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예언자적 사명 눅3:7-14
얼마 전에 청소년의 의식을 조사한 한 설문 조사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서울의 고등학교 학생 1000명에게 \\\"남북통일이 되기를 바랍니까?\\\"라고 물었다. 그 결과 30%가 그렇다고 하였고, 23%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으며, 놀랍게도 47%가 남북통일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더욱 놀랍다. 우선 경제적인 이유에서 남북통일을 반대했다. 남북통일이 되면 가난한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할 텐데, 그럴려면 남한 국민들이 희생을 해야 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굳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봐 가면서 통일을 할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인 불안정 때문에 남북통일을 반대한다고 했다.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혼란이 올 것이고, 잘못하다가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굳이 그런 어려움을 감수해 가면서 통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것이다.
무척이나 영특한 생각이다. 이미 청소년들 마음속에 나라와 민족은 그 의미를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그렇다면 기성 세대들은 어떻습니까? 아이러니 하게도 이북 출신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통일을 반대하고 있고, 교계에서는 장로님들이나 목사님들이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지금은 아직도 통일의 시기가 아니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 같으면 저들이 빨리 통일이 되어 고향엘 돌아가서 거기서 목회를 하고 교회를 섬기지 않을까 하였는데 저들은 통일이 되어도 고향엘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 때 시행했던 햇볕 정책이 그 빛을 발하여 냉전 시대가 가고 평화 협력의 시대가 와서, 금강산 관광이나 이산가족 상봉이나, 경의선 철도 복원 공사와 사차선 공사, 개성공단 조성 등 그 성과가 혁혁하지만 아직도 극우 세력들의 어떠한 음모와 일부 집단의 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는 이상 통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늘은 6.25가 발발한지 53주년이 되는 날이다. 민족 비극의 그 날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다시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없어야 된다는 것을 간절히 염원하면서 조국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기다리면서 이 세대에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세대에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예배와, 세상을 복음화시킬 전도와, 제자훈련을 위한 교육과, 섬기는 자로써의 삶인 봉사가 있고, 외적으로는 우리 민족을 위한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다.
본문에 나온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백년 동안의 길고 긴 침묵의 시대를 깨고서 혜성같이 나타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오랫동안 대망 했던 메시야의 시대가 막 도래하려 함을 선포한 자로서, 그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을 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을 잇는 가교의 위치에 선 자로서 구속사의 새 지평을 열 메시야의 도래가 임박하였음을 선포하였고, 메시야께서 시행하실 종말론적 심판을 강조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면서도 세상 죄를 지고 가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심판을 시행하실 분으로 오직 그에게만 희망이 있다고 전하면서, 아울러 사회 현실에 대한 성도들의 책임을 고취시키고, 일반 백성들은 나누어주고 베풀며, 공무원들은 뇌물을 먹지말고 월급 외에는 다른 것을 탐하지 말 것이며, 군인들은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그 시대에 세상을 깨우고 죄를 책망하며 희망을 준 예언자적 삶을 산 사람이다. 우리도 이 세대를 살아가는 성도들로써 세례 요한처럼 예언자적인 역할을 훌륭하게 해야 할 것이다.
1.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본문 눅3:7-9보면,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고 하였다.
세례 요한은 아무도 살지 않은 광야에서 불의와 죄악으로 점철되어 있는 그 백성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격한 언어를 사용하며 다가올 심판과 재앙을 선포하면서 경고의 나팔을 불고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은 심판하실 것이지만 자기들은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심판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에게 민족적 특권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저들이 지은 죄를 눈감아주지 않고 반드시 심판한다고 경고를 하면서 그것이 지금 눈앞에 와 있다고 하였다.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들을 위한 선지자라면 이 정도의 담력과 애국심을 가지고 경고의 나팔을 불 수 있어야 한다.
파수꾼은 졸지 않고 높은 망대 위에 서서 적군들의 동향을 살피다가 적들이 처들어온다거나 이상한 기미가 있으면 잽싸게 나팔을 불어 대비케 하여야 하고, 나라와 백성들이 잘 못을 범하고 죄악을 저질렀을 때 나팔을 불어 멸망과 재앙을 당하지 않도록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들이 시대와 역사의 파수꾼이 되어 다가오는 멸망과 심판을 알려 주어야 하고 다가올 주님의 재림과 임박한 재앙과 환난을 경고해 주어야 한다.
예레미아는 끓은 가마 환상과 살구꽃이 피는 환상을 보고 다가오는 멸망을 그 백성들에게 알리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에 빠지고 불법을 저지른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 요엘 선지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메뚜기 재앙과 극심한 가뭄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다가올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그 백성들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선지자들의 중요한 역사관을 발견하게 된다. 즉 나라의 장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고 아무리 군사력이 든든하고 경제력이 풍부하여 국력을 키우고 최신식 무기를 도입하여 방비를 하여도 그것이 나라를 지탱해 주고 전쟁을 막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은 민족의 파수꾼으로 당쟁에 휩싸여 정신을 못차리고 허둥대는 정치인들에게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하여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를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반역도당으로 몰아 귀양을 보냈고, 결국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격어 나라가 초토화되었던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과거 우리 한국 교회가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부정부패로 얼룩진 자유당 정권과 해이해진 백성들의 정신을 지적하고 책망하면서 경고의 나팔을 불었다면 6.25라고 하는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물질문화로 오염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황금만능주의로 살았던 백성들과 위정자들을 규탄하고 바른말을 했더라면 IMF라고 하는 국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 나라는 참여 정부가 들어 선지 10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안정되지 못하고 경제는 악의 수준으로 나빠져 국민들의 삶이 어렵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이 공무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직도 발목 잡기와 흠집 내기에 열을 올리고 부정부패에 빠져 있으며, 백성들은 무관심과 물질문화에 도취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 어떠한 재난과 어려움이 다가 올른지 모른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파수군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다가올 심판과 재난을 알리며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2. 죄악을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촉구하여야 한다.
눅3:9보면,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였다. 다가올 심판과 도래할 하나님의 날을 경고하였으면 이 민족과 백성들의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하여야 한다.
세례요한은 가차없이 죄를 규탄하고 회개를 촉구한 정의 선지자이다. 그는 광야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하늘에다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기를 이십여 성상, 드디어 그의 가슴을 뚫고 하늘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빈들의 소리가 되어라 그리하여 주의 길을 곧게 닦아라\\\"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기 시작하였다. 그는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을 향하여 발을 구르면서 소리쳤다. \\\"열매 없는 나무들은 모조리 찍혀 불태워져 버릴 것이다.\\\" 참으로 간담이 서늘한 소리요 전에는 전혀 들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소리였다. 그 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마귀 뒤집어 놓기 시작하였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거나 저들에게 듣기 좋은 달콤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죄악을 그대로 폭로하며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악담을 퍼부으며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고 해서 죄악의 대한 심판을 면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 돌로도 만들 수 있으니 너희들의 특권을 주장하지 말고 영적 무감각 상태에 빠진 영혼들을 일깨워 모든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악들을 예수 앞에 들고 나가 씻음 받게 하기 위해 그토록 단호한 질책을 서슴치 않고 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회봉사, 도덕과 윤리의 정립과 실천, 사회 구원을 이루는 일 등 많은 것이 있지만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사회에 대하여 죄악을 회개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죄악 된 세상은 병든 세상이요, 병든 세상은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며 수술을 하게 되면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죄에 대한 대가가 치루어지기 전에 진심으로 회개하여 형벌을 면해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별 볼일 없이 여기며 별 신경을 쓰지 않지만 죄가 쌓이고 성을 내면 나라를 망하게 하고 교회를 무너지게 하며 가정을 불행에 빠지게하고 사업을 망하게 만들고 농사를 쫑치게 한다. 그러기에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복잡한 문제들이 많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대의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남북 문제이다. 남북 정상이 만나서 교류의 물고를 텄다. 앞으로 어떻게 교류하고 나아가 통일을 이룰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당면 문제가 되었다. 또한 21세기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기 위해 갖가지 구조 조정과 개혁이 중대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두 가지 문제가 가장 힘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현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정신적인 지주가 무너져서 수많은 범죄와 가정 문제와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삼국 시대의 정신적인 지주는 화랑정신이었고, 고려시대는 불교정신으로 인한 호국과 안보였으며, 이조 시대에는 유교 정신인 삼강오륜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인가? 국민들의 마음 속에 정신적인 지주가 비어 있는 자리에 허영과 허무주의와 향락과 부귀영화가 자리를 잡고 국민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 기독교는 비어 있는 정신 속에 \\\'경천애인\\\'의 정신을 채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정신이야말로 이 시대를 구원하고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영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밝은 앞날을 위해서 더 본질적이고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 바로 우리 민족의 죄의 문제이다. 여기서 죄의 문제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힌 담을 말한다. 이 담을 헐고 우리 민족이 하나님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 문제는 본질적이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모든 죄악을 내 놓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지 의인을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니니 탕자처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와 민족의 죄를 우리가 지은 것처럼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받기 위하여 회개 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회개할 때 나라가 살고 백성이 복을 받으며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뻗어 나가 세계 속의 한국이 될 것이다.
3.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으면 이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여야 한다. 그 민족을 위하여 회개를 촉구한 세례요한에게 백성들과 공무원들과 군인들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냐고 질문을 했을 때,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첫째로 백성들에게는 \\\"옷 두벌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고 이웃을 위하여 베풀고 나누며 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경제 사회와 경제 생활 윤리에 대한 부조리와 악을 시정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여 부익부 빈익빈 상태에 있어, 있는 자는 배가 터져 물건이 썩어가는데 가난한 사람은 배가 고파 죽어가는 이 사회는 분명히 병든 사회요, 심판을 받을 사회요, 파멸한 사회다. 본래 공산당은 그런 사회에서 생긴 것이다. 공산당은 모든 사람의 소유권을 박탈하며 똑같이 나눠 먹고 다같이 잘살자는 명목에서 생긴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농부와 노동자들이 이에 호응하여 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름 뿐이요 모든 사람이 공산당원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뼈저리게 경험한 대로 공산당 세계의 당원은 호화스러운데 그 백성들은 못살고 고생과 학대와 구박을 받고 자유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있는 자를 향해서 외친 \\\"나누어주어라\\\"는 호소는 공산당들이 외치는 \\\"빼앗아 먹자\\\"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류애에 입각하여 사회 정의를 구현하여 다같이 자유를 공유하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희망의 메시지 인 것이다.
둘째는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받아먹지 말라는 말이며, 세무 행정에 부정이 있어서는 안되고, 탐관오리가 되어서는 안되며, 백성을 위한 공직자가 되어 백성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가 되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 나라는 부패 정국이 되어 비리가 판을 치고 정치인들 공무원들, 심지어는 백성들까지 부정에 연류되어 썩어 있으며, 날마다 부정부패를 파헤치고 정의를 세우는 일에 싸우며 시간을 다 허비하고 있다.
가짜 영수증과 이중 장부, 탈세와 착복, 공금횡령, 가짜 상표와 눈속임이 횡행하고 있고, 법정에서는 유전 무죄요 무전 유죄가 통하고 있으며, 교육계에서는 실력이 아닌 돈에 의하여 선생이 팔려가고, 사회에서 권력이 통하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억누르는 사회이다. 세례요한은 이러한 사회가 없어지고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인격을 존중하며 정직하게 돈을 벌고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셋째는 군인들에게는 나라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일에 그 본분을 다하라는 것이다. 군인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벗어나 정치에 기웃거리고 줄서기를 하며 나라를 전복하는 일에 병력을 동원하고 국민들에게 총칼을 들어 대서는 안 된다. 투철한 군인 정신으로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이 편히 살수 있도록 국방을 튼튼히 하고 파수꾼의 역할을 다하여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처럼 호기를 부린다.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문제를 자기 힘으로 풀 수 있을 것처럼 장담을 한다. 남북통일의 문제가 그렇고, 국가 발전이 그렇다. 그러나 세계와 민족의 문제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하고 하나님께서 역사 하셔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자는 복이 있고 희망이 있다.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으로 사는 자는 희망이 있다. 그 날을 기다리며 늘 기도에 힘쓰자.
교회가 잠들어서는 안 된다. 물질 문화의 유혹에 빠져 세속화되어서는 안 된다. 시대의 죄악상을 보고 눈감아주고 짖지 못한 개가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죄악으로 인한 멸망을 경고하고, 회개하면 용서함을 받고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며, 여호와의 날이 세상 사람들에게 심판의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영광 받을 날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여 민족과 백성들에게 생기가 넘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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