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이끌어 가는 교회/벧전2:9
오늘 설교 제목이 \"말씀이 이끌어 가는 교회\"입니다. A Word-driven Church. 오늘 설교는 참 중요한 설교입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를 함께 생각하며 나누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템피 감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담임 목사로서 우리 교회를 위한 저의 목회 비전이 어떠한지, 여러분과 함께 나누며 결단하고자 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교회와 관련되어 살아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교회와 관련되어 살아갑니다. 주일날 교회에서의 시간이 좋았으면 한 주간이 좋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뭔가 찌뿌듯하고 안 좋은 상태로 한 주일을 보냅니다. 그런 경험 많이 하셨죠? 그만큼 우리는 교회로부터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그렇다면 좋은 교회가 되어야 돼요.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되어요. 교회로부터 우리가 그렇게 영향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 교회는 이왕이면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 좋은 영향을 받지 않습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평안을 주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고, 꿈을 꾸게 만드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해요.
그러면 어떻게 그런 교회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말 이상적인 교회, 성경 말씀에 잘 맞고 우리 삶 가운데 용기와 평안과 꿈을 심어주는 그런 교회를 만들 수 있을까?
여러분, 주보 전면에 나오는 인용구를 보십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용구예요. 성경 말씀 다음으로 암송하고 지키려는 인용구입니다. 저의 집 책상 앞에도 붙여져 있고, 차 안에도 암송 카드와 함께 있고, 교회 사무실 책상 앞에도 붙여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붙여 놓았어요. 그만큼 저에게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어쩌면 저의 목회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 말씀과 함께 붙들고 목회할 그런 말씀이에요. 어니스트 사우스코트라는 분이 한 말인데, 한 목소리로 크게 읽겠습니다.
예배의 가장 거룩한 순간은 설교와 성례로 힘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회가 되기 위해 예배당 문을 지나 세상에 나가는 그 순간이다. 우리는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로 교회이다.
우리는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이다. We do not go to the church, we are the church. 우리가 교횝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교회예요. 그러므로 좋은 교회란 교회를 구성하는 멤버 멤버 하나 하나가 좋은 멤버일 때, 그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건물이나 Location이 아닙니다. 좋은 교인들, 좋은 멤버들로 구성된 교회가, 그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면 좋은 교인, 좋은 멤버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냐? 좋은 교인 좋은 멤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과연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 오늘 본문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기술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냐? Who are you as Christian?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족속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인이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자기 정체성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네 가지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 중에서 특히 두 번째, 왕 같은 제사장에 대해 부연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 그랬어요. 여러분 모두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흔히 \'제사장\' 하면 목사만 떠올립니다. 목사도 물론 제사장이지요. 그러나 신분상 목사나 평신도나 똑 같이 다 제사장입니다. 다만 교회 안에서, 질서를 위해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 기능상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기능상, Functionally, 하는 일로 보아서 목사가 하는 고유 영역이 있고, 평신도가 하는 고유 영역이 있습니다. 기능상 그렇게 구별된 것이지, 신분상으로는 ID, Christian ID로는 목사나 평신도나 모두 똑같이 제사장입니다. 여러분 모두 제사장이에요. 믿습니까? 여러분의 영적 ID는 Priest,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인이란 이렇게 제사장으로서의 자기 인식을 분명히 하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해 내는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은 제사장의 역할에 대해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이에요.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이 계신 성막 제단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래서 번제, 속건제, 화목제 등 각종 제사 의식을 백성들을 대신해서 저들이 했어요. 그러면 오늘날은 어떠하냐? 만약 여러분이 아직도 목사만 제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저, 김찬홍 목사 앞세우고 가야 합니다. 기도할 때 여러분이 직접 기도하지 못해요. 다 제가 대신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직접 예수의 이름 앞세워서 하나님 앞에 나오잖아요. 또 예수의 이름으로 직접 기도하지 않습니까? 무슨 말이냐? 목사만 제사장이 아니고 여러분 모두 제사장이라는 거예요. 믿습니까? 만인 제사장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내건 캐치 프레이즈 중에 하나가 만인 제사장설이었어요. 교황만 제사장이고, 신부들만 제사장이라는 생각이 중세 천년을 흘러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성은 우민화되었고, 카톨릭 지도자들은 타락할대로 타락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모두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 모두 제사장들인데, 그러면 어떤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우리가 드릴 제사는 어떤 제사인가? 로마서 12:1-2절입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유진 피터슨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이 이렇게 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너희를 도와주실텐데, 너희 매일의 삶, 즉 잠자는 것, 먹는 것, 직장에 가는 것, 등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제사로 드려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행하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라. 그것이 너희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시대 풍조에 휩쓸려가지 말아라. 대신, 하나님께 너희의 관심을 총 집중시켜라. 그러면 너희는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에게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즉시 알아차리고 그것에 재빠르게 반응하라. 네 주변 문화 풍조와 반대로, 네가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는 듯 그것에 겨우 겨우 따라가는 식으로 살아가라.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이 오히려 너희의 내면으로부터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난 것을 이끌어내실 텐데, 너는 훌륭한 내적 성숙을 이룰 것이다.
평신도 제사장이신 여러분, 여러분이 드려야 할 제사는 바로 이런 제사입니다. 매일 매일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돼요. 그리고 거기에 재빠르게 반응해야 합니다. 시대 풍조에는 오히려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시대 흐름에 그저 겨우 겨우 뒤쳐지는 듯 살아가면서, 오히려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내적 성숙을 이루어 가는 삶, 그것이 오늘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 산 제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하나, 구약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제사장의 또 다른 역할. 구약에서 제사장들은 법궤를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의 말씀 법궤가 놓여있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제사장뿐이었어요. 출애굽 여정에서 법궤를 메고 갔던 사람들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법궤를 앞세우고 여리고 성을 돌게 했어요.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있었을 때 오벧에돔의 온 집안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법궤가 예루살렘 성에 옮겨진 후 다윗의 왕권이 공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법궤는 승리, 축복, 번영을 상징하는 것이었어요. 이런 법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들어있던 그 법궤를 맡았던 자들이 누구냐, 제사장들이었어요.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과 Contact 할 수 있었던, 하나님 말씀을 접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바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 제사장이신 여러분,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 제사장은 말씀과 직접 Contact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단한 특권이에요. 말씀을 직접 대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 대단한 특권이고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스스로 제사장이라는 자아 의식이 있다면 말씀의 지성소에로 들어가셔야 돼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말씀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그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이고 너무도 귀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큐티 하세요. 여러분 큐티 하세요. 큐티하는 시간은 말씀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승리와 축복과 번영을 약속하는 그 약속의 말씀을 내 것으로 삼는 시간이에요. 여러분, 왜 이런 축복을 놓치시는 겁니까? 왜 이런 특권을 누리지 않는 겁니까?
큐티를 전교회적으로 하자고 큐티 운동을 시작해서 2년 5개월 째입니다. 2년 5개월 동안 정말 잘 따라 오시는 분 몇 분 계세요. 그분들 스스로 자신이 많이 변화되었다고 느끼고 있으실 겁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분들, 또 큐티방에 참여하면서 큐티 생활 잘 하고 계시는 분들, 분명히 달라요. 그렇지 않은 분들과 너무도 달라요. 교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그분들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 4월 집회 진행하면서, 정말 중요한 일들은 큐티방 다 해결되었어요.
A Word-driven Church, 말씀이 이끌어 가는 교회. 우리 교회의 미래입니다. 저의 목회 비전입니다. 철저히 말씀 중심입니다. 철저히 큐티하는 교회로 만드는 것이 저의 최대의 목표예요.
지난주간 큐티했던 것들 몇 가지 나누고 마치겠습니다. 저희 집은 매일 저녁 9:30분이면 온 가족이 같이 모여서 함께 큐티해요. 저와 제 아내는 한국말로 된 큐티 책 가지고 하고, 아이들은 영어로 된 것을 가지고 합니다. 옛날에는 성경 한 장씩 돌아가며 읽는 것으로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한 3개월 전쯤부터 큐티 책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익숙지 못했는데 요즘은 내용도 좋고 Share도 잘 해요. 저희 큰애 예환이가 큐티한 것 소개해 드릴께요. 지난 5월 10일, 전도서 6:1-12절 묵상한 날 큐티 내용입니다. 전도서 6:1-12절은 세상에서 아무리 재물을 얻고 장수하고 소원을 다 이룬다 해도 그것 역시 다 헛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고 저희 큰애가 이렇게 Share했습니다.
I need to stop wishing to have material possessions. Clothes are just materials. They do not give me anything, but a moment of happiness. God gives everything. He controls who gets what. Everything belongs to him. 물질적인 소유욕을 그만해야겠다. 옷은 물질일뿐이다.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단지 잠깐의 행복감만 줄뿐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신다. 누가 무엇을 갖을 지는 하나님이 Control하신다. 모든 것이 그에게 속해 있다.
여러분, 7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큐티한 거예요. 얼마나 외모에 신경 쓰고 좋은 옷, 유행하는 옷 갖고 싶어하는 때입니까? 그런데 큐티를 통해 스스로 깨닫는 거예요. 그런 것 잠깐의 행복뿐이라는 겁니다. 옷 역시 단지 물질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40, 50을 살아도 아직 그것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큐티하니까 12살에 이미 그런 인생의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엊그제 금요일 청년부 모임에서 큐티한 내용입니다. 방학이라 한국 방문하고 또 여행하고, 많이 들 그래서 몇 명 모이지 못했어요. 그런데 참 풍성한 큐티를 했습니다. 본문이 누가복음 7:1-10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그 마을의 백부장이 자기의 종 하나가 병 들어 죽게 되었어요. 마침 예수님에 그 마을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유대인 장로들에게 부탁해서 종을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장로들이 백부장의 부탁을 받고 예수님에게 가서 말씀드렸더니 예수님이 직접 백부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집에 거의 다 왔는데 백부장이 다시 친구들을 보내서 예수님께 수고스럽게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게 해요. 자기 직업이 군인인데, 군인들 상명하복이 철저하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예수님도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고, 말씀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백부장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죠. 이 말씀을 같이 묵상하면서, 백부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특히, 로마 군인이면,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아무리 백부장이래도 이방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배척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보면 유대인 장로들도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벗들도 부탁을 들어주고, 백부장 자체는 종을 \'사랑하는 종\'이라고 할 정도로, 한낱 종에 불과한 자에게 지극 정성을 보입니다. 참 인간성이 본받을 만 해요. 포용력 있고 빈부귀천 차별 없이 누구하고나 좋은 관계를 진실하게 맺는 훌륭한 인격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백부장과 같아야 한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참석한 형제 자매들이 자기들은 참 그렇지 못한데, 심지어 같은 청년부 안에서조차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참 닫힌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 잘못하면 상처 주고 일을 더 크게 만들 지 몰라요. 그런데 큐티하니까 스스로 깨닫습니다. 큐티의 파워예요.
지난 한 주간 동안 저의 생각 속에는 계속 \'죽은 파리\'가 맴돌았어요. 죽은 파리, 무슨 말입니까? 지난 월요일 큐티 본문에 보면 전도서 10:1절인데,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한다. 아무리 귀한 향기름, 값나가는 향수라 하여도 거기에 죽은 파리 한 마리 빠져 버리면 거기에서 오히려 악취가 나고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듯 우리 인생 역시 아무리 값나가는 향수와 같이 성공하여 부귀와 영광을 누린다 하여도 죽은 파리와 같은 것들, 우리 안에 있는 하찮은 욕심, 아직 버리고 있지 못하는 오래된 습관, 미움에 감정 같은 것들이 있다면 그런 죽은 파리들로 인해 그 인생 아무리 향기름 같은 인생이어도 악취가 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나의 죽은 파리는 무엇인가? 그 죽은 파리 없애야 하는데, 계속 맴돌았어요.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큐티의 파워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삶의 질을 더욱 성숙되게 만드는 큐티의 놀라운 힘이에요. 이 큐티의 능력으로 교회가 이끌림받기를 원합니다. 말씀 묵상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지혜가 저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 놓기를 바랍니다.
평신도 제사장이신 여러분, 말씀 묵상하십시오. 큐티하세요. 하나님이 우리 교회는 큐티를 통해 이끄시려 하십니다. 저의 목회 비전도 철저한 말씀 중심, 큐티 중심입니다. 오늘 새롭게 결단하십시오. 지금까지 큐티 안 하셨던 분들, 템피감리교회 교인으로 남아 있으려면, 아니,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이 택함 받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면, 큐티하십시오. 말씀 떠난 제사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큐티하십시오. 큐티를 통해 교회가 더욱 성숙하고 부흥하며, 또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도 일마다 잘 되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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