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단6:10-24 광복절기념주일설교 단6:10-24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광복 57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일제하 민족말살정책과 침략전쟁을 지지하므로 반민족 행적이 뚜렷한 친일문인들의 명단과 경력, 작품목록 등을 공개하고, 선배 친일문인들의 반민족행위에 대해 공개 참회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한상범 소장은 \"친일파 득세는 왜 나쁜가?\"라는 글에서 한국 종교계를 향해 이렇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겨레이고 그 나라나 민족에 대해 반역행위를 한 자가 나라가 번듯하게 세워졌다는 마당에 실세로 행세하는 일은 없다. 그런 나라는 나라가 아니거나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해방되어 일본제국주의자가 이 땅에서 물러갔다고 하는데 친일파는 오히려 실세가 되었다. 친일파가 일제시대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졸개 노릇을 했었는데, 해방 후에는 미군정을 거치고선 주인노릇을 하게 되었다. 일제시대보다 오히려 친일파는 출세한 것이다. 경찰 끄나풀하던 친일파가 경찰간부 경찰서장이 되고 일제의 괴뢰국 하급 장교 하던 자가 대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었다. 일제 때 일본 회사의 말단 청소부가 사장이 되고 재벌의 반열에 들었다. 일제 때 잡문으로 아부하던 초라한 친일파 졸개가 예술원회원이 되고 당당한 일류 예술인으로 행세한다. 일제 때 정신대 뽑아내 가고 학병 지원 시키던 교육자란 탈을 쓴 매국노가 총장이 되고 교육 원로로 행세한다. 이것이 항일로 나라를 찾았다는 나라의 꼬락서니인가? 만일 이런 일이 그대로 통하는 것이 세상이라면 정의란 쓰레기통에서조차 제 자리를 못 찾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독립운동을 한 집안은 3대 4대가 망해 알거지가 된다. 그러나 친일파 집안은 승승장구 부귀영화를 누린다.\" 일본제국의 노예시절을 살아오다가 해방되었다고 해서 좀 바른 세상에서 살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대로 친일파의 세상이 되어서 엉망이 되가는 것을 보고 탄식한 말이다. 친일파가 알짜배기로 그대로 살아 남아서 판세를 잡은 사회 부문에는 교육과 종교계를 들 수 있다. 일제군국주의 침략전쟁에서 남여 청장년을 끌어가는데 앞장선 교육자, 일제침략을 사원과 교회에서 기원하며 자기들 종교를 배반한 사이비 성직자들이 해방 후 한번도 반성 사죄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행세해 왔다. 프랑스같으면 그들은 이미 교수대에 서야 했을 것이다. 한편 종교를 산업이나 상업의 수단으로 이용하는데 익숙해 온 친일파는 전쟁과 폭정에 시달리는 민중을 계속해서 기만하면서 단물을 빨아먹고 왔다....이런 종교계의 일대 친일죄악의 참회 사죄의 진통이 없이 어물적 지나쳐서 덮어버리고 지나면 그러한 종단 교단은 껍데기만 그럴듯할 뿐 거기에 무슨 진실이 있겠는가?》 성경에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모든 죄악상이나 예수 제자들의 배신 등을 낱낱이 기록하고 배우게 하는 것은 치욕스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시대의 파숫군 사명을 바로 감당하며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 역사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신앙의 후배들이 알고 하나님과 민족 앞에 참회해야만 합니다. 교세확장이 친일 반민족 죄악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금년에는 일제 권력을 앞세워 조선 감리교회 4대 감독을 지냈던 정춘수의 친일 반민족 행각과 배신 행위를 살펴봄으로 광복 57주년을 맞아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는 마음으로 참회의 시간을 가지고 교단과 교회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발표한 친일파 99인 중 하나인 정춘수(1875-1951)는 처음부터 친일파나 부일협력자는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는 일제하 민족운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는 3.1 운동의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춘수는 독립선언서 서명자 모두가 체포된 것을 알고 종로 경찰서에 자수하여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으나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 변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38년 9월 3일 \'전향 성명서\'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감리교 황민화의 앞잡이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정춘수는 이같은 \'전향 성명서\'를 발표하기 전 이미 1938년 5월 8일 일제의 사주로 일본인 목사 아키츠키(秋月致)와 함께 한국 감리교회를 일본 감리교회에 종속시키기 위한 <일선(日鮮=일본과 조선) 감리교 특별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1939년 9월 일제 권력을 앞세워 조선 감리교 제4대 감독이 되어 교권을 장악하고 일제의 주구가 되어 \'감리교 혁신안\'을 발표하게 됩니다. 그 혁신안의 내용은 첫째,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조선은 일본과 하나라는 구실로 조선을 말살하고자 하는 것) 정책에 기독교가 순응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기독교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배격하고, 일본 정신을 배워 일본 감리교회와 합동하여 일본적 복음을 전하라는 것, 셋째는 개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일제의 지원병에 참가하게 할 것 등입니다. 정춘수는 이같은 혁신안을 실천하기 위해 감리교 3부연회를 해산하고 일본의 교단규칙에 따른 새 교단규칙을 마련하여 교단을 재조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강력하게 교권을 장악한 정춘수는 기독교는 일제의 황군을 위문하고, 교회 건물의 철문 철책 등 일체의 철물들을 자진 헌납하며 교회종도 성전(聖戰) 완수를 위해 헌납해야 한다는 등의 이른바 \'종교보국 5개항\'을 결의, 실천케 했습니다. 이에 감리교 내부에서 반발하자 그는 일본 경찰의 지원을 받아 총회를 해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반발세력을 축출하고 일제의 비호 아래 교권을 다시 장악하여 1944년 3월 교회를 통폐합시키고 폐지시킨 교회들을 팔아 전투기를 헌납하려는 \"애국기 헌납 및 교회병합실시에 관한 건\"이라는 결의를 통과시켜 실천했습니다.(기독교신문, 1944.4.1) 그리고 이것도 부족하여 일제의 방침에 따라 그 해 5월부터는 예배설교시 구약성서와 묵시록을 사용치 말고 4복음서만 사용하도록 하며 예배집회 시간도 단축하여 주 1회만 집회를 갖고 근로시간을 늘리도록 각 교회에 통고했습니다. 해방 후 감리교계는 교회의 재건 방향을 둘러싸고 부흥파와 재건파로 나뉘어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재건파는 주로 정춘수가 통리자로 있을 때 교계에서 소외되거나 징계를 당했던 사람들로 교계내의 부일 세력의 숙청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947년 2월 3일 정춘수를 비롯한 감리교 지도자들의 친일행각을 구체적으로 폭로하는 <감리교회 배신·배족 교역자 행장기>를 발표했습니다. 정춘수는 해방 후 감리교 내부에서도 친일파의 거두로 지목되어 비판의 표적이 되었으며, 더욱이 1949년 초에는 이러한 친일전력 때문에 국회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60일간 구속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안팎으로 강력한 비판을 받게 되자, 더 이상 감리교에 머물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교직을 사임하고 또 한 번 변신했습니다. 1949년 10월 어느 날 서울 명동성당 노기남 주교를 찾아가 천주교로 \'개종\' 한 것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1949년 11월 22일자 경향신문에 보도되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사실의 진부를 확인하려고 김유순 감독이 보낸 사람들과의 면담에서 \"50년이나 정든 교회를 일조 일석에 떠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위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말하려면 자연 과거지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3·1 운동 때 33인의 하나로 나라를 위하여 싸우겠다는 나의 정신은 오늘까지 변치 않았다. 그러나 세태의 변함을 따라 전쟁이 점점 심해짐으로 일본 정부와 협력하는 척했고, 아홉 교회를 살리기 위하여 한 교회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세인들이 나를 친일파라 고 부르는 까닭이다. 나의 밑에서 나의 지도를 받고 지내던 사람들이 나를 친일파라고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갖은 방법과 수단을 다해서 나를 중상하며 전부터 말해 오던 숙청을 하려 하니 나는 숙청을 당하기 전에 먼저 내가 자가숙청을 한 것이다.……하여튼 내가 50년이나 인도한 교회가 나에게 불만하다. 가령 예배 보는 것도 엄숙을 많이 주장했으나 그대로 되지 않고 개신교를 무식한 구교인들이 열교라고 하는데 참말 교파의 갈래가 너무 많아 열교이다. 그러니 감리교회에서 떠난다고 장로교회나 성결교회로 갈 수 없고 결국 천주교회에 들어가 평신도의 자격으로 남은 여생을 조용히 지내려 한다……정춘수는 감리교회와 아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리려 한다.\"(대한감리회보. 1949.12.25) 그의 말대로라면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하였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협력하는 척\'하였고 \'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에게서 진정하고 공개적인 참회의 고백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김승태. 한국기독교연사연구소 연구위원, 반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감리교 선배의 이러한 행각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 후배들은 마땅히 참회하고 사죄함으로 교단과 교회 신앙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작금 한국 기독교 교단들이 부패했다는 것은 세인들이 알고 목사들이 다 알고 있는데 유독 교인들만 모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직도 청산되지 아니한 일제의 잔재들을 청산하고 우리의 신앙과 교단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 다니엘의 신앙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이 어린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그 나라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나라 민족을 팔아 권력에 아부해서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신앙적 결단과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단1:17-21)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다니엘은 그같은 깨끗한 신앙에서 나오는 명철과 총명으로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써 총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음모와 함정에서도 그 위치를 잃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3절). 그러나 포로 출신 총리로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지만 이를 시기하고 있던 대신들은 다니엘을 실각시키기 위해 매우 지능적이고 간교한 술책을 꾀했습니다. 그 내용은 앞으로 30일 이내에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경배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왕에 대한 충성심과 나라의 통일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오직 다니엘을 죽이기 위한 간계였습니다. 다니엘이 평상시에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생활을 익히 알고 이를 이용하여 피할 수 없는 함정을 팠던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조서의 내용은 왕이라도 고치지 못하도록 꾸몄습니다. 중대한 조서이기 때문에 총리인 다니엘이 그 조서내용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신앙생활 에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나라 민족의 광복을 위한 기도생활이 왕의 금령을 어기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임을 알면서도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했다는 사실은 세상 법이나 지위보다 하나님에 대한 성도의 의무가 더욱 중요함을 명확히 깨우쳐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세상 통치자의 법보다는 하나님의 법이 더욱 중요하며, 참된 믿음은 고난과 핍박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비록 자신이 포로 이며 자신의 나라가 이미 망했지만 개인만이 아니라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인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미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면서(2:3I-45) 하나님이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예전에 하던대로 기도했고 간신배들은 즉시 증거를 확보하고 왕에게 고발조치했습니다. 역적 간신배들의 간계를 눈치채지 못했던 왕은 꼼짝없이 법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왕은 절대적 신임을 가지고 아꼈던 총리 다니엘을 구하고자 심히 근심하며 마음과 힘을 다 썼지만 별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왕은 법대로 다니엘을 사자굴속에 던져넣게 했고 왕은 \"너희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는 말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간신배들은 다니엘을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돌로 굴 아구를 막고 전 각료의 이름으로 봉함했습니다. 침식을 금하며 다니엘을 걱정했던 왕이 새벽에 사자굴을 찾았습니다. 왕은 슬피 소리지르며,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며 생사를 확신했습니다. 이에 다니엘은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며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자신의 무죄함을 알렸습니다. 왕은 너무나 기뻐서 속히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했고 다니엘의 몸을 살펴보니 상한 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그러자 사자떼들은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습니다. 다니엘은 이 사건이 하나님의 개입하신 사건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이 구원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포로 생활 속에서도 깨끗한 믿음을 지키는 다니엘을 온전히 보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구원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만방에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실제적으로 사자굴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명 을 보호받을 수 있었던 사건은 세상의 통치자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리오 왕은 다음과 같은 조서를 자신의 통치권 아래 모든 나라 백성에게 내렸습니다. (단6:25-27)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 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고 하는 것은 첫째, 잃어버린 나라의 광복을 위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어떠한 어려운 환경과 생명의 위험이 있다해도 변치 않는 깨끗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의 흥망성쇠, 인생의 생사화복이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나라의 제2의 광복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을 가지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깨끗한 신앙생활로 시대를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충만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의 흥망성쇠, 인생의 생사화복이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있음을 확실히 믿고 세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을 가진 신앙생활로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며, 땅 끝까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숲 속의 사과나무 퀴즈 위의 글을 읽으시고 다음 질문에 답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1 :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한 것은 잃어버린 나라 민족의 광복을 위한 것이다. 1) 맞다 ( ) 2) 아니다 ( ) 질문 2 : 다니엘이 생명의 위험을 알고서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기도한 것은 그의 변치 않는 깨끗한 신앙생활을 보여준 것이다. 1) 맞다 ( ) 2) 아니다 ( ) 질문 3 :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은 그의 깨끗한 신앙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다. 1) 맞다 ( ) 2) 아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