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교회

살아 있는 교회/눅13:1-9

살아 있는 교회
눅13:1-9





우리 교회가 창립 20 주년을 넘어서면서 21세기를 맞으려 합니다
이민교회의 특징이 변화라 할 정도로 세워졌다 없어지고 섰다가 스러지는
교회가 적지않은데 20 연륜이라면 역사있는 교회라 할만 합니다.

그러나 역사성만 내세울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생명력이 있느냐 없윰커?있습니다
우린 먼저 살아있는 교회여야 하겠습니다.

어떤 교회를 향해서 살아있는 교회라고 할수 있을까요?
큰 교회당을 건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화제거리가 될 만큼
교회가 대형화 될때에 그것을 목회의 성공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인의 숫적 증가 그리고 늘어난 교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교회당의
건축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큰 건물에다 완벽한 행정력을 갖추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훌륭한 성가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병든 교회가 될수 있고
생명의 빛을 잃은 교회가 될수 있습니다.

지난번 이동건선교사님의 말씀에서도 알수 있듯이 재정러시아가 볼셰비키
공산세력에 의해 무너질때 러시아 황제가 참석하는 제단에 놓인 성경엔
수만 불을 홋가하는 보물이 성경가죽위에 장식품으로 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사제들은 훌륭한 예복을 입고 훌륭한 설교를 했으며 전 인구의 90%가
크리스찬이었고 교회당은 화려했지마는 성직자들은 타락했고 교인들은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

러시아에는 십자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고 하지를 않습니까?
밥그릇에도 가구에도 벽에도 거리에도 십자가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이나 도스도예프스키의 작품에도, 교육, 문화, 예술 사회 풍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적이 아닌 것이 없었지마는 이 러시아의 최후의 날
은 너무 처참했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금은 보화를 가득싣고 처녀들과 도망가던 사제들과 귀족 125만명
이 영하 40도의 추위에서 몰살당했는데 어떤 산모는 애기를 그대로 낳다가
엄마도 애기도 그대로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뼈만 남은 전통을 붙들고 굶주리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던
교회는 혁명과 함께 제정러시아 교회들은 공산주의의 빗자루를 통해 깨끗이
청소질 당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번듯한 예배당은 없어도 공회당을 빌려서건 아파트 거실에서
모이는 교회던 간에 아니 과거,지하에서 몰래 드리던 그 교회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초대교회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는 교회인지 모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교인들의 사회적 성분이나 물질
생활의 윤기, 목사가 공부한 교육수준의 정도 등등은 살아있는 교회의 증거 가 되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갖춰있으면 좋기야 하겠지요. 그러나 교회가 생명을 잃으면
그것들은 오히려 방해물이 되고 무덤의 장식품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는 앞으로 21세기에는 큰 대형건물들이 불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인터넷 문화가 지금도 많이 자리잡아가고 있고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상당수에 달하는 시대 상황을 보면서도 대형교회당 건물 짓기에 급급해 하는 모습을 볼때 이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세기에 유럽의 거대한 수도원 들이나 사원들이 지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안다면 아니 21세기의 변화의 물결은 상상을 초월할 것일텐데
지금 우리가 보이는 것을 중시하며 분망하게 산다면 이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행위일 것입니다.

뿐아니라 지금은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는 시대입니다. 더더욱 보이지
아니하는 공간이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는 때인 것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공간을 오늘의 사회는 많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까닭에 우리는 교회당건축에나 숫자 등의 보이는 외향에 너무 치중해 있다면 우리는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증명을 하는 셈이며 사회를 이끌어 가기는 커녕 퇴보하는 것입니다.

효율적이고 내용있는 선교와 기독자의 삶을 위해 우리는 우리 교회당을
이 곳으로 옮겨 왔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미국사람들이 과거에 융성할때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 놓은
이 예배당 건물, 그런데 미국인 교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오늘 우리가 이
교회를 사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읋 뿐만 아니라 얼마 없어 우리 한국교인들이
이 교회를 다 맡아야 하는 날이 쉬 오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여간 지금의 미국교인들과 유대를 잘하면서 그 분들도 부흥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합력해야 하겠고 피차에 서로가 발전해야 겠습니다.

건물이나 외형이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명력있는 교회란 무엇으로 알수 있습니까?

교회란 교인들이 곧 교회일진대,교인들이 얼마나 생명의 열매를 맺고 사느
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열매라고 하십니다.
無花果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는 나무이며 목재로도 쓸수 없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왜 이 나무를 심었습니까? 단 한가지 그것은 열매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잎만 무성한 것입니다. 생명적인 관계는 잊어버리고 우리가 자리만
채우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이는 잎만 무성한 것입니다.

생명력 없이 교인들이 몇배 늘었느니 기관이 얼마나 확장 되었느니 하는 것은
차라리 肥滿한 교회라고 할 것입니다.

생명력 없는 교인들이 백명에서 생명력없는 이백명으로 늘었다 해도 이것은
성숙이라기 보다 비만에 다름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열매를 맺으며 사느냐에 따라 생명력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외양을 보고서 살았다 죽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는 어떤 경우일까요?

스피노스 목사의 설명을 빌면,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주차장등 공간(space 의 문제가 늘 있는 반면
죽어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으며

살아있는 교회는 늘 변화하나
죽어가는 교회는 매일 똑 같고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 소리로 시끄럽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언제나 조용하고

살아있는 교회는 일꾼이 부족하나
죽어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고

살아있는 교회는 예산을 초과해서 쓰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얼굴의 이름을 알기가 어려워 애먹으나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며

살아있는 교회는 주는 자(giver)로 충만해 있고
죽어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tipper)로 가득차 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위에 운영되며 배우고 봉사하는데 바쁘지만,
죽어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sight)위에 운영되며 교회는 쉬고
편안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활발히 전도(evangelize)하며 선교사업이 활발하나,
죽어가는 교회는 교회당 안에서만 움직이며 점점 굳어가
석회화(fossilize)합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진단해 볼 수 있겠습니다.
205년간 자라오면서 좋은 일만 아니라 아픔도 있었던 줄 압니다.

그러나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라는 노래처럼 연단 속에서 성숙해진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결속하게 된 줄로 압니다

오늘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내어 주의 몸된 교회에 접붙이신 이유는 바로
열매맺게 하려 하심입니다.

옛날 바리새인들은 열매보다는 儀式준행에 목표를 둔듯 했읍니다.
이런 잘못에 대하여 준열한 주님의 책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주 안에 거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을 때 주 안에 거하게 되고 주 말씀
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때에 주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니 그 말씀에 뿌리를
박고 말씀의 진액을 빨아서 신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겉모양이 문제가 아닙니다. 명칭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관상의 대상이 아닙니다.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인격과 나의 생애로 십자가를 지고 책임있게 당신의 나라겅설을 위해 헌신하도록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본문 의 비유를 말씀하기 직전에 주님께서는 두가지 사건을 연상시키셨는데 그 요지는 \\\"회개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회개의 열매를 맺을 것을 말씀하십니다(5절)
주 안에 거한다.맡긴다 등은 회개의 열매가 있은 후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