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포도원과 같습니다 막12:1-12
시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방과 후 언제나 소를 몰고 들로 산으로 나가 풀을 먹 였던 일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혼쭐난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 또한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종종 그 때 생각으로 미소지을 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소를 몰고 들로 가는 중인데 그 때쯤이면 소는 배가 무척 고플 때입니 다. 그러니 들판으로 나갈 때까지만 해도 유순하던 소는 들로 나오게 되자 저도 기분이 최고조에 이르렀던지 갑자기 펄쩍 뛰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만 소타래 기를 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는 좋아라 달음질을 하고 그 뒤를 따라가는 저는 아직 초등학생이라 당황하 면서도 소를 잡아야 겠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소를 따라 뜁니다. 그런데 그 소가 일 년 동안 잘 가꾼 콩밭으로 감자밭으로 논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휘저어 다니다가 다시 마을로 되돌아 달려오면서 마을에서도 성질 고약 하기로 유명한 어르신네 포도밭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포도밭은 넝쿨들이 얽혀 있어 터널처럼 되어 있었는데 뛰어 들어간 소가 포도 밭 넝쿨 밑으로 들어가 이리 저리 부딪치면서 포도원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소타래기가 포도나무에 얽히면서 소는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잡혔 는데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포도원 일부가 훼파되면서 포도원 주인어른에게 는 아버지가 3일 품삯을 받지 않고 일을 해주기로 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 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이 주는 의미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포도원 이야기를 통해 악한 농부와 포도원 주인의 관계 를 설명하시면서 당시의 산헤드린 공회원의 사악함을 정면으로 공격하며 책망하 신 내용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의 농작 가운데 포도 재배는 보편적입니다. 그것은 근동지방의 날씨가 맑고 늦여름 밤에는 이슬이 많이 내리는 기후라서 포도나무를 재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광활한 평야에 포도밭을 만들어 수확하는 것을 이스라엘 성지 순례 를 다녀오신 분들은 보셨겠지만 당시의 포도밭은 대부분 산중턱에 만들어 졌습니 다. 산중턱에 만들어진 포도밭은 산 허리띠를 따라 돌 벽을 만들어 쌓아 흙이 내려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둘레에는 짐승이나 도적의 침입을 막기 위 해 울타리를 쳤고 중앙에는 망대를 세웠습니다. 포도원의 경영은 다른 농사보다 힘들고 규칙적인 노동을 필요로 했습니다. 포도는 4-5월이 되면 꽃이 피고 향기가 짙어가면서 7월경에 열매를 맺기 시작 하여 9월에 수확을 합니다. 포도원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소작을 주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 경우에는 소작 인은 수확의 절반을 주인에게 주었고 주인은 수확 때가 되면 종을 보내어서 포 도 열매와 건포도 혹은 포도주를 거두어 오도록 했습니다.
포도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름이 알려진 포도의 종류만 해도 35여 종인데 실 제는 60여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재배되는 포도의 종류만 해도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청포도는 8가지이고 적포도는 10가지, 흑포 도도 10가지 종류나 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포도주 하면 프랑스를 연상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의 포도 주 예찬은 굉장합니다. “포도주 없는 식사는 태양이 없는 날과 같다.” “포도주는 신이 주신 음료, 물은 짐승의 음료이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의 식탁에는 포도주가 빠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포도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상의 음료였습니다. 특히 창세기 27:28절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는 가운데 포도주가 하나님의 축복의 내용 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 기를 원하노라.” 그래서 목회자 모임에서 양식당에서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포도주가 식사 메뉴에 포함되어 있어서 한 잔씩 포도주를 가볍게 하는데 어느 목사님이 짓궂게 물었습니다. “포도주는 마시면서 맥주는 왜 못 마십니까? 같은 주(酒)인데...” 그 때 한 목사님이 대답을 하셨습니다. “나는 예수님 따라 식음(食飮)을 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주는 마셨지만 맥주는 마시지 않았거든요.” 그러자 질문했던 분이 다시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에는 맥주가 없었습니다. 만일 맥주가 있었다면 예수 님도 맥주를 마셨을 겁니다.” “그것은 너무 비약적인 말씀입니다. 성경의 일점일획도 가감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웃고 넘길 농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포도원 이야기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개된 예수님의 비유였습니 다. 이 비유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비유합니다.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소작인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종은 당시의 예언자들입니다. 주인의 상속자인 외아들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무책임하고 탐욕적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 하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를 오늘에 적용하면 어떤 깨달음이 있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 나 이 비유를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따라 사역하지 않고 자기 의 소욕을 이루기 위하여 곁길을 정도(正道)인 줄 알고 행보하는 경우가 있다면 오늘 본문은 경고이며 깨우침입니다.
교회는 포도원
1장에는 포도원의 설치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비유입니다. 비유이기 때문에 본문이 주는 의미가 더욱 심오합니다. 앞에 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주인은 하나님이기 에 오늘에 적용하면 포도원은 교회라는데 이의는 없으며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돌보심이 얼마나 세심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교회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며 돌보시는가를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산울로 두르고’입니다. 하나님의 세심하고도 애정 어린 포도원 가꾸기의 모습입니다. 즉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산울’이란 짐승이나 침입자로부터 포도원을 보호하기 위해 돌이나 가시덩굴 로 만든 담장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교회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쉽게 말씀드 리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만든 오늘의 포도원인 교회를 하나님이 어떻게 방관하시겠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 고 보호하고 지키시는 줄 믿습니다.
둘째는 ‘즙 짜는 구유자리를 파고’입니다. 일상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하여 포도즙을 짜는 틀을 만든 상황입니 다.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지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일상생활까 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셋째는 ‘망대를 짓고’입니다. 이것은 외부의 침입자를 막기 위하여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지키시고 교회를 사단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 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시는 것입니다.
넷째는 ‘농부들에게 세(貰)를 주고’입니다. 여기의 농부들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로서 오늘의 교회 사역자들입니다. 포도 원을 가꾸고 지키는 일을 맡기신 하나님은 크나큰 은혜를 베푸시며 지금도 그것 은 여전합니다. 다섯째는 ‘타국에 갔더니’입니다. 이 말씀은 포도원의 모든 권한을 소작인들, 즉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맡겼 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교회로서의 포도원의 실상입니다. 즉 하나님이 지금도 교 회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맡아 관리하는 오늘의 교회 지도자들도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교회를 파괴하고 포도원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됨 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우리는 1절에서 본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관대함입니다. 즉 소작인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포도원을 관리할 수 있도록 모든 시설과 내 용을 갖추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준비하시고 배려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신뢰입니다. 모든 것을 준비하여 농부들에게 맡기고 멀리 떠났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 에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소작인들의 빚을 독촉하면서 수많은 모욕과 무시를 당했지만 한두 번이 아니 라 끝까지 참으시며 종을 보내 소작인들의 해야 할 일을 촉구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게 그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다리시면서 인내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인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정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종종 오늘날도 그리 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려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안 됩 니다.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 다.
“십일조를 안 해도 사업만 잘 되더라.” “교회 봉사하지 않아도 복만 받더라.” “주일 성수하지 않아도 아무 일 없더라.” “주의 종 괴롭혀도 자식들만 잘되더라.” 정말 그럴까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때’의 문 제이고 ‘정의’의 문제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공의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는 것 이 바로 심판입니다. 그 때는 누구든지 변론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잘 알지 않습니까? 음부에서 고통하면서 부자가 외칩니다. “아버지여,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나사로를 보내서 그들로 하여금 이 고통 받 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 때 아브라함이 깨우칩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아닙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그들이 회개하리이 다.” “그렇지 않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 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씀인지 아시지요? 오늘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대언하는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도 믿지 않고 주의 종들의 외침도 듣지 않으면 죽었던 가족이 살아나 서 천국과 지옥이 있으니 회개하라고 외쳐도 듣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며 사랑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법도와 계명을 지키면서 선지자의 사명을 감 당하는 오늘의 사역자들의 대언(代言)을 듣고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포도원, 곧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이여 사랑입니다. 포도원 관리의 사명
2절 이하는 하나님이 포도원 관리에 대한 결과를 원하시는 내용입니다. 즉 오 늘에 적용하면 교회 관리를 반드시 확인하시고 점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내용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겠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기고 타국으로 갔다가 때가 이르러 포도원의 소출의 얼마를 받기 위해 종을 보냈습니다. 물론 ‘종’은 선지자들입 니다. 그런데 포도원을 맡아 관리하던 소작인들이 주인이 보낸 종을 잡아 심히 때리 고 소출은 주지도 않고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이번에는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을 하여 돌려 보냈습니다. 주인이 세 번째로 종을 보냈는데 이번에는 그 종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종을 보냈지만 때리고 죽이고 하니 주인은 안 되겠다 싶어 외 아들을 보냈습니다. 설마 주인의 아들을 어떻게 하랴 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여러 종들은 선지자들이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을 잡아서 죽이고 포도원 밖으로 내어던져 버렸 습니다. 그것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곧 서기관들, 제사장들, 장로들의 행태였 습니다. 주인은 더 이상 참으로 수 없어 소작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소 작인에게 줘 버렸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서의 교회가 훼파되지는 않았습니까? 포도원의 열매가 있습니까? 그 열매를 주인이신 하나님이 원하실 때 내놓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습니 까?
이 질문에 가슴 아프게도 아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교회들이 많다는 것에 우리는 아파해야 합니다. 직설법을 사용해서 죄송하지만 오늘의 교회의 분쟁이나 분열, 그래서 오늘의 하나님의 나라로서 평화와 기쁨, 감동과 사랑이 충만하지 못한 것은 소작인으로 명명된 목사 장로 지도자들 때문이지 일반 성도들 때문은 분명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포도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교회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 십니다. 교회를 돌보고 관리해야 할 거룩한 사명을 받은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책 망 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포도원 가꾸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가 3:15절에는 포도원과 관련된 중요한 경고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이 말씀은 포도원을 허는 여우가 있음을 일깨우면서 그 여우를 잡아야 포도원 의 꽃이 떨어지지 않고 열매를 맺게 됨을 일깨우는 깊은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 다. 구약 주석학자들은 교회를 허는 여우같은 것들을 쫓아내라는 것으로 주석했습 니다.
꽃이 피는 포도원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꽃이 핀 포도원은 열매를 바라보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꽃이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포도원을 관리하는 것은 농부의 당연한 사 역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종종 여우같은 것들이 포도원을 헐어버림으로 꽃이 떨어지는 경 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비록 작은 여우라 할지라도 그 작은 것이 연한 포도가 달리기 시작하는 때에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곧 사단입니다.
무엇이 여우입니까? 불평과 불만, 비판과 정죄, 나태와 탐욕, 교만과 아집, 이기주의와 편견, 미움 과 분쟁, 이 모든 것은 교회를 허는 여우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여우를 잡아야 하고, 교회적으로 이런 여우를 잡아야 하고, 노회나 총회적으로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개인주의를 앞세워 자기 소욕을 위해 하나님 의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목사와 장로들에게 맡겨서 포도원을 잘 가꾸기를 원하십니 다. 당연히 하나님이 교회에 원하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교회가, 즉 오늘의 우리 성도들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잘 관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나 지금이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탄생시 킨 교회가 아름답고 행복한 열매를 맺는 포도원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의 목사가 악한 농부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목사를 도와 성도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은 치리자로서의 당회원들 이 악한 농부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각성하고 기도하면서 포도원 관리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고, 성 도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포두원의 귀한 열매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더욱 열매 맺는 포도 원 같은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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