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성도, 열린 교회 계3:7-13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밤새 술을 마시다가 새벽녘에 겨우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화가 단단히 난 부인이 문을 열며 소리를 쳤습니다. \\\"이 새벽에 뭐하러 들어와. 동틀 때까지 술집이나 찾아 돌아다니지!\\\" 그러자 술 취한 남편이 익살스럽게 대답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문 연 집은 여기밖에 없어!” 그래도 문이 열려 있는 자기 집이 있으니까 찾아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열려 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특별히 ‘열려 있다’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TV 프로가운데 ‘열린 음악회’가 있습니다. 종전에는 주로 스튜디오에서 소수의 사람을 방청객으로 불러 놓고 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열린 음악회는 넓은 광장이나 체육관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문턱을 낮추었습니다. 서로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며 하나가 되는 감동의 자리로 탈바꿈했습니다. 교회 안에도 ‘열린 예배’가 등장했습니다. 소수의 사람에 의해 일방적으로 인도되는 예배가 아니라 서로가 공감하고 참여하는 감동적인 예배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도 ‘열린문 교회’‘열린 교회’가 등장했습니다. 상호 가운데도 ‘열린 식당, 열린 공간’등의 이름이 있습니다. 교육계에도 ‘열린 교육’을 주장합니다.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데도 ‘열린 진보’‘열린 보수’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정당의 이름에도 ‘열린 우리당’이 있습니다.
‘열려있다’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인은 일방적인 독주를 싫어합니다. 폐쇄적으로 닫힌 공간에서 몇 사람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토론하는 ‘열린 대화’를 원합니다. 상호간의 교제와 교류를 존중합니다. 칼 포퍼(Karl Popper,1902-1994)는“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의 어떤 주장이 과학적인 타당성을 지니려면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고의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개방성을 가진 사람이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만찬가지입니다. 폐쇄적인 교회, 닫힌 교회는 더 이상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닫힌 사고를 가지고는 부흥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지교회를 넘어서 열린 태도를 가지고 지역사회를 향해 다가가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소 아시아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주님께서 그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열린 문, 열린 기회에 효과적으로 응답함으로 주님의 칭찬을 받는 열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성지교회가 어떻게 하면 열린 성도, 열린 교회가 되어서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칭찬받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성지교회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어가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통해 그 비결을 함께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빌라델피아라는 말은 본래 필로스(사랑)와 아델포스(형제)라는 두 단어의 결합입니다. 본래 버가모 왕국시대 이 지역의 통치자였던 유메네스 2세(Eumenes)는 전쟁에 나갈 때마다 정치와 군사 지식이 탁월했던 동생 앗탈로스 2세(Attalos 11,BC159-138)에게 내정을 맡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 지지도가 높았고 인기가 많았던 그를 로마정부가 이용할 목적으로 그에게 왕위에 오르도록 충동했지만 앗탈로스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형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앗탈로스의 형제애’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빌라델피아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40km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했던 도시입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습니다. 주후 5세기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려 질 만큼, 많은 신전이 있었고 거기에서 많은 종교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에서 \\\'적은 능력\\\'이란 헬라어로 \\\'미크란 에케이스 뒤나민(mikran ekeis dunamin)\\\'이라는 단어로 \\\'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신분이나 지위가 변변치 못한,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주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는 크냐 작으냐, 많으냐 적으냐에 관심이 있지 않고, 최선을 다 했느냐, 최선을 다하지 않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내세울 것이 거의 없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주님으로부터 두 가지 칭찬을 받았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말씀을 지켰습니다. 여기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했고 그 말씀을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8절에서 \\\"내 말을 지켰다\\\"고 칭찬했고, 10절에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께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고 우둔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세상에서 부적응의 사람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순종하는 사람이 주님께 인정받고 그 사람이 명품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사람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미 전지전능하신 무한한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비록 능력은 적을지라도 주의 말씀에 ‘아멘’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명품 인생으로 인정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르게 살아야 명품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아무 구별 없이 살아간다면 결코 명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원리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계시록 1장 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어떻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까?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자가 주님께 인정받고 주님으로부터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이 기록될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황제 숭배를 내세워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했습니다. 300여년이나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박해가 계속되자 박해를 두려워하며 다른 종교와 타협하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를 등진 채 주님을 떠나가는가는 사람들이 생기고, 아예 타락하여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힘이나, 재산이나, 권력이나, 명예 같은 것들을 소유하지 않은 적은 능력 상태에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빌라델비아 교회가 직면했던 도전은 외부적인 박해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이단들의 도전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본문 9절에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유대인임을 내세우며 은근히 교회를 파괴하려는 사단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일어났음이 분명합니다.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교회 성장을 가로막고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내외부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그들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명품과 일반제품들과 다른 점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변하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과 이미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제품으로 세계 여성들, 특히 한국의 여성들이 좋아하는 루이 뷔똥(Louis Vuitton)이라고 하는 상표가 있습니다. 루이 뷔똥 역사는 150년입니다. 루이 뷔똥 회사는 150년 동안 한결같이 변하지 않고 추구하고 있는 철학이 있습니다. 그 회사는 가방 하나 만들면서도 ‘짐을 들고 다니는 가방이 아니라,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주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명품은 품질이 뛰어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특징은 1년을 신고, 3년을 입고, 10년을 들고 다녀도 그 품질이 한결 같다고 합니다. 이처럼 명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멋있어지고 더 정감이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품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신앙의 능력은 양에 있지 않고, 다수결에 있지 않고, 질에 있습니다. 믿음의 척도는 얼마만큼 변하지 않고 있느냐에 달라집니다. 아침, 저녁으로 변하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명품 성도라고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성도가 주님으로부터 명품 성도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므로 시대는 변하고 상황은 변한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명품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빌라델비아 성도들과 같은 명품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는 몇 가지 축복을 약속을 하십니다. 첫째로, 닫힌 문을 열어주십니다.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문을 열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여기에서 주님은 열쇠를 가진 모습으로 등장하셨습니다.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는 그 열쇠로 문을 열 수도 있고,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열면 어느 누구도 닫을 수가 없고, 반대로 주님께서 닫으면 어느 누구도 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tot)는 ‘다윗의 열쇠’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권세’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절대 권위와 통치권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모든 문제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 지금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8절)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께서는 말씀을 지키며 변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던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이제 그들 앞에는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세상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능력의 문이 활짝 열려 그들은 이제 세상과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려 그들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축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처럼 닫혀있는 개인의 문이 열리고, 가정의 문이 열리고, 교회의 문이 활짝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문을 열어주십니다.
둘째로, 시험을 면하게 하십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여기에서 ‘시험의 때’란 예수께서 재림 할 때에 임할 대환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할 때 때로는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바보 소리를 듣고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으로 나가면 반드시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고전10:13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시험을 면케하시고,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기둥 같은 인물로 써주십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기둥은 집을 받치는 중심입니다. 기둥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둥이 되게 해주겠다는 것은 기둥처럼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 든든한 사람이 되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성전 기둥은 성전을 지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지키며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를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둥과 같은 인물로 써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성전기둥’하면 뭐가 생각이 납니까? 구약에 보면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우편에는 ‘야긴’이라 하는 기둥이 있었고, 좌편에는 ‘보아스’라 이름의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이 두 기둥은 솔로몬 성전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귀중한 사람으로 여기시고, 당신의 전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고 영원토록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국가에 충성한 사람의 이름을 그들이 섬기는 신전의 기둥에 새겨 그 사람을 존귀케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영광을 누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증표를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인(印)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보장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 믿어 여러분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처럼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기둥 같은 인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빌라델피아 교회를 통해서 배워야 할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의 비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열린 성도, 열린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불신자를 향한 전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여기 이 교회 앞에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문이 닫힐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그리고 지금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기회인 것입니다. 지금 열려진 기회를 잃지 말고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할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시라큐스라는 도시에 동상이 서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동상인데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 동상인데 어깨가 아닌 발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고 합니다. 동상아래는 이런 글귀가 새겨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리시퍼스. 그대의 이름은?-기회. 그대는 왜 날개를 발에 달고 있는가?-더 빨리 나르기 위하여. 그대의 앞머리는 무성한 이유는?-내가 올 때 사람들이 쉽게 붙잡도록. 그대의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기회의 속성인 것입니다. 전도에 관한 한 결코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그리고 모든 열린 방법으로 전도하십시오.
저는 수요일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온누리 리더십 세미나에 참가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을 직접 보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분은 구도자 예배를 처음 시도한 분입니다. 시카고 지역에 있는 불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눈높이로, 그들의 필요에 맞는 전도 방법을 가지고 다가갔습니다. 제가 도전 받은 것은 그분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열정입니다. 5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를 목회하면서도 여전히 개인전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러 갈 때 우리는 맛있는 집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빌 목사님은 자기가 전도해야 할 집을 찾아간답니다. 그리고 목사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가급적 자주 가서 칭찬을 한답니다. 때로는 교역자들을 모두 데리고 간답니다. 그러면 주인이 당연히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까?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되면, 저기 윌로우크릭이라는 교회가 있는데 한번 가보시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던진답니다. 그러면 십중팔구 약속을 한답니다. 구도자 예배를 통해 그들이 알고 있는 노래도 부르고, 드라마도 보여준 후에 드디어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설교를 위해 강단에 나타납니다. 그런데 식당 주인이 자세히 보니 자기 식당에 오던 단골손님입니다. 그래서 식당주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를 만나든지 전도이야기, 영혼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한답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목사가 5명의 전도 대상자를 품고 있다면 그들의 기도와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제가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VIP를 작정하고, 여러분의 수첩에 쉰들러 리스트와 같이 구원해야 할 전도 대상자를 기록하고 기도하라고 요청했지만 저 자신도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적어는 놓았지만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매일 기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제 수첩에 전도해야 할 5명의 이름을 다시 적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이제는 맛있는 집이 아니라 개포동 주변의 전도할 대상자 집에 가려고 합니다.
바울은 항상 이렇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골4:2-3)
오늘은 우리가 예수 생명잔치를 앞두고 전도 대상자를 작정하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바울처럼 전도할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영혼을 가슴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그 영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가 어느 날 탬버린을 치며 우수꽝스런 모습으로 배의 갑판에서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저명한 영국의 작가요 시인인 키플링(Rudyard Kipling)이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천박한 악기로 소리를 내며 걸어오십니까? 빈정거렸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선생이여, 만일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두발로 탬버린을 두드려 한 생명이라고 구원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열린 성도, 열린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그들은 서머나 교회와 함께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만 받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말씀을 지키고 믿음으로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열린 기회를 활용하여 선교적 사명을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관심은 얼마나 건물이 멋있냐, 얼마나 모이냐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를 보십니다. 우리 성지교회가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예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지상최대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열린 성도, 열린 교회가 바로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빌라델비아 교인들처럼 비록 적은 교회로 적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 앞에 인정받아 우리 앞에 있는 모든 닫힌 문이 활짝 열려지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시험에서 승리하고, 주님 앞에 기둥같이 쓰임 받는 일군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최선을 다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열린 교회, 열린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