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회 생활이 되려면 눅4:16-21
여러분의 교회 생활은 어떠합니까? 교회 생활이 행복하십니까? 불행하십니까? 그런데 행복한 교회 생활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은 교회생활이 차지하는 것이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하고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한 일주일을 지내고 집에서 쉬거나 다른 곳에 놀러가지 이곳에 와서 앉아 계시기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목자들이 울산 큰빛 교회에 가서 가정교회 평신도 지도자 세미나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갔다 와서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그 교회 교인들은 행복한 신앙 생활을 하는 것 같더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목자들이 자기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충성하는 것 같더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동시에 하는 이야기가 울산 큰빛 교회 조태환 목사님하고 다른 점도 있지만 저하고 비슷한 점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휴스턴침례교회 최영기 목사님을 상당히 존경하고 그분의 삶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갔다 와서 저에게 이런 저런 주문을 많이 했습니다.
저가 다녀온 목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되는 것은 보고 느끼는 것하고 말로 느끼는 것하고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미 이야기를 다 해준 것인데도 불구하고 처음 느낀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것이 간접적으로 듣는 것의 한계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동기를 심어주는 것이 약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가정교회에 관한 책도 읽게 하고 비디오 Tape도 보여 주고 설교도 여러 차례 했는데 시간이 흘려가니까 많이 퇴색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주간에 인터넷으로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에 들어가서 가정교회 모든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분명한 원리를 붙잡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동시에 최영기 목사님이 울산 큰빛 교회 와서 주일날 설교한 내용을 큰빛교회 홈페이지에서 방문하여 다 들었습니다. 최목사님의 설교가 행복한 교회가 되려면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본 교회에서 이미 8월 달에 설교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또한 목자들의 보고를 들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정말 행복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시한 목자들과 모든 교회 성도님들이 더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해야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려고 하면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목사인 저가 제일 많이 힘을 써야하고 목자들이 동시에 힘을 써야 하고 모든 성도들이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와 많은 교인들이 어떻게 해야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여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제가 볼 때우리 교회 성도들은 어느 정도로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아직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무슨 이유 때문에 행복한지 또한 어떻게 해야 행복한 지를 모를 것 같으면 우리가 가진 행복을 잃을 수가 있고 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가 없습니다. 오늘 설교는 최영기 목사님의 설교에 상당한 도움과 힌트를 얻었다는 것을 밝혀 드립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왜 행복한지를 살피고 이러한 행복의 요소를 분명히 의식하여 상실하지 않기를 결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교회를 만들 수가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면 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교회입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61장에서 예언한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눅 4:16-21). 예수님이 공생애 첫 번째로 하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 1:23). 또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말합니다(골 1:18). 교회는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하던 사역을 물려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주님의 소원을 마땅히 풀어 드려야합니다. 부모의 간절한 소원은 자식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도 그의 자녀인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2) 행복은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린 보상입니다
놀라운 것은 진정한 행복은 행복 그 자체만을 추구하면 내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부부도 행복을 추구하면 행복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부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 행복한 부부가 됩니다.
참 행복은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칼부세가 노래한 대로 저 산 너머 저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 찾아갔더니 행복은 찾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왔다는 그 고백이 어찌 시인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참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신 예수님의 소원을 우리가 풀어드리면 행복은 그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면 됩니다. 부흥되는 교회를 살펴보면 교회의 목표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서 61장에 선포되고 있는 것들입니다.
0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捕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傳播)하며
02 여호와의 은혜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伸怨)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0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花冠)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喜樂)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본문18-19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복음 전파에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도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막10: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교회가 바로 영혼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영혼을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면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고 행복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관심은 영혼 구원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되는 되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을 해도 분명한 사명선언을 하고 기업을 합니다. 교회도 사명 선언을 해야 합니다. 교회도 미션 스테이트먼트 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분명한 목적을 알고 살아가면 행복합니다. 교회도 이 사명을 감당하면 행복합니다.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 미국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의 예를 들면 휴스턴에 총영사가 있는데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교인들을 보니까 너무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고 성경공부를 차례차례 되로 공부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최목사님 사모님이 한번은 시장을 가게 되었는데 자기는 아무 교회 나가는데 서울침례교회에 나가면 너무 너무 좋더라고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황당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성도님들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목장에 나오면 행복하고 우리교회 나오면 행복하다고 전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목장과 교회가 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면 저절로 이런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2. 성령의 충만해야 한다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의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행복한 교회가 되려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지 못하면 행복한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주님도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막 1:10).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러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성령이 내릴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예수님이 기도한 것이 이상했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기도 하셔야 할까요? 지상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을 비웠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했고 성령이 필요하셨기에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기도해야 하지 않아야겠습니까? 행복한 교회가 되려면 교회가 성령이 충만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성령 충만한지 어떻게 압니까?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성도들이 변화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를 예를 들면 어떤 자매님이 생명의 삶을 끝내고 간증을 하는데 생명의 삶을 하게 된 이유를 쓰라고 하니까 떠밀려서 마지못해 했노라고 하였습니다. 3달 전만 해도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삶을 공부하다가 변화를 받았습니다. 간증 마무리를 하면서 나는 미신을 섬기는 어머니가 예수를 믿게 해달라고 아침마다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변화 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교회에 관하여 극히 부정적인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전도자가 된다는 사실은 인간적으로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서울 침례교회는 예배 때마다 성도들이 많이 운다고 합니다. 특히 남성들이 눈물을 줄줄 흘린다는 사실은 설명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정교회를 시작한지가 1년이 다되어갑니다. 목자님들 목자하기가 어렵지요. 우리교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처음시작 할 때는 모두가 힘듭니다. 서울 침례교회도 목자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그만 두려고 하니까 쪽이 팔리고, 멀리 다른 도시로 이사까지 갈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여성도들이 남편들이 목자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목자 사역이 힘들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목자가 되고 싶어하고 목자가 될 것을 권유받았을 때에 거절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설명이 어렵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교회가 갈라질 수 있는 큰 사건이 생겨도 큰 문제가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관여된 사람들에게 영적 성장의 기회가 된다는 것은 설명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이 비결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고 시원한 해답이 없으니까 목사님이 비법을 감추어놓고 공개하지 않는가? 까지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한 마디로 대답한다면 성령 충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것 설명할 수 없고 이해 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1)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지도자에게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성령 충만한지 안 한지는 담임 목사에게 달렸습니다. 목장이 성령 충만한지 안 한지는 목자에게 달렸습니다. 지도자가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교인들이 성령 충만하면 여전히 행복한 교회가 못됩니다. 오히려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영혼을 맡은 자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서 성도들이 목원들이 성령 충만해져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성령 충만한 목회자가 되기를 바라고 누구보다도 영혼을 사랑하는 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의지합니다.
어떤 교단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최영기 목사님은 하루에 3시간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그분도 솔직히 고백하기를 하루 3시간을 채우지 못할 때도 많고 기도하다가 졸 때도 많지만 하루에 3시간씩 기도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주 금식을 합니다. 이러한 것이 쌓여서 기도할 때에 질병이 떠나가는 치유의 역사도 가끔 나타나고 손 얹고 기도할 때에 방언이 터지는 역사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자신이 없어서 목사님이 기도해 주어서 나았다고 하면 정말이요 할 정도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나름대로 기도하기를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수영 하 한다고 못하고 있지만 7시까지 기도하기도 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기도 하고 저녁에 1시간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만큼을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긍휼을 사모하고 성령의 역사를 사모합니다. 최소한 하루에 십일조는 하려고 합니다. 2시간 24분입니다. 그래서 저가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삶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사역을 하였습니다.
14절에도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리리에 돌아가시니... 라고 하였습니다.
정근두 목사님은 이 말씀을 부여잡고 유학 8년을 청산하며 조국으로 돌아갈 때 예수님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이것을 두고 기도합니다. 신학교 7년, 수많은 말씀 읽기, 설교 등등 오랫동안 제자훈련을 거치면서 마지막 결론으로 주여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해야겠습니다.
이것만이 교회의 살길이고, 저의 살길입니다. 권능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복음전파의 사역은 성령의 권능으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마지막 결론이 여기에 다 모아지고 있습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슥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기도로서 이 힘을 얻었습니다. 찰스 시몬은 이 힘을 얻기 위해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20년 간 기도했습니다. 루터는 만일 나는 이 능력의 비결을 깨닫지 못하였다고 하면 그 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만일 3시간 기도하는 능력의 비밀을 몰랐다면 나는 마귀의 장난감이 되었을 것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 성령 사역에 관한 책도 읽어야하고 성령님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집회에도 참석하여야 합니다. 성령님을 이처럼 사모할 때에 그를 통하여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도자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 교회가 성령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의 열매를 더 간구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사역을 강조하고 성령님의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교회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교회와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고 분열을 일삼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유는 성령님의 은사를 사모하고 성령님의 열매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은사를 받았다는 개인이나 성령님의 은사가 많이 나타났다는 교회 가운데에서 시작은 성령으로 되었지만 현재는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은사가 나타난다고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단도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는 한번 성령 충만 받으면 그 다음에는 항상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에 고백되지 않는 죄가 있으면 사단이 우리 삶에 역사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그 다음부터는 현상은 전과 동일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장본인은 이미 성령이 아니고 악령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 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를 들면 방언의 은사가 계속 된다고 해서 성령 충만이 계속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잘 시작한 분이 종말이 이상하게 되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지배하는지 악령이 지배하는지 어떻게 압니까? 열매를 보아서 압니다(마 7:15-16). 악령이 지배하는 곳에는 육체의 열매가 맺습니다. 원수 맺는 것, 다툼,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분파 등입니다(갈 5:19-23).
그런데 그 사람이 가는 곳에 분쟁과 파당이 일어나고 있다면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이 지배하는 곳에는 성령의 열매가 맺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라고 말을 합니다.(갈 5:22-23).
왜 많은 교회가 행복하지 않을까요?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드리면 자동적으로 성령님께서 그 자리에 임재 하시고 역사 할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간판을 걸고 주님의 이름으로 예배드리면 주님의 교회이고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가정을 잘못된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에 경고를 주시면서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계 2:5). 촛대는 예수님입니다. 주님 없는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주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의 영인 성령으로 충만할 때 주님이 기뻐하는 영혼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내 생애가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도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낸 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목적을 위하여서였습니다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전할 기쁜 소식이 무엇입니까? 본문에는 복음의 내용이 나옵니다.
1) 상처를 치유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눈에 부각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1절 중, 3절상).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상처를 치유하는 사역을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행복한 교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가 성도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심어주는 수가 많습니다. 상처를 치유해주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용납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 해도 목장 이름이 상처와 관련된 목장이 2곳이나 됩니다. 라파목장이 있는데 라파라는 말은 치료라는 말입니다. 길르앗 목장이 있는데 길르앗에는 유향이 많이 있는데 그것 역시 치료재로 사용을 했습니다.
상처받은 현대인들에게 치료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목장에서 이런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아름다운 크리스천의 공동체란 어떤 것입니까? 사회에서 소외 받고 젖혀놓은 사람들의 편할 수 있는 곳이 주님의 공동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가난한 사람은 사회에서 천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목장은 가난한 사람이 환영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신체 장애자는 사회에서 돌려댑니다. 그러나 신체 장애자가 발붙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무력한 사람은 사회에서 멸시를 받습니다. 그러나 무력한 사람도 인격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 교만한 사람, 성격이 난폭한 사람도 왕따 당하지 않고 용납되어서 사랑가운데에 변화되어 가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하지 않은가는 생각이 듭니다.
휴스톤 서울 침례교회에 이수광 형제라고 LG에서 주재원으로 나와 있는 사람이 있는데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계속 일등으로 승진하는 사람이고 얼마 있지 않으면 부사장으로 승진 할 사람입니다. 목사님 보기에 신학교를 가서 자기 후임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불러서 권면 했는데 놀랍게도 회사를 사임하고 신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유전적으로 눈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원망이나 불평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가 장애자를 두고 있는 분을 담임목사로 모신다면 정말 좋은 교회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최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회자 가정 교회 세미나를 인도할 때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몇 년이 되어도 분가하지 못하는 목장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휴스턴 침례교회는 12명이 모이면 칼날처럼 분가한다고 합니다. 비가 와서 적게 와서 오랜만에 깊은 대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전도합니까? 이상한 것은 목장식구끼리 서로 좋아하고 분가하기를 싫어하면 이상한 것은 식구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목장이 침체기라 생각하면 목자가 1-2가정을 데리고 개척하러 나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정신을 번쩍 차린다고 합니다.
보통 가정 교회를 주창하는 분들은 가정 교회가 제 몫을 못하면 해체시키고 재조직하라는 것입니다. 로렌스 콩 목사님은 6개월 안에 분가를 못하면 해체시키고 재조직하라고까지 권합니다.
그러나 최목사님은 8년 동안 분가하지 못한 교회가 2교회가 있는데 목원들만 괜찮다고 하고 목자만 괜찮다고 하면 그냥 둔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실적이 없으면 직장에서 잘리기도 하고 설움을 받는데 교회에 와서까지 실적 위주로 사역이 운영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는 상처를 치유 받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병원입니다. 여러분 어린 시절 소풍을 갔을 때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점심때 식사를 하기 위해 좋은 자리를 찾습니다. 멀리서 보면 좋은 자리인 것처럼 보여서 그곳을 갑니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무언가 좋지 않는 구석이 보입니다. 그래서 또 좋은 자리일 것 같은 곳을 찾아갑니다. 그러면 또 다른 좋지 않는 점이 보입니다. 그래서 뺑뺑이를 돌다가 보면 나중에 처음에 선택한 그 자리까지 돌아옵니다.
여러분이 울산 큰빛교회를 가서 보면서 그곳은 이상적인 교회이겠지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실상 그 안에 들어가서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흠 잡힐 곳이 없는 이상적인 교회는 세상에서는 한곳도 사실 없습니다. 최영기 목사님이 좋아 보이지만 최목사님도 완전한 분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도 정말 그분의 신앙 인격을 존경합니다. 주님을 닮은 모습을 제가 본 목사님 중에는 손꼽히시는 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분도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는 성인(聖人)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에 와서 실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천국을 기대하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하게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서로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 해주어야 할 일이 있고, 또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해야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치료받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냐가 내가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고, 어떻게 하면 내 치료를 받느냐 하는 것이 내가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병자들만 잔뜩 모여 있고 치료가 안 이뤄지는 곳은 병원이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는 병원이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치유하는 분위기가 되기 위하여서는 서로를 용납하여야 합니다.
최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들어 보았습니다. 최목사님이 교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용납하려 하지만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개 때문에 목장에 안 나온다\\\" `아무개 아무개와는 같이 사역을 못 하겠다\\\"는 식의 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부되어서는 안 되지만 아무리 영향력이 큰 사람이고 교회에 기여도가 큰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역을 놓겠다고 하면 받아들이고 교회를 떠나겠다면 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상처를 감싸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어느 누구도 돌림을 당하든지 거부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는 사람도 교회에서는 환영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역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오셨고 교회가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에 행복한 교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2) 자유롭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자유케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18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케 한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받아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영적인 해석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롭게 하고 악습에서 해방시킨다는 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1) 죄와 악습에서 자유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죄와 악습에서 자유스러워지는 사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유스러워지는 사역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첫째는 자유스러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독교의 삶은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삶의 연속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서울 모 교회는 죄를 회개하는 기도문을 읽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목욕하듯이 다 회개하고 주중에는 남들과 똑같이 죄짓고 주일에 와서 다시 회개하고.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죄와 악습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똑같은 상황에서 다시 그 죄를 짖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심은 죄와 악습에서 벗어날 수 있게되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스럽게 된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변화되는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둘째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목사는 죄 짓지 마십시오. 의롭게 사십시오. 말만 해주어서는 안 됩니다. 죄와 악습에서 자유스러워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합니다.
우리 장로 교회는 지식적으로는 상당히 공부를 많이 하는데 삶이 변화되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삶에 실천 부분이 상당히 약합니다. 저 역시 장로교의 뿌리를 갖고 있기에 교리의 강점은 있는데 실천에는 약한 것을 보게 됩니다. 침례교회는 이것을 상당히 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삶 시리즈 공부가 바로 그러합니다. 우리 교회가 경건의 삶을 공부하는 것도 바로 실천 적인 공부를 위해서입니다.
경건의 삶은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발견하고 이것에서 자유스러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코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인 자유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가정교회가 이러한 자유를 맛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악습은 하루아침에 고쳐지기 않습니다.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가정 교회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성격적인 결함이 보이면 고쳐주는 법이 없습니다. 뒤에서 흉을 보든지 관계를 단절해 버립니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손해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가정 교회에서 이러한 것이 지적되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쓰러질 때에 잡아주어야 합니다. 이상 더 자신의 결점 때문에 손해보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치부를 내보여도 흉보지 않고 소문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잘못을 온유하게 잡아주어서 악습에서 해방되고 악습으로 인하여 손해보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학도병들을 연습하지 않고 보냈기 때문에 10중 8-9가 죽었습니다. 성도들을 경건의 연습을 시켜서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울산 큰빛 교회 김진수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깡패 출신인데 변화를 받은 분입니다. 최영기 목사님이 이분에 대해서 써놓은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젊을 때에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깡패 생활을 했습니다. 감방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고 그러다가 이 생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우디 취업 시험을 몇 번 쳤는데 붙을 리가 없지요.
독실한 불교 신자 집안입니다. 그런데 급하니까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제가 사우디를 가게 해주세요.\\\" 기도를 했더니 놀랍게도 사우디가 취업이 되었습니다. 되게 겁나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사우디에서 돌아온 후에 돈을 좀 벌었습니다. 건물도 몇 채 갖고 있었고 모든 것이 잘 나갔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안 나갔습니다. 카바레를 하나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못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IMF가 터졌습니다. 꾼 돈을 갚지 못해서 고소를 당했는데 전과가 많다고 해서 수감이 되었습니다. 그때 가진 것 하나도 남은 것 없이 다 날렸습니다.
그때에 조태환 목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확실히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교도소에서 풀려 나온 후에는 나름대로 신앙 생활을 잘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잃었던 건물도 하나 되찾았고 지금 집을 지어 분양을 하는데 이 어려운 시기에 70% 이상 분양이 되었습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돈이 꼭 필요하면 꼭 한 채가 분양되게끔 하나님이 하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도소에서 만난 한 친구가 불경을 읽고 있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나도 믿어보았는데 헛것이더라. 불경을 읽지 말고 성경을 읽어라.\\\" 이 친구가 지난 주일에 석방되었는데 집사님이 데리고 쓰려고 합니다. 다음 주일에 교회에도 나오기로 했다고 합니다.
휴스턴 침례교회도 보니까 조폭 두목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동국대학을 나와서 불교 방송국 사무국장까지 하는 사람이 그 삶을 청산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2) 가난에서 자유케 해야 합니다. (살후 3:10; 히 13:5)
스스로 선택한 가난은 특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강요된 가난은 압박입니다. 그리스도는 가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받는 환경이 아닌 미국이나 우리나라 같은 곳에 살면 그리스도인들이 궁핍할 수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관계에서 성공하고 섬기는 자세로 일하는 사람이 가난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하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는 해결해주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있으니 가난에서 해방될 수밖에 없습니다(마 6:33). 유럽의 역사를 보아도 중세에는 귀족과 평민 사이에 부의 격차가 격심했지만 종교 개혁을 통하여 민중들이 말씀을 알게되고 신앙이 들어가면서 중산층이 형성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으름과 욕심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자신이 할 일을 안 하니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노력 안 하고 몫 돈을 벌어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욕심입니다.
주식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주식 하나만을 갖고 주식이 죄인지 아닌지는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항상 자신을 살펴서 현명한 투자로서 하는 것인지 노력하지 아니하고 돈을 벌어보려는 욕심 때문인지를 생각해야합니다. 힘 안들이고 돈을 벌어보려는 노력은 잠시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언제인가는 파탄을 가져오고 가난들 가져옵니다. 피라미드 판매가 유행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성도의 바람직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로 소득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땀흘려 일하는 것이 크리스천의 특권이고 책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합니다(살후 3:10).
진정으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씀씀이를 줄여야합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궁핍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하냐 않느냐는 재산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결정하지를 않습니다.
재산을 많이 갖고 있어도 결핍을 느끼면 가난한 것이요 재산 가진 것은 얼마 없어도 마음이 부유하면 부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돈을 벌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젊은이들 가운데는 직장이 정해지면 첫 봉급을 받기도 전에 비싼 새 차를 삽니다. 사업이 정상 괘도에 오르기도 전에 큰집을 삽니다. 그리고 월부 갚아가느라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는 것입니다. 항상 돈 없다는 소리를 되뇌며 사는 것입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있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하나님 의 말씀입니다(히 13:15).
요즈음 미국의 일각에서는 조금 벌고 많이 즐기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새차를 사는 대신에 중고차를 사고, 새로운 가전제품을 사는 대신에 헌 것을 고쳐 쓰고, 책을 사는 대신에 도서관을 이용하고, TV, VCR, DVD 대신에 가족들의 대화로 즐기고, 비싼 휴양지로 휴가를 가는 대신에 캠프를 가고. 일도 파트 타임으로 함으로 좀더 많은 자기 시간을 갖고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지내려는 운동인 모양입니다.
건전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야말로 재물로는 부자가 아니더라고 인생을 즐기며 사니까 진정한 부자라고 말할 수가 있어야하겠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성실히 열심히 일할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3) 불우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가 말해주고 있는 원리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속적인 관심이 나옵니다. 과부, 고아, 유대인들 틈에 섞여 사는 다른 종족 사람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추수할 때에도 곡식이나 과일이 남은 것은 손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외국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나타냅니다(신 24:19-20).
교회가 행복하자면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보상으로 주시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불우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불우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아줄 때에 교회는 행복해집니다.
여러 자녀를 가진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아들딸들이 다 잘되어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잘해서 안정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아들 하나가 잘 안 풀렸습니다. 대학도 못 가고 직장도 시원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자꾸 가장 못사는 아들집에만 묵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난하니까 잡숫는 것도 시원치가 않으실 것이고 아들 내외가 다 나가서 일을 하니까 종일 혼자 계시는 것도 마음이 안 놓이고 해서 다른 아들딸들이 자기 집에 와 계시라고 해도 막무가내이십니다. 그러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집에 가 계시면 형제 자매들이 좀 더 자주 출입을 할 테니까 그리고 방문할 때에는 고기 한 근이라도 들고 올 테니까. 또 모시지 못하니까 죄송해서 용돈이라도 보내드릴 테니까 이런 것들로 못사는 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부득부득 못사는 아들집에 계시겠다고 고집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진원지가 어디이겠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알아서 불우한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 때에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에서 어떤 분이 이런 침례 간증을 하였답니다. 서울침례교회 나오기 전에는 교회에 발걸음을 디뎌본 적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여서 휴스턴에서 힘겹게 미국의 첫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때에 예수 믿는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이 자매님은 아파트 얻는 것을 도와주고 침대가 없는 것을 보고 침대로 하나 갖다 주었습니다.
이분은 그러나 여호와 증인과 남무호랑교 믿는 광신적인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이 자매님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습니다.
휑하던 벽에 좋은 액자가 걸려있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예수 믿는 아줌마가 갖다 주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이 아줌마는 자그마한 탁자를 갖다 주었습니다. 또 소파를 갖다 주었습니다. 어느 날은 집에 와보니 TV 셋이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생겼냐고 하니까 예수 믿는 아줌마가 갖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들을 시켜서 들고 왔는데 아들이 우리 집에 들어와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서 물었어요. `엄마, 우리 이 집으로 이사와?\\\'\\\" 그 순간 이분은 깨달았습니다. 예수 믿는 아줌마는 여유가 있어서 갖다 준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자기 집에서 보던 익숙한 물건들이 이 집에 다 와 있으니까 아들이 이사를 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이 예수 믿는 아줌마가 여자 목자입니다. 이러한 사랑에 녹아서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다고 눈물로 간증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우한 분들에 대한 관심이 우리 교회를 행복한 교회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휴스턴에 처음 도착하여서 불안해하는 분들은 공항에서 맞아 집에서 재우고 아파트를 찾아주는 분들. 암 투병을 위하여 오신 분들이 통원 치료를 받을 때에 입이 되고 발이 되어주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하고 사는데 이혼 직전에서 의지할 데 없는 분들을 없는 시간을 내어서 찾아가서 위로해주고 권면해 주고 필요하면 법정에도 같이 나가주는 분들. 이러한 분들로 인하여 우리 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쌀 20 파운드 짜리를 쌓아놓고 갔다 먹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민 온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별로 없는데 혹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들을 위해서 준비해 놓고 있다고 합니다.
행복한 교회가 되기 원하면 교회에 유익한 사람을 찾지 말아야합니다. 교회가 유익을 줄 수 잇는 사람을 찾아야합니다. 교회가 도움이 될 사람을 찾지 말고 교회가 도울 사람이 필요합니다. 많은 교회가 행복함을 누리기 못하는 이유는 주님의 소원을 잊어버리고 교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는 교회에서 필요한 사람을 찾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관심을 알아서 계속하여 교회에 유익한 사람보다는 교회가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성도들이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는 것은 7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을 말합니다. 이때에 희년의 양각나팔을 붑니다. 그리하면 모든 부채가 탕감 받고 노예가 해방되고 잃어버렸던 재산을 되찾게 되고 한 해 땅의 경작을 쉽니다. 희년은 자유를 선포하는 해방의 해입니다.
예수님은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난 결과가 기쁨인 것은 당연합니다.
로마서에만 기초해도 우리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수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무죄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구약 시대에는 특수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성령을 누구나 받을 수 있게 허락하셨습니다. 이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죄를 이길 힘을 주시고 의로운 삶을 주실 능력을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좋을지 모를 때에는 기도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모든 영적인 축복을 허락하시고 역경조차도 사용하시어서 유익 되기 하십니다. 이러한 은혜를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로마서를 기록해가다가 `누가 우리를 이러한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5)\\\" 기쁨의 환성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성경공부를 통하여 다 알면서도 기쁜 신앙생활,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행복한 교회가 되자면 교인들이 행복해야합니다. 교인들이 행복하자면 다음 것을 실천에 옮기실 것을 권고 드립니다.
1)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확신해야한다
신앙 생활에 기쁨이 없는 큰 이유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서는 성경대로 살아야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살지 못하니까 항상 죄책감을 느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삽니다. 이러한 신앙 생활 가운데에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의롭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 가운데에 의로운 사람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의롭게 보아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롬 3:22). 성경대로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서는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면 삶이 복되어지고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삶에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행복의 교본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자신의 행복과 사명 완수와 천국의 상을 위해서이지 하나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미 의인으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슴속에 느끼게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편해지고 그때부터 신앙 생활에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응답 받는 기도 생활을 해야합니다
교회 생활에 기쁨이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도 생활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누리는 큰 특권 중의 하나가 기도 응답의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악한 부모도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늘 아버지가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한탄하며 말씀하셨습니다(마 7:11). 우리는 기도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없고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일도 없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기도 응답의 체험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멀리 계신 분이시고 자신의 생활에 관심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신앙 생활 가운데에 기쁨이 있을 수가 없고 행복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에 대한 여러 가지 변명한 스타일이 있다고 합니다.
*바쁘다 형 - 할 일이 많아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망설임 형 -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만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
*포기형 - 한두 번 기도해보다가 그만두는 사람.
*천하태평형 -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신다고 하며 기도하지 않는 사람
*넊두리 형 - 자신의 신세타령만 하다가 기도를 끝내는 사람.
*과시형 - 대표기도를 유창하게 잘하지만 실제로는 기도생활을 안 하는 사람.
*자기핑계형 - 기도는 아무나 하나? 하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
*의심형 - 기도응답에 대한 자신이 없어 기도하지 않는 사람.
*게으름형 - 기도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게을러서 기도를 못하는 사람
*무시형 -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몰라 기도하지 않는 사람.
자신은 어떤 형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형에서 우리는 빨리 빠져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기쁨을 맛보자면 충실한 기도 생활이 첨가되어야합니다.
3. 영혼 구원의 사역을 하여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것이 바로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우리의 최대의 목표가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요6:39-40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교회가 세워진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시간과 물질과 정력을 쏟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고전 9:19-22절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바로 이런 자세입니다.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사랑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섬기는 가운데 그 사람이 구원받아 보세요. 내 모든 고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오는 감격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지 못합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어느 분이 서울 종로에서 20년 동안 새벽 일찍이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물건을 팔고 밤이면 피곤으로 몸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지만 밤중에 돈 세는 재미로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마음속에 너는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이냐 하는 생각이 북받쳐왔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이렇게 살아서 안되겠다 생각하고 물건 사러 오는 사람에게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보람을 찾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교회 생활이 재미있으려면 영혼 구원에 힘써야합니다. 영혼 구원이 하나님 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 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원을 알아서 행할 때에 그곳에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시는 분들이나 선교 사역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삶이 밝습니다. 생활에 생기가 넘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알아서 사역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정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의 열매가 있는 목장은 목자도 생기가 돌고 목원들도 밝습니다. 그러나 목장을 구역 예배처럼 인도하는 목장은 목원들도 재미없어하고 목자도 힘들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혼 구원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자신이 추수하지 아니하더라도 전도의 씨를 뿌려야합니다.
안타깝게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몇 개 있어야하고 목장에 나오기 시작하는 안 믿는 분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섬기고 돌보아야합니다. 이러한 사랑과 섬김을 통하여 어떤 분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누리는 기쁨, 바로 이것이 교회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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