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해방의 은혜 눅4:16-19 광복절 설교 미국 플로리다 템파베이 교회 <조국의 광복 63주년을 맞았다. 조국 광복을 위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선구자적인 사명으로 순교를 각오하고 작성한 \"삼일독립선언서\"에는 천도교 지도자 15명, 기독교 지도자 16명, 불교 지도자 2명 등 33인이 민족대표로 서명하였다. 이들은 민족의 대표로 한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교파를 떠나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면서 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민족의 자유-독립-평등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순교의 길을 택한 것이다. 2008년 8월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지 63주년이 되는 달이며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 된지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달이다. 이에 본보는 다시 한번 플로리다한인동포들에게 광복의 기쁨과 의미를 되새기고자 지난 8월17일 서부플로리다 한인회(회장 최흥균)와 교회협의회(회장 김인식 목사)가 공공으로 주최한 \"광복절 기념식\"에서 말씀을 전한 곽춘식목사의 \"예수님 해방의 은혜\"라는 제목의 설교문 11장을(A4용지)을 4장으로 정리해 게재한다. 독자 여러분들이 말씀가운데 해방 즉 광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되새기기를 기대한다.> 예수님 해방의 은혜 누가복음 4장 16절-19절 오늘은 조국 광복 또는 해방 63주년 기념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날 태어난 해방둥이가 이제 63세 환갑이 넘은 어른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두세대가 지나갈 정도로 광복절 기쁨의 시간이 지나가다 보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잃은 아픔과 되찾은 광복의 기쁨을 많이 잊어버리며 또 용서하려고 하는데 36년간의 아픔을 우리에게 주고도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 우기는 일본은 쉽게 용서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는 세계 각 나라 사람들이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하는 배가 항해를 잘 하다가 파선 당 할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선장이 광고를 하기 시작합니다. “승객 여러분! 이 배는 잘못하면 파선 당 할 수 도 있습니다. 배가 파선 당하지 않으려면 먼저 무게를 줄여야 됩니다. 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세 사람을 희생시켜야 되는데 제 권한으로 누구를 희생시킬 수 없으니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사람이 있으면 나오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영국 청년이 나서서 “신사의 나라 영국이여, 영원 하라!” 그러면서 자기가 스스로 바다에 멋지고 신사답게 빠져서 죽었습니다. 그에 뒤질세라 미국 청년이 일어나더니 “God Bless America!”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몸을 던져서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국 청년이 각오를 다지며 멋지고 힘있게 나오더니 “한국이여! 영원하라! 대한민국 만세! 독도는 우리 땅!” 하면서 힘차고 멋진 모습으로 옆에 서있는 일본 사람을 바다로 밀어 넣었습니다. 한편으론 통쾌하기도하고 또 한편으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는 유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생각할 때 용서가 안되는 마음이 많습니다. 운동 경기만 봐도 다른 나라에 져도 일본에게만 이기면 우승한 것 보다 더 기쁨이 됩니다. 일본에게 받은 상처가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서부플로리다한인화와 교회협의회 연합으로 63년 전 광복절을 기념하여 예배로 드리는 날입니다. 여러분! \'광복\'(光復)이 무슨 뜻입니까? 빛 광(復), 회복할 복(復), 빛을 회복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다시 빛을 본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광복\'이라는 말이 너무 약함으로 보다 주체적인 \'해방\'이라는 말로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해방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한자어로 풀 해(解), 놓을 방(放), 다시 말해서 풀어놓는 것이 해방입니다. 묵인 것으로부터 자유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일제 36년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34년 11개월 16일간 압박을 받다가 자유를 찾았기 때문에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에는 예수님과 유대인의 대화가 있습니다. 31절과 32절에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33절에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합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이 34절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구원받는다”는 말과 “자유를 얻는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자유란 “풀어준다”, “해방한다”는 뜻입니다.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제63주년 해방절 기념예배를 맞이하여 예수님 해방의 은혜가 여러분들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 해방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18절) 세상의 논리는 성공의 척도가 부자냐, 높으냐, 많으냐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것이고 약하다는 것이며 또한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식민지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에게 해방이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원래 인간은 가난하게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대로 지음 받고 에덴동산을 치리하며 풍성하게 살도록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아담(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하니 모든 것을 잃어 가난한자가 되었습니다. 세계적 성공하여 강철왕으로 알려진 미국의 카네기에게 어느 날 신문기자가 성공의 비결을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때 카네기는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성공의 비결은 좀 역설적이지만 가난이었습니다.” “나의 성공의 비결을 설명하면 첫째, 나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기에 늘 가난한 생활에 고통 당하시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마음에 열정이 생겨서 ‘이놈의 가난 두고 봐라. 부모님을 괴롭게하고 근심시키는 가난이라는 놈을 없애버리고 말겠다.’라고 결심하고서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했더니 성공을 했습니다. 둘째, 가난했기에 무슨 직업이라도 가리지 않고 어떠한 일이라도 좋아했고 열심히 하여 항상 제일인자가 되도록 힘써서 일한 탓입니다. 셋째로 그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성공의 비결은 내가 가난함으로 심령(마음)이 가난하여 겸손함으로 진실하시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적인 물질로 가난하여 고통 당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축복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심령이 가난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서 믿음이 생겨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할 수 있다면 그것처럼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세상에 가진 것이 없어도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에 어떠한 것보다도 더 존귀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한 마음이 없으면 문제가 됩니다. 잠언 18장23절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세계를 침략 전쟁으로 피비린내 나게 하고 수많은 생명을 잃게 만든 대표적인 두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과 일본입니다. 아시아는 일본이, 유럽은 독일이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가 전쟁에서 패망한 후 틀린 점이 있습니다. 독일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을 아주 열심히 하고 일본은 열심히 감추려합니다. 독일이 유대인을 가장 잔인하게 학살한 장소가 아우슈비츠입니다. 지금 그 장소에는 독일 정부가 권장하여 독일의 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갑니다. 부끄러운 조상의 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못되고 잔인했는가를 체험할 수 있도록 체험학습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독일 총리는 그곳에 가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 숙여 사죄를 했습니다. 베를린 중심지에 있는 브란데 부르크문은 독일인의 자부심 상징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다 대규모 유대인 추모 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입구에 들어가면 검은 대리석 같은 돌로 직사각형, 정사각형의 돌을 1,000개 이상이나 늘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 뜻은 독일이 유대인에게 어두움을 주었다는 뜻으로 독일인이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브란데 부르크 문 옆에 바로 이것을 만들어 과거 우리 조상이 유대인들에게 큰 잘못한 것을 독일인들이 가장 잘 오는 장소에다 만들어놓고 회개하는 뜻입니다. 이처럼 독일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그 같은 부끄러운 일들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아시아 전체를 피 맺히게 했던 일본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져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해 졌을 때에는 천황이 고개를 숙여 사죄를 하더니 이제 좀 살만해 지고 정치력이 강해지니 역사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다시 침략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9장8절-10절에 보면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낮추었더니 예수님께서 구원이 이 집에 거하였다는 자유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간절함과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 복음의 역사가 나타나실 것입니다. 2. 포로 된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18절) 아담이 약속을 파괴한 후로부터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악의 포로가 되어 태어납니다. 어린 아이를 보며 우리는 천사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아도 커가면서 시기하고 질투며 싸우고 쌍스러운 말과 욕을 먼저 배우고 아주 능수능란하게 거짓말도 잘하게 됩니다. 그것이 버릇이 되어 3살 버릇 여든(80) 까지 간다고 하는데.... 여러분! 그러면 여든 한 살(81)부터는 고쳐지고 자유해 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든 인간의 영혼이 죄악의 포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서 마음속에 고통을 줍니다. 악한 부모가 자녀들을 괴롭게 하고 악한 자녀들이 부모님을 괴롭게 하며 악한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 하고 악한 부인이 남편을 괴롭게 합니다. 더 나아가서 악한 개인이 가정과 학교와 직장과 사회와 나라와 세계를 상처 투성이를 만들어 놓고 분열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국가가, 사회가 가정이 그리고 개인이 문제가 있을 때에도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의 영이 거듭나게 되고 죄악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장 12절-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죄와 악의 포로의 극치를 이룬 자도 심령이 가난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면 누구라도 자유자가 됩니다. 3.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18절) 예수님 해방의 은혜는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수없이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참으로 좋아하는 말씀 구절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의 능력이 나타나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발견하지 못한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이 성경 구절을 볼 때마다 “\'눈먼자가 본다.\' 그래! \'눈먼자가 보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당연히 쓰여져 있는 \'다시\' 라는 낱말이 제 눈을 사로 잡았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다시\'라는 낱말은 예전으로 돌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시 보게\' 한다는 말이 NIV 성경에 보면 recovery of sight for the blind ‘다시’라는 말이 recovery 회복하고 복구한다는 말입니다. 원래 볼 수 있었는데 볼 수 없게 되는 것을 회복시키고 원래 상태로 복구시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창세기로 돌이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죄로 인해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각 장애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정상인이었다가 어떠한 사고든 연고로 시각장애인이 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의 소유자들에게 보게 하는 것을 \'다시\' 보게 한다는 낱말을 사용하게 됩니다. 2000년전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율법의 지식이 해박했고 유대교에 열심인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최고의 학자 밑에서 수학하는 당시 가말리엘이라는 대학자의 문하생이었고 누구와 겨루어도 이론적으로 밀리지 않는 자신있는 청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위로도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살아 온 자기 의로 충만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영적인 시각장애인임을 깨닫지도 못한 채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목숨 걸고 핍박하고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증인으로 서기도 했습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 할 때 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아픔을 당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분파가 생기고 사회가 갈라지고 분쟁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영적인 시각장애인들이 목숨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왜, 독도를 보며 우리가 가슴 아파하는지 아십니까? 겸손하지 못한 일본 지도자들이 최선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최선을 다하고 사명을 다하기 전에 다시 보게 되는 역사가 있어야합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빛으로 임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이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었더니 “내가 핍박하는 예수다.” 그 때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낸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안수해주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비로소 눈이 열린 것입니다. 이제껏 보지 못하던 세계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핍박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하나님의 백성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삶을 살았는지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눈이 열리자 한 영혼의 소중함과 영원한 천국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울-높은자’라는 이름에서 ‘바울-낮은자’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껏 깨닫지 못하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방인들을 구원하고자 하심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구원받으면 눈이 열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해방절 63주년을 맞이하여 예수님 해방의 은혜가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우리민족에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탬파베이지역과 플로리다와 세계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