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경제, 그리고 예수

사람, 경제, 그리고 예수
마8:28-34





(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만하더라 (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
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 마침 멀리
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진대 돼지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32)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
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
늘 (33)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마
8:28-34)

영국의 서평 잡지 <로고스>가 금세기 100년(1900 - 2000)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들을 선정 발표했습니다. 선정 기준은 \"인류의 휴머니즘을 고
양시키고 세계사의 변화에 강한 영향을 끼친 책\"이었습니다. 여기에 선정된 책
들은 <20세기를 형성시킨 책 100권>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이 중에
는 1994년 남아공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쓴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비롯
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이 있는데 사상 서적으로 선정된 책은 자
본주의를 기독교적 윤리관으로 해석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즘(기독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었습니다. 막스 베버는 그의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
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서적 경제윤리가 사람을
부유하게 했다. 18세기에 감리교를 창설한 웨슬레는 교인들에게 돈을 많이 벌라
는 권고를 하거나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단지 정직하게 상도(商
道)를 성서적 윤리 행위에 따라 지킬 것을 각성시키는 설교를 했을 뿐이다. 하
지만 그의 말년의 설교는 대부분이 부자들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충일했던 바,
그 이유는 그의 교인들이 정직하게 상도덕을 지키면서 사업을 한 결과로 모두
부유하게 됐었기 때문이다.\" 요한 웨슬레가 교인들에게 강조한 것은 돈을 열심
히 잘 벌어라, 그리고 잘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잘 쓰라는 것은 자기 좋은
대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남김없이 사용하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부자가 되기보다는 하늘나라에 부자가 되라는 것입
니다. 부자를 두고 자본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본가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
이 아니라 돈을 열심히, 정직하게 벌고 그것을 정당한 곳에 재투자할 뿐 아니라
유익한 사회복지를 위해 바칠 수 있는 사업가를 말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나라의 소위 재벌들은 엄격히 말해 자본가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
면 정직하게 벌었다거나 정당한 곳에 재투자해서 자본가가 된 것이 아니기 때
문입니다. 또한 자본주의를 받드는 정신은 탐욕이 아니라 금욕주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 자본가에게 요구되는 금욕주의는 고행을 통한 단순한 금욕생
활이 아니라 사업가가 가지는 일종의 소명의식으로 자기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에 앞서 자기자신에게는 인색하면서도 공익을 위해서는 관대한 마음가짐 곧 사
업을 공익을 위한 사명으로 여기고 헌신하는 정신을 말합니다. 막스 베버는 그
러한 자본가의 소명의식의 기초를 기독교 신앙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이를 프로
테스탄트의 자본주의 정신, 또는 직업 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직
업을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소명을 위한 헌신의
방편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의 자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
람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비윤리적인 상행위를 하지 않
습니다. 기업인이 자기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일
시 위탁받은 청지기라는 관리정신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돈을 열심히
벌고 또 공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지
닐 때 참된 경제 성장을 이룰 있는 것입니다. 극기심을 가지고 자기의 욕심을
억제하면서 항시 많은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
본주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자본가의 정신에는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
의가 깊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을 자기의 안일과 쾌락을 위해서 쓰지
않고 금욕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본가는 자
신의 삶을 검소하게 영위하고 사회에서 불쌍하게 버림받은 소외된 사람들을 돕
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막스 베버에 의하면 종교개혁자들의 이러한 경제사상
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극기와 봉사의 양면성을 지닌 생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근대경제체제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자본주의 정신이 오늘날 근대 경제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던 것입니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 사회가 어떠한 경제제도나 사상을 만들어 낸다해도 성서적 세계관
이 그 경제윤리를 지배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것입니다.
제도보다는 그것을 받드는 정신적 초석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열심히 벌어서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베푸는데 있습
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정신을 예수의 삶과 예수의 말씀에 두고, 사람을 경
제의 도구로 삼지않고 자본주의 목적을 삼아 경제활동을 전개해나아갈 때 건전
한 사회, 건강한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현대인은 우주의 중심위치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로 전락되였기 때문에 내적으로 삶의 싫증을 느끼는 불안
과 불만 속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돈버는 방법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고양이 목장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한
마리에서 시작합니다. 고양이 한 마리는 1년에 12 마리의 새끼를 낳습니다. 그
많은 새끼들이 얼른 커져서 또 열두 마리씩 해마다 늘려 줍니다. 5년 뒤에는 어
떻게 되겠습니까? 보통의 수학 실력으로는 계산이 안 되지만 다행히 야심만만
한 한 청년이 컴퓨터로 계산한 바 약 249,000마리에서 날마다 5천 마리의 고양
이 가죽을 벗길 수 있다고 합니다. 가죽 한 장을 1000원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연간 18억 2천 5백만원의 수입이 됩니다. 그럼 이 많은 고양이를 무엇을 먹여
사육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무척 간단합니다. 고양이 목장 옆에 쥐를 사육
하는 것입니다. 쥐의 번식률은 무려 고양이의 4배나 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쥐 네 마리를 한 마리의 고양이에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먹이는 남아 돌 것입
니다. 그럼 이 쥐들에게는 무엇을 먹이느냐 하는 문제가 나올 것입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것은 공짜로 해결됩니다. 가죽 벗긴 고양이의 내장만으로도 쥐
의 먹이는 남아돌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고양이에게는 쥐를 주고 쥐에게는 고
양이를 주어 그 과정에서 남는 이윤은 주인이 독차지하는 경영 방법입니다. 이
것이 역대 독재자들과 그 주변 무리들이 권력과 돈을 뽑아 낸 방법이었습니다.
불쌍한 것은 가죽이 벗겨진 고양이들과 먹이가 된 쥐들입니다. 이러한 방법을
쓰고 있는 무리들이 한국의 재벌들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고양
이 내장으로 쥐를 먹이고 그 쥐를 잡아 고양이 먹이로 삼아 결국 돈 버는 것은
재벌들이나 재벌들과 결탁한 권력 계층이고 먹고 먹히어 결국 가죽이 벗겨지는
것은 힘없는 국민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거나 진
정한 자본주의 정신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동물의 왕국>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재벌 총수들이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들이 거느린 회사가 많다
는 이유로 그래서 불법이 드러났다고 구속하면 나라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면, 결국 피차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권력을 강탈하여 긁어모은 돈 한 푼 회수하지 못할 정도로 뒤가 구린
정부라면 강도에게 순경복을 입혀 놓고 민중 때려잡는 몽둥이 들려준 것과 같
은 것입니다. 도둑질이나 강도짓해서라도 땅 사고 집 사서 잘 살면 되고 그것이
합리화되는 국가 사회라고 한다면 이미 그 나라는 강도의 소굴에 불과한 것입
니다. 우리 나라는 이미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도 전과자들과 미결수들이 정치와
경제계에 판치고 있습니다. 도입한 경제 이론은 기독교 정신에 근거한 서양 자
본주의인데 껍데기일뿐 그 자본주의의 참된 사상과 정신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희한한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 앞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만 이용, 착취당하고
짓밟히고 있다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다라 지방에 가셨을 때 그 마을 변두리 공동묘지에서 아주 사납
게 귀신들린 사람 둘을 만났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흉악하게 귀신들린 사람
들 때문에 아무도 그 길을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를 만나게 된 귀신들린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이 말은
사실상 귀신들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간 귀신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두려워하는 말입니다. 귀신들은 사람
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귀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마지막 날에 그들을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넣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귀신들인지라 아직 세상 종말이 멀었는데 왜 벌써
오셔서 자기들을 괴롭게 하느냐며 소리를 질러 댄 것입니다. 이 귀신들의 궁극
적인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과 진리가 되시는 예수를 믿
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예수로 인하여 그 마을에 경
제적인 큰 타격을 입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보
였습니다.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했습니다. \"만일 우리를 이 마을, 이 사람들에게
서 쫓아내시려거든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
기는 예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이 더러운 귀신들아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떼
에게로 가라\" 그러자 귀신들이 그 사람들에게서 나와 돼지 떼에게로 들어갔습
니다. 귀신들린 온 돼지 떼들이 미친 듯이 비탈길을 내리달아 갈릴리 호수에 빠
져 몰사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놀란 것은 돼지 치던 자들이었습니다. 곧장
마을에 들어가 이 모든 사실들을 알렸을 때 순식간에 경제적 큰 타격을 입은
온 마을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려고 나왔습니다. 공동묘지를 배회하며 사람들을
두렵게 했던 귀신들린 사람들이 멀쩡하게 된 것은 당사자나 당사자 가족들 그
리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이었지만 그 마을이 입게된 경제
적 손실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권보다는 경제 논리가 우
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예수 영접하기를 거절하고 자기 마을
에서 떠나 줄 것을 간청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이웃들이 귀신들린데서 해방되어
이제 자기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단지 돼지 떼를
잃었다는 경제적 손실 때문에 예수를 배격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좀
더 많은 물질이나 좀더 나은 세상 지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진리를 유보하
거나 거절하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귀신들린 두 사람이 사람 사는 사회로 돌
아오게 되었다는 것을 함께 기뻐할 줄 모르고 오직 돼지 떼가 죽었다는 것만을
문제삼는 사회가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보다는
경제 논리가 앞서는 시대를 말합니다. 예수보다는 경제적 실리가 우선한다는 것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어린 양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오
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
도께서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며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
보다 귀한 것임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작가 섬머셋 모음의 대표작으로 <달과 6펜스>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
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고갱을 모델로 한 이야기입니다. 달과 6펜스란 제목은 영
국인에게 무엇인가를 얼른 느끼게 하는 대조되는 단어입니다. 6펜스란 영국 은
화 중 최저액입니다. 따라서 달은 고상한 것을 대표하고 6펜스는 저속한 것의
대명사로 사용된 것입니다. 달과 6펜스는 둘 다 은색으로 빛나는 둥근 모양이라
는 점에서 더 재미있는 대조가 됩니다.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이 순수하게 추구
하는 예술을 달로 표현했고 명예나 돈을 인생의 최고의 것으로 삼는 세속적 인
간상을 6펜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달의 사람이 되느냐 6펜스짜리 인생을 살
것이냐 하는 선택은 누구든지 직면하는 사항입니다. 달을 택하듯 예수 그리스도
를 택한 마을은 예술과 문화가 꽃을 피우는 진정한 사람 사는 마을이 되겠으나,
6펜스 동전 한 닢을 선택하듯, 예수를 거절한 마을은 돼지떼로 가득하여 잠시
경제가 넉넉할지 모르나 돼지에 매여 사는 마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다라 지방의 비극은 경제적 손실을 이유로 예수를 거절한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마을에서 추방하여 잠시 경제적으로 호전되었을지 몰라
도 그들은 결국 <6펜스>짜리 마을, <6펜스>짜리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
입니다. 경제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경제의 바탕에는 예수가 있어야
진정한 경제 발전과 건강한 경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는 결코
<분홍신>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에 <분홍신>이 있습니다. 이 신발은 마술사가 만든
분홍신이었습니다. 이 신을 한 번 신으면 춤을 계속 추어야만 합니다. 너무나
예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가 이 신을 신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너무나 마
음이 끌려 한 소녀가 분홍신을 사서 신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부터 소녀
는 추기 싫은 춤을 억지로 추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갈채로 받고 많은 총각들의 동경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
마 뒤에는 피로가 왔습니다. 즐거운 춤은 고통의 춤이 되었습니다. 이제 누구를
위해 춤을 추는지 자기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추어야 하니까 추는 그 춤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습니다. 번화한 도시를 돌고 한적한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한때는 고향 마을을 춤을 추며 지날 때 정든 옛집에서 딸을 부르는 애절한 엄
마의 음성을 들었지만 춤을 멈출 수가 없기 때문에 소녀는 자기 집 앞을 그냥
지나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묘지에서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죽었
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바라보고 예수를 따랐
던 무리들은 모두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는 경제를 구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어찌 귀신들려 공동묘지를 배
회하며 소외된 가운데 고통스럽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가족 중 그런 사
람이 있다면 그냥 버려두겠습니까? 돼지떼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수 많은 돼지
떼보다 귀한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
로 입은 경제가 하나님께서 입히시는 들에 핀 백합화 하나만 같지 못함을 깨닫
고,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 하나에게도 입히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우선하고 사람을 구하는 이 나라의 경제가 이루어지기 위해
진실로 예수를 영접하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열심
히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은과 금(경제)을 주는
곳이 아니며, 또한 은과 금이 쌓여 있어서도 안되며, 오직 예수 이름을 주는 곳
이며 그래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사람과 경제를 구하는 보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삶에 중심이 되어 이웃을
구하고 나라 경제를 바로 세워 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