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적 해방을 이루자! 출12:1-14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오던 봉건주의적 폐습을 탈피하고 근대 민주주의 사회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뜻깊은 민족해방의 날입니다. 특히 이 해방과 자유는 우리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데서 그 의가 자못 심원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제의 노예 생활로 고난 당하는 민족의 애원, 항일 투쟁에 선봉 섰던 독립 투사들의 애국정신, 자유 우방의 승리를 통하여 비록 분단의 아픔과 슬픔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부분적이나마 자유와 독립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예의 쇠사슬에서 풀어 주신 그 은덕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예 시대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8.15의 감격과 감사는 우리 뇌리에서 점점 사라지고 그 날이 한낱 공휴일로 전락되어 가고 있음을 볼 때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날의 뜻과 감사를 잊어버린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저버리는 결과를 자초할 것이며, 드디어는 원치 않는 종살이에 다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인류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중심으로 역사를 발전시키지 못한 국가들은 모두 멸망하였습니다. 강대국 앗수르가 갔고, 황금의 나라인 바벨론도 그 빛을 잃었고, 문화의 꽃을 피운 페르샤와 그리스가 말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근동의 도토리 밥 같은 이스라엘이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오늘날까지 세계 역사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해방 곧 출애굽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자각하였고, 이 역사 의식이 수 천년간 온갖 역경과 고난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 민족을 지배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스라엘처럼 8.15를 맞을 때마다 하나님 중심적 역사 의식의 맥락에서 우리 역사를 반성해 보는 것은 뜻 깊은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제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날 주신 말씀을 상고하면서 참된 광복이 무엇인지를 상고하며너서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실 때 해방을 얻기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1.완전히 애굽을 떠나야 합니다. (목마를 때, 배고풀 때, 어려운 사황을 만날 때)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악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게 합니다. 죄악의 잔재를 버리지 못하게 하고 우리로 죄악에 연연하게 합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처음에는 매우 적은 존재같으나 우리의 생명을 삼킬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됩니다. 죄악의 도성, 우상의 나라 애굽에서 인연을 끊는 것, 새롭게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죄와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탈출해야 합니다. 모든 세상친구를 다 잃더라도 참 구 예수님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구원의 완성을 이루라 (구원에 대한 확신 부재, 구원의 감격 상실, 그리스도의 첫 사랑회복)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 아래, 피묻은 문설주 아래, 그 날개아래 피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이 중요합니다. 주일성수가 중요합니다 . 예배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묻은 문설주 아래 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3.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물을 드리라 초태생, 처음난 것, 소득의 열에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구분하는 것이 바로 영적 광복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십일조는 영적 광복인 구원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성도의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집요한 공격 속에서 영적인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결론: 우리는 비록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나 육적 해방은 이루었으나 아직 영적 해방은 완성하지 못하였습니다. 우선 나부터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아가 온전한 민족 복음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은 사탄과의 영적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사탄의 세력을 꺽고 영적 승리를 거두느냐? 아니면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악을 먹고 마시며 멸망의 구렁으로 끌려 가느냐?의 기로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해방을 위해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을 대적하고 사탄을 제압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 해방의 전진 요11:32-44 장광영목사 2002-01-29 12:05:09 read : 174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었는데 해방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느 한문을 잘 아는 분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해방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풀 해(解), 놓을 방(放), 다시 말해서 풀어놓는 것이 해방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일제 36년간 압박을 받다가 자유를 찾았기 때문에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도 해방시키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해방의 행진”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죽은 자는 구속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어떤 것에 의해서 구속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① 허물과 죄로 구속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왜냐하면 육신적으로는 호흡하면서 살아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영적으로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는 이처럼 더 가지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죄를 짓게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② 행악으로 구속되었습니다. 이사야서 1장 2~6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2) 죽은 자는 무덤에 넣고 돌로 막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전도하며 다니시다가 자주 들린 곳이 나사로의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의 총애를 받던 나사로도 일단 죽게 되자 무덤에 넣고 돌로 막아버렸습니다. 3) 죽은 자는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시체가 썩는 냄새는 그 어떤 짐승이 썩는 냄새보다 더 지독합니다. 4) 죽은 자는 묶습니다. 죽은 사람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수족은 꽁꽁 묶어 버립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죽어서 구속되어 손발이 꽁꽁 묶이고 썩어 냄새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하나님과 늘 가까이 있었다면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멀리 떨어지고 뱀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는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1)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단순한 활자로만 읽으면 졸립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믿음을 갖고 읽으면 힘이 솟구치고 능력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깝게 되면 하나님의 비밀과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2) 성전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깝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전이요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제사를 드리던 성막 안에는 지성소가 있고 그 안에는 법궤와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의 의복에 방울을 달아서 걸어 다닐 때마다 딸랑딸랑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울소리가 나지 않으면 재빨리 죽은 제사장의 시신을 내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 가운데 제비를 뽑아 거기서 선출된 한 명의 제사장을 지성소에 들여보냈습니다. 시편 122편 1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하나님은 이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따라서 성전에서는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려야지 장사를 하거나 오락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을 전부 내쫓았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마 21:12~13) 3) 찬송을 많이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송을 부르는 것을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악보와 음정이 틀릴지라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이와 같이 찬양하는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게 됩니다. 처음 은혜를 받고 삼각산 통일봉에 올라가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하는 찬송을 8시간 30분 동안 불렀습니다. 찬송 속에서 기도가 나왔으며 설교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찬송과 기도와 설교가 어울려졌을 때 영안이 밝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내려오는 길에 어느 꼽추처녀를 만났는데 왜 그렇게 불쌍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찬송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깝게 되자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던 중 그녀의 척추가 펴져서 고침 받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둘째, 옮겨 놓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안내를 받아 나사로의 무덤에 이르렀을 때 그의 무덤은 돌로 막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을 옮겨 놓으라”(요 11:39)하고 말씀하시자 마르다가 “주여 죽은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사로의 시신이 썩는 냄새였습니다. 이것은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1~42) 셋째, 큰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사망을 당한 곳, 절망을 당한 곳에서는 묵상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목청을 높여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요 11:44) 그러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요 11:44) 기분이 나쁘거나 남을 정죄할 때에는 음성을 낮출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긴급을 요구할 때는 음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소리 높여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음성과 음성, 마음과 마음을 모아서 힘을 다해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마귀의 권세는 떠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으로 묶였던 나사로가 예수님의 외침을 듣고 살아난 것처럼 여러분의 영적인 삶이 다시 살아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되어야 모든 것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 하노라”(요3 1:2) 또한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7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3장 6~7절과 로마서 8장 5~6절은 이와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6~7)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요 8:5~6) 에스겔 골짜기에 아무 소망도 없는 뼈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예언자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하고 묻자 “주께서 아시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겔 37:4~6)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뼈들에게 대언하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겔 37:7~8) 에스겔이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하고 대언하자 그들의 영이 소생되어 큰 군대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겔 37:9~11)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시간에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가는데 날마다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 거지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에 힘을 얻은 앉은뱅이 거지는 걷기도 뛰기도 하면서 성전에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행 3:1~8)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경제적으로 묶여서 생활하기가 어렵습니까? 그러나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영이 살아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영안 다시 말해서 신령한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안이 열려서 하늘가는 밝은 길을 보게 될 때 이 세상에서 어떤 괴로운 일이나 슬픈 일을 만나더라도 희망과 용기를 갖고 사는 형통한 자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