하루는 그래서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주인은 머슴에게 \"그걸 말로 설명할 수가 없지, 실제로 몸으로 겪어 봐야 하네\"라고 하면서 주인은 그 머슴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집 마당에는 우물이 있고, 그 우물 위에는 능수버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주인은 먼저 머슴에게 그 버드나무 위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머슴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돈을 벌고 싶은 욕심으로 주인이 하라는 대로 그 버드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이제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리라고 합니다. 가지를 붙잡지 않으면 우물에 풍덩 빠지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길게 늘어진 가지를 꼭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인이 한 손을 놓고 한 손으로만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한 손으로 매달리니 정말 죽을 맛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돈 버는 법을 가르쳐 죽 생각은 하지 않고 이제는 그 나머지 한 손도 놓으라는 것이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죠. 놓으면 떨어져서 우물에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돈을 벌려면 우선 돈을 잘 쓰는 법부터 배워야 하네, 돈을 잘 쓴다는 것은 낭비를 말함도 아니며 인색하라는 것도 아니네, 다만 돈을 쓸 때마다 방금 버드나무 가지를 잡았던 마지막 손을 뗄 때의 조심스런 태도, 그걸 잊지 말게나.\"
가난은 좋아할 만 한 것이 못됩니다. 가난은 싫어할 만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가난함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가난해야 깨끗하고 바르게 사는 목회자, 또는 훌륭한 목회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 역시 기독교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청렴하게 산 목회자로 기독교계의 한경직 목사님을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통장 하나 없었다는 것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었습니다.
그러나 영락교회에서는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교회였기 때문에 돌아가실 때까지 담임목사님의 사례비와 똑같이 예우를 해 드렸고, 남한산성에 기거하실 처소도 준비를 해 두셨을 뿐만 아니라 유급직원을 따로 두어 원로목사님을 돕도록 했던 것입니다. 무조건 통장이 없어야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에 우리는 너무 젖어 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사정과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이래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지혜롭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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