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교회

함께 가는 교회/막14:42

함께 가는 교회
막14:42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차고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금년 한 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질병과 가난, 음부의 권세가 물러가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금년 한 해 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고(=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금년 한 해는 무엇보다 우리가 기도에 힘쓰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고,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기도하는 데 너무 힘이 약해져 있습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저대로 여러분은 여러분대로 금년에 기도하는 일에 더욱 분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새벽기도는 물론이고, 금요 특별기도회에도 많이 참석하여 열심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길을 걸어가려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유대 관원들에게 스스로 잡히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걸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같이 갈 것을 부탁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다 떠나고 맙니다. 예수님은 그 생애 마지막 길을 홀로 걸어 가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길을 걸으시기를 원했지만, 제자들은 그 길을 같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을 다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처럼 고난의 길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따라간 예수님의 고난의 길은 결국 영광의 길이었고, 세상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왜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같이 갈 수 없었다가 나중에는 같이 갈 수 있었습니까? 처음과 나중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저는 한 가지 분명한 차이가 있었음을 압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나서는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감람산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바로 앞에 놓으시고 철저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에 제자들도 동참할 것을 거듭거듭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피곤할 때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지 모릅니다. 새벽기도 때 자칫 잘못하면 비몽사몽 헤매다가 갈 때가 있습니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면 그래도 낫지만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면 새벽에 나와 기도하는 일이 보통 피곤하고 힘든 일이 아닙니다. 자꾸 자꾸 집중을 해도 자꾸 피곤해 지고 정신이 혼미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때는 기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집에 가서 다시 이불 속에 들어 갈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도고 뭐고 은혜고 뭐고 다 생각이 혼미해지고 그저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이 십자가 지러 가는 길에 일어나 함께 가자 하니까 다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졸다가는 한이 있어도 새벽마다 새벽기도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은혜를 주십니다. 다 조는 것은 아니거든요, 얼마를 기도해도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 마음과 그 정성을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초청하신 철야새벽기도에 나와 거의 몇 분 기도하지 못하고 다 깊은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주를 위해 훌륭하게 쓰임 받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졸다가는 한이 있더라도 새벽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결코 같이 가자는 주님의 초청에 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난 다음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분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한 열흘을 합심하여 기도하였을 때,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 그들은 어디든지 예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따라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비록 부족하고 힘이 없어도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부르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말입니다. 그 길은 여전히 고난의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한없는 영광의 길입니다. 저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초청하시는 이 초청에 겸손하게 아멘 하며 순종하여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에 우리가 다 같이 하여 일어날 때, 우리 천안성은교회는

<함께 가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칼럼에도 썼습니다만 교회는 함께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함께 가는고 하면 주님과 함께 가야합니다. 저도 주님을 따라 나서고 여러분들도 다 주님을 따라 나설 때, 우리 천안성은교회는 주님과 더불어 온 성도가 함께 가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인 것이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역예배를 통해서도 배웠겠습니다만.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느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피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교회를 정의 할 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주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가 같이 가야합니다. 몇몇만 예수님을 잘 따르는 것, 몇몇 사람만 충성하고 몇몇 사람만 헌신하는 것을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피를 값 주고 사신 모든 성도들이 다 같이 주님을 잘 따르는 것을 원하십니다.

금년 표어를 <함께 가는 교회>로 정한 것은 몇몇 사람들만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이 다같이 같은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기 때문에 정한 것입니다. 물론 다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한 몸에도 여러 지체가 있듯이 교회에도 다양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각 지체가 하는 일은 다 다릅니다. 손이 하는 일과 발이 하는 일이 다릅니다. 눈이 하는 일과 코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심장이 하는 일과 허파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그런 것처럼 각기 다른 달란트를 가진 성도들이 하는 일들도 다 다른 것입니다. 목사가 하는 일이 다르고, 전도사가 하는 일이 다르고, 장로가 하는 일이 다르고, 권사가 하는 일이 다르고, 집사가 하는 일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른 것만큼 같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똑같은 것은 다 한 몸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고, 서로를 위해 일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직책과 서로 다른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몸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어 간다는 데에는 일치합니다. 더불어 함께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이 일단은 자기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저는 기도하고 말씀 가르치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장로님은 기도하고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안수집사님들은 교회의 살림살이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권사님들은 기도하고 연약한 성도들을 심방하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구역장과 교사들은 작은 목사가 되어 각자 맡겨진 양떼를 위해 기도하고 가르치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성가대는 찬양하는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예배드리는 일에 삶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일이 두 번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주일날 아무 일 없을 때는 교회 가는 날이 되고, 뭔가 조금이라도 일이 생기면 재껴 버리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주일을 성수할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2부 예배 참석이 어려우면 1부 예배라도 꼭 참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1부예배에 참석하였다 할지라도 2부예배에 시간이 되는 분들은 꼭 2부예배도 참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 저녁예배, 삼일 저녁예배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잘 참석해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안 참석하는 게 잘하는 것이 아니고, 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각자 자원봉사 일을 맡으신 분들은 성실하게 자기가 맡은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저는 요즘 참 감사합니다. 자원해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서 그렇습니다. 이전 같으면 주일 예배 끝나면 예배당이 정리정돈이 거의 안 돼 있었습니다. 누구하나 예배후 예배당의 뒷모습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냥 예배드리고 가면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본당은 물론이고 유아실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어지럽혀 놓은 것인데도 자기가 않은 자리 옆도 제대로 신경을 써서 치우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예배후 예배당이 너무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저는 누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화장실에도 깨끗한 수건이 걸려있고, 휴지가 제대로 걸려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 하려면 제대로 하기도 쉽지 않고, 귀찮기도 하고 피곤한 일이 될 수 있지만, 각자가 책임 맡은 부분만 정리하니까 누가 하는 지도 모르게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함께 가는 교회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예배 순서를 맡은 분들이 자기 당번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기도 당번은 정성스럽게 준비하였다가 자기 순서가 되었을 때 틀림없이 그것을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제가 암말도 안하고 빠지던 말던 말을 안 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왜 빠졌냐, 못할 것 같으면 진작 말해서 다른 사람이라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 되겠느냐는 등 따지고 들지도 모릅니다. 일년에 몇 차례 하는 당번을 빠뜨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헌금당번은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헌금 당번이 늦게 와서 자기가 헌금당번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다가 허둥대고. 찬송가 시작해서 그 때 부리나케 가운 갈아입고 단추도 제대로 꿰지도 못한 채 봉사해서야 되겠습니까? 앞으로 헌금당번은 최소한 예배시간 10전쯤 미리 와서 이 앞자리에 두 분이 나란히 일찌감치 가운을 갈아입고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 여기 한 명 저기 한 명 앉아 있다가 무슨 드라마 인기 대상 받는 것처럼 저 뒤에서 나오지 말고 이제는 이 앞에서 준비했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는 예배 시간에 지각하지 않도록 조금씩 더 신경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각은 습관입니다. 한 번 지각하다보면 자꾸 지각하게 됩니다. 어쩌다 한 번 늦을 수는 있지만 번번이 늦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젠 우리 교회는 만6살이 넘었습니다. 아이들은 만 6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는 유치원 수준은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이 질서 있게, 그러면서도 은혜 있게 잘 진행되어 갔으면 좋겠습

니다.

금년 한 해 정말 저와 여러분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큰 뜻을 잘 이루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부족한 우리들을 붙들고 같이 가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기도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늘 기도에 힘쓰면서 하나님과 함께 가면서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금년 한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