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요1:1
하나님의 시간은 정해져 있다. 2008년 한 해는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2007년이 ‘행사의 해’였다면, 2008년은 ‘내실의 해’가 되어야 한다. 거창하게 벌여놓은 것을 차분히 살피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교회가 구원의 방주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신앙을 확인한 후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할 것이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한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다.
첫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성전이다. 교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며, 사회를 향해 외치는 구원의 메시지 또한 말씀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말씀 아닌 말’이 꿈틀댄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보다 사람의 말을 지껄이는 망령된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언제 어느 때나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는 지성소가 되어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으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요한복음1:1)이다. 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교회라 할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그렇지 못한 교회들이 널려있다.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된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 안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눈을 닦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만 시퍼렇게 살아서 설친다. 교회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광채는 간 데 없고 인간 냄새만 코를 찌른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마태복음12:8)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그리스도의 몸이 곧 교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로 임재하시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교회의 존재 가치는 상실한다.
셋째, 교회는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 나라 선포이며 확장이다. 교회에 교인을 끌어모으려 할 것(수평적 이동)이 아니라 하나님 앞으로 죄인을 불러 모아야(수직적 이동) 한다. 마치 교회의 양적 성장이 목회의 성공인양 착각하여 무조건 교회를 키우려는데 집착함으로써 한국교회가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사도행전1:8)이 된다.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대인에게 전한 것처럼,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까지 가서 그곳에서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한 것(사도행전11장)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전파에 힘써야 한다.
넷째, 교회는 회개와 자복으로 부흥을 이뤄야 한다. 2007년은 평양대부흥 100주년기념대회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행사에 파묻혀 정작 부흥의 요체인 회개에 소홀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부흥운동에 열정을 쏟았듯이, 부흥의 꽃을 피우고 과실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회개 없이 부흥 없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회개기도를 할 마음의 여유를 잃었다. 남의 눈에 잘 띠는 행사에는 앞장서려고 하면서도 골방에서 눈물의 회개기도를 하는 지도자는 드물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올해는 부산교계가 회개운동을 일으켜 부흥의 열매를 딸 수 있어야 한다. 원산과 평양의 대부흥이 회개로부터 시작했다. 1903년 하디 선교사의 회개와 1907년의 길선주 장로의 회개의 기도가 한국교회 부흥의 단초(端初)가 되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다섯째, 통합과 일치로 기독교계의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 조직과 기구의 통합이 아니라 신앙의 일치, 역할의 통합을 이룩함으로써 교회의 힘을 한 군데 응집시킬 수 있다. 기독교계는 제각각 흩어져 구심점이 없는데다, 너도나도 지도자라고 나서는 바람에 대표성도 결여되어 있다. 각 교단과 기관이 통합과 일치의 정신을 발휘하여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기독교계의 구심점이 되어 대표성을 확립할 수 있어야한다. 불교계나 다른 종파에는 대표자가 뚜렷한데 비해 기독교계는 누가 대표자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비아냥을 일찍부터 받아왔다. ‘주도 한 분,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다. 한 분이신 만유의 아버지 하나님이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신다’(에베소서4:4~6)는 것을 굳게 믿는다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가 되고 연합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섯째, 교회는 이웃에 사랑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은 거룩한 제사장도, 신앙의 지도자 레위인도 아니었다.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었다. 우리는 지난해 진정한 사마리아인을 보았다. 크리스천21세기포럼 이사장 장성만 목사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되어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는 마부노호선원을 구출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섬김과 나눔의 본을 보였다. 지금 안티기독교 집단이 벌떼처럼 일어나 경멸의 눈초리로 기독교를 바라보며 비웃고 있지만, 그들이 온갖 추잡한 용어를 동원하여 교회를 비난하고 있지만, 차츰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교회가 사회에 베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는 저희들끼리 희희덕거리는 이기주의집단’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인식을 다소나마 불식시킬 수 있었던 것이 부산기독교계의 마부노호 선원 구출운동이었다. 올해는 하나님의 헌금을 땅 사는데, 교회 건축하고 건물 치장하는데, 교권 잡는데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갇힌 자를 풀어주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며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가난한 자의 가슴에 따스한 불을 지피는, 이웃을 찾아가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제물보다 낫다’(마가복음12:33)는 고백이 교회들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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