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교회

섬기는 교회 /막10:35-45

섬기는 교회
막10:35-45





우리 교회가 오늘로 창립 5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53년 동안 선한 목자로 인도하시고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간 중앙교회는 하나님 은혜 가운데 많은 성숙과 성장을 하였습니다. 제가 부임해 왔을 때만해도 한 600여명의 교인이었는데 지금은 900-1000여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숫적으로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수공동체를 이루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성숙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인들을 양육하기 위하여 일대일, 제자반, 중보기도, 생활전도, 은사배치 사역의 훈련이 진행 중에 있으며, 더욱이 작년부터 10년 동안에 2000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역자를 세우기로 우리가 다짐을 하고 힘차게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2000명의 사역자를 세우는 일에 성령께서 역사 하셔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10년 안에 12제자를 닮은 2000명의 사역자, 예수님을 닮은 2000명의 사역자, 이 사역자들이 여수를 변화시키고 이 민족을 변화시키리라고 믿습니다.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사역이란 한 마디로 섬김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눈먼 자를 눈뜨게 하고 억압된 자를 풀어 주며 주님의 날을 선포하는 것입니다(눅 4:18). 사역과 섬김은 결코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둘은 음과 양의 이치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사역자는 곧 훌륭한 섬김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2000명의 사역자를 세운다는 것은 곧 2000명의 섬기는 자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며 교회를 섬기며 이웃을 섬기는 사람 2000명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창립 53주년을 맞이하여 앞으로는 우리 교회는 섬기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더 가져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도 봅시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던 도상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십자가가 그 앞에 놓여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가는 길을 압니다. 모든 인류를 섬기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그들은 이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 주님 나라가 임하실 때 하나는 주의 좌편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영광의 자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욕망, 출세욕 이것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42절 이하입니다. 다 같이 읽어보십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 말씀은 실로 엄청난 선언이요, 혁명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권력자들은 인간들을 임의로 주관합니다. 독재를 합니다. 이것이 세상적인 모든 질서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꾸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고 많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위해서라면 내 인격이나 돈 무엇을 다 버려서라로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정반대입니다. \\\"누구든지 큰 사람이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려면 종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참된 섬김이요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나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은 높고 지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지배하지 않습니다. 종이 됩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고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낮아지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창녀와 세리 그리고 배고픈자와 병든 자와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자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참된 리더쉽은 섬기는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53년을 맞이한 우리 교회가 정말 아름다운 예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한다면 섬김의 자세를 떠나서는 않됩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사람을 2000명의 사역자를 세운다면 섬기는 사역자를 세워야합니다. 섬김이 우리 교회의 핵심이 되지 않는 한 중앙교회는 아절대로 름다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일전에 저희 교회 어느 장로님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수고하시는 장로님이신데 제가 그 장로님께 이런 부탁을 드렸습니다. \\\"장로님 교회에서는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이란 서로 다른 양식이 있기 때문에 방법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것만을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것을 주장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양보하십시오. 장로로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교인들을 섬기는 자리로 나가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장차 훌륭한 교회 리더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권력을 휘두르고 능력을 과시하고 영향력이 많은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정반대입니다. 봉사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의 모습 따라서 참된 섬김을 하기 위해서 어떤 모습이 있어야 하나요?
1. 세속적 영광을 포기하여야 합니다.

제가 한국 교회역사를 바라보면서 정말 의문이 가는 점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초대 한국 교회는 정말 세상을 변화시키고, 확실한 구원의 신앙을 가지고 살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기독교가 사회변화도 아니고 구원을 증거하는 자도 아닌 이상한 물결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한국 기독교 전체를 덮어버렸고 한국 교회를 병들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그것 때문에 완전히 병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를 병들게 했던 그 정체는 바로 축복신앙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대신에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가 들어왔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는 대신에 예수 믿으면 병 고치고, 예수 믿으면 출세하고,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사상이 들어왔습니다. 기복주의 물질적인 가치관이 한국 기독교를 덮쳐버렸습니다.

물론 예수 믿으면 축복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병 고치고, 예수 믿고 복을 받고, 예수 믿고 출세하고 다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믿고 복 받고 건강하기 위해서만 예수 믿는다면, 예수 믿어도 복받지 못하고 병 고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예수를 떠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가 메시야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처음에는 따라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기적을 보자 마음속에서 이런 기대가 일어났을 것이다. 저런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라면 저 분은 우리의 어떤 소원도 들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두 제자가 나와서 이런 부탁을 한 것입니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당신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데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족시켜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두 제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세속적인 영광을 구하였습니다. 자기 충족적이고 자기 욕구적인 것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3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생각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적어도 3년 동안 예수님과 먹고 자고 동행하였다면 다는 아니더라도 비슷은 해야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막상 제자들의 신앙의 뚜겅을 열고 보니 예수님과는 너무나 멀었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그 따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부자되고 출세하기 위해서 믿었습니까? 아니면 나를 구해주신 주님의 그 사랑에 감사해서 그 모습을 본받고 따르기를 원하셔서 믿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구원하신 그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아름다운 생애를 본받고 그 놀라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믿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 세속적인 동기로 믿었다면 아직도 그 신앙은 순수치 못한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속적인 기대로 주님을 따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순수하게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처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섬기는 자로서 살고 싶습니까? 예수님처럼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세속적 영광을 포기할 각오를 하십시오. 세상에서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포기하십시오. 세상에서 자기 욕구 이루는 것을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조용히 나가십시오. 이름없이 흔적없이 섬기고 봉사하는 곳을 좋아하십시오. 이것이 참 섬김의 모습입니다.

기독교 시인 중 한 사람 루스 칼킨의 시 \\\"저는 생각합니다.\\\"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제가 밝은 조명이 비치는 곳에서 얼마나 열심히 섬기는 가를
당신은 아십니다. 제가 부인회에서 얼마나 열심히 당신을 말하는가를
당신은 아십니다. 친교 모임에서 제가 얼마나 활기있게 봉사하는가를
당신은 아십니다. 성경공부에서 제가 얼마나 열심히 있는가를

그러나 만약 당신이 물이 든 대야를 가리키면서 허리 굽고 주름진 노부인의 모이 박힌 발을 씻겨주라고 제게 부탁하신다면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방에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다면 저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이것이 참된 섬김입니다. 주님은 세속적인 욕망 내 이름을 드러내는 섬김을 싫어하십니다.

2. 종이 될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제자가 되었어도 지배의 욕구를 포기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니체는 인간의 존재를 권력에 대한 요구라고 하였는데 정말 인간들의 삶 속에는 지배욕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간관계의 위협을 요구하는 것은 다 이런 권력의 지배구조로 기인합니다. 부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누가 지배자냐 누가 다스리냐, 직장에서의 갈등, 교회에서의 갈등 이런 것은 다 지배의 구조를 추구하는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지배욕이 강한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은 잘못된 유교적 전통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계급화 시켰습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에서 얼마나 계급적인 말이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들을 가리키는데도 당신하면 될텐데 칭하는 말이 많습니다. \\\"아랫것들, 윗 사람, 상사\\\" 상대방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이 확연히 구분이 됩니다.

나를 가리키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상대방에 따라서 내가, 좀 높은 사람에게는 제가, 낮은 사람에게는 나는 이런 다양한 칭호를 붙입니다. 심지어 스스로 짐이 라고 말합니다. 신이 불초소생이 어떤 때는 이 쫄자가 이런 말을 씁니다.

한국은 육체까지 계급화 시킵니다. 육체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 머리입니다. 머리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제일로 천한 부분은 발가락입니다. 그래서 발가락만도 못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발가락이나 발바닥에 고장이 한번 나보세요. 그러면 꼼짝을 못해요. 발이 내 존재 자체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어디 중요하지 않는 곳이 있고 중요한 곳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 차별을 만들어버렸습니다.

주님은 우리 삶 속에 이런 계급의식이 없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자리를 만들이 말아야 하나요? 아닙니다. 공동체에서는 자리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그 자리는 철저한 섬김의 자리어야 합니다. 다스림이 아니라 종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리더쉽과 세속적인 리더쉽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리더쉽가 세속적인 리더쉽은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42절 봅시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여기에 보면 세속적 리더쉽이 나옵니다. 그것은 주관한다. 임의로, 권세를 부린다는 말들입니다. 세속적인 리더쉽은 지배하는 것입니다. 명령입니다. 다스리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4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인의 리더쉽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리더쉽은 섬기는 자입니다. 44절도 봅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철저하게 종의 리더쉽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한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요구하는 제자들에게 종이 되라 말씀하십니다. 섬길 각오를 하고 따르라. 낮은 모습, 겸손한 모습으로 섬겨라. 자기 충족을 위해서 살지 말고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을 위해서 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섬기는 자의 모습입니다.

3. 고난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37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보이신 반응이 38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

이 순간 예수님은 어디로 가십니까?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은 십자가의 생각하면서 십자가를 지려고 가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좌 우편에 앉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나의 마시려는 잔은 십자가입니다. 죽음입니다. 고난입니다. 이것을 마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39절을 말하였습니다.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뭣도 모르고 제자들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줄도 모르고 \\\"마실수 있습니다\\\"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자들은 다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대답을 했지만 결국 다 십자가를 지게 된 것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고난을 피할 수없습니다. 우리가 땀을 흘리지 않고 어떻게 섬길 수 있으며, 옷에 흙을 뭍이지 않고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요? 진지한 섬김을 구하는 자들에게 고난과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고난을 당하는데에서만 끝날까요? 아닙니다. 고난뒤에 영광이 옵니다. 40절을 봅시다. \\\"내 좌우편에 앉을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

너희들이 최선을 다해 섬겼다면 그리고 고난까지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날에 너희들이 보상을 받을 그 날에 보상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의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상의 종류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모든 섬김을 잊지 않으시고 모든 보상을 하실 것입니다. 그 보상은 현재 섬김의 수고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수고를 하나님께서 결코 헛되이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선배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에너지는 고난의 저편에서 내 눈물 내 희생 내 섬김 내 순수함의 동기를 아시는 주님이 살아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하늘의 영광으로 나를 축복하신다. 그 분이 나를 인정해 주신다. 이 고난 이 고통을 껵고 있지만 그러나 주님이 나를 칭찬하신다. 그 분이 나에게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기쁨의 면류관, 썩지 아니할 영원한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그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장차 올 그 영광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고난을 극복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섬기십시오. 눈물 흘려가며, 나의 것을 주어가면서 섬기십시오. 그럴때마나 하나님은 영광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유럽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가 오랜 유럽국가들의 많은 부분들이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슬픈 장면은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이 전쟁으로 찢긴 도시 여기저기에서 배가고파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이른 아침 한 미국 병사가 런던에 있는 막사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지프차를 몰고 길모퉁이를 돌다가 그는 빵집 창문에 코를 바짝 갖다 대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안에는 요리사가 신선한 도넛 한 솥을 만들기 위해 반죽하고 있었습니다. 굶주린 소년은 아무 말도 않은 채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병사는 자기 지프차를 길에 세우고 내려 그 어린 친구가 서 있는 곳으로 조용히 걸어갔습니다. 기이 서린 창문을 통해서 그는 뜨겁게 달구어진 오븐에서 끄집어 내어지고 있는 먹음직스런 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빵 만드는 사람이 그 도넛들을 유리 진열대에 조심스럽게 집어 넣는 모습을 보면서 침을 흘리고 낮게 한숨 소리를 냈습니다.

그 병사는 이름 모르는 그 고아 옆에 서 있으면서 그가 측은해졌습니다.

\\\"얘야 저 빵이 먹고 싶니?\\\" 그 소년은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 예 목고 싶어요.\\\" 미국 병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도넛 열두 개를 사서 상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런던의 아침의 차가운 안개 속에 서 있는 그 아이에게로 다시 걸어갔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도넛 상자를 아이에게 건네주면서 \\\"여기 있나\\\"라고 간단히 말했습니다.

몸을 도려 차로 가려던 그는 자기 코트 나락을 잡아 당기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 아이가 조용히 묻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는 하니님이세요?\\\"

우리는 우리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때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우리의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우리 자신이 우리의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보여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