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있는 불효 자식 눅15:11-32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전도 집회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서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오래 전에 부랑아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가출해서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떠돌아 다녔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이었습니다. 터덜터덜 길을 걷고 있는데 저 쪽 길가에 한 노신사가 서 있는 게 아닙니까. \\\'저 노신사라면 좀 도와줄 수 있겠지.\\\' 그는 다가가서 구걸했습니다. \\\'아저씨, 한푼만 보태 주십시요.\\\' 그러자 그 노신사가 얼굴을 획 돌리면서 쳐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18년 전에 이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식을 두절한 채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항상 아버지가 못마땅했습니다. 그는 다시는 아버지를 찾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가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 아버지를 지금 만난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접니다. 절 알아보시겠어요.\\\'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아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두 어깨를 꽉 잡고 눈물을 주루룩 흘렸습니다. 좀처럼 우는 일이 없었던 아버지가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었습니다. 아들도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었습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음, 너냐. 이것이 너냐. 잘 찾아왔다. 다시는 떠나 보내지 않으마. 한푼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다 주마. 내가 갖고 있는 것은 모두 네 것이다. 그래도 몸은 건강하구나.\\\'
\\\'아버지, 참 잘못했어요. 모든 것을 용서해 주세요. 저, 어머니는 편히 계신가요.\\\'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시다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아들아, 잘 듣거라. 너를 꼭 찾아내어서 하나님께로 잘 인도하겠다고 네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약속했단다.\\\' 어머니는 이 불효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숨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마디도 잔소리하지 않고 교회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됐습니다. 그는 \\\'내 육신의 아버지도 이 방탕한 자식을 용서하시는데 하나님 아버지는 더 더욱 용서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는 자기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효자가 됐고 하나님 아버지께도 효도하는 효자가 됐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자녀들이 부모 속을 썩일 때가 많습니다. 하도 속을 썩이면 두 번 다시 그 자식을 쳐다보고 싶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은 금새 돌아섭니다. 또 그 자식이 보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부모의 마음이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의 참 아버지시니 부모들에게 이런 자식 사랑의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부모의 마음보다 훨씬 더 애절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간혹 부모는 자기 자식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으실 수 없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간혹 부모는 자기 자식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실 수 없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하나님은 우리의 참 부모이십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만드신 참 부모이십니다. 우리의 영을 만드시고 우리의 혼을 만드시고 우리의 육체를 만드신 우리의 참 부모이십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사63:16). 우리의 조상은 우리를 모를 수 있어요. 우리의 할아버지는 우리를 인정치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참 부모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결코 잊지 못하세요. 우리를 결코 버리지 못하세요.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십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찾고 또 찾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65:2).
우리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아무도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삽니다. 여러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큰 소리 뻥뻥 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이것이 어찌 보면 멋진 것 같지만 결국에는 망하는 짓입니다. 우리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인생은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망하게 돼 있습니다.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다가 결국에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목놓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고 찾으십니다. 우리를 만날 때까지 찾고 찾으십니다. 이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 때문에 지금 우리가 여기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롬2:4)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에 보면 아버지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십니다. 한없이 기다리십니다. 목놓아 기다리십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천하에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자기 재산 내어달라고 뿌득뿌득 조른 불효자식입니다. 하도 조르기에 아버지가 마지못해서 재산을 내어주니 며칠도 안 지나서 가출해 버리고 마는 불효자식입니다. 여러분, 어떤 자식이 불효자식입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식이 불효자식입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영원토록 한 집에서 살고 싶어요. 그런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영 귀찮습니다. 바른 자식 만들려고 이것저것 간섭하시는 아버지가 영 귀찮습니다. 아버지 하고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괴롭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고자 합니다. \\\'나도 이제 클 만큼 컸어. 내 인생은 나의 것이야. 언제까지 아버지 밑에서 살겠어. 아버지를 떠나야지. 아주 멀리 떠나야지.\\\'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납니다. 멀리 떠납니다. 아예 다른 나라로 날라버립니다. 십원짜리 하나 남기지 않고 딸딸 긁어모아 가지고 날라버립니다. 아마 이 자식은 아버지한테 작별 인사도 안 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아버지한테 재산 나눠 달라고 했지 이민 가겠다고 그러지는 않았거든요. 천하에 이런 불효자식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자식은 죽도록 고생해 봐야 정신 차립니다. 상속받은 재산을 까먹을 때에야 신났겠지요.
자기가 애써 번 돈이 아니니 아까운 줄도 모르고 펑펑 써 댔겠지요. \\\'내 인생은 나의 것이야. 인생은 즐기는 것이야. 부어라. 마셔라.\\\' 그랬겠지요. 외국인들 앞에서 돈께나 뿌리면서 잘 난척했겠지요.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넘기는 꽃이 없다고 인생의 낙은 잠시 잠깐입니다. 이제 아무 낙도 없는 그런 때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12:1). 아무 낙이 없는 그런 때가 반드시 오는 것이죠.
우리의 참 부모인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인생은 아무 낙이 없는 그런 인생으로 끝장나게 돼 있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큰 소리 뻥뻥 치면서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남는 것은 실패뿐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한테 타낸 그 많은 재산을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엎친 데 덮친다더니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이제 꼼짝없이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질긴 게 목숨이라고 타국에서 돼지를 치면서 그 질긴 목숨을 연명해 갑니다. 둘째 아들은 돼지가 먹는 돼지 밥이라도 주워 먹고자 합니다.
고국에서는 돼지고기도 안 먹던 사람이었습니다. 돼지는 부정타는 짐승이라고 바베큐를 해 주어도 안 먹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를 주워 먹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쥐엄나무 열매라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기구한 인생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는 인생은 다 이렇게 초라한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면 우선에는 속 편해서 좋을 것 같지만 결국에는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망해도 철저하게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그 때가 정말 행복한 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지금 이 때가 정말 행복한 때인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고생 문이 활짝 열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말아요. 돈도, 시간도, 정열도, 건강도, 생명도 다 허비하고 맙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실패뿐입니다. 엎친 데 덮친다고 흉년까지 듭니다. 가난하게 되는 가난흉년이 듭니다. 질병에 걸리는 질병흉년이 듭니다. 귀신 들리는 귀신흉년이 듭니다.
저주에 매이는 저주흉년이 듭니다. 아무 낙이 없습니다. 죽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인생은 다 이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나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이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인생, 예수 안 믿는 인생은 다 이렇게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의 지옥 불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 정신을 차립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눅15:17). 이제 고국으로, 고향으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생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질긴 목숨 부지하자고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머슴이라도 잘 먹고 사는데 나는 이게 무슨 꼴인가.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머슴살이라도 시켜달라고 한번 부탁해 봐야지. 설마 나를 쫓아내시지는 않겠지.\\\' 둘째 아들은 이런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땠습니까. 정말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해서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목숨 부지하자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패한 뒤에야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옵니다. 실패하기 전에는 그렇게 예수 믿으라고 권해도 고개만 절레절레 흔듭니다. 주의 종들이 이 한여름에 문 열린 집집마다 찾아가서 전도하고 있는데 전도하다 보면 거의 쫓아내다시피 거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 예수 믿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인생이 항상 잘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이 항상 청춘인 것은 아닙니다. 이제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반드시 오는 것이죠.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미련한 사람은 인생의 고초를 다 겪고 난 뒤에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은 실패하기 전에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여러분은 어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쓴맛을 다 겪고 나서 예수 믿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업이 한번 꺾이고 나서 예수 믿는 사람도 있겠고 건강이 한번 꺾이고 나서 예수 믿는 사람도 있겠고 가정이 한번 꺾이고 나서 예수 믿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좋아요. 그렇게 꺾인 인생 때문에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올 수 있었다니 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인생이 여러 번 꺾이고도 예수 안 믿는 사람도 많아요.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다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왔으니 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렇잖아요. 여러분,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집 나간 아들, 딸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집 나간 아들, 딸을 찾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잘못했어도 돌아오는 아들, 딸을 좋아하십니다. 내 잘못이니 내가 책임진다고 뿌득뿌득 고집부리는 그런 자식보다는 두 손 번쩍 들고 돌아오는 그런 자식을 좋아하십니다. 염체 차리는 자식보다는 아무 염체도 없는 그런 자식을 좋아하십니다. 예수 믿으라고 권하면 도저히 체면이 안 서서 못 믿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젊어서는 제 맘대로 살다가 이제 늙으니까 천당 가겠다고 예수 믿는 것 같아서 영 체면이 안 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무슨 체면이 있습니까. 그냥 돌아가서 아버지 품에 팍 안기면 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뭘 갚아드리겠다는 것입니까. 돈을 드리겠어요, 뭘 드리겠어요. 하나님은 부족한 게 없어요. 하나님께서 가장 필요로 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아들은 염체 불구하고 아버지를 찿아옵니다. 먹고 살고자 찾아옵니다.
그래요. 사업에 실패한 우리는 다시 사업에 성공해 보고자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건강에 실패한 우리는 다시 건강에 성공해 보고자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가정에 실패한 우리는 다시 가정에 성공해 보고자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하나님 그 자신보다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고자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그래도 상관 없어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염체 따질 것 없어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세요. 하나님 그 자신보다는 자기 자신의 문제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받고자 찾아오는 줄 알고 계세요.
그런 우리라도 사랑하세요. 얼마든지 사랑하세요. 단지 내 문제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해서 하나님을 찾아와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매일 같이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가 저 멀리서 둘째 아들이 나타나자 단번에 알아보고 달려나가 영접합니다.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것은 \\\'네가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어도 용서한다\\\'는 표현입니다. 최고급 신사복을 입히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워줍니다. 이것은 \\\'너를 다시 아들로 맞이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큰 잔치를 벌입니다. 이것은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큰 기쁨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허랑방탕하게 살았다고 해도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 앞에서 체면 차릴 필요 없어요.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살아서 돌아와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머슴들도 다 크게 기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첫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제 맘대로 방탕하게 살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과는 참 대조적이죠. 밭에서 일하다가 집에 가까이 와 보니 글쎄, 큰 잔치 소리로 떠들썩한 게 아닙니까.
장남이니까 빨리 달려가서 아버지한테 왜 그런지 알아보면 금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큰 집안의 장남이니까 얼마든지 그럴만한 권세가 있는 것이죠. \\\'아니, 집안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아버님에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동생 때문에 매일 같이 침울해 하시던 아버님이 아니신가. 무슨 일이지. 아버님이 기뻐하실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혹시 동생이 돌아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즉시로 아버님한테 달려갔다면 이 장남은 천하에 뛰어난 효자가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집 바깥에서 슬슬 겉돌았습니다. 변두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여러분, 장남이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이 변두리가 장남의 자리란 말입니까. 장남이라면 아버지 우편에 앉아서 잔치를 주관해야지요. 어찌 변두리에서 뱅뱅 맴돈단 말입니까.
그것도 모자라서 머슴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어봅니다. 이게 머슴을 불러서 물어볼 일입니까. 그토록 침울해 하던 아버지가 큰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지금 그 사연을 머슴한테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까. 그냥 단숨에 달려 들어가서 아버지한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것입니까. 집 안에 있는 장남도 별 수 없어요. 천하에 불효자식입니다. 둘째 자식 욕할 필요 없어요. 이 잘났다는 장남도 불효자식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마음을 몰라주어도 유분수지요. 천하에 이런 못돼 먹은 장남이 어디 있습니까. 동생이 돌아와서 이렇게 잔치를 벌였다고 하니 이제는 화까지 버럭 냅니다. 화만 내고 집 바깥을 맴돌고 있으니 이 소식이 아버지한테 전해 집니다. 아버지는 잔치를 벌이다 말고 나와서 장남에게 말합니다. \\\'밭 일 하느라고 고생 많았지. 너 오기를 기다렸어. 어서 들어와. 네 동생이 살아서 돌아왔어. 우리 함께 즐기자꾸나. 어서 들어와.\\\'
그러나 장남은 들어가기는커녕 아버지에게 대뜸 분노를 폭발합니다. \\\'아버지, 둘째가 그리 좋으십니까. 창녀와 더불어 먹고 마시고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는데 둘째가 그리 좋으십니까. 일만 뼈빠지게 한 나한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안 잡아 주시더니 둘째한테 그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다니요. 이러실 수 있는 겁니까.\\\' 한 마디로 망할 자식입니다. 일 잘한다고 기특하게 생각했더니 아버지 마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몰라주는 천하에 불효자식입니다. 둘째가 집 나간 불효자식이었다면 첫째는 집 안에 있는 불효자식입니다. 장남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아버지 옆자리가 아닙니까. 아버지 옆에 턱하니 앉아서 잔치를 주관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장남은 집 바깥에서 뱅뱅 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버지를 나오게 만듭니다. 지금 둘째 아들이 돌아와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아버지 얼굴에다 막 분노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다 효자인 것은 아닌가 봅니다.
여러분, 오늘 날로 치자면 이 장남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눅15:29). 여러 해 동안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기고 그 명령을 잘 지켰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이 장남처럼 집 안에 있는 불효자식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착각해도 한참 착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아버지를 잘 섬기는 것입니까. 아버지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 잘 섬기는 것이지 일만 열심히 한다고 잘 섬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장남이 이런 식으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 마음은 둘째 아들에게 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있어도 입맛이 당기지 않습니다. 지금 둘째 아들이 어디서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까 싶으면 아무리 맛있는 반찬도 목에 걸립니다. 아무리 좋은 이불이 있어도 덮고 잘 수 없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둘째 아들이 어디서 벌벌 떨고 있을까 싶으면 아무리 좋은 이불이라도 덮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남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잘 몰라요.
여러분, 집 나간 자식 때문에 한여름에도 가슴에 찬바람이 부는 그런 아버지한테 장남이 해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는 무엇입니까. 먼저는 이런 아버지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둘째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아버지한테 자세하게 전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집에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온 둘째 아들을 최대한 환영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남은 하필이면 둘째 아들이 돌아온 그 시간에 집 주위에서 뱅뱅 돌면서 자기 자신이 아버지를 섬긴 햇수를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날로 치자면 이 장남이 누구입니까. 바로 오래 예수 믿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이것저것 봉사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 부장으로 섬기기도 하고 성가대 대장으로 섬기기도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신앙의 햇수를 따지고 봉사의 햇수를 따지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 믿지 않는 저 불신자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도무지 안중에도 없어요. 그저 자기 자신이 예수 믿고 교회에서 봉사한 햇수만 따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는 사람들은 집에 되돌아온 둘째 아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매주 교회를 찾아오는 초신자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저기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을 찾아나서는 일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자기 일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교회학교 봉사도 하고 성가대 봉사도 하고 식당 봉사도 합니다. 이런저런 봉사를 합니다. 그렇지만 교회 변두리를 뱅뱅 돌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교회가 초신자한테만 관심이 많다느니, 정작 열심히 봉사한 자기 자신에게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안 잡아준다느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초신자한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준다느니, 이것저것 불평이 많습니다. 교회가 어떻다느니, 주의 종이 어떻다느니, 예배가 어떻다느니, 설교가 어떻다느니, 식당 반찬이 어떻다느니 말이 많습니다.
집에 되돌아온 둘째 아들을 영접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목소리로 비난합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눅15:30)이라고 고자질합니다. 둘째 아들이 허랑방탕하게 살기는 살았지만 창기와 더불어 먹고 마셨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장남은 자기 생각으로 둘째 아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초신자가 오면 따듯한 가슴으로 영접해 주기는커녕 \\\'이 사람이 얼마나 방탕하게 살다가 망해서 이제 왔을까\\\' 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는 않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장남도 같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장남은 자기 재산이 축날까봐 걱정스러웠는지도 모릅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둘째 아들이 다시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장남의 재산 중에서 일부가 둘째 아들에게 돌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아버지는 장남과 둘째 아들에게 각각 재산을 나누어 주었어요.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눅15:12).
그러나 둘째 아들한테 자기 재산 뺏길지도 모른다는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 없어요. 이미 장남의 재산은 다 정해져 있거든요.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다시 재산을 나누어 준다면 아버지 것을 나누어 주지 장남 것을 나누어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엄청난 부자거든요. 지금 남아 있는 재산만 해도 무궁무진하거든요.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재산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받을 상급은 이미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와서 받게 될 상급은 우리 것 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부요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불신자들이 얼마든지 몰려와도 다 상급을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 믿은 우리는 신앙의 햇수를 계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예수 믿은 우리는 봉사의 햇수를 계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 믿지 않고 영원히 멸망해 가고 있는 저 둘째 아들들을, 저 불신자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장남은 둘째 아들을 보고 자기 동생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아버지한테 \\\'이 아들\\\'(눅15:30)이라면서 대들고 있습니다. 이 아들이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인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 형인 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저기 교회 밖에 불신자들을 보고 \\\'하나님 당신의 아들들이니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요\\\'라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 불신자들이 예수 믿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 당신의 책임이지 내 책임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저 불신자들이 바로 내 동생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저 불신자들이 바로 \\\'네 동생\\\'(눅15:32)이라고 바르게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저 잃어버린 둘째 동생들, 저 불신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수소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저 잃어버린 둘째 동생들, 저 불신자들을 찾아 나서야 할 것입니다. 저 잃어버린 불신자들을 찾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입니다.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크게 기뻐할 것이다\\\'(눅15:10).
저 불신자들이 돌아오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인간이 돌아오기만을 마냥 기다리실 수만은 없어서 자기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17). 하나님이 먼저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하나님 아버지의 관심은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저 불신자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관심도 저 불신자들에게 있습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요10:16).
여러분, 신앙의 햇수를 따지지 맙시다. 봉사의 햇수를 따지 맙시다. 봉사의 대가를 따지지 맙시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더 나은 대가입니다. 예수 믿었으니 더 잘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영생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필요를 좀 더 풍성하게 채우는 것, 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제는 영생을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아주 절박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나치게 부자되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지 마십시요. 지나치게 건강하게 해 달라고만 기도하지 마십시요. 저기 교회 밖에는 아직도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의 지옥 불로 뛰어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잃어버린 우리의 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불신자들의 문제는 물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닙니다. 바로 영생을 얻느냐, 못 얻느냐 하는 아주 절박한 문제입니다. 저 잃어버린 불신자들을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합시다. 저 잃어버린 불신자들을 찾아 나섭시다. 저 불신자들을 찾고 찾아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큰 잔치를 벌립시다. 그 기쁨을 다 같이 누립시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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