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해야할 라오디아 교회

경계해야 할 라오디게아 교회/계3:14-22

경계해야 할 라오디게아 교회
계3:14-22





오늘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있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라오게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주님의 책망만 받았던 교회로서 말세의 교회의 그림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교회의 형편을 일고 상고하면서 말세라 불리우는 오늘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크게 경계해야 되겠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밖으로는 핍박도 받지 않았고 안으로도 이단이나 분쟁이나 부도덕 같은 폐단이 없었던 교회였으며 부유했고 모든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만족할만한 평온함 속에서도 그들의 신앙은 미지근해서 활동성이 없고 나태하며, 무기력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현대 교회의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를 성도들은 심심히 반성해야 할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백성의 정의\"라는 뜻을 가진 라오디게아 성읍은 빌라델비아와 골로새 사이에 있는 도시인데 이 도시는 시리아왕 안티쿠스 2세가 B.C 261-246 에 건설하여 왕비인 \"라오데케\"의 이름을 따서 라오데게아라고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빌라델비아, 골로새, 에베소, 히에라볼리 등의 도시들 사이에 위치하여 교통의 요충지였고 모직공업이 발달했으며 유명한 의학교가 있는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현재는 터키 이름으로 \"에스키 힛살\"이라고 불리지만 페허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책망받았던 곳은 모두가 페허화 되었고 칭찬 받았던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같은 곳은 현재까지 왕성한 도시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교회도 이런 모든 상황을 살펴보면서 후대에 폐허로 남아있게 되지는 않을지, 책망 받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모두들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브라가 설립하여 골로새와 히에라블리 교회와 함께 바울의 영향 아래에서 커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이후에 이곳에는 쇠퇴의 기운이 점점 일어났고 결국 현재는 폐허화 되어버렸습니다. 사도 바울과 요한이 경고의 말씀들을 하였지만 그들은 잊어버리고 외면했기 때문에 결국 이곳의 촛대는 옮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물질의 풍요로움과 황금시기에는 예언의 말씀을 새겨듣지 않고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리기 쉽다는 진리를 발견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 라오디게아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직공업이 흥왕한 도시였고 물질의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그들의 영적 감각이 무디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풍요로움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귀함을 알아야 하고 역경 속에서는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고 축복된 생활을 고대하며 신앙생활에 게으르거나 나태해지지 말아서 영혼의 삶이 부해지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요 할 때 주님을 잃고 안일 속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그 축복이 곧 영혼을 죽이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속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형편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의 입맛에 맞지 않게 살았던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본문 15절 말씀처럼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여 미지근한 교회였기 때문에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회는 열심도 없고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믿는 것 같고 믿지 않는 것 같은 그런 교회였습니다. 오늘 날 많은 신자들이 교회에 오면 믿는 것 같아 보이고 사회에 나가면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여 믿는지 안 믿는 사람인지 분간을 못하는 것처럼 그런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심령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충성되고 진실한 증인이 되시며 열심히 갑옷을 입으시고 일하시는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사 59:17-18>에 보니 \"의로 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 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사 9:7>\"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왕하 19:31>\"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히 이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겔 39:25>\"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애굽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찌라.\"

<시 69:9>\"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그러므로 주를 위한 열성이 식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열심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을 크게 경계하고 열심 있는 뜨거운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자아 발견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상당히 부요 했지만 영적인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은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점이 또한 말세 교회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인 분별력이 없고 육신 생활에 푹 빠져서 거기에만 만족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물질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이 너무 만연하여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 17-18절 말씀을 다시 한번 봅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발가벗은 것을 알지 못 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발가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우리는 오늘 본문 속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눈이 있으나 자신을 살피지 못하는 눈먼 맹인 같은 처지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열심을 내어 모든 일에 앞서야 하는데도 그러하지 못하고 영혼의 가난함과 메마름을 살피지 못하는 눈뜬장님과 같은 신앙은 아닌지 성장을 못하는 앉은뱅이 신앙은 아닌지 깨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자신을 살피지 못하는 모습에서 크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을 배척한 예수 없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문밖에서 계속하여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끝까지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열심을 내어라. 회계하라\"고 권하십니다. 그러나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을 문밖에서 배척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부흥 강사님들이 흔히 하시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에 대학에 아들을 입학시키고 부모님은 시골에서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으며 피 땀흘려 등록비를 대어 주는데 이 아들은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평판이 참 좋게 났습니다. 그런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긴 어머니가 아들 줄려고 있는 것 없는 것 한 보따리 해서 머리에 이고 아들 자취방에 오니 아들의 여자친구가 있는데 아들은 어머니를 보니 안절부절 소개하기를 \"자기 집의 파출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닙니까?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주님을 주님으로 맞아들이지 아니하여 문 밖에서 두드리도록 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보아서 오늘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문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도록 문열어 주지 않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음 문 열어놓고 진실로 주님 영접하여 주님과 함께 먹는 축복을 누리고 주님의 보좌에 앉는 축복을 누리도록 합시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런 상태가 주님 앞에 참으로 입에서 토하여 내칠 정도로 역겨운 것이 였기에 차라리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라오디게아 교회나 이와 마찬가지인 오늘의 어느 누구든 간에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21:31)\" 라고 경고를 하십니다.

\"지금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바알을 섬기는 것도 아닌 것보다는 바알을 섬기는 일에 열심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니라\" (왕상18:21-)의 말씀처럼 미지근함보다도 차라리 찬 것이(물론 더운 것이 좋지만) 더 나은 삶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하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지혜롭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지혜로운 자로 생각하는 그러한 자보다 자신을 미련한 자로 생각하는 자가 지혜롭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뜻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 앞에로 오는 자는 미지근한 자보다 차라리 찬 자가 더 희망이 있기에 차라리 더웁던지 차던지 하라하신 것입니다.

또한 미지근함이란 그리스도를 문 밖에서 들어가시기 위해 문을 두드리도록 만드는 결과입니다. 주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의 임재를 환영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랑이 없는 곳에는 그리스도도 계시기를 원치 않으시며 토해 내치시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을 급히 모셔들여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기관들도 마찬가지 미지근한 상대로 일을 하는지 마는지 안하는 상태만도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경성 하여 열심과 뜨거움이 있는 교회가, 기관들이,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