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 (3) 막11:15-18
성숙한 자녀와 어린 아이와의 차이는 나이나 신체적인 조건으로도 구별할 수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자녀가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어떻게 하면 그 은혜를 보답할까 하는 마음을 보고 알 수 있다. 어린 자녀는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보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이것이 곧 성숙의 차이이다.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신앙의 성숙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직분이 신앙의 성숙도 아니다. 신앙의 초보는 하나님으로부터,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자이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한 자는 이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어떻게 하면 교회를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교회를 봉사하는 자이다. 그래서 2월, 교회창립 49주년을 맞는 달에 표어를 \\\"주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로 정하였다. 죤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 미국의 국민들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앞서 미국 국민들이 나라에 대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은 참으로 성숙한 국민들에게만 할 수 있는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성광교회의 나이가 49세, 한창 성숙한 나이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교회로부터 무엇을 바라기 앞서 내가 우리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수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하는 교회가 훌륭한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성숙한 교회는 기도의 소리가 가득한 교회이다. 성경말씀이 충만한 교회이다. 찬송소리가 가득한 교회이다. 사랑의 소리가 가득한 교회이다. 교회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될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 성령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줄로 믿는다.
지난 설 때에 우리 나라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20군데 더 되는 곳에서 일어나서 우리의 가장 귀한 재산 주의 하나인 산림을 태워버렸다. 참으로 안타가운 일이다. 도대체 설 때에 산에서 무엇을 하다가 이렇게 큰 피해를 입혔는가를 생각하면 안타가운 일이다.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히는 불을 볼 때마다 불조심의 강조를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에서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이다. 믿지 않는 자들도 교회에서는 예배하고 기도하는 곳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다 알고 있다. 그만큼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기도이고 가장 중요한 것도 역시 기도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성경말씀 중에 기도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른다. 교회는 기도 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전혀 힘쓸 때에 성령이 강림하셨고 교회가 태어난 것이다. 주님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기도 외에 이런 기적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기도는 교회가 지닌 가장 강하고 무서운 힘이라고 했다. 사탄은 기도하는 교인과 교회를 가장 무서워하고 기도하지 않는 교회를 시험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고 하셨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의 호흡과 같다. 죽은 자는 호흡을 하지 않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성도 기도하지 않는 가정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살았다는 말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일로 예루살렘 성전에는 양의 피가 마를 사이게 없었고, 제사의 연기로 가득하였던 것이다. 유월절 때에는 양 2백만 마리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제사를 드리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은 채찍을 가지고 성전에서 제사하기 위하여 양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파는 자들을 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분노하셨다.
1. 하나님의 성전 안에는 상업주의나 물질주의가 침투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분노는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한다는 그 자체보다는 거룩한 성전에 세상의 상업주의와 물질주의가 들어왔을 뿐 아니라 이런 주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시장에서 장사하는 자들은 책망하지 않았다. 시장은 장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은 장사하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일들이 있게 되었는가? 언제부터라는 기록은 없으나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이었다. 율법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양이나 짐승은 상하지 않는 깨끗한 것이어야 했다. 제사는 꼭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는데 저 멀리 갈리리 지역에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자들은 제물인 짐승들을 끌고 올 수도 없고, 만약 끌고 오더라도 먼길을 걸어올 때에 이미 짐승들은 병들거나 상하여있었기 때문에 제물로 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과 세상에서 사용하는 돈이 다르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의 헌금을 드리려고 하면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특히 먼 지방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하러 오는 자들은 참으로 불편하였다. 이런 불편함을 도와주기 위하여 성전 뜰에 짐승들을 팔고 돈을 바꾸어주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생겼을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멀리서 오는 자들이 얼마나 편했는지 모른다. 그들은 돈을 가지고 와서 자기가 원하는 깨끗한 짐승을 사서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돈을 바꾸어서 하나님께서 드릴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좋은 목적으로 출발하였으나 인간의 물질적인 욕심으로 인하여 타락한 제도가 되어 버렸다.
예수님이 분개하신 것은 이것을 보시고 하신 것이 아니다. 이 좋은 제도가 타락하여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로 타락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성전에서의 장사는 불경기가 없었다. 그러므로 장사하는 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곳이었다. 그래서 성전뜰의 여러 평을 사서 장사하는 자들에게 몇배로 권리금을 받고 다시 팔았다. 이렇게 되면 제물의 짐승을 사는 백성들에게는 아무 비싼 값으로 짐승들을 사야만 했다. 문헌에 의하면 당시 성전에서 팔던 비둘기 한 쌍의 값은 시중가보다 80배나 되었으며 그 이득의 상당한 부분은 제사장들에게로 돌아갔다. 이로 인하여 제사장들은 자세에는 마음이 없고 장사하는 일에만 마음을 두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선하고 가장 아름다운 제사를 이용하여 장사하는 자들의 배만 채우는 가장 타락한 제도가 되어 버린 것을 예수님은 어렸을 때부터 다 보셨을 것이고 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요한복음 2:13절 이하에 보면 공생애 첫 출발 때 타락한 성전부터 청결케 하셨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공생애 마지막에 다시 타락한 성전을 청결케 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예배하며, 기도하는 가장 거룩한 집을 상업화 시키는 종교의 지도자들의 그 타락성을 책망하셨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가장 타락한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당시 종교의 지도자들은 마치 강도의 집단이나 마찬가지였다. 물건을 싼 값에 사 와서 상상할 수 없는 값으로 팔았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 비싼 값을 지불하고 짐승을 사서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면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수 없이 성전에 와서 짐승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예수님의 부모님도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에 80배나 비싼 비둘기를 사러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여기에서 짐승을 사서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마음 속으로 이 타락한 제도를 고쳐야 하겠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공생애 첫 시작을 성전 청결부터 하셨다. 그리고 이런 불완전한 제사제도를 없이하기 위해서 자신이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하여 다시는 양이나 짐승을 중기지 않고도 한번에 그리고 완전히 용서함을 받는 십자가 사죄의 은총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예수님은 교회나 예배나 믿음을 이용하여 개인의 영광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하는 일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강도의 소굴들이 많이 있다. 지난 연세연합신학대학원 세미나에서 바로 저 앞에 앉아서 강의를 듣는 분이 여자였는데 어느 기도원 원장으로 까만 옷에 번쩍번쩍 빛나는 금줄로 수 놓은 옷을 입고 와서는 강의가 시작되면 잠을 잔다. 그러다가 강의가 마치면 언제 잠을 잤느냐 하는 식으로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 서울에 있는지 차를 타고 오는데 저는 차 이름도 모르는 고급 승용차로 운전수까지 거느리고 요란스럽게 다니는 것을 보았다. 오늘날 좋은 기도원이 많이 있어 교회에서는 맛볼수 없고, 기도원에서만 맛볼수 있는 그런 특징적인 기도원들이 있어서 갈급한 심령들에게 시원한 생수를 주고 잇다. 그러나 가장 신령한 기도원을 통하여 자기의 물질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런 기도원들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앞으로 선거철이 되면 교회와 교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그런 자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또 어떤 자들은 가장 거룩한 직분인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를 이용하여 자기의 육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 당시 종교의 지도자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같이 사악한 부류요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본문 17절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이 처음으로 사용하신 말씀이 아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56:7절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 생을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음이 될 것임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올바른 제사와 올바른 예배와 기도가 늘 드려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에서는 가정 식구들이 무슨 일들을 할 때에 가장 기쁜가? 온 식구들이 자기의 맡은 바 일들을 책임 있게,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며, 늘 말씀과 찬송과 기도가 충만할 때에 바로 그런 집은 천국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식구들이 가지의 맡은 일에 충성하지 아니하며, 서로 사랑하지 아니하고, 집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며, 술과 화투와 악담으로 가득할 때 그곳은 바로 지옥의 그림자라고 할수 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한 것은 1. 교회는 제일 먼저 기도부터 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전에 들어 올 때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하나님과의 대화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 교인과의 대화를 해야 한다. 기도로 제일 중요한 하나님과의 대화를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서 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먼저 기도하고 모든 일을 결정해야 한다. 기도하고 결정을 하는 것은 후회됨이 없다. 그러나 기도하지 아니하고 나의 생각과 뜻대로 하는 결정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는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기도로 의논하고 기도로 결정하고 기도로 행동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밤새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며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로 십자가를 지셨다 기도로 십자가 아픔을 참으셨다 기도로 십자가의 승리를 가져왔다.
2. 기도로 우리의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가지 회개의 기도를 통하여 죄용서함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예배 순서에 죄를 고백하는 고백의 기도를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 갈수 있느냐 없으냐가 바로 이 고백의 기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의 기도를 나의 고백으로 진실 되게 고백해야 한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고백의 기도를 드리는데 그저 글을 읽는 것 같아서 요사이는 종종 고백의 기도를 쓰지 않고 통성으로 하도록 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늘 고백의 기도를 올바르게 드려야 한다. 시편 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를 가장 싫어하신다. 그러나 자기의 죄를 솔직하게 회개하는 자를 가까이 하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신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에서 드려는 고백의 기도를 통하여 죄용서함을 받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시간이 있다. 초대교회가 성령 충만을 받을 때에 교회 안으로는 성경말씀을 배우는 일과, 기도하는 일과, 교제하며 서로 사랑하는 일이 충만하였다. 이럴 때에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선교와 사회봉사이다. 선교와 사회봉사가 먼저 아니다. 기도와 말씀이 충만할 때에 선교와 봉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이 지역사회의 봉사와 세계 복음화에 주역이 되려고 하면 성전에 모여 기도하는 일부터 먼저 있어야 한다. 배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나면서 앉은뱅이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였다. 이것도 기도의 역사라고 할수 있다. 기도하는 교회는 예기치 않는 기적의 역사들이 많이 일어난다. 우리 여전도연합회에서 시간을 정하여 성전에 나와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모른다. 이런 기도회를 통하여 성전건축하는 기적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놀라운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날 줄로 믿는다.
시간을 정한 기도,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 각 기관단체의 기도회, 수요 기도회, 구역예배기도회, 특별기도회등 우리 교회에서는 많은 기도의 운동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것이 참 교회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를 가장 기뻐하시며, 이런 교회에 함께 하시며, 이런 교회에 은혜와 놀라운 축복을 충만하게 주신다.
4. 기도에 전혀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기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를 가장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를 가장 앞세워야 한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할 때마다 먼저 기도부터 해야 한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도에 전혀 힘쓰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1:14절에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하셨다. 기도에 전혀 힘쓰는 자들에게 성령충만을 주셨다. 기도에 전혀 힘쓰는 가운데 교회가 태어났던 것이다. 사도행전 2: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기도에 힘쓰는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다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가 살아 역사하는 교회이다 기도하기를 힘쓰는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기도하기를 힘쓰는 교회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는 교회이다 이번 우리 임직자들과 함께 기도원에 가서 비록 하룻밤이지만 열심히 기도했다. 임직자들이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는 모습을 보고 저는 우리 교회의 비젼을 보았다 우리 교회의 희망을 보았다 우리 교회의 능력을 보았다 우리 교회의 미래를 보았다 앞으로 우리 교회의 교인들은 모든 것보다 기도에 전혀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특히 항존직들은 기도에 전혀 힘쓰는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특히 기도의 어머니인 권사님들은 기도의 체질로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기도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 이 기도의 불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우리 교회가 사는 길이요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는 다른 민족이 없는 참으로 큰 축복을 주셨다. 이것은 다른 민족에게는 없는 우리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기도의 열심이다 기도의 뜨거움이다 기도의 사모이다 기도의 능력이다 기도의 시간이다 우리 나라만큼 기도를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 우리 나라만큼 기도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지난 주 월요일에 강남금식기도원에 갔더니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날이 어떤 날인가? 설 바로 전날로 우리 믿는 성도들도 다 바쁜 날이다. 그런데 부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수천명이 모여 부르짖는데 산이 떠나갈 것 같았다. 강사 목사님이 총신학교 교수이신 김의환 목사님이셨는데 세계를 돌아다녀 보아도 한국교회처럼 기도 많이 하는 교회는 볼수 없다고 하셨다. 앞으로 분명 우리나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실 줄로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일꾼을 찾으신다. 기도하는 교회에게 큰 일을 맡겨 주신다. 기도하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성광의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우리 성광교회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보다는 주님을 근심 걱정케 하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보다는 주님을 근심케 하는 일들을 더 많이 한 줄로 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어느 집사님이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다. 제가 이제까지는 하나님께 근심 시켜드렸다. 매일 하나님 앞에 나가 내 남편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만 드렸으니 얼마나 하나님께서 안타까워 하셨겠는가? 그런데 어느날 새벽기도회에 남편의 구두를 가지고 나와 강대상 옆에 놓고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이제 남편의 구두가 먼저 나왔으니 이 구두를 싣는 남편도 따라 주님께 나올 줄로 믿습니다\\\" 라고 기도하고는 저 자신도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그래서 그날은 기도는 하지 못하고 한참 실컷 웃다가 집으로 왔는데 그 다음 주일날 남편은 바로 그 구두를 싣고 교회에 간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남편은 열심히 교회에 나온다고 했다. 제가 하나님을 웃겨드렸더니 제에게 이렇게 큰 웃음을 주셨다고 한다.
우리의 신앙의 성숙할수록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주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성광 교회는 49세가 되었다. 성숙한 자가 되었다. 이제부터는 주님을 근심시키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을 더욱 기쁘시게 해 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특히 성전을 건축을 하면서 어떻게 건축을 하려는가? 주님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고 근심시키는 교회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하여 믿음으로, 기도로, 희생으로 건축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주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기뻐하실 수 있도록 하는 성광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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