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집 같은 교회

잔치집 같은 교회/눅14:15-24

잔치집 같은 교회
눅14:15-24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굉장한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잔치할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초청장으로 보냈고 잔치를 위한 음식과 자리와 모든 것을 다 준비했습니다.
이제 초청된 손님들만 오면 그야말로 흥겨운 잔치가 한판 벌어질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종을 잔치할 시간에 초청했던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종은 가서 열심히 알렸습니다.
\\\"오십시오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잔치에 참여하기를 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사람은 밭을 샀으니 나가 보아야겠다고 변명합니다.
농사 문제로 매우 중요한 일에 대한 변명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핑계에 불과 합니다.
왜냐면 그 농부가 밭을 살 때 그것을 보지 않고 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서 밭을 산 다음에 밭을 살펴보러 간다는 것은 맞지 않는 변명, 또 혹시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잔치가 끝난 후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겠다고 합니다.
소를 시험하러 가겠다는 것인데 이것도 변명에 불과 하다. 소를 다섯 쌍이나 사는 사람이 그 소들의 상태를 조사해 보지 않고 샀겠는가?
▶또 다른 한사람은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
이 사람은 율법을 오용하여 핑계하고 있다.
신명기 24:5절에 보면 남자가 결혼한지 1년간은 군대나 어떤 공적인 직무에서 면제되는 것을 보장하고 있지만 잔치 같은 사회적 관례에 참석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율법을 가장한 거짓말이요 변명 일뿐입니다.
종이 실망하고 돌아와서 주인에게 그대로 보고 했더니 주인은 매우 불쾌했습니다.
왜냐면, 이미 몇 번씩이나 초청장을 보냈고 사람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청인들을 바꾸었습니다.
종들을 보내면서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에 나가서 가난한자들과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잔치에 참여했고 그래도 자리가 남는다고 보고하자 이번에는 길과 산들로 나가서 간곡하게 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물론 종들은 그렇게 했고 많은 사람들이 주인의 잔치에 기쁘게 참여하여 마음껏 즐겼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한 사람들은 잔치에 참여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주님께서 \\\"큰잔치 \\\"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자가 누구인지를 교훈 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 할 자 즉 구원받을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초청에 순종하는 사람들임을 역설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큰잔치는 천국잔치를
부자 주인은 하나님을
종은 구약 선지자들을 상징합니다.
이 비유에서 세 번의 초청이 나타납니다.
제일 먼저 초대된 사람들은 당시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이 유대인들은 천국 복음, 메시야를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 초청대상은 시내거리, 골목에 있는 가난한 자들과 같이 소외된 사람들인데 유대인들 가운데 무시당하고 있는 창기 세리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그 사회에서 소외되었으나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므로 구원받았습니다.
세 번째 초청 대상은 길과 산울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구원과는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입니다.
이들도 구원의 복음을 영접함으로 마지막 빈자리를 메운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가 일부 특정 민족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며 초청에 응한 사람들이 인간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중요한 교훈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 나라는 잔치 집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잔치 집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하고 예배도 잔치 집과 같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생활도 신바람 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종교요 감격의 종교요 구원의 은총에 감격한 사람들이 감사하므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감격한 사람들이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봉사하며 헌신하는 것이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1)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장에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시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2장에서는 그 분의 첫 이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나타내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잔치 집에 흥을 깨는 포도주를 우리 주님께서 물로 만드시므로 잔치 집에 기쁨을 더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천국은 사람들에게 기쁨, 감격을 주고 신나는 삶을 살게 합니다.
2) 그러므로 성도가 반드시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들 중에서도 희락(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면과 개인 생활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입니다. 성도의 가슴속에 기쁨이 있어야 하고 생활이 신나는 생활이 되어야 하고 그런 성도들이 모인 예배와 교회는 잔치와 같은 축제가 있어야 합니다.
천국의 기쁨은 죽음까지도 초월하게 하는 기쁨입니다. 하찮은 일들로 심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ex)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에서 미국에 가던 여객선이 폭풍우를 만나 침몰 위기에 처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그러나 한 할머니만 태연하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그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기쁘게 찬송만 부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 말씀은 \\\"맏딸은 천국에 있고 둘째딸은 미국에 있으니 여기서 죽으면 맏딸 만나러 천국에 갈 것이고 살게 되면 미국에 있는 딸을 만나게 되니 이래도 저래도 기쁩니다. \\\"
이런 기쁨이 천국의 기쁨이요 구원의 기쁨입니다.
할렐루야!

2.잔치 집의 주빈은 손님입니다.
손님이 있으므로 흥겨운 잔치가 되고 주인도 기뻐하십니다. 잔치는 손님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1)손님은 누구입니까?
초청된 사람들입니다.-불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집안에 있는 자기 식구들 중요합니다. 그들의 참여는 당연한 것이고 잔치에 있어서 주빈은 손님입니다. 그들이 많아야 기쁨의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가 잔치하는 이유는 집에 있는 장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잔치는 돌아온 탕자를 위한 잔치였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기쁨, 천국의 잔치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9인으로 인한 기쁨보다 더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잔치 집 같은 교회, 잔치 집 같은 예배가 되게 하려면 새 신자가 와야 합니다. 불신자가 와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해야 합니다.
ex) 어떤 전도 전문가 목사님은 교회를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을 배로 비유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구원선 같은 교회
타켓이 불신 영혼에 맞추어 전도 , 선교를 예산 조직 운영하여 심지어 시골 교회들에게 제주도 관광을 시켜서라도 불신자 구원 운동합니다. 이런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 잔치 집 같은 교회,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유람선 같은 교회
믿는 자기들끼리만 교제하고 불신자에 관심이 없고 새 신자가 오더라도 무관심하고 오히려 텃새해서 쫒아 버리고 맙니다.
이런 교회는 실상은 죽은 교회 비생산적인 교회요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교회입니다.
막된 말로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어디다 갖다 놓아도 상관없습니다. 불신자가 문제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나라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키엘 케고르는 말합니다.
\\\"현대인은 사형수와 같다. 감옥에서 차례차례 사형수가 끌려나가는데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과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간이기에 누구에게나 복음이 필요합니다. 돈이 필요 없는 이는 있을
수 있어도 복음이 필요 없는 이는 없습니다.
영국 여왕은 여권이 필요 없을 수는 있으나 그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고 성도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불렀습니다.
로마서15: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자신의 선교사역(전도)을 \\\"복음의 제사직무\\\"로 표현하고 자신이 하나님께 드릴 가장 거룩한 제물은 이방인(불신자)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예배 때마다 진짜로 드려야 할 예물은 \\\"불신자, 새 신자\\\"입니다.
전도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헌금보다 중요하고 봉사보다 중요하고 능력보다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잔치 집 같은 교회, 잔치 집 같은 예배, 날마다 잔지하는 심정이 되게 합시다.
그러려면 손님을 데려 와야 합니다. 손님이 많아야 합니다.
도전합시다 !
태신자를 작성하고 기도합시다
예배 때마다 불신자 한 영혼을 제물로 드리도록 기도하며 실천합시다.
예배 때마다 한 영혼을 !
ex)조 지라드의 250명 법칙
판매업계에서는 \\\"고객이 고객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고객에서 친절과 서비스를 베풀면 그 고객이 다시 다른 고객을 불러온다는 얘기다. 고객 한 사람 보기를 250명 보듯 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다.
미국의 위대한 자동차 세일즈맨 \\\"조 지라드\\\"가 바로 그 사람이다.
혼자서 무려 13,001대의 자동차를 팔아 기네스북에 올랐던 사람이다.
그는 왜 고객 한 사람을 250명 보듯 했을까? 원래 그는 타고난 세일즈맨이 아니었다. 노력하여 정상에 오른 세일즈맨이었다.
지라드가 한번은 어느 모임에 참석했는데 참석 인원이 250명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모임에 갔는데 그 모임 인원 역시 250명이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인데 250명 공통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보았다.
결과 한 사람의 인관 관계 범위가 약 250명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래서 250명이라는 숫자를 곧 판매에 도입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조 지라드의 250명 법칙]이 탄생했다.
한 사람에게 차를 판매하면 250명의 사람들에게 차를 팔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전도하면 그로 인해 250명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결론입니다.
전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