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과 전망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과 갈등과 전망 엘리 샤케드(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대사 대리) 1. 갈등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갈등의 역사는 긴 역사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1947년 이후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유대 국가와 아랍과의 갈등의 역사에서 1947년은 매우 중요한 해입니다. 1947년 11월에 UN 안보이사회에서 팔레스타인 땅에 두 국가를 분할 독립시킨다는 안건이 가결되었습니다. 당시 벤 구리온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 진영에서는 그 안을 수용한 반면 아랍 진영은 그 안을 반대하며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아랍 진영이 이 안에 대한 반대는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치명적인 실수는 환원시킬 수도 고칠 수도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 분이 창조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허용했지만 선악과만은 금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명령을 저 버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며 그 후손인 우리들도 지금 까지 고통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께 그 조상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잘못을 빌어서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그들의 실수로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예로 든 것은 실수의 종류 가운데서 전혀 돌이킬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실수가 있는데 1947년의 아랍인들의 실수도 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일부의 팔레스타인인과 아랍 진영에서는 1947년의 분할 안으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54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몇 차례의 전쟁으로 점령지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점령지 위에 유대인의 정착촌이 세워졌습니다. 그 곳으로의 인구 이동으로 영토와 국경선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요약한다면 아랍인들의 1947년 UN 결의안 거부는 전쟁과 테러, 폭력으로 오늘날까지 이어 지는 갈등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란등 대부분이 회교국인 아랍국가와의 대치상태에서도 이스라엘은 국가의 존속과 민족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카타피, 이란의 지도부, 일부 팔레스타인에서는 유대 민족의 말살의 필요성을 드러내 놓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피해를 주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첫째로 1990년 걸프 전쟁 때의 이라크의 이스라엘 공격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걸프 전쟁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합병하려고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랍 국가 사이의 전쟁이고 이스라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이 텔아비브 주변에 39발의 미사일을 발사해 노인, 여인, 젊은이, 어린이 등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두번째로 이란이 북한 등지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북한과 이스라엘은 매우 먼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러나 두 국가 사이에 다툼이 있습니다. 이 다툼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란 등에 무기를 팔게 되고 그것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약 1,300km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주변의 다른 국가들로부터 위협을 받지도 않는데 왜 1,300km이상 되는 살상용 중장거리 미사일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이란은 무기를 구입할 수 있는 국가로부터 무기를 구입해서 이스라엘을 피해를 주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 대항한 성스러운 전쟁을 요청하는 무슬림 정신에 의한 것입니다. 21세기의 이스라엘은 유엔 가입국으로 국제 사회가 인정한 나라입니다.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피해를 입히려고 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단지 이스라엘 국가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국가를 멸망시키려는 힘의 규합이라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주변의 아랍 국가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의 통치권 안에 있는 모든 종교의 완전한 자치권을 인정한다고 공포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방문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성스러운 영역 안에 이스라엘 국기, 이스라엘 군인, 이스라엘 경찰이 있지 않고 단지 종교적인 영역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1967년 이전에는 유대인에게는 가장 성스러운 곳인 통곡의 벽의 유대인의 접근은 요르단 정부가 금지시켰습니다. 1967년 이후에 이스라엘 정부는 통곡의 벽에서의 종교 행위는 기독교, 무슬림, 어떤 국가, 어떤 종교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각 종교, 종파의 종교 의식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30년 전에 이집트 콥틱과 에티오피아 교단 사이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콥틱 교단이 에티오피아 교단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는 이스라엘 정부에 소송을 걸어서 경찰이 개입하여 원 상태로 되돌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 소송을 거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두 종파 사이의 종교적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가 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 후 동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에 합병시켰는데 이 곳 성전산에 두 개의 회교 사원이 있습니다. 이 두 회교 사원도 회교인들이 관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정부가 전혀 간섭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 장소가 유대인에게 있어서도 아주 거룩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그 곳 안에서의 기도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는 이스라엘 성전터입니다. 지성소 자리입니다. 1993년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이후 팔레스타인은 동 예루살렘을 그들에게 돌려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들에게 성전산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게양하겠다고 공언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아랍국가에게 이러한 시도는 관례를 깨는 것임을 밝혔습니다. 동 예루살렘에 있는 회교 사원은 팔레스타인 국가로부터 정복된 적이 없이 1967년까지 요르단이 그 곳을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왜 갑자기 아라파트가 그러한 주장을 하는지 의구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통치하는 지역에도 이스라엘 기를 꽂은 곳이 없습니다. 이 두 사원은 전 세계 회교인들의 성지이지 팔레스타인들만의 것이 아니므로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의 기를 꽂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로마 바티칸의 기를, 그리스정교에서 그리스 기를 교회에 꽂겠다고 요청한 적이 없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2. 평화 협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이 있었습니다. 4년 후인 1977년 이집트의 샤다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와 이스라엘, 이집트를 놀라게 했던 극적인 것이었습니다. 방문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집트의 어려운 경제적인 돌파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샤다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첫째는 이집트의 새로운 대외 관계의 정책 변화로 1977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집트는 구 소련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관계를 청산하고 미국과 우방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우선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과는 전쟁으로가 아니라 외교와 협상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샤다트가 이스라엘을 방문 한 후 1977년 말에 아랍 국가들은 역사가 깊고 그들을 주도했던 국가인 이집트와의 외교 관계를 끊었습니다. 또한 이집트와 국교 수립 후 15년이 지난 1994년에는 요르단과도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평화 협정의 배경은 1993년에 오슬로에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에 뒤따르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요르단 주민의 60% - 65%가 팔레스타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요르단에서 자국민의 눈치를 살폈다는 말입니다. 1993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평화의 장으로 나올 수 밖 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P.L.O.는 경제적으로는 파산의 위기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라파트는 정치적으로 많은 힘을 잃은 때였습니다. 1977년 이집트의 샤다트처럼, 아라파트도 이스라엘과는 전쟁을 통한 P.L.O.의 독립 쟁취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난 2000년 10월부터 8개월 동안 민중 봉기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미국 등으로부터 얻은 것이 없습니다. 테러와 폭력의 종식만이 협상을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 전망 21세기의 중동 국가들은 아직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안정성이 없는 이들 아랍 국가들은 언론의 자유, 선거의 자유 등의 없습니다. 안정성이 없는 아랍 경제적인 상황은 발달된 산업이 없습니다. 중산층이 적어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기도 어렵습니다. 사회적 안정성의 결여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산유국에서도 부가 일부 소수 그룹에 편중해 있습니다. 백성 전부가 그러한 부를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석유가 나지 않는 아랍 국가들은 남한의 국민 총 생산량의 10%정도밖에 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 의한 경찰, 군사로 강압적인 독재적인 통치로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 이집트의 무바라크, 시리아의 아사드, 요르단의 후세인 이후의 각국의 상황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중동 상황을 정글에 비유한다면 이 정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과 국가 안보를 통한 좀 더 강한 이스라엘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아랍과의 평화를 위한 토의는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