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나을 해결 해분 지도력
경제난을 해결해준 지도력
창47:13-31
미국은 지금 클린턴 시대의 경제 장기호황의 시기가 지나고 경기 침체의 빨간불이 켜졌다고 하여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1조 6천억 달러에 이르는 감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감세계획의 성공 여부는 차치하고, 이러한 일련의 조치와 이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일찍이 미국이 1920년대 말에 겪었던 경제대공황의 비극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고등학교의 역사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낸 과제물에 이런 제목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공황이 일어났던 1920년대 말과 현재 미국경제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경제 공황이 다시 오리라고 생각 지는 않지만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정부는 민첩하게 대처하게 된 것입니다. ]
대공황이 일어나기 직전과 지금의 미국 경제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뉴스 위크지의 칼럼니스트인 로버트 새뮤엘슨에 의하면 두시대의 유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두시대 모두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점이 비슷합니다. 1920년대는 자동차, 라디오, 냉장고 및 진공청소기 같은 전기제품이 오늘날 인터넷, 휴대폰보다 사람들의 생활에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었습니다.
둘째, 당시 사람들도 오늘날처럼 주식시장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끝없는 기대와 낙관에 사로 잡혀 있어서 1929년의 주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해에는 주식 투자자가 7%나 증가했습니다.
셋째는, 두 시대 모두 소비자들이 풍요에 길들어져서 빚을 많이 지고 있는 것이 같습니다. 그 때는 할부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지금은 카드 사용이 보편화되어 소비자 부채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 나라의 90년대 초와 90년대 말기 내지는 현재의 상황을 말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지난 16일에는 서울대학교 문화관 소강당에서 300명 가까운 경제학자들이 모여서 경제학 공동학술대화 가 모였는데, 한국 경제 개혁에 대하여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고 하는데 이처럼 22개 학회가 대거 참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시대는 달라도 경제문제는 어느 시대나 있어 왔고, 그것은 구약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바로 고대 애굽의 경제 위기를 요셉이 어떻게 대처했고 극복 하였느냐 하는 내용입니다. 7년간의 풍년으로 넉넉할 때 거두어 들였던 양곡을 각지역의 창고에 비축하고, 흉년이 들어서 중 근동 일대에서 양식을 사러 오는 자들에게 국가가 팔았습니다.
애굽사람들도 양식을 사서 먹는 중, 흉년이 계속되매 돈이 다 떨어지고, 돈이 떨어지니 짐승으로 양식 값을 지불하였고, 짐승도 다 없어지니 그들의 땅을 사서 바로의 소유로 삼았습니다.
7년이 지나자 요셉은 그 땅에 종자를 주어 뿌리게 하고, 농사지어서 5분의 1을 상납하게 하고 5분의 4를 각기 소유하게 하니 백성이 요셉의 정책을 기뻐하고 그 은혜를 감사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 후 야곱은 애굽에서 17년을 살면서 요셉의 형통을 기뻐하였으나 요셉에게 맹세케 하기를 \"내가 죽거든 이 곳에 장사하지 말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옮겨서 장사하라\"고 유언하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경제가 어려울 때는 무엇보다도 요셉과 같은 탁월한 지도자의 지도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지도력은 과연 어떤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는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을 주시고, 요셉으로 하여금 그 꿈을 해몽케 하였습니다. 7년간은 큰 풍년이 올 것이고, 7년간은 큰 흉년이 올 것이라는 계시였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해석만 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 그 말씀대로 이루어 질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요셉은 물론 명철한 지도자였으나 그의 지도력은 반짝 하는 재치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지혜와 탁월한 통치는 긴 세월동안 시련 속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의지하는 믿음에 의해 나타난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소년시절에 그에게 꿈으로 주신 계시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져서 그 아비와 모든 형제가 사실로 자기에게 절하게 되었습니다.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이라는 예언은 오늘날의 경제계에도 일반적 법칙을 보여 줍니다. 경제가 호황을 누리게 되면 사람들이 소비에 무분별하게 되고, 벼란 간 침체기가 찾아올 때 손을 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제 변동의 폭이 커질 때, 어떤 이들은 자기만을 위해 일확천금의 기회로 삼고, 어떤 이들은 재산을 다 날리고 절망하여 비참한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 사회가 그러합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나 소수의 부자들은 돈을 주체하지 못하여 극한 사치와 낭비를 하여도 여전히 넘치는가 하면, 중산층은 무너지고 부도와 퇴출과 이에 따르는 사회적 악순환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IMF의 위기를 겨우 넘어서 잠깐의 회복을 개혁의 성공으로 착각하고 무리하고 방만한 정책으로 오늘의 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요셉과 같이 끈질기게 착실하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대공황기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나타나 뉴딜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지도자가 요청됩니다. 자신의 통치철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해결의 길을 찾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요셉이 정책을 펴 나갈 때 애굽의 여러 계층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사람의 정치가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의 많은 백성을 기근으로부터 보호하여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그의 사명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따라서 그의 정책과 통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에 의존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얼마나 많은 지도자들이
하늘과 상관없이 땅의 논리를 따라서 일하고, 세상 지혜만 의존합니다. 약육강식의 원리, 줄잘 서기의 원리에 의존합니다. 최근에 [CEO예수] 예수님을 최고 경영자라고 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주님은 경제도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얼른 생각하면 요셉이 잔인할 정도로 모든 돈과 짐승과 땅을 다 거두어들인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모여 있는 양식을 무상으로 나누어주면 좋았으리라는 주장도 나옴 직합니다.
애굽의 백성들이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 하였고, 우리의 짐승 떼가 주께로 돌아 갔사 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 뿐이라,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18-19). 이렇게 절박한 때에 왜 요셉은 창고를 터서 백성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자선행위이지 정책이 아닙니다.
부요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선행은 장려할 만한 일이지만 국가가 나누어주는 행위는 백성을 게으르게 합니다. 나중에는 일하지 않으면서 왜 국가가 내게 조금 밖에 주지 않느냐고 원망할 것입니다.
지도자는 백성을 일하게 합니다. 백성들은 스스로 종이 되겠다고 했으나 요셉은 그들을 노예로 사지 않고, 씨앗을 주어 파종하게 하고 확고한 조세정책을 폈습니다. 세금이 많다는 것을 비난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이 벌고 많이 내면 국가는 그것으로 백성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감세 정책을 주장하면서 상속세도 폐지하겠다고 했더니 생각 밖에 미국의 갑부들이 반대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갑부 120명이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에 서명했습니다. 빌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의 구도로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등의 거부들이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상속세 폐지안에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2009년까지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없애게 된다면 실제로 미국의 부자들이 큰 수혜자가 될 터인데도 그들이 반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재물을 많이 벌었으면, 마땅히 재물을 공익을 위해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 제철사업으로 최초의 백만장자라고 불리 운 카네기는 1889년 \"부의 복음\"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그는 주장하기를 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사회의 재산관리를 위탁받은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고대 로마와 그 후 유럽의 역사를 보면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집 자식들이 다 허망한 인생을 살고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상속세를 무겁게 매겨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모든 세금 중 상속세는 가장 현명한 형태의 세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조세정책은 지혜로웠고 심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여 소출을 많이 내고, 많은 소출에서 많은 세금을 기쁨으로 내도록 하는 지도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시대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은 다릅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일하게 하고, 그 소득에서 세금을 거두고, 그 세금을 투명하게 사용하되 백성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한다는 치세의 원리는 동일합니다. 요셉은 성공적으로
애굽의 총리 직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 애굽의 국위가 주변 국가들에 떨쳤으며 요셉의 신임을 절대 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요셉의 가족들, 야곱과 형제들, 그 자손들은 부족할 것 없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에 야곱은 정신을 차립니다. 여기는 애굽이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가나안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손을 환도 뼈에 넣고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시신을 이 곳에 장사하지 말고 조상의 묘가 있는 가나안으로 장사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자기 생애에 가장 평안과 부요를 누리는 때에 죽는 날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애굽은 이스라엘자손이 영원히 가할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언젠가는 가야합니다. 야곱은 세상에서 성공한 요셉에게,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임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알고, 매우 좋아합니다. 성도들도 축복받고 성공하라고 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니 확실한 것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만 죽을 것이 아니라 요셉도 죽을 것이고 여러분도 죽을 것이고, 나도 죽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가나안 땅이 있습니다. 영원한 나라, 주와 함께 하는 영생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계신 노인들은, 어려운 시절 온갖 고생하여 이제 밥 먹고 살만큼 되었는데, 몸은 늙고 병들어 허무하기 그지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야곱이 가나안을 생각한 것 같이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힘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요셉처럼 하나님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승리하시고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마시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일과 하늘 나라의 일을 긴장관계속에서 두 가지 다 감당하십시다.
세상일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감당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주님의 은혜 앞에서 소망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