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경제적 자유
신앙과 경제적 자유
전5:10-20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독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네 종류의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대답한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첫째는, 훌륭한 예술작품을 완성하고 콧 노래를 부르고 있는 예술가나 조각가이고,
둘째는,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만들고 있는 어린아이, 셋째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갖난 아기를 목욕시키는 어머니, 넷째는, 어렵고 위험한 수술을 해서 인간의 생명을 구한 의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가운데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가장 행복하게 보이는 백만장자도 아니고, 권세를 가진 왕이나 황제도 아니고, 돈 많은 부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니 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아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에 대한 세가지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첫째로, 돈이 많으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전도서 5장 10절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 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만족하기를 원한다면 결코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 것 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돈을 버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된다고 하여도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 입니다.
만일 돈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면, 지금 한국의 재벌들은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도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입니다.
둘째로, 돈이 많으면 더욱 유명한 사람이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돈이 많으면 명성과 지위를 얻고 사람들이 존경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돈이 많다고 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올라가고 유명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로, 돈이 많으면 마음 편안하게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안정은 중요한 것이지만, 돈이 많다고 마음이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많은 사람들의 불안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언 23장 5절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1달러 지폐에는 독수리 날개가 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Money talks”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말한다는 것 입니다. 즉, 돈이면 다 된다는 뜻 입니다. 그러나, 돈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은 날아가 버리는 것 입니다.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는 “하나님께서 손을 손가락으로 나누어 놓은 이유는 돈이 빠져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돈과 재물이 행복과 명성과 평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으면 더 많은 문제가 찾아 온다고 전도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로, 돈이 많으면 지출이 더 많아 지는 것 입니다.
수입이 많으면 지출도 늘어나는 법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더 많은 유지와 관리 경비가 들어 갑니다. 이웃집보다 더 정원을 잘 가꾸려고 하면 적어도 물값이 더 많이 드려야 하는 것 입니다.
전도서 5장 11절에,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을수록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어 납니다. 돈을 많이 벌수록 돌봐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입니다. 돈이 많을수록 변호사가 필요하고 계리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재정관리를 위한 상담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 입니다.
둘째로, 돈이 많으면 걱정도 더 많아 지는 것 입니다.
전도서 5장 12절에,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 돈을 잘 보관하기 하려고 노력하고 또 다른 사업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세금을 내지 않을까 연구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는 노동자는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하루 일을 끝내면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면서 즐기고 단잠을 자는 것 입니다. 아내와 함께 즐기고 갓난 아이 처럼 잠을 잡니다.
그러나, 부자는 거래 계약이 잘 될까? 거래가 잘 될까? 하고 초조해 하고 걱정을 합니다. 주가가 내려 가는 않나 걱정을 합니다. 누구를 채용하고 누구를 해고시킬 까 염려합니다. 항상 걱정이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부부가 이혼하고 가정이 파괴되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돈 걱정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돈이 많으면 지출 경비가 많아지고 따라서 염려와 걱정이 많아지는 것 입니다.
셋째로, 벌었던 돈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 더 큰 고통이 있습니다.
전도서 5장 14절에, “그 재물이 재난을 인하여 패하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 것도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조금 잃어버리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잃어 버리면 크게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 입니다. 모험을 한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경우에 우리에게 쓴 마음을 안겨 주는 것 입니다. 투자한 것들이 분명하지 않게 될 때 염려가 많아지고 실망하게 되는 것 입니다.
전도서 5장 17절에,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잃게 되면 신경질을 부리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돈과 재물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5장 19절에,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어떤 분은 무슨 말을 하느냐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는데 무슨 하나님의 선물이냐?” “내 머리와 내 손을 사용해서 번 것인데 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까?”라고 말할 것 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누가 손과 머리를 주셨습니까? 누가 나에게 능력을 주셨습니까?
신명기 8장 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지 줄 알고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현재 가진 것을 현명하게 사용하십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11절에,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돈으로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십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돈을 다루는 것으로 천국의 상급이 결정되는 것 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돈으로 우리를 시험하는 수단으로 삼으셨을까요? 돈이 우리의 신앙을 측정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돈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을 저축하고, 돈을 투자하는데 사용하는 것 입니다.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돈이 우리의 삶의 주요 주제입니다.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보여주고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우리가 얼마나 사랑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다른 어떤 주제보다 돈에 관해 더 많이 말씀하신 것을 아십니까? 38개의 비유가운데 16개의 비유은 돈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복음서에서 10구절중에 한구절인 288개의 구절에서 돈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기도에 관해 500구절, 믿음에 관해 거의 500구절에 말씀하고 있지만, 돈과 소유에 관한 구절을 2000구절이 넘는 것입니다.
돈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지 않고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우리의 삶을 크게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는 돈을 천국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다 남기도 갑니다. 미국의 거부였던 쟌디 록펠러(John D. Rockefeller) 가 죽었을 때, 그가 얼마나 남기고 죽었은가 하고 한 사람이 관심이 있어서 그의 재산을 관리하던 사람에 물었을 때,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All of it,” 즉 모두 다 남기고 죽었다는 말입니다.
돈을 다 남기고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에게 다 남기고 가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녀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재산을 버는 가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현재 현명하게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에게 좋은 본을 남기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5장 15절에,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그 보물을 다 무덤에 남겨 놓았습니다. 바로왕은 다음 세계로 다 가지고 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보물들은 지금도 그 무덤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장례식때 양팔과 손을 관 밖으로 내 놓고 보이게 해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사람들에게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셋째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형통하는 때와 곤고한 때를 주십니다. 부유한 때와 가난한 때를 주십니다. 그런데,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기뻐하고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복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 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즐기는 것을 보고 기뻐하십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준 선물을 좋아하고 즐거워할 때에 기뻐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 물질적으로 받은 축복을 감사하며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더 가지기를 원한다고 하면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 입니다. 사람들의 경제적으로 자유를 얻기 원합니다. 경제적 자유란 충분한 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 자유란 더 많은 돈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것 입니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다 부유한 자들입니다. 내 개인 주택이 있으면 세계에서 부유한 3 퍼센트 사람들 중에 속합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최고 6 퍼센트의 부유한 사람들 속에 속하게 됩니다. 행복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만족하는데 있습니다.
넷째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십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떤 부자가 너무나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곡간을 더 크게 늘리기로 하였습니다. 은행 구좌도 늘리기로 하였습니다. 번 돈을 남에게 주는 대신에 더 큰 곡간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번 돈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2장 20절과 21절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여러분들이 모두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고 직장과 사업에서 성공하기를 기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이 더 쓸 것이 더 많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것 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18절과 19절에 보면,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며 나누어 주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놓는 것 입니다. 영원에 투자하는 것 입니다.
성경은 천국에 보물을 쌓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지금을 선한 일을 할 수 없고 나누어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치 현재 돈의 여유가 없어서 예금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돈을 예금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출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먼저 정기적으로 적금을 하지 않으면 돈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조그만 액수라도 정기적으로 적금을 들겠다고 하는 마음과 계획이 없으면 한푼도 저금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금한다는 계획이 없으면 예금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예금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내 수입 중에 제일 먼저 10 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입니다. 실상은 먼저 10 퍼센트를 드리는 것이 마지막 10 퍼센트 드리는 것 보다 훨씬 더 쉬웁습니다. 내가 모든 지불해야 할 돈을 다 지불한 후에 십일조를 하겠다고 생각하면 마치 모든 것을 다 지불한 후에 저금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수입의 첫 10 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보물을 쌓아 놓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의 최우선에 놓으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리는 반드시 내
삶의 우선을 결정해야 합니다.
누가 내 주인이 될 것입니까? 내 물질을 어디에 둘 것입니까? 이 세상입니까? 아니면 천국입니까? 마태복음 6장 20절과 21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우스 캘로라이나주의 그린빌의 거부로 살아오던 분이 지난해 12월 30일 8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 전재산을 대학과 자선복지 단체에 기부하여 미국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섬유기계 업체의 회장이였던 홀링스워스라는 사람인데, 그가 생전에 소유한 부동산 5140만평등 4억달러, 즉 약 5140억원 상당의 전재산을 퍼먼 대학과 그린비 YMCA, 그리고 각종 자선단체에 기부한 것 입니다. 그는 30년 넘게 본사 공장 뒤편에 있는 초라한 트레일러 속에서 검소하게 살아왔습니다. 허름한 옷 차림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고 지역 주민들이 말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정작 유일한 혈육인 외동딸에게는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단지 손자 손녀들의 대학 학비를 위해 1인당 25만 달러의 신탁기금을 적립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생전에 모든 기부는 거의 익명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평소에 “돈을 벌게 해 준 사회를 위해 반드시 재산을 환원하고 싶다”는 말을 생전에 자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홀링스워스와 같이 이름 없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선한 사업에 부유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는 이세상에서 내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기 원하십니다. 내 물질이 가는 곳에 내 마음도 따라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만 사는 자 처럼 살아가서는 안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