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의 사명 마28:16-20
오늘 찬양처럼 우리가 다 일어나 주의 영광 밝게 비추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말 좋은 가을 일기 가운데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순간 한순간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2006년 가을이 여러분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정말 중요한 명령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명령이 구약 성경의 창세기 1:28에 있는 말씀이고, 신약에는 마태복음 28:19-20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열강들이 기독교 문화가 활발하게 사실 펼쳐질 수 있었고 세계의 주도적인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창세기 1:28 말씀과 마태복음 28:19-20 말씀에 근거해서 그들이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서 이들의 욕심이 좀 지나쳐서 그것이 좀 제국주의로 변질되었고, 오늘날도 미국을 비롯해서 신 제국주의적인 요소들이 있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우리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잘 활용하고 선용하고 그 말씀에 순종한다면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창 1:28 말씀에서 하나님은 다섯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생육하라.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이것을 신학적으로 ‘문화적 대 사명’(Cultural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 명령에 기초해서 서구의 기독교 역사가 발전해왔고 이 말씀에 의거해서 그들이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세계 중심 국가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마태복음 28:19-20 말씀을 예수님의 ’지상명령’ 혹은 ‘대 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허락하셨는데 제대로 순종하지 않고 수행하지 않음으로 그러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다고 신학자들이 주장하기도 합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하나님을 믿는 빛의 자녀들이 어둠의 자녀들에 밀려서 주변으로 밀려버렸다고 주장합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동생이었던 리차드 니버는 ‘기독교와 문화’라는 책을 통해 이 부분을 보완설명을 해줍니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현상을 보면 믿음의 자녀들, 즉 빛의 자녀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중요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믿지 않는 어둠의 자녀들에게 밀려서 오히려 주변인이 되어져있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라인홀드 니버는 대단히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모든 영역에서 자기에게 주어져있는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삶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펼쳐나가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학생들이 코피를 흘리면서까지 예수 믿지 않는 많은 사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에서 “가라. 제자를 삼으라. 세례를 주라.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다섯 가지로 제자들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의거해서 이 땅의 모든 믿음의 사람들과 교회들은 이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 한밭교회도 1964년 6월 10일 대전 땅에 세워져서 오늘까지 이 일을 감당해오고 있고,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사명을 지속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되리라 생각됩니다.
1.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은 사람들(교회)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고 이 권세를 내가 너희들에게 준다는 의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받았던 축복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설교가 “축복을 저주가 되게 한 부부”라는 제목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실 범죄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창1:28에게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 다섯 가지 명령을 주셨는데 그들에게 주신 그 축복을 범죄 타락함으로 다 상실해버리고, 그 아들 대에 가서는 형이 아우를 돌로 쳐죽이는 그런 비극이 발생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주어졌던 모든 하늘의 축복이, 하나님의 권세와 권능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상실되어졌던 하늘의 권능과 권세가 우리에게 회복되어져서 주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나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고, 못나고, 무능하지만 하늘의 능력을 힘입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사실 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여러 가지 부족하고 떨어지는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능력과 권세로 제공해주시고, 그 하늘의 능력을 부여받아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정복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당대에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못나고, 무능하고, 무가치하고, 못 배우고 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가룟 유다가 그래도 공부도 하고 똑똑하고 머리도 잘 돌아갔는데 가룟 유다는 배신하지 않았습니까? 그 원색적인 삶을 살던 사람들을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제자로 삼으시고, 3년 동안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고 변화되게 하시고 그리고 마지막 지상명령을 통해 사명을 주시고, 그 유대 땅에서 무능하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던 그 사람들이 결국 세계 역사를 뒤집어 놓았던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유능한 사람, 엘리트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이 세상을 뒤집은 것이 아니라 못나고 무능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고 때로는 비굴하기까지 했던 그런 사람들을 들어서 주님께서는 역사를 바꾸게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비록 연약하지만 성령님을 통해 부어지는 하늘의 능력을 부여받고 그 능력을 발휘할 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정복할 수 있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번씩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사회, 정치, 문화 영역에 굉장히 많이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좀 더 기독교인다웠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 좌파 정부 아래에서도 국정원장에서부터 정부의 중요한 요직에 기독교 장로님 집사님들이 참 많이 진출해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자리에서 정말 기독교인다운 모습으로 살고, 말하고, 행동할 때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침묵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저 자리를 주실 때에는 바른 말을 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려고 그 자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가 늘 기도하고 있는 한 집사님이 계십니다. 중요한 나라의 대사로 계십니다. 지금 굉장히 많은 어려운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바른 신앙적으로 살려고 말하고 행동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공격도 받고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때로는 어려운 일을 당하고 힘든 일을 당하지만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을 바로 증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더 귀한 그릇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똑똑하고, 너무 유능하고, 너무나 많이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딴판으로 살고 있는 모습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식했지만, 무능했지만, 부족했지만 전적으로 자기 삶을 드리며 헌신했기 때문에 인생을 역동적으로 살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적인 인물이 되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복음전도)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먼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가서” 가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첫 번째 사명을 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 이웃, 민족, 나라,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곳으로 갑니까? 하루에도 여러 곳으로 갑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가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은 가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 말아야 할 곳은 쉽게 잘 돌아다니면서 정작 가야할 곳은 가지 않는 그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가라는 말은 목적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사명감을 가지고, 우물쭈물 하지 말고 우리가 가야될 곳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선교사님들을 보았을 때 늘 마음에 미안한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갈 수 있을까? 다 버리고, 다 포기하고 가서 그곳에서 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또 가야 되는데 가고싶지 않을 때가 정말 많습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곤란하기 때문에...
제가 중국에 조선족 신학교에 가서 강의를 여러 차례 하면서 갈 때마다 부담을 느끼고, 갔다 와서도 자꾸 와서 강의를 해달라고 하는데 정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가면 싫은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주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책까지도 다 주는데, 그 사람들이 뭔가 자꾸 바라는 것입니다. 돈이라도 좀 있으면 다 나눠주고 와야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정말 주님의 뜻이긴 한데, 인간적으로는 가기 싫은 것입니다. 가면 힘들고, 어렵고, 부담스럽고, 곤란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우리와 교회가 돈이 무한정 있었으면 돈 다발을 가지고 가서 풀어주고 오면 되는데, 우리가 가진 것은 불과 5만원, 10만원, 많이 줘봐야 100만원입니다. 그렇게 나눠주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바라는 그 모습을 봅니다.
선교사들은 어떻겠습니까? 선교 현장을 나가면 온통 그런 사람들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런 부담감을 다 감당하면서 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 전도하러 갈려고 하면 첫째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까? 놀러 가면 부담을 하나도 안 느끼는데, 복음을 들고 갈 때에는 그들이 받을까, 수용할까 생각하면서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외치라고 했는데,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데는 가지 않고, 엉뚱한 데로 가지 말아야 할 곳을 향해 가다가 결국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 하에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보낸 후에 비로소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가야될 곳을 찾아가는 그런 성도님들이 되고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이웃을 향해, 지역 사회를 향해, 민족을 향해, 이 세상을 향해, 우리가 가든지 아니면 보내든지 그래서 한밭교회가 앞으로 많은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보낼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 우리들 가운데 평신도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세계 곳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어지는 역사가 있게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3.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제자화)
가라는 명령에 이어서 가서 뭘 하느냐, 바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교회를 흔히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라고 하면서, 그 사이에 배우는 교회, 예배하는 교회 등등의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일차적으로 모여야만 예배드릴 수 있고, 말씀을 배울 수 있고, 훈련받을 수 있고, 그리고 친교하고 무장된 우리들이 나가는 흩어지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모이는 것만 강조하면 대형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모인 만큼 흩어질 수 있어야 됩니다. 모이면서 흩어지는 교회가 역동적으로 잘 이뤄질 때 힘있는 교회, 살아있는 교회, 능력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모여서 즐겁고, 친교하고, 성경공부하고 그 수준에만 머물면 앉은뱅이 교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했는데, 성경공부라는 성경공부는 다 이수했는데, 하는 짓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집 안에서만 맴도는 그런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말씀만 많이 알 뿐 전혀 변화되지 않은, 머리만 클 뿐 나가서 전하는 발이 없는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그런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교회에서 당파를 짓고, 무리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익혔으면 그것을 가지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 삼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정말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내가 율법 없는 자같이 된 것은, 내가 연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을 향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했습니까? 변질자다, 카멜레온과 같은 자다, 세속주의자다, 너무 지독한 율법주의자다, 세대주의자라, 상황론자라고 비난했지만, 바울은 자기 속에 있는 한 가지 분명한 목표 “가서 주의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아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붙잡았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전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다양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우리가 제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가장 중요한 과정입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참여해야 합니다.
저는 교회에서 성경공부하는 것을 제자훈련이라는 표현을 절대 쓰지 않습니다. 16년 한밭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제자훈련이란 말을 쓰지 않습니다. 제자훈련이라는 말이 너무 좋은 말인데, 이 말이 한국교회에 들어와서 적용되면서 너무 잘못되게 변질되는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하나님 말씀을 받고, 배우고,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져야 되는데, 이 훈련을 받고 난 사람들이 건방지게 되어서 교회에 무리를 일으키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또 심지어는,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정직하지 못한 목회자들이 자기 심복들을 만들기 위해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측근들을 만들고, 교회를 장악해 나가고, 자기 의도대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그런 모습들이 많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크고 작고를 떠나서 이름은 거룩하게 제자훈련이라고 붙였는데, 정직하게 제자훈련이 아닌 그런 프로그램들이 많은 경우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주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변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변화되셨습니까? 최근에 와서 제가 그동안 설교했던 것을 다 정리를 해서 CD를 만들었습니다. 거의 16년 가까이 제가 얼마나 많은 설교를 했으며,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가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고, 그렇게 많이 설교를 했는데도, 변화되는 사람은 변화되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옛 모습 그래도 있는 경우들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말씀에 따라 변화되어지고, 말씀에 따라 새로워져야 됩니다.
요한복음 8;31에 보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참 제자는 제자훈련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거하지 않고, 교회에서 건방 떨고, 교만하고, 거드름 피우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 무시하며 깔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하대하는 이런 사람은 진정한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이런 엉터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엉터리들 때문에 한국교회가 이렇게 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제자는 주님 말씀 안에 거하고,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앎으로 참된 자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가지고 참된 제자가 된 자들은 율법주의자들이 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자기 논리를 전개하고, 다른 사람을 기죽이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옥죄는 이런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거듭나야 되고,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면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야 될 것입니다.
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가서 그들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까지 주어야만 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 말은 하지만 남녀도 다 헤어지는 것처럼, 교회를 수년간 드나들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그러다가 어느 날 언제 사라졌는지 없는 경우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사랑해도 결혼하지 않으면 그 사랑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결혼을 통해 온전한 부부가 되고, 하나가 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도 세례 받기 전에는 온전한 믿음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가식적으로 엉터리로 세례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정한 세례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는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내 인생에 주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헌신하겠습니다. 주님을 따라 살겠습니다.” 이런 신앙고백과 함께 베풀어지는 거룩한 예식이 세례가 아닙니까? 이 예식이 반복되고 거듭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봄과 가을에 두 번 세례식을 거행합니다. 아마 학습, 세례, 유아세례, 입교를 다 합하면 한 번 할 때마다 개척교회 하나씩만큼 세례를 받지 않습니까? 교회들이 다른 모든 것은 다 갖추었다고 할지라도 합당하게 세례를 베풀지 않으면 교회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라는 것은 우리가 볼 때 분위기가 좋고, 목사가 설교를 잘하고, 성가대가 찬양을 잘하고, 시설이 좋은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경적인 원리에서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전도가 강조되고, 올바른 권징이 시행되고, 합당한 성례가 거행되는 교회가 신학적으로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잘 기억하시고 교회를 옮기거나 선택할 때 이 네 가지 기준으로 교회를 옮겨야 합니다. 목사가 원맨쇼를 하듯 한다든지 찬양대가 아주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해서 찬양을 잘한다든지, 교회 분위기가 너무 좋다든지, 교회 시설들이 너무 좋은 것 때문에 교회를 정한다면 그 사람은 신앙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말씀을 따라서, 말씀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이것들을 잘 지켜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에게나 세례를 베풀고 그래서는 안됩니다. 군대 교회 특히 논산 훈련소에 가면 기념품과 선물을 받으려고 수십 번씩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고, 제가 군에 있어봤지만 세례 받아야 될 사람이 사역을 나가고 없으니까 다른 병사를 그 옷을 입혀서 군목이 세례를 주는 이런 엉터리 같은 일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신앙고백도 확인하지 않고 세례를 베푸는 곳이 있는데 그건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이건 세례도 아닌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는 있지만, 주님 앞에 올바른 신앙고백이 이뤄지지 않으면 세례를 받아서도 안 되고 세례를 베풀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가르치는 목적은 그 가르치는 것을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규례는 우리에게 올무가 되게 하려 함이 아니라 지켜 행할 때 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신 28:1-14). 우리가 많이 배웠고, 들었습니다. 배운 만큼 들은 만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참된 자유자로서, 참된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제자로서, 작은 그리스도로서, 이 세상에서 주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배우든지 가르치든지 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바로 믿고, 바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 한밭교회를 향한 주님의 명령
우리 한밭교회에 주신 사명이 바로 이런 사명입니다. 흔히들 오늘날 교회의 핵심가치니 뭐니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이 말에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모습으로 자꾸 변질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이 떠나고 있습니다.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기보다는 엉뚱한 말들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자꾸 목사들이 따라가다 보니까, 하나님 말씀은 잃어버리고 세상적인 말들만 늘어놓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하나님 말씀 앞에 살겠다는 분명한 의지와 목회자가 하나님 말씀만을 증거하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합쳐질 때 진정한 말씀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지고,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한밭교회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만들어 나가야 되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이 사명을 감당해야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해 나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님들과 성도님들 가정과 또 우리 한밭교회에 하늘의 풍성한 축복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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