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웃된 교회

선한 이웃된 교회/눅10:30-37

선한 이웃된 교회
눅10:30-37





선린교회라는 이름은 선한 이웃의 한자어이다. 그래서 선린교회의 뜻은 선한 이웃이 되는 교회라는 뜻이다. 선린교회라는 이름이 탄생된 배경이 되는 성경말씀이 오늘 봉독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하루는 어느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까’하였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그 속에 담고 있다. 사람은 자기의 목적에 따라서 하는 행동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자는 행복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기 때문에 결코 헤매이거나 방황하지 않는다. 마치 푯대를 바라보고 달음질하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전진만 있을 뿐이다.

예수님은 성경을 연구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선생이 아니냐? 성경에 이미 다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고 너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하고 되물으셨다.

그때 율법학자가 가장 정확한 대답을 하였다. 아마 공부를 잘한 사람이었나 보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10:27)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가서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귀한 말씀이다. 성경의 교훈은 생각과 행동을 나누지 못한다. 더구나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이 어떻게 생각과 행동으로 나누어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율법학자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과연 누가 나의 이웃이란 말인가? 내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것인가?’였다.

이 질문은 참으로 이상한 질문이다. 누가 내 이웃이라니?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세계가 다 내 이웃이 아닌가? 불행하게도 당시 이스라엘은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다 이웃은 아니었다. 침략자 로마군인들은 원수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만도 못한 타락자 사마리아도 그렇고 심지어는 같은 동족이라도 로마편에 붙어서 그 진액을 빨아먹는 사두개인들은 정말로 파렴치한 친구들이었다.

결국 율법학자에게 이웃이란 같은 율법학자들 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예배를 드릴때 부정을 타면 않된다는 핑계로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쳐 버려야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보라. 도데체 사람의 생명이 중요한가, 아니면 항상 드리는 제사가 중요한가? 시체를 만진 손으로 제사드리지 못한다는 계명이 중요한가 아니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중요한가?

오늘 우리도 사소한 규칙 운운 하면서 정작 베풀어야 할 사랑을 모른척할 때 우리도 바리새인이 되어버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이리저리 지역을 나누어서 서로 비방하기 급급하니 실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은 선한 이웃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 교회는 참으로 영적으로 깨어나서 선한이웃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 선린교회를 세우신 뜻은 이 지역에 교회가 없어서가 아니시다. 더욱 더 선한 이웃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신줄로 믿는다.




1. 선한이웃된 교회

그래서 선린교회의 일차적인 설립정신이 바로 선한 이웃이 되는 교회인 것이다.

오늘은 특별히 설립 3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선린교회의 설립정신을 다시한번 상기하는 것이 뜻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선한 이웃이 되는 교회만 되어도 충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겠지만, 더 좋은 교회가 되기 위한 7가지 설립정신을 가지고 있다. 온 교우들은 이 정신을 잘 이해하고 교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이런 정신을 잊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자.




2.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는 교회

선린교회의 두 번째 설립정신은 ‘개혁교회의 전통을 이어받는 교회’이다. 개혁교회라 함은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정신을 말한다. 모든 우상을 타파하고 비성서적인 모든 신앙과 삶을 청산하고 항상 모든 시대마다 성경말씀을 바르게 적용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하는 경건운동을 말한다.

선린교회에서는 이 운동을 우선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펼쳐 나갈 것이다. 성경공부는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3. 21세기를 선도해 나갈 정신문화 창조

두 번째 설립정신을 기초로해서 보다 적극적인 실천운동을 펼쳐 나가기를 원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적 정신문화의 창조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사회와 문화를 선도해 나갈 정신적 유산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선린교회는 성경말씀과 기독교적 가치관을 통하여 바로 이 정신문화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보람과 행복을 깨닫게 할 것이다.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진정한 행복이란 없기 때문이다.







4. 새 부대가 되는 교회

네 번째 설립정신은 ‘새 부대가 되는 교회’이다. 이는 전통을 강조하다가 자칫 자라나는 새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무관심하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마다 전통이 바르게 살아있다면 새 부대가 되는 것은 오히려 더 수월할지 모른다. 아직은 우리가 미흡하지만 청소년과 아동부가 더욱 활성화 되어서 새 시대의 주역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하게 증거되도록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정신을 교회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 나갈 것이다.)




5. 은사를 나누면서 성장하는 교회

교회는 성령의 위로와 능력 아래서 전진해 나가는 줄로 믿는다. 교회는 성령께서 살아서 숨쉬는 유기체이며 각 지체들은 나름대로 성령께서 허락하신 은사로 다른 지체들을 섬기도록 하심을 믿는다. 선린교회는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가장 효과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가장 큰 원동력으로 삼는 교회이다. 선린교회에는 성령운동이 있다. 그런데 정말 성경말씀에 기초한, 성령께서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는 운동을 지향하려고 한다.




6. 전인적 회복과 치유로서의 복음

선린교회는 복음이 영혼을 구원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복음과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전인적으로 회복될 수 있으며, 성령께서 이런 치유사역을 교회를 통해서 이루신다고 믿는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 전체를 치유하는 능력이 성령께 있다.

선린교회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설립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매주 목요일 치유와 은사의 집회를 갖는다.




7.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지속적으로 제자들의 주위를 끌게 하신 주제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선린교회도 여기에 주목하는 교회이다. 바로 이곳에서 천국을 맛보며,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궁극적 목표인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는 교회이다.

물론 이 소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국과 같은 강력한 가정과 교회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완벽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곳은 가정과 교회이기 때문이다.

가정과 교회는 천국의 지점이다. 선린교회는 가정과 교회의 순수성을 지켜 나가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