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울수록 친해지는 교회

가까울수록 친해지는 교회/막6:1-6

가까울수록 친해지는 교회
막6:1-6





제가 신학수업을 하던 전도사 시절 목회초년에 고향엘 갔는데 고향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저를 깍듯이 목회자로 대우하면서 강단에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조군 또는 승홍이 이렇게 부르며 저를 신앙지도하고
키우신 분들이 태반인데 그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릴 때 집 주변을 떠나 자취하며 살았으니까 아이적 기억들로만 가득한데
저랑 잘 싸우던 친구들이 교회 제직으로 있고 교회 일꾼들이더라고요
저의 어린시절을 너무나 잘아는 그런 교회에가서 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고향으로 가셔서 강론하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는 그때 당황했던 마음과 힘들었던 일들이 지금 클로즈업되고 있습니다

막 6장 1절말씀 -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가시니 거기는
가버나움이고 고향이라 함은 나사렛을 말합니다. 보통 고향 그러면 출생지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어린시절 예수님이 자라난곳 나사렛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30 되실 때까지 성장하신 고향 나사렛을 방문하신 것은 단순히
개인적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알수 있느냐? 제자들도 좇으니라
이것은 예수님이 공적인 랍비로 고향에 오신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랍비는 혼자 다니지 아니하고 제자들을 동행하고 다니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선생으로 제자들과 함께 이 나사렛 동네에 찾아오신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들어가셨고 거기서 가르치셨다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 의무였죠
그러나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번 예루살렘에 온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까닭에 동네 동네마다 회당을 지어놓고 예배드리고 성경을
배웠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회당을 찾아가셔서 가르치셨다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을 전할때의 말씀이 다른 랍비들이 전하는 말씀과 달랐다
는 것입니다 힘있고 신비하고 엄청난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그저 놀랄수 밖에요 왜냐 이 나사렛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님 어린시절부터 어른 될때까지 그 과정을 너무나도 잘아는
사람들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2절,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2절의 이 많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깜짝 놀라 수근거리는 많은 사람은
어린시절부터 예수님을 너무나도 잘아는 사람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앞에 놀랐습니다. 왜? 한번도 들어보지를
못했으니까 그러나 놀람이 다음에는 질문으로 바뀌고 그 다음에는 의심으로
바뀝니다.

3절말씀에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것을 얻었느뇨? 이런 권능이 어찌됐느뇨?
마리아의 목수 아니냐? 시몬의 형제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아직도
살고 있지 않느냐? 이런 의문속에서 마침내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세상을 살면서 한배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근데 이런 사람들과 친하면 사랑하고 도와주고 또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보다도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알았어요 근데 예수님을
경멸했습니다 나사렛 사람 뿐만입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로 가깝고 너무나 잘 안다는것 때문에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33년 이땅에 사셨는데 나사렛에 30년 사셨어요
그러니까 나사렛만큼 특권을 누린 곳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근데 나사렛
사람들이 어떻게 했어요.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왜 배척했지요? 이 사람들은 자기들 만큼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의 30년을 예수님은 나사렛동네에서 그들과 함께 이웃하며
사셨기에 그들은 예수님이 목수 일을 하셨으니까 집 수리하고 담장고치고
뭐 이런 일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랫동안 함께
먹고 마시고 함께 살았던 나사렛에 그저 많은 사람들중 하나로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나사렛사람 나사렛에서 무슨 저런 사람이 나올 수가 있는가?
그래서 나사렛 시시한사람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왕궁에서 태어나 금마차타고 바리새인 서기관들 대동하고
이 동네에 나타났다면 이 무식한 나사렛 사람들이 납작 엎드려서 떨었을것입니다

근데 예수님이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과 함께 하기위해서 이
나사렛동네에서 30년 살았다는 것 잘안다는 것 때문에 어렸을때 형편까지
다 알고 있는 이들이 뭐라고 그래요? 너는 그리스도가 될수 없다는 겁니다.

너는 이 동네 나사렛 예수지 그리스도가 될수 없다는 거지요 너무 가깝다
보면 어느날 시기하고 오해하고 질투하고 중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깝다는것 때문에 함부로 말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안하는데 친분이 있기 때문에 상처를 입히고 상처받는 일들이 많아요

교회안에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문제입니다. 가까우면 사랑하고 가까우면
도와주어야 하지요. 가깝다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2절, 이사람이 어디서 이런것을 얻었느뇨?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거예요.
그 다음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뇨?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이 본문에서 많은 이들이 이사람이 이사람이 그래요. 이 배후에 무슨 뜻이
있습니까? 야 너 예수 아니냐. 예수. 우리와 여기서 30년 같이 살던 예수
아니냐? 우리가 너 잘 아는데 어디서 이런 것 얻었느냐? 네거 아니란 말이예요
거친손 지저분한 것이나 만지던 손의 권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사랑하는
사이이고 일생을 같이 하는 동반자입니다. 그래서 서로 다 알아요
근데 이 너무 잘 안다는 것 때문에 함부로 행동하고 말하고 함부로 대할때가
많아요. 교회 안에서도 친한 교우들끼리 해를 거듭할수록 가까워지고 못할
말이 없고 서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근데 서로 모두다 안다는 것이
상대방을 무시하고 경멸하는데 사용되어서야 되겠느냐 그말이예요.

신앙생활 좀 오래했다고 하는분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교회를 잘알아.
나는 성경을 잘알아. 나는 신앙생활 오래 했어. 그래서 잘안다는 것때문에
어떻지요? 설교를 잘 듣지 아니합니다. 잘 안다는 것 때문에 무시하고
함부로 행동합니다. 오래믿었다는것 때문에 눈에 보이는것이 없단 말이예요.

우리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오래 믿었다는것 일찍 믿었다는것
이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남들보다 일찍 교회 생활 신앙생활 했다는 것 얼마
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데 특권이 특권으로 대접받고 있습니까? 아니예요.
특권이 그만 불손으로 나타납니다. 은혜가 욕이 됩니다.

오늘날 문제가 어디에 있어요?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님에 전에 나와 예배드린다는 것 때문에
예배시간에 얼마나 경건하게 예배드려요? 근데 오래 믿은 사람들은 안다는것
때문에 행동도 함부로 합니다.

교회가 누구때문에 상처를 받고 문제가 생깁니까? 오래믿고 먼저 믿은 하나님
이 주신 특권 무시하고 은혜가 은혜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렛에 오시지 아니하고 차라리 다른 데서 태어났다고
그러면 좋았을 것을, 30년 동안이나 그들이 예수님을 안다는 것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은 주님을 가장 잘아는 나사렛 사람들에게 경멸을 당하신 것처럼
오늘날도 주님을 가장 잘아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상처를 받으십니다.
나는 주님을 경멸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행동심사가 어떤가 우리는
생각해야 되요.

두 번째, 이 노동이나 가난 신분에 낮음은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 사역 시작하시기 전에 가난하셨고 노동을 하셨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아니 이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
무슨 말입니까? 노동자라는 말이예요. 너 노동하지 않았느냐. 또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 신분이 낮은 사람이란 말이예요. 너 요셉이 일찍
죽고 너 호로자식이 아니냐 그 소리예요. 너 소년가장 아니였냐 별거 아니다
그거에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것을 만드신 예수님이 오셔서 하찮은 것에 손을 대시
고 스스로 땅의 모든 제한을 받으며 일하셨고 부유하신 분이 우리 위해 가난해
지셨고 땀흘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결단코 수치가 아닙니다.
노동한다는것은 부끄러운 일 아니예요. 감출 것이 아닙니다.

좋은가정 좋은 신분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는것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우리 죄때문에 받는것이 아니라고 그러면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다.
노동을 장하게 여기십시다. 신분을 감추지 맙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뭘 가지고 태어난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하나님 자녀로 태어난것
아니예요.

또 남이 가난하다고 다른 사람 신분이 천하고 나보다 못하다고 경멸하지
마십시다. 현대판 나사렛 사람 되지 말자고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가 뭐예요? 예루살렘 사람 아니고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얼마나 한심한 일이예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것
때문에 경멸하다니 일꾼이 일꾼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멸했어요. 평민들이
평민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멸했습니다. 단순한 사람들이 단순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멸했어요. 죄인들이 나 위해 죄인의 모습으로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멸시했습니다.

하늘보좌 영광버리시고 특별하신분이 보통 평민이 되시고 금마차 타고 오시지
않고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우습게 알았다고요 우리
예수님이 왕홀을 들고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백마타고 왕궁으로 오시지
아니하고 벌거벗김을 당하고 채찍을 맞으면서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셨다는것
때문에 끝까지 조롱과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어쩌면 육신의 눈과 신령에 눈이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까.
영광과 존귀 받으실 일인데 멸시 천대 받으신거예요.

여러분 오늘날도 세상은 이렇습니다. 내가 내 아내나 내 남편의 허물과
가까이 잘 모든 것을 안다는것 때문에 우리는 왜 상대방을 괴롭히고 상대방의
헛점 들추어내서 아프게 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안다는것 때문에 친하다기에
더더욱 그 허물 감싸주고 덮어주라 그럽니다.

세번째, 불신앙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본문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들을 찾아오신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배척당하고 쫒겨나셨습니다. 그런데 1년 지나서 오늘본문 마가복음
6장에서 다시 말씀을 믿어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 찾아오셨어
요. 이게 은혜입니다. 은혜예요. 한번 배척당하셨으면 다시 오실 필요없는데

또 다시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요 5절말씀에 보니까, 나사렛 예수는 그 사람들 마음이 완악하고
주님께서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6절에서는 그들의 믿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예수님이 말합니다.

이렇게 불신하며 사는 동안 우리가 누릴 놀라운 축복들을 빼앗아 갑니다.
불신앙은 우리에게서 모든 권능을 빼앗아 가버리고 맙니다. 이땅에 살면서
모든 것 다 가졌다 그래도 불신앙 가지고 있으면 가진 모든 것이 아무
유익없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고 그래도 신앙만 가지고 있으면 다
가진 겁니다.

예수님이 성경말씀에 보면 놀라신 적이 딱 두번있습니다.
4복음서에 다 보시면 예수님이 놀라셨어요 깜짝놀라신게 두번 있지요.
한번은 오늘 본문에서 이 나사렛 사람들의 불신앙 때문에 놀랐고 한번은
이방인인 백부장에 큰 신앙에 놀라셨습니다.

그러니까 한번은 큰 신앙때문에 놀라셨고 한번은 불신앙때문에 놀라신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주님을 어떻게 놀라시게 할겁니까?

아니 네가 그렇게 오래 믿고도 아직도 그속에 불신앙이 있느냐? 네가 너때문
에 놀랬다. 그럴겁니까? 아니면 야 네가 그런중에서도 신앙으로 사는구나.

우리속에 있는 신앙의 뿌리때문에 주님이 놀랠겁니까?
주님이 뭣때문에 놀래셔야 되요? 불신앙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능력 체험
못해요. 이 불신앙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합니다

아무 권능도 행하실수 없어. 저희 믿지 않음을 인해서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느니라. 아무 권능도 행하실수 없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주님이 오늘도 내 심령속에 찾아오셔서 너희가 믿지 않음으로 내가 너희에게
권능을 행할 수가 없다. 내가 너희 교회에 찾아갔지만은 너희에 불신앙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서 권능을 행할수가 없다 주님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불쌍한 자가 되고 말겁니다.

예수님이라도 불신앙의 사람에게는 은혜를 억지로 부어주실수가 없습니다.
나사렛 사람들 불신앙 때문에 예수님은 아무 이적도 행하실수가 없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시간 우리 한분한분 우리 마음을 살펴보십시다.
내속에 불신앙의 뿌리가 남아있지 않은가?

여러분 우리는 나를 이해하고 나를 잘아는 가까운 사람들 우리 무시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잘 안다는것이 사랑의 도구가 되야 합니다.

우리 주님앞에 자백하십시다 한몸같이 아끼고 서로 돕고 사랑하라고 주신
분들인데 함부로 대했습니다 자백하고 가까운 이들은 더욱 가까이 손잡고
세워주시고 멀었던 분들은 가까이 다가서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